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화 뜻하지 않은 만남 (1)
“뭐야?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갑자기 적들이 돌아오는 속도가 훨씬 더 빨라졌어.”
“부상병들이 금방 치료돼서 돌아오는 것 같은데…….”
활을 계속해서 쏘던 에스파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디안드레의 말대로 부상당한 적들이 다시 전장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짧아졌다.
“이건 뭐 끝도 없이 몰려드는 언데드들을 상대하는 것 같잖아……?”
“그것만이 아니야. 이 자식들… 점점 더 강해지고 있는 것 같아.”
“방심하지 마라!”
동료들의 말에 아시테르도 전장을 살폈다.
웨스트 왕국군의 사기가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정확히 적들의 후방에서 지원군이 도착하고 난 뒤부터였다.
그들은 용감무쌍한 표정으로 끝없이 진격하고 또 진격했다.
“공주님이 오셨다!”
“공주님께서 이곳에 오셨다!”
“공주님께 영광을!”
웨스트 왕국의 기사들과 마법사들이 하나같이 외쳐대는 말들이었다.
그들의 결사항전의 눈빛에 마녀들뿐만 아니라 이스트 왕국의 마법기사들까지 질릴 지경이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달려드는 기사들과 병사들.
몸에 불이 붙고 얼음송곳이 몸을 꿰뚫는데도 적들은 진격을 멈추지 않았다.
거기다 후방에서 검사들을 지원해주는 웨스트 왕국 마법사들의 마법도 전보다 한층 더 매서워지고 있었다.
“웨스트 왕국의 공주가 이곳에 있나 봅니다.”
“그 정도의 거물이 이번 전쟁에 직접 참여했을 줄이야.”
“웨스트 왕국의 공주라면 국왕인 헤렌달이 가장 아끼는 인물이 아닙니까?”
“끔찍하게도 사랑하는 딸이라고 들었다.”
“그런데 그런 공주를 전쟁터에 내보내다뇨?”
“일전에 들은 적이 있어. 헤렌달은 공주를 강하게 키우기 위해 여기저기 많은 경험들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전쟁도 그중 하나. 공주라는 이름 때문에 얕보지 마라. 우리 왕국의 공주님들과는 전혀 다를 거다.”
아칼이 전면으로 나섰다.
상대의 기세가 더욱 오르기 전에 꺾어줄 필요가 있다.
그때 아칼의 곁으로 누군가가 다가왔다.
“뭐야. 백상 마법기사단의 힘이 겨우 이 정도야?”
“여긴 무슨 일로 온 거냐.”
“무슨 일로 오긴. 같은 전장에서 싸우는데.”
“너의 단장과 동료들이 다른 곳에서 싸우고 있는데 너 혼자 여기까지는 무슨 일로 왔느냐는 말이다.”
“까칠하기는.”
푸른 머리칼의 여인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녀를 보며 제인스가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랑프레님.”
“같은 부단장끼리 그렇게 말 높이는 것 아닌데.”
“하지만… 단장님의 아내분이신데 제가 어찌…….”
“하아… 너는 그게 문제야 제인스. 공과 사는 구분해야지.”
“네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랑프레.”
아칼의 말에 랑프레가 피식 웃었다.
그녀는 현재 여명 마법기사단의 부단장인 몸이었다.
그와 동시에 아칼과 결혼한 여인이었다.
백상 마법기사단의 단장인 아칼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그녀가 여명 마법기사단에 남아 있는 이유를 궁금해하지만, 제인스는 그 이유를 잘 알고 있었다.
“우리 단장님 어때? 엄청나지 않아?”
“히스링 단장이야 본래부터 뛰어난 사람이었질 않나.”
“그러니까 말이야…. 단장은 저런 사람이 해야 돼. 당신 같은 사람 말고.”
“시비 걸러 온 거라면 빨리 사라져라.”
“어머머… 그게 오랜만에 본 아내한테 할 말이야?”
“시끄럽다.”
“하여간…….”
랑프레가 웃으며 전장을 살폈다.
그녀는 백상 마법기사단의 활약상을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 마법기사단에 괴물 같은 꼬맹이들이 들어온 것 알아?”
“괴물 같은 꼬맹이들이라니요? 설마 칸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응. 이전에 테오도라를 데려가려고 했는데 실패했잖아 우리가.”
“대신 테오도라의 친구들인 마르쿠드와 자토를 데려가지 않았습니까.”
“맞아. 그 두 녀석이 우리 기사단에 들어왔지.”
“둘만해도 얼마나 주목받는 신예들이었는데요.”
“그래도 테오도라만큼은 아니었지. 가문 빵빵해 실력 빵빵해 거기다 사르르 녹는 외모까지…….”
“저어… 랑프레님. 아무리 그래도 아칼 단장님 앞에서 그런 말씀들은…….”
“어머, 괜찮아 괜찮아. 저 이는 이런 말들 전혀 신경 안 써.”
아니요. 제가 눈치 보여 죽겠다는 말씀입니다.
제인스가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말들을 애써 참으며 상투적인 웃음을 보였다.
아칼도 참 대하기 어려운 인물이었지만, 랑프레도 만만치 않다.
“어쨌든. 놀랍게도 그 두 명을 뛰어넘는 신예가 우리 마법기사단에 들어왔지 뭐야.”
“칸을 말씀하시는 거죠?”
“어떻게 알았대?”
“칸은 아카데미 때부터 유명했으니까요.”
“오스카 가문의 아들이라더니… 보유하고 있는 마력량도 엄청나. 보여? 저기 칸이 날뛰고 있는 것.”
랑프레가 가리키고 있는 곳에선 칸이 바람 마법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적들을 해치우고 있었다.
그를 중심으로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바람의 칼날들.
거기다 끊임없이 회전하는 바람이 칸과 동료들을 지켜주고 있었다.
이것만 봐도 칸이 얼마나 대단한 실력을 지닌 마도사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진짜 대단하긴 하네요. 과연 저게 신입 마도사가 맞는 것인지…….”
“그치? 아주 난놈이라니까 저거. 마법 실력도 뛰어난데 벌써부터 저 녀석을 따르는 무리들이 있어. 심지어 마르쿠드와 자토도 어느새 칸을 따르고 있다고.”
“호오… 그건 좀 놀라운 얘기네요.”
“그러니까 제인스 너도 이제 그만 우리 마법기사단으로 넘어와. 구질구질하게 내 남편 마법기사단에 있지 말고.”
“예? 아니요… 저는 아칼님의 옆이 좋습니다. 거기다 저희 쪽에도 칸 못지않은 신입들이 있습니다.”
“누구. 알렌시아? 그 여자아이도 대단하긴 하지만 칸에 비빌 정도는 못되지 않나? 전격 마법의 위력이 강하긴 하지만…….”
랑프레가 머리칼을 빙빙 돌리며 말했다.
하지만 제인스는 지지 않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여명 마법기사단에 칸이 있다면 백상 마법기사단에는 그 녀석이 있다.
칸과 다르게 대외적으로 알려질 기회는 없었지만, 아칼과 제인스는 이미 그 녀석이 칸과 견주어 봤을 때 전혀 뒤처지지 않는 마도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알렌시아도 물론 대단하지만… 저희들에게는 좀 더 대단한 녀석이 있어서요.”
“알렌시아 말고 더 대단한 아이가 있다고? 디안드레도 특별한 마법을 사용하긴 하지만 특출나진 않고… 설마 에스파를 말하는 거야? 근데 그 녀석은 한 가지의 마법밖에는 사용하지 못하잖아? 마력에 특성 부여도 못하고.”
“그 녀석들 모두 대단하지만… 저기 있네요. 저 녀석 보이십니까?”
제인스의 말에 랑프레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화려한 불꽃 속에서 쉼 없이 움직이는 사내가 있었다.
그가 지나다니는 곳에서 마치 꽃길이 피어나듯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저 녀석은 뭐야? 백상 마법기사단에 관한 거라면 대부분 알고 있는데… 저런 화염 마도사가 있었나?”
“그동안 멀리 나가 있다가 최근에 복귀한 녀석입니다.”
“이름은?”
“아시테르입니다.”
“아시테르…? 아시테르라…. 아…! 칸이 말하던 녀석인가보구나!”
“칸이 말하던 녀석이라고요? 무슨 말을 했는데요?”
“자기 자신이 인정한 라이벌이라고 하던데? 칸이 여명 기사단에 들어왔을 때 가장 처음 한 말이 그거였거든. 자기가 꼭 잡아야 할 녀석이 있으니 강하게 만들어달라고. 당돌하게도 그 얘기를 우리 단장한테 했지.”
“후후후 칸은 벌써부터 우리 막내를 라이벌로 인정한 겁니까?”
제인스와 대화를 나누면서도 랑프레의 시선은 줄곧 아시테르에게 머물러 있었다.
아시테르의 불꽃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적들을 상대했다.
거기다 적들을 상대하는데 쓸데없는 움직임도 없다.
마법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면서도 마력의 낭비도 없는 효율적인 전투.
상당히 전투 경험이 많아 보이는 수준이었다.
그 놀라운 전투센스에 랑프레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칸 말고도 저런 수준으로 싸우는 녀석은 처음인데…? 뭐야? 당신. 이 정도면 알렌시아뿐만 아니라 저 녀석도 제자로 거두어야 하는 것 아냐?”
“저 녀석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어째서? 당신이 책임지고 키우면 더 엄청난 녀석이 될지도 모르잖아?”
“아시테르를 직접 가르친 사람은 군단장님이다.”
“뭐…? 테르세우스님이 직접 가르쳤다고…? 하지만 테르세우스님은…….”
“그래. 우리 단장 이후로 처음 제자를 들이신 거다.”
“와아…. 알고 보니 대박 물건이 여기에도 있었네.”
랑프레는 아시테르의 전투를 지켜보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타오른 불꽃이 기사들과 병사들의 사이를 가로질렀다.
뿐만 아니라 바닥에서 솟구쳐 오른 불기둥이 날아오는 마법들을 막아주고 있었다.
아시테르는 다가드는 기사들과 병사들을 막아내는 한편, 알렌시아에게로 접근하는 적들도 처리해주었다.
덕분에 알렌시아는 편하게 마법을 사용하는 데만 집중할 수 있었다.
“고마워. 아시테르.”
“이 정도로 뭘.”
“야! 연애는 나중에 해라!”
계속해서 달려드는 적들을 보면서 에스파와 디안드레가 혀를 찼다.
그 와중에 디안드레는 다른 의미로 놀라고 있었다.
알렌시아의 실력이야 디안드레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녀는 아칼의 제자로 들어와 여러 방면에서 활약하는 모습들을 꾸준히 보여주었으니까.
덕분에 전격의 알렌시아라고 불리며 마법기사단 사이에서도 유명세를 타고 있었다.
에스파는 솔직히 자신보다 한참 아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자신을 소개할 때 한 가지의 마법밖에는 하지 못한다고 말한 게 에스파였다.
그것 때문에 다른 단원들도 대체 어떻게 에스파가 마법기사단에 들어올 수 있었는지 의아해 했다.
하지만 그 의문은 곧 풀릴 수 있었다.
한 가지 종류의 마법밖에 못 하는 것은 맞았지만 그 깊이가 다른 이들과 차원이 달랐다.
매직 에로우라는, 어쩌면 단순하고도 기초적인 마법을 가지고 에스파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발전시켜 왔다.
위력은 물론이고 매직 에로우에서 파생된 새로운 마법들이 에스파의 실력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그리고 지금.
에스파의 실력을 여실히 지켜볼 수 있었다.
엄청난 빠르기의 속사와 단 한 방에 적들을 죽일 수 있는 위력.
거기다 매번 신속하고 정확하게 적들의 약점에 화살을 꽂아 넣는 명중률.
심지어 에스파는 자신의 화살에 변화를 주어 다양한 방식으로 마법화살을 쐈다.
솔직히 그런 모습들을 보며 디안드레도 잠깐이나마 에스파를 무시했던 마음을 반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더 가관은 아시테르였다.
아시테르의 실력을 직접 보고 있으니, 그저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과연 눈앞에 있는 이 사내가 자신과 같은 신출내기가 맞는지부터 의심스러웠다.
말 그대로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수준.
아시테르는 알렌시아보다 더 뛰어난 수준을 드러내며 디안드레는 물론, 다른 마법기사 선배들까지 할 말을 잃게 만들어버렸다.
“저건 대체 뭐하는 물건이냐…….”
“대단하지? 아시테르 녀석…….”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나오긴 한다…….”
아시테르는 홀로 100명이 넘는 검사들과 마법사들을 상대해내고 있었다.
짙은 농도의 마력으로 만들어낸 화염은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았다.
거기다 마법을 사용하는 속도도 다른 마도사들보다 훨씬 빨랐다.
다른 마도사들이 한두 개의 마법을 사용할 때 놀랍게도 아시테르는 네다섯 개의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파아아앙!
아시테르가 가볍게 움직여 다가드는 기사 한 명을 밀쳐냈다.
이어 부드럽게 움직인 아시테르의 검이 다른 기사를 베었다.
“저게 더 사기야. 어떻게 마도사가 저렇게 검을 잘 다뤄?”
디안드레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아시테르를 보며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었다.
그런데 아시테르를 보며 놀라고 있는 것은 디안드레뿐만이 아니었다.
웨스트 왕국의 기사들을 치료해주고 있던 공주의 시선이 아시테르쪽으로 향해 있었다.
“아…. 아아…….”
그녀는 아군 사이로 종횡무진 누비고 있는 아시테르를 보며 기함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