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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197화 (197/424)

197화 뜻하지 않은 만남 (2)

“저 사람이… 저 사람이 왜 이곳에…….”

어쩌면 훗날 우연히 마주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식은 아니었다.

웨스트 왕국의 공주, 린은 너무나도 당황해 고개부터 돌리고 말았다.

이스트 왕국의 마법기사단이 도착했다고 했을 때, 아시테르도 이곳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잠깐 들었었다.

그런데 정말로 아시테르가 이곳에 있다.

린은 숨을 차분하게 골랐다.

“공주님. 무슨 일 있으신 겁니까?”

테라가 린에게 다가와 물었다.

린이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러곤 시선을 돌려 아시테르쪽을 쳐다보았다.

못 보던 사이 훨씬 더 늠름해진 모습.

훨씬 더 남자다워진 아시테르를 보며 린이 두 눈을 깜빡거렸다.

“뭐야… 못 보던 사이 더 잘생겨졌잖아…….”

그녀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다시 부상자들을 치료하는데 집중했다.

아니, 집중하려 했다.

하지만 아시테르의 모습이 잔상처럼 남아 린의 머릿속을 괴롭혔다.

그녀는 자꾸만 아시테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혹시 뭐가 걸리는 거라도 있습니까?”

“응? 그게 무슨 말이야?”

“공주님께서 계속 같은 곳을 바라보고 계셔서 묻는 겁니다.”

“아아… 별 것 아니야…….”

테라는 린의 시선을 쫓았다.

그곳에선 이스트 왕국의 마법기사들이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테라 또한 이스트 왕국 마법기사들에 대해 내심 놀라고 있는 중이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뛰어난 실력들을 지니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스트 왕국은 변방의 나라일 뿐이라고 했는데… 생각보다 더 뛰어난 마법 실력들을 지니고 있다. 나중을 위해 참고해 두어야겠군…….’

개중에 몇몇 눈에 띄는 이들이 있었다.

그중 가장 위험해 보이는 사내는 바로 푸른색 옷을 입고 있는 인물이었다.

“저 사내의 마력에 닿는 순간 폭발해버리고 만다…….”

말 그대로였다.

작은 태양처럼 보이는 환한 마력.

그것에 닿으면 엄청난 폭발이 일어난다.

문제는 그 마력의 덩어리들이 전장 곳곳에 나타난다는 점이다.

때문에 폭발은 전장 여기저기서 동시다발적이게 일어나고 있었다.

저 사내 한 명으로 인해 아군의 피해도 엄청났다.

“말도 안 되는 마법이로군…….”

저 정도의 폭발을 일으키려면 대체 마력을 얼마나 응축시켜야 하는 것일까.

테라의 시선을 읽은 린이 입을 열었다.

“저 자가 바로 이스트 왕국의 히스링이야.”

“여명 마법기사단을 이끌고 있다는 사람 말입니까?”

“그래. 이스트 왕국의 최강 마법기사단이라고 불리는 곳. 오랫동안 그곳의 1인자로 군림해 온 인물이야.”

“테르세우스와 함께 이스트 왕국에 대한 충성심이 대단하다고 들었습니다.”

“사우스 왕국과 전쟁을 치를 때도 히스링의 이름은 유명하다고 들었어. 전장의 악마라고도 불리는 인물이야. ”

“명령만 내려주시면 지금 제거하도록 하겠습니다.”

테라가 살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하지만 린은 고개를 저었다.

이에 테라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저자를 제거하면 전세가 다시 기울 겁니다.”

“내 말을 뭘로 들었어? 전쟁 경험이 많은 사람이라니까. 테라 네 실력이 뛰어난 건 나도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무모한 일이야.”

“쉐도우 호위단 모두가 덤비면 마도사 한 명쯤은 처리해낼 수 있을 겁니다.”

테라는 저도 모르게 히스링을 제거하는데, 쉐도우 호위단 모두를 데려가겠다 말했다.

그만큼 히스링의 힘을 인정했다는 뜻이었다.

“아니야. 여기서 너희들을 잃을 순 없어.”

테라가 입술을 굳게 다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린이 다시 전장을 살폈다.

그러고보니 아까 전부터 아시테르의 곁에 한 여인이 붙어 있었다.

화염 마법을 펼치는 아시테르와 다르게 여인은 전격 마법으로 웨스트 왕국군을 공격하고 있었다.

두 사람의 뒤에서 마법활을 쏘는 사내도 보였다.

이어 그들을 지켜주는 마법을 사용하는 서포트 마도사까지.

유기적으로 돌아가는 그들의 팀워크를 보며 린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말았다.

“훌륭한 동료들이 있었구나.”

전쟁은 점점 소강상태에 접어들고 있었다.

해가 지기 시작하니 암묵적으로 오늘의 전쟁도 끝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물러나는 적들을 바라보던 아시테르가 고개를 들었다.

“후아…. 이거 정말 쉽지 않네.”

“크으… 제법 하던데?”

“잘 싸웠다.”

“어이, 신입! 아주 제대로더라?”

지나가던 동료들이 아시테르를 향해 한 마디씩 해주었다.

아시테르도 멋쩍게 웃으며 그들이 말에 일일이 답해주었다.

그때 에스파가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역시…! 널 따라잡으려면 아직 한참 멀었다 나도.”

“아니야. 솔직히 놀랐어. 그 사이에 더 성장했구나 에스파!”

“네가 그런 말 해도 하나도 안 기뻐 인마.”

말은 그렇게 해도 에스파의 입가엔 미소가 걸려 있었다.

두 사람을 지켜보던 디안드레가 슬쩍 껴들었다.

“너희 둘 엄청 친해보인다?”

“그야 당연하지! 아시테르랑 나랑은 불알 친구라고!”

“뭐? 언제부터?”

“엄청 어렸을 때부터 우리들의 인연은 시작 되었지… 그러니까…….”

에스파가 당시의 일을 떠올리려는 때 그들의 곁으로 다가오는 무리가 있었다.

가장 선두에 선 사내를 보며 에스파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 녀석이 여기까지는 무슨 일이래?”

여명 마법기사단의 옷을 입은 칸이 아시테르와 마주섰다.

오랜만에 보는 칸의 모습에 아시테르도 반가움의 미소를 보였다.

“복귀한 거냐.”

“응. 이제는 백상 마법기사단이야.”

“그렇군. 그동안 실력은 많이 늘었나?”

“당연하지.”

“뒤처지면 안 될 거다. 나는 끝없이 성장하고 있으니까.”

“네가 말하지 않아도 그렇게 할 거야.”

“그거 기대되는군.”

칸의 시선이 이번엔 알렌시아쪽으로 향했다.

알렌시아가 슬쩍 칸의 시선을 피했다.

칸이 그녀를 보며 물었다.

“행복한가?”

“물론.”

“그럼 됐다. 다치지 말아라.”

“네가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그렇게 할 거야.”

“누가 연인 아니랄까봐 말투도 서로 닮아 있군.”

칸이 피식 웃으며 발길을 돌렸다.

먼발치서 칸을 지켜보던 디안드레가 놀란 표정을 지으며 가까이 다가왔다.

“뭐야뭐야? 너희 어떻게 칸을 알고 있어?”

“동기니까?”

“심지어 왜이렇게 친해보여?”

“네 눈에는 친해보였냐?”

에스파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때 그가 있는 곳으로 에이브릴이 다가왔다.

그녀 또한 여명 마법기사단에 있었다.

“잘 지냈어?”

“에이브릴……?”

“또 멍청한 짓거릴 하면서 방해만 되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

“내가 무슨! 나만큼 아시테르의 보조를 잘 해주는 사람도 없다고.”

두 사람은 몇 번 같은 임무를 진행하며 부쩍 친해져 있었다.

에이브릴을 지켜보던 디안드레가 넋이 나간 표정을 보였다.

참으로 다채로운 표정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래서인지 아시테르도 디안드레의 반응들을 신기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뭐냐! 뭐냐 에스파! 이 아리따운 분은 누구시냐!?”

“에이브릴이야.”

“네 곁에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있다는 말은 못 들었다만!”

디안드레가 호들갑 떠는 것도 이해는 되었다.

본래부터 아름답긴 했지만 에이브릴의 미모는 점점 더 꽃을 피워갔다.

새하얀 피부에 칠흑 같은 흑발.

어깨선까지 내려오는 머리를 보며 에스파가 입을 열었다.

“뭐야? 그 사이에 머리 잘랐네?”

“그걸 어떻게…….”

“딱 보이는 걸 뭐. 게다가 머리 방향도 이쪽으로 넘겼네.”

에스파가 한쪽으로 손바닥을 넘기며 말했다.

늘 모든 것들을 주의 깊게 살피다 보니 에스파는 그 사이 눈썰미가 좋아졌다.

가끔 덜렁대는 행동을 보이는 탓에 많은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될 때도 있지만, 에스파는 때때로 이런 식으로 에이브릴을 놀라게 만들었다.

두 사람의 분위기를 살피던 디안드레가 입술을 빼꼼 내밀었다.

“드러운 세상…….”

아시테르의 옆에 붙어 있는 알렌시아.

에스파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에이브릴.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던 디안드레는 절로 한숨이 새어 나오고 말았다.

“아시테르 너도 오랜만이네.”

에이브릴의 시선이 아시테르에게로 향했다.

아시테르도 에이브릴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 사이에 더 강해진 모양이야. 말은 안해도 칸도 속으론 놀랐을 걸?”

“그런가? 그러는 칸의 마법도 훨씬 대단해졌는 걸?”

“칸도 노력 많이 했으니까. 가까이서 지켜봤는데 장난 아니야.”

“그런 것 같았어.”

아시테르도 말은 안했지만 한번씩 칸의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를 지켜보고 있으면, 칸은 마치 바람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마력으로 마법을 컨트롤 하는 것이 아닌, 칸의 의지에 따라 바람이 움직여주고 있는 느낌.

그런 느낌마저 들었다.

마나와 친숙한 아시테르마저도 쉽게 흉내낼 수 없는 수준이었다.

“뒤처지지마. 앞으로 내가 모실 상관이 다른 사람한테 지는 꼴은 못 봐.”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나중에 마법기사단을 만들 거라며? 나도 네 기사단에 들어갈 거야.”

에이브릴의 말에 아시테르가 에스파쪽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에스파가 베시시 웃었다.

에스파가 늘 달고 사는 말이었다.

“그래도 의외네. 에이브릴 네가 먼저 아시테르의 기사단에 들어오겠다는 소릴 하고.”

“시… 시끄러. 내 동생이 너희들과 함께 할 것 같으니 나도 그럴려는 것 뿐이야.”

“아아, 그러고보니 얼마 전에 자매 화해를 했지.”

“자매 화해?”

“날 잡고 대판 싸웠다고 하더라고.”

“어째서?”

아시테르의 물음에 에스파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자세한 사정은 라빈과 에이브릴만 알 터였다.

“어쨌든 그날의 일은 잘 마무리 되었나봐.”

“그건 어떻게 아는데?”

“둘 중 한 명도 안죽었잖아. 누구 하나라도 죽을 기세였는데.”

“그랬군…….”

“인사는 끝났으니 나는 이만 가보겠어.”

에이브릴이 몸을 돌리려는 찰나 에스파가 그녀를 불렀다.

“에이브릴!”

“왜?”

“죽지마.”

“너나 죽지마.”

툭 쏘는 목소리.

하지만 그 안에는 따스한 걱정이 담겨있었다.

그래서 의외였다.

에이브릴에게서 에스파를 걱정하는 목소리를 듣다니.

둘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기류를 보며 아시테르도 남몰래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알렌시아가 그런 아시테르의 표정을 살폈다.

“뭘 그렇게 웃으면서 쳐다봐?”

“아아 그냥.”

그때였다.

아시테르를 향해 화살이 날아왔다.

휘릭―

가볍게 몸을 피한 아시테르가 화살을 낚아챘다.

화살의 깃에는 쪽지가 달려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아시테르가 처음으로 얼굴을 굳혔다.

묘한 표정이 된 아시테르를 보며 알렌시아가 쪽지를 확인했다.

“마력을 사용하지 않는 마법? 이게 무슨 말이야? 세상에 이런 마법이 어딨어?”

쪽지에 적혀 있는 글을 본 알렌시아가 아시테르를 향해 물었다.

아시테르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별 것 아니야. 그보다 나는 잠시 다녀와야 할 곳이 있어.”

“어딘데? 나도 같이가.”

“아니야. 나 혼자 금방 다녀올게.”

“그래? 알겠어…….”

아시테르는 알렌시아를 바라보며 밝게 웃어보였다.

그러곤 몸을 돌려 쪽지에 적혀 있는 장소로 향했다.

마력을 사용하지 않는 마법.

이것은 아시테르가 일전에 직접 한 말이었다.

빈민가에서 마주쳤던 여인.

린에게 한 말이었다.

“린이 이곳에 있어…….”

한 가지 의문인 점은 린이 이곳에 있다면 직접 나타나도 될 일인데 이렇게 화살을 쏴서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는 점이다.

직접 나타나면 안되는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누군가에게 잡혀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아닐까.

짧은 순간에 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아시테르가 속도를 올려 수풀 사이를 헤쳐지나갔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넓은 공터가 나왔을 때 아시테르는 발걸음을 멈춰세웠다.

그곳의 한 가운데에 후드를 뒤집어 쓰고 있는 여인.

그 여인을 보며 아시테르가 입을 열었다.

“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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