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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183화 (183/424)

183화 첫 수하 (2)

“무슨 일이십니까?”

아시테르는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게벨이 이쪽으로 다급히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함정이었다!”

“함정이라뇨? 설마 다른 병력들이 에도피아 본성을 치기라도 한 겁니까?”

“아니. 당한 것은 우리가 아니야. 엠벨 영지쪽이다.”

“엠벨이요? 대체 그게 무슨 말씀이에요?”

그때 아시테르의 눈에 호가드니 군이 다급히 물러나는 것이 보였다.

밸크로 기사단도 무언가에 쫓기듯 서둘러 자리를 벗어나고 있었다.

로트말론 군도 그들을 쫓지 않았다.

이를 지켜보던 게벨이 다시 입을 열었다.

“엠벨 영지가 습격 받았다.”

“습격이라니 대체 누구에게…….”

“발할라다.”

발할라라는 단어에 아시테르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엔류아도 발할라의 이름이 등장하자 덩달아 두 눈이 커지고 있었다.

“네? 말도 안 돼… 발할라가 대체 왜… 하지만 엠벨에는 그곳을 지키는 수비병들이 있어요. 아무리 성주님과 밸크로 기사단이 이곳에 왔다곤 하나 그곳이 쉽게 뚫릴 리가…….”

그녀가 회의적인 말투로 말했다.

그러자 게벨이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습격을 받았다고 하는 것을 보니… 분명 엠벨 안에 그들을 돕는 내부자가 있었을 거다. 게다가 이건 내 생각이지만… 이번 영지전을 일으킨 것도 어쩌면 발할라에서…….”

“그럴 가능성도 있어 보입니다… 그 자들이라면 충분히…….”

“무서운 놈들이다… 발할라 놈들… 엠벨뿐만 아니라 에도피아 아니, 나아가서 이미 이 나라 전체에 숨어 있을지 모른다. 벌써 오랫동안 발할라와 싸우고 있지만 정작 우리들은 놈들의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르고 있으니…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벌써 우리 왕국에 깊게 뿌리를 내렸다는 겁니다.

게벨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 누군가가 다급히 뛰어와 로트말론에게 보고를 올렸다.

“성주님!”

“무슨 일인가?”

“기습입니다!”

“기습?”

“예! 사우스 왕국놈들이 이쪽으로 쳐들어 왔습니다!”

“제길! 갑자기 사우스 왕국놈들이라니!”

로트말론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재빨리 군사들을 모았다.

방금 막 전투가 끝났던지라 다들 많이 지쳐있는 상태였다.

확실히 상황이 좋지 않았다.

하필이면 영지전이 끝난 직후라니.

“일단은 서둘러 자리를 옮긴다!”

“네!”

“모두 싸울 수 있겠지!?”

로트말론의 말에 병사들이 함성으로 화답했다.

영지전은 같은 왕국 사람들끼리 전투를 치르는 것이지만, 이번엔 달랐다.

사우스 왕국과는 작든 크든 그것은 전쟁이라 불렸다.

더욱이 에도피아는 사우스 왕국과 국경이 맞닿아 있는 지역이었다.

그만큼 크고 작은 분쟁이 빈번히 일어났던 곳이고, 심지어 과거에는 사우스 왕국에 점령당해 통치까지 당했던 뼈아픈 역사가 있는 지역이었다.

그러니만큼 이들이 사우스 왕국에 대해 갖고 있는 반감은 설명할 수도 없을 만큼 거셌다.

호가드니는 그저 얄미운 정도라면 사우스 왕국은 가문의 원수나 다름없었다.

그렇기 때문일까.

모두의 얼굴에 살기가 가득했다.

“사우스 왕국에는 가위바위보도 지지 말라고 했습니다.”

“놈들이 침을 뱉으면 우리는 가래도 섞는다.”

“한 대 치면 열 대로 갚아줘야제!”

병사들이 호기롭게 외치며 움직였다.

로트말론이 그들의 선두에 섰다.

어느새 게벨과 제9기사단도 그들과 함께 걷고 있었다.

“게벨 단장.”

“이건 영지전과는 다른 얘기 아닙니까.”

“맞습니다. 사우스 왕국놈들이 이때를 노리고 쳐들어오다니… 절대 가만둘 수 없습니다.”

“얼마든지 저희들을 써주십시오. 이곳의 총 지휘관은 로트말론 성주님이 아니십니까.”

게벨의 말에 로트말론이 감사 인사를 표했다.

그들의 뒤를 따르는 제9기사단도 상당히 삼엄한 모습이었다.

“사우스 왕국놈들……!”

“잘 들어라. 여기서 무훈을 올려야 우리 기사단의 명성도 드높아진다.”

“적들의 침입에 질 수는 없지.”

제9기사단도 한 마디씩 거들며 의기를 다졌다.

“사우스 왕국이라…….”

아시테르가 홀로 중얼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곁으로 다가온 베드롱이 아시테르에게 말을 걸었다.

“네가 사람은 절대로 안 죽이는 것은 우리도 잘 알고 있다.”

“예?”

“마수들 앞에서는 무슨 원수라도 진 것마냥 가차 없지만 늘 사람들과 전투를 할 때는 약한 모습을 보이잖아 너.”

“아하하… 제가 그랬나요?”

“이미 우리 기사단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 네 모습이 좋기도 했고.”

베드롱의 말에 아시테르가 피식 웃었다.

사실 어느 정도 맞는 말이었다.

발할라를 제외하고는 이스트 왕국 내에서 싸움이 일어나도 아시테르는 절대 함부로 목숨을 취하진 않았다.

“근데 언제까지고 그런 낭만을 유지할 수는 없다.”

“사우스 왕국과의 전투를 앞두고 그런 말씀을 하시는 이유는… 아무래도 제가 사우스 왕국군에게도 그런 행동을 보일까 그런 건가요?”

베드롱 마음의 한편으로, 솔직히 말해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만약 아시테르가 사우스 왕국과의 전투에서까지 그런 행동을 보인다면 그때부터는 자질 논란이 될지도 몰랐다.

지나치게 마음이 약하면 절대 한 단체의 장이 될 수 없다.

그러니 베드롱으로선 아시테르가 이번만큼은 단단하게 마음을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래… 조금은 걱정돼서 그런다.”

그렇다고 해서 아직 아시테르에게 이런 사정들을 낱낱이 말할 수도 없었다.

현재 아시테르는 자기도 모르게 제9기사단의 부단장으로서 자격이 있는지 시험대에 올라서 있었다.

이런 사실을 아시테르에게 알려주면 그에게 커다란 부담일지 몰랐다.

물론 베드롱이 생각했을 때 이미 여러모로 아시테르는 부단장의 자리로 올라서기에 손색이 없었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것이 있다면 지나치게 이른 감이 있다는 정도.

솔직히 말해 정식으로 기사가 된지 얼마 되지도 않아 부단장으로 올라선다는 것은 너무나도 파격적인 행보였다.

아무리 부기사단장의 자리는 기사단 자체의 재량이라지만, 지금까지 신입이 단번에 부기사단장으로 올라선 역사는 단언컨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이는 어쩌면 기사단 자체의 역량이 시험대로 오르는 일이 될지도 몰랐다.

신입이 부기사단장의 자리로 올라섰으니 그만큼 다른 기사들이 제9기사단을 낮잡아 볼 가능성도 있었다.

그런 큰책임과 부담감을 아시테르에게 벌써부터 안겨주고 싶진 않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부단장으로 올라설 사람은 아시테르였다.

‘그래. 남들의 시선이 뭐가 중요하냐. 아시테르가 부단장으로 올라 제9기사단이 더욱 발전하고 나아갈 수만 있다면……!’

오랫동안 함께 수련하면서 부딪히고 비벼온 정이 있다.

가까이서 지켜본 바로 아시테르는 절대 자리에 짓눌릴 사람이 아니었다.

부단장의 자리에 올라선다고 해서 결코 다른 이들을 낮잡아보거나 함부로 대할 인물은 아니다.

베드롱에게는 그런 강한 확신이 있었다.

다만 아시테르가 과연 부단장의 자리를 순순히 받아들이려 할지, 그 문제도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그 이후의 문제.

우선은 아시테르가 부기사단장으로써 역량이 충분한지부터 판단하면 된다.

그 이후에 부기사단장의 자리를 받아들일지 선택하게 하면 될 일.

만약 아시테르가 제9기사단의 부단장에 오른다면 백상 마법기사단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베드롱이 여러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아시테르가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뭐……?”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된다고요.”

의외로 아시테르는 한껏 차분해져 있었다.

아니 조금은 차가운 분위기가 되었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때 베드롱의 시선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아니 근데 저 여자는 왜 여기에 있는 거냐?”

“놀랍게도… 밸크로 기사단에서 아무도 엔류아 씨를 데려가려 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바로 저쪽으로 보내줘야 하는 것 아니냐?”

“어떻게 하시겠어요?”

아시테르가 엔류아를 보며 물었다.

그러자 엔류아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기만 할 뿐 아무런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어느샌가부터 엔류아는 삶에서 선택이라는 것이 없어져 있었다.

오랫동안 다른 누군가가 그녀의 선택을 강제해왔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와 선택을 물으니 순간 판단이 서질 않았다.

그때서야 엔류아는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대답 않고 우두커니 있자 보다못한 베드롱이 한 마디 거들었다.

“빨리 말해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지금이라도 사람을 몇 명 붙여서 서둘러 밸크로 기사단에게로 보내주지요. 상황이 상황인지라 가는 길에 발할라나 사우스 왕국의 습격이 있을지도 모르니 ㄷ….”

베드롱이 말을 하는 동안에도 엔류아는 아시테르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대신 선택해달라는 표정이었다.

아시테르도 잠시 생각해보더니 이내 말을 꺼냈다.

“아무래도 지금은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이 좋겠어요. 지금 저쪽에 가봤자 당신…….”

척 봐도 엔류아는 많이 지쳐 있는 모습이었다.

하기사 대규모 전투를 벌이는 동안 그 많은 사람들을 즉발적으로 치유했으니 지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했다.

이런 상태에서 밸크로 기사단으로 데려가면 그들은 엔류아를 안정시키기보다 오히려 그녀에게 더 많은 치유를 부탁할 것 같았다.

그동안 계속 지켜보기로 밸크로 기사단은 정말 엔류아를 무슨 도구쯤으로 여기고 있었으니까.

안 봐도 훤했다.

그런 모습들 때문에 줄곧 엔류아가 신경 쓰여 왔는지도 몰랐지만…….

어쨌거나 엔류아를 무리시킬게 뻔한데 그녀를 밸크로 기사단에 보낼 순 없었다.

“그렇게 할 게요…….”

엔류아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아시테르가 다시 물었다.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네… 이곳에서 여러분들을 치료해줄게요. 여기 일이 해결되면 저를 곧바로 엠벨 영지로 데려다주세요.”

“물론이에요. 그리고 지금은 우선 안정을 취하세요.”

“네? 하지만 여러분들 모두 지금…….”

엔류아가 제9기사단을 둘러보았다.

호가드니 군과의 전투를 치른 여파로 부상 당한 자들도 몇몇 있었고 무엇보다 체력이 꽤나 떨어진 상태로 보였다.

그러니 엔류아는 자연스레 그들을 치료하기 위해 마력을 모으고 있는 중이었다.

밸크로 기사단이 이 정도였으면 아마 그녀에게 역정을 냈을 것이다.

빨리 치료하지 않고 무엇하냐면서…….

하지만 이들의 반응은 그동안과는 전혀 달랐다.

아시테르가 웃으며 말했다.

“저희들이 왜요?”

“다치신 분들도 있고… 또 이미 한 번 전투를 치르셨으니 다들 지치셨을 것 아니에요. 제가 조금이라도 치유를 해드릴게요.”

“아니요. 그럴 필요 없어요.”

아시테르의 말에 다른 기사들도 동의했다.

솔직히 말해 이 정도는 크게 신경쓸 수준도 아니었다.

“부상이 크게 심한 사람들도 없고 이 정도 부상은 괜찮습니다.”

“맞아요. 이거보다 더한 상처를 입었을 때도 훈련에 참가했었는데요 뭐…….”

“솔직히 지금보다 판데아님의 훈련을 받을 때가 더 힘들었지.”

“나 때는 말이야…… 팔 한쪽에 힘이 안 들어가서 손이 덜렁덜렁 거려도 훈련에는 끝까지 참여 했다고.”

“다들 뭐… 방금 전에는 가벼운 몸풀기 아니었나?”

“설마 이 정도로 나약한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으려고…….”

그들은 서로 눈치 보며 말을 하고 있었다.

여기서 누군가 나약한 소리를 내뱉으면 그야말로 낭패였다.

그 길로 추가 훈련에 들어갈지 모른다.

물론 그들의 말은 사실이기도 했다.

지옥 같은 훈련을 받을 때에 비하면 이 정도는 버틸 수 있을만한 수준이었다.

더군다나 처음부터 치유 마도사가 없던 제9기사단이었기에 그들은 정말로 치유의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었다.

제9기사단의 반응에 오히려 당황하고 있는 것은 엔류아였다.

그때 아시테르가 다가와 작게 말했다.

“지금은 기운과 마력을 비축해둬요. 이따가 정말 당신의 마법이 소중하게 쓰일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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