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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188화 (188/424)

188화 승격

호가드니의 얼굴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150만 골드가 무슨 뉘집 개이름도 아니고…….

“정말 가능한 거냐? 너무 쉽게 대답하니 믿을 수가 있어야지…….”

“가능합니다.”

아시테르가 저렇게까지 단호하게 말하니, 호가드니로서도 일단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치유 마도사인 엔류아를 잃는 것은 조금 아깝긴 하지만 150만 골드라면 손해 보는 장사도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이득이라고 할 수 있다.

어디까지나 아시테르가 약속을 지키는데 성공한다면 말이지만.

‘아니지… 약속을 지키지 못해도 상관없다. 그것을 빌미로 또다시 많은 것들을 빼앗아오면 되니까. 엔류아도 마찬가지.’

호가드니의 시선이 엔류아에게 닿아 있었다.

엔류아는 일부러 호가드니와 드웨인의 시선을 피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럼 얘기가 모두 끝난 것 같으니 저희는 돌아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근데 그게 쉬울 것 같나? 올 때는 너희들 마음대로 왔으나 갈 때는 아니지.”

드웨인의 말에 밸크로 기사단이 아시테르와 제9기사단의 앞길을 막아섰다.

아시테르가 고개를 돌려 드웨인을 바라보았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그래도 엔류아는 놓고 가라. 돈을 가져오면 그때 너희들에게로 그 여자를 보내주도록 하마.”

드웨인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150만 골드를 어떻게든 보낼 수 있다고 해도 아마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그러면 그때까지 엔류아를 실컷 써먹고 망가트려놔도 된다.

애초 거래 조건에 엔류아가 정상적인 상태여야만 한다는 내용은 없었으니까.

엔류아가 순간 불안해진 눈동자로 아시테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아시테르가 걱정하지 말라는 듯 웃어 보였다.

“아니요. 죄송하지만 엔류아씨는 저희들이 데려가겠습니다.”

채재쟁!!

밸크로 기사단의 기사들이 일제히 아시테르를 향해 검을 겨누었다.

아시테르는 우두커니 서서 기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들과 싸우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그러니 순순히 비켜주시겠습니까?”

“그럴 순 없지. 단장 말 못 들었나? 엔류아는 놓고 가라.”

“꼭 이렇게까지 비겁하게 굴어야겠습니까?”

“하!? 비겁? 비겁이라고 했냐 지금?”

밸크로 기사단의 기사들이 아시테르에게로 다가가려 하자 제9기사단도 나섰다.

베드롱이 아시테르의 앞에 섰다.

“장난도 정도껏 해주십시오 밸크로 기사단 여러분. 아시테르를 건드린다면 저희들도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으하하하!! 지금 협박이라도 하는 건가?”

“뭔가 착각하고 계신가본데… 저 녀석이 정말로 당신들이 두려워서 말로 해결하려는 것 같습니까?”

“뭐……?”

“착각하지 마십시오. 아시테르와 우리들은 당신들이 전혀 두렵지 않습니다. 게다가 당신들쯤은 아시테르 혼자서도 상대 가능할 겁니다.”

베드롱의 말에 다른 기사들이 발끈했다.

특히나 드웨인이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결코 가볍게 듣고 넘길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너. 그 말에 책임질 수 있느냐? 우리들이 겨우 저 애송이 하나 당해내지 못할 거라고? 농담도 지나치면 재미가 없는 법이다.”

“글쎄요… 농담인지 아닌지는 계속 이렇게 길을 막아보시면… 아마 직접 확인이 가능하실지도 모르겠군요. 물론, 그때는 여기 있는 우리 모두를 상대해야 할 겁니다.”

베드롱도 지금 굉장히 화가 나있는 상태였다.

아시테르는 억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나름대로 대화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도 상대의 행동은 뻔뻔함이 정도를 넘어섰다.

당장이라도 검을 뽑아 저들과 전투를 벌이고 싶었지만…….

아시테르가 참고 있으니 자신도 참고 있는 중이었다.

가장 막내인 아시테르가 어른스럽게 대처하고 있으니, 자신 또한 감정적으로 대처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는 다른 동료들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그들도 이를 악물고 있을 뿐 함부로 나서진 않았다.

제9기사단의 분위기를 읽은 드웨인이 혀를 찼다.

그때 호가드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내줘.”

“예?”

“보내주라고. 엔류아 저 여자도 같이.”

“하지만 성주님…….”

“이런 일에 계속 시간을 허비하고 있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여기서 한 번 더 전투라도 치를 것도 아니잖나? 오늘 하루만 두 번의 전투를 치뤘는데 말이야.”

“끄응…….”

호가드니의 말도 맞았다.

영지전부터 시작해 사우스 왕국군의 기습까지.

아마 수하들의 피로도 상당히 쌓였을 터다.

물론 이것은 제9기사단도 똑같을 테지만, 지금 굳이 일을 더 만들 필요는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드웨인도 이번엔 순순히 물러나는 것을 택했다.

“알겠습니다.”

그가 손짓하자 밸크로 기사단도 순순히 길을 열어주었다.

아시테르는 그들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리곤 이카루스에 올라 엔류아와 함께 자리를 벗어났다.

“정말 고맙습니다 아시테르님… 이 은혜는 평생 갚을게요.”

“별말씀을요. 정말로 당신이란 사람이 필요해서 어렵게 데리고 온 거예요.”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대신 앞으로 각오하세요. 엄~청 귀찮아질 때까지 부려먹을 테니까.”

“궂은일도 마다 않고 다 할게요! 시켜만 주세요! 저 청소부터 빨래까지 못하는 것이 없어요!”

“네? 아니 그런 것 말고… 치유 마법을 얘기한 건데…….”

“그건 당연하죠!”

엔류아가 뒤에서 기운차게 답했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조금 떨리고 있었다.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목소리는 애써 밝은 척하고 있었지만, 아마 엔류아는 여러모로 불안했을 것이다.

등뒤에서 뜨거운 감촉이 느껴졌다.

흐느끼고 있는 그녀를 모른 척 하며 아시테르가 밝은 분위기로 계속 얘기를 조잘거렸다.

그녀의 울음짓는 소리가 주변으로 들리지 않게끔.

엔류아는 가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정말 감사해요…….”

그녀는 자신만 들릴 정도의 낮은 목소리로 같은 말을 중얼거렸다.

* * *

아시테르는 곧바로 루기아 가문에 연락을 취했다.

그가 금전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을만한 곳은 역시 이곳밖에는 없었다.

“근데 솔직히 자신 있게 얘기를 하긴 했지만… 정말로 도와주실까…….”

뭐, 어떻게든 방법이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얼마지나지 않아 루기아 가문의 회신이 도착했다.

도움을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루기아 가문의 가주인 프라울리가 고민하고 있을 때, 앞장서서 아시테르를 도와줘야 한다고 주장한 이가 바로 크로마제와 판데아였다.

아시테르는 루기아 가문의 검술을 왕실기사단에 전수해 줄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심지어 이번에 제9기사단이 루기아 검술을 펼쳐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는 소문이 중앙 도시에까지 전해졌다.

그러니 판데아로선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더군다나 스승의 활약은 곧 제자의 자부심!

크로마제도 아시테르의 활약상을 전해 들으며 더더욱 그를 붙잡고 끌어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습게도 이 맹랭한 녀석이 형제 중 누나나 여동생만 있었어도, 꼭 아시테르와 결혼을 시켰을 것이라 말하고 다녔다.

어쨌든 루기아 가문의 도움으로 150만 골드를 엠벨에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아시테르가 이 사실에 안도하며 엔류아에게도 이 소식을 전해주었다.

뿐만아니라 마르체니 공주도 엔류아의 사정을 듣고 선뜻 도움을 주기로 했다.

“그럼 나도 30만 골드 정도 도와줄게.”

“예? 마르체니님이 돈이 어디 있어서요……?”

“이거 왜 이래? 나 이래 보여도 일국의 공주야. 그 정도 돈은 있어.”

“하지만…….”

“됐어. 네가 예뻐서 주는 것 아니야. 요즘 들어보니까 엔류아가 우리 기사단을 위해 온갖 허드렛일도 다 하고 있다며? 거기다가 다친 사람들도 많이 치료해줘서 목숨을 건진 사람들도 한둘이 아니라던데… 그들을 모두 대표해서 내가 감사 인사 겸 해주는 거라고 생각해 그냥.”

“그러니까 그걸 왜 마르체니님이…….”

“아! 시끄러!! 그냥 그런 가보다 해!”

어쨌든 마르체니 공주도 30만이나 되는 골드를 엔류아의 가문에 보내 도움을 주었다.

이 소식에 엔류아도 뛸 듯이 기뻐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아시테르에게 연신 고개를 숙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진짜 이 은혜를…….”

“아니 자꾸만 그러네. 은혜는 갚을 필요 없다니까.”

“아니요… 사람으로 태어나 그럴 수 있나요… 솔직히 제게 자유를 가져다주신 아시테르님을 위해서라면 무엇을 해도 좋아요. 제가 밥도 해드리고 청소도 해드리고 빨래도 해드릴게요!! 궂은일은 제게 다 맡겨주세요!!”

엔류아가 열정을 붙태우며 말했지만 아시테르에겐 부담이었다.

그가 어색한 미소만 짓고 있자, 그 모습이 우스워 제9기사단의 기사들도 한 마디씩 해댔다.

“엔류아 덕분에 막내도 탈출하더니! 아주 팔자 좋아졌구만!!”

“아니 엔류아!! 아시테르만 너무 편애하는 것 아니냐!? 우리들도 널 위해 싸워줄 각오가 되어 있었다고!”

“그래 솔직히 그때 밸크로 기사단이 끝까지 막아섰다면 내가 이 검으로 그냥!!”

“마음에도 없는 소리 말어. 그나저나 엔류아. 미리 말해두겠지만 아시테르에게는 이미 임자가 있다.”

“아, 그건 그렇지. 마법 실력도 뛰어난데다 미모까지 훌륭한… 우리 막내한테는 아주 아까운 아가씨가 있어.”

그들은 괜히 농담조로 엔류아와 아시테르를 놀려대었다.

엔류아는 그럴 때마다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푹 숙였다.

“제가 어떻게 감히요…! 저는 그저 아시테르님을 곁에서 모시고 싶을 뿐이에요.”

“에…? 아니 그러니까 그게 왜…….”

“그럼 저는 이만!!”

엔류아가 황급히 자리를 벗어났다.

그녀가 향하는 곳은 빨래감이 쌓인 빨래터였다.

기사들이 훈련을 하고 땀에 젖은 옷들을 두는 곳이라 냄새가 엄청 심할텐 데도 엔류아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빨래를 도와주었다.

그것뿐만 아니라 엔류아가 제9기사단에 합류함으로써 훨씬 더 고강도의 훈련도 소화할 수 있게 되었다.

훈련을 하다 다치거나 부상을 입어도 엔류아가 금방 치료를 해주었으니 말이다.

“엔류아가 합류한 건 솔직히 기쁜 일인데… 이건 좀 예상하지 못했던 전개다…….”

“드디어 우리한테도 치유 마도사가 생겨 좋구나 했는데… 아… 미치겠구만 이거…….”

“하아… 내가 봤을 때 아시테르 저 녀석… 분명 이러려고 엔류아를 데려온 거다……!”

제9기사단의 기사들이 모두 동의했다.

아시테르는 엔류아가 합류하자마자 그녀의 치유 마법의 한계가 어느 정도인지 시험해보았다.

그리곤 그것에 맞춰 엔류아의 마법 실력을 상승시키겠다는 이유로 덩달아 검술기사들의 훈련 강도까지 거세졌다.

치료할 사람이 진짜로 있어야 더 절실하게 마법 실력을 키울 수 있다나 뭐라나.

아무튼 아시테르는 그럴싸한 변명을 읊어대었다.

가끔 불평을 내뱉긴 해도 그들은 순순히 아시테르의 말을 따라 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이 시기쯤 게벨이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중대 발표를 했다.

“모두 이미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나는 솔직히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 제9기사단의 부단장 자리를 주려 했건만… 이 고지식한 놈들이 모두 자리를 거부해서 말이다. 자기들보다 더 어울리는 놈이 있다나 뭐라나…….”

게벨의 시선이 뒤쪽에 있는 아시테르에게로 향했다.

그와 동시에 제9기사단 모두가 아시테르를 바라보았다.

“에?”

“아시테르! 이리 나와라.”

“저… 저 말이에요?”

“그래. 너.”

“저는 왜…….”

“군말하지 말고 빨리 나와.”

게벨의 말에 하는 수 없이 아시테르가 앞으로 나가 게벨의 옆에 섰다.

그러자 게벨이 아시테르의 가슴팍에 배지 하나를 달아주었다.

“지금 이 시간부터 너를 제9기사단의 부단장으로 임명한다.”

“네에?!?!”

아시테르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그와 동시에 약속이라도 한 듯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축하한다 아시테르!!”

“크으으 막내에서 부단장이라니!”

“으하하하!! 야, 이거 한 턱 쏴야 하는 것 아니냐!? 부단장이잖아 부단장!!”

“이례적인 일이다 진짜 이건.”

“새로운 부단장님! 축하드립니다!!!”

그들의 쏟아지는 축하를 받으며 아시테르는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게벨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단장님 저는…….”

“알고 있다. 그래도 모두의 마음이 그렇다는데 어쩌겠냐. 그러니 저 녀석들의 마음을 생각해서라도 거절하지 말아다오. 어차피 너에게 잠시 맡겨두는 거라고 하니까.”

“맡겨둬요……?”

“본인들이 더 성장하고 강해져서 네게서 부단장의 자리를 되찾아오겠다는… 뭐 그런 포부들이 하나씩은 있더구나. 어림없어 보이지만.”

“아…….”

게벨이 아시테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어쨌든 나도 부탁하마. 네가 우리 기사단의 부단장 자리를 맡아줬으면 좋겠다. 아시테르, 넌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는 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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