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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199화 (199/424)

199화 던전에서 온 사람들 (1)

린과 아시테르가 만난 지도 3일이 넘게 흘렀다.

그동안 두 사람은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다.

백상 마법기사단과 여명 마법기사단은 전장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마녀들조차 그들의 힘을 인정할 정도였다.

하지만 웨스트 왕국의 군세도 만만치 않았다.

과연 강국이라는 소문답게 그들은 잘 훈련된 군사들과 뛰어난 마도사들을 앞세워 전쟁에 나섰다.

검과 창을 다루는 기사들에게 목숨을 잃는 마도사들도 여럿 생겨났다.

아시테르뿐만 아니라 그의 동료들도 여러 차례 간신히 목숨을 건지는 아찔한 상황들이 연출되었다.

그만큼 웨스트 왕국군은 강했다.

하지만 마녀들과 이스트 왕국의 저력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아시테르가 있는 전장은 그래도 웨스트 왕국군이 조금 더 승기를 가져갔으나 정작 방어선을 뚫어야 하는 중앙 전장은 마녀여왕이 우위를 서고 있었다.

전쟁이 이 주일 가까이 지속되었지만 마녀여왕의 힘은 아직도 건재했다.

거기다 마녀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추가 병력들과 함께 로얄나이츠 두 명이 이곳으로 오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하지만 결국 린은 이곳에서 퇴각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 소식을 들은 지휘관들이 린을 설득하기 위해 모였지만 역부족이었다.

“이제 충분해요. 처음부터 우리는 마녀여왕에게 힘을 과시하여 세계수 열매를 얻어갈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이런 얕은 협박은 통하지 않는 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거기다 이스트 왕국까지 마녀들을 돕고 나선 이상, 더 이어가는 것은 커다란 전쟁의 시작만 될 뿐이에요.”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어 나갔다.

“우리 웨스트 왕국이 강국이라곤 하나 마녀의 숲에서 마녀들과 이스트 왕국까지 동시에 상대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물론 총력을 기울인다면 불가능할 것도 없겠지만… 다들 알다시피 우리 왕국은 은연하게 파가 갈려 있어요. 그들이 과연 우리의 뜻에 따라 함께 참전해 줄까요?오히려 우리들의 힘이 약해지면 집어삼키려 호시탐탐 노리고 있겠죠. 게다가 사우스 왕국도 문제예요. 우리들의 힘이 약해지면 사우스 왕국도 언제 우리를 노리고 들지 모르니까요. 그러니 전쟁은 여기까지예요. 여기서 멈춰야 합니다.”

린은 차분하게 지휘관들에게 자신의 뜻을 전했다.

그녀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하니 다른 지휘관들은 침묵을 지키며 침통해 했다.

뒤이어 로얄나이츠가 두 명이나 합류할지도 몰랐다.

웨스트 왕국에서도 가장 강한 10인만 들어갈 수 있다는 로얄나이츠.

그들이 참전하게 되면 린의 말대로 전쟁이 본격화될지도 몰랐다.

무엇보다 헤렌달의 딸인 린이 저렇게 의사를 밝히니, 다른 이들이 전쟁을 주장하며 밀고 나갈 수도 없었다.

자신들도 이렇게 비통한데 린의 마음이야 오죽할까.

총지휘관인 데카루스가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공주님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고마워요 데카루스님.”

“아니요… 오히려 죄송할 따름입니다.”

“데카루스님과 우리들은 최선을 다했어요. 다만… 마녀여왕의 힘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강했을 뿐이에요.”

“좀 더 만반의 준비를 하고 왔었어야 했는데…….”

아쉬움과 후회가 동시에 공존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

이제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애써 돌려야만 한다.

그래서인지 데카루스는 더더욱 린의 눈치를 살피게 되었다.

이대로 돌아가면 많은 질타를 감수해야 한다.

많은 병력들을 이끌고 마녀들과 전쟁을 벌였으나 이렇다 할 소득도 내지 못했으니까.

그동안 소비된 군사력이며 군량과 시간까지.

어느 것 하나 물고 늘어지기에 좋지 않은 것이 없다.

데카루스만큼이나 린도 안색이 어두웠다.

마녀여왕이 갖고 있는 세계수의 열매.

그것을 갖겠다며 너무나 많은 희생을 치렀다.

벌써 이곳에서 죽어간 이들이 수천을 헤아렸다.

부상병들까지 합한다면 그 숫자는 더더욱 늘어난다.

린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백상 마법기사단이 있는 방향이었다.

린도 그동안 아시테르의 전투를 지켜보았다.

자신을 막아서기 위해 전장에 나서는 그가 원망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전쟁에서 목숨을 잃지 않길 바라는…….

역설적인 마음이 서로 공존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나치게 백상 마법기사단이

“이런 마음으로 무슨…….”

린과 지휘관들은 결국 웨스트 왕국으로 발길을 돌렸다.

나머지는 전장의 시신들을 수급하고 따라올 터였다.

웨스트 왕국으로 향하는 린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다른 이들은 린의 후계를 걱정했지만, 그녀는 아버지를 잃을까 두려웠다.

“죄송해요 아버지… 제가 못난 탓에…….”

“공주님께서는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누구도 나서지 않은 마녀숲 원정길에 직접 오르시질 않았습니까. 그 누구도 공주님을 비난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세계수 열매를 가져오지 못했잖아요. 이럴 바엔 차라리 제 목숨을 내놓고 아버지를 살리는 것은…….”

“그럴 순 없습니다. 그것은 헤렌달님도 바라지 않을 겁니다.”

“그럴까요…….”

“다른 방법이 있을 지도 모릅니다… 다른 방법이…….”

“저도 곧바로 다른 방법은 없는지 찾아볼 생각이에요. 가만히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네. 함께 돕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해요 데카루스님.”

* * *

웨스트 왕국군이 물러나는 것을 확인하고 이스트 왕국의 마법기사단도 이만 돌아갈 준비를 했다.

마녀들이 그들에게 찾아와 감사 인사를 전했다.

“마녀들 중에는 남자가 없다더니 정말이구나…….”

“근데 왜 하나같이 다 이쁘냐.”

“그러게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더 분간이 안가.”

“맞아. 대부분 다 비슷하게 생긴 것 같단 말이지… 하나같이 다 예뻐서 그런가?”

마법기사들이 마녀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마녀여왕이 돌아가는 마법기사들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굳이 저치들을 불러들였어야 했느냐?”

“이스트 왕국 마법기사들이 도와주러 온 덕분에 많은 피해를 면했어요.”

“쯧… 그래도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구나. 인간들의 도움을 받는다는 것이…….”

“언제까지고 인간들과 척을 지고 살 순 없잖아요.”

“아니. 인간들이 없어도 우리 마녀들은 잘살 수 있다. 인간들은 탐욕스러워. 그래서 자꾸만 더 많은 것들을 탐한다. 두고 봐라. 이스트 왕국놈들도 곧 우리들에게 속내를 드러낼 테니까.”

“언제는 마법기사들 덕분에 마녀들이 죽지 않아서 좋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내… 내가 그랬단 말이냐?”

마녀여왕이 일부러 시선을 피했다.

그러자 세아츠리스가 미소를 보였다.

차갑고 딱딱하기만하던 마녀여왕도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다만 그녀의 마법만큼은 언제 봐도 대단한 수준이었다.

“세아츠리스.”

“네.”

“너는 내 뒤를 이어서 여왕이 될 수 있는 재목이다. 내가 죽기 전에 네가 태어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그런 말씀 마세요. 여왕님이 왜 죽어요?”

“누구나 태어나면 죽게 마련이다. 그것은 세상의 이치야. 나라고 그 이치에 반할 순 없느니라.”

“여왕님께서 안 계신다면…….”

웨스트 왕국군을 막아 낸 것은 마녀여왕의 엄청난 마법 덕분이었다.

그녀의 마법은 적들을 공격하기도 했지만 마녀들을 보호해 주기도 했다.

숲 전체를 움직이는 마법.

오랫동안 방대한 양의 마력을 쌓아 온 마녀여왕이기 때문에 가능한 마법이었다.

그녀가 있는 한 마녀의 숲은 난공불락의 요새나 다름없었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마녀여왕의 마법 위에서 상대는 싸우는 셈이었으니까.

“쿨럭!”

그때 마녀여왕이 입가에 핏물을 흘렸다.

그녀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처음인지라 세아츠리스는 물론 그녀를 호위하는 콰트로 마녀들 모두 놀란 표정을 보였다.

“괜찮다. 너무 무리를 한 모양이야.”

마녀여왕의 만류에도 마녀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그녀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단언컨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나도 이제 늙긴 한 모양이야.”

“아직…….”

“예전에 크게 수명을 사용한 적이 있었다. 그 대가겠지.”

마녀여왕이 핏물을 닦아 내며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이 평소보다 수척해 보이는 것은 기분 탓이 아니었다.

“나는 좀 쉬어야겠구나.”

“네.”

“나머지는 네게 맡기 마 세아츠리스.”

“네.”

* * *

“흐음… 아무래도 잘못 나온 것 같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온 것 같은데?”

“이런 적은 처음인 것 같은데…….”

유미르가 머리를 긁적이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늘상 나오던 장소가 아니었다.

보이는 것은 익숙한 풍경이 아닌 전혀 다른 낯선 장소였다.

“뭐… 어비스 던전에도 이상한 기류가 생겼으니… 게이트에도 문제가 생겼었나 보지.”

“그렇게 생각하면 또 무사히 나온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인가?”

“그게 그렇게 되나?”

“일단은 주변에 지나다니는 사람을 마주치면 이쪽이 어딘지 부터 물어봐야겠네.”

“아시테르는 잘 지내고 있겠지?”

“당연히 잘 지내겠지. 그 녀석이 누구 아들인데.”

“당신 아들이니까 잘 지내긴 하겠지.”

“후후 우리 아들이지 우리 아들.”

“어디 나가면 연락 없는 건 당신을 꼭 닮았는데.”

아레나가 유미르를 째려보며 말했다.

그러자 유미르는 일부러 시선을 피하며 걸음을 옮겼다.

“어디보자…….”

“말 돌리려는 거지?”

“아니 그게… 말이야…….”

“으아아악!!!”

“끄아아!!!”

그때 먼발치서 사람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소리가 들린 곳으로 몸을 날렸다.

“크롸아앙!!!”

뒤이어 마수들의 울음 소리도 들렸다.

유미르의 시선이 전방을 살폈다.

마수들에게 공격당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저기로군.”

유미르의 몸이 순간적으로 튀어 나갔다.

콰앙!!

그의 주먹이 곰처럼 생긴 마수의 얼굴을 때렸다.

이어 손에서 흘러나온 빛무리가 마수의 몸을 꿰뚫고 지나갔다.

순간 유미르가 있는 곳에 그늘이 졌다.

“어라?”

그가 고개를 들어보니 사람만한 괴조들이 허공을 비행하고 있었다.

괴조들도 유미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께에에에!!”

“키레에!!”

놈들이 날카로운 괴성을 지르며 낙하했다.

이를 본 유미르가 검에 손을 가져갔다.

“조심하세요!!”

“위험합니다!”

이를 본 사람들이 놀라 소리쳤다.

어느새 그들 가까이로 다가온 아레나가 입을 열었다.

“괜찮아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미르가 검을 휘둘렀다.

화려한 광채의 빛이 반월로 뻗어 나갔다.

촤라라라락!!!

후두둑!!

후두두두두둑!!

몸이 두 동강 난 괴조들이 힘없이 떨어졌다.

단 일격에 수십 마리의 괴조를 죽인 유미르가 뒤로 몸을 돌렸다.

촤라랑!!

연이어 검 끝에서 뻗어 나간 빛무리가 덮쳐 오는 마수들을 단숨에 베어 버렸다.

눈앞에서 보고도 믿기지 않는 무용에 사람들은 감탄은커녕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여기 근처에서 원래 저런 마수들이 나오나요?”

“아니요… 갑자기 나타났어요… 도시에 잿빛 형상의 무언가가 떠오르더니 마수들이 무더기로 뛰쳐나왔습니다.”

“마수들이요? 그럼 지금 도시는…….”

“마수들 천지입니다… 저희는 급하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도시 밖으로 나온 겁니다. 그런데 말도 잡아먹히고 마수들에게 붙잡히는 바람에…….”

“거기 도시가 여기서 먼가요?”

“아니요… 많이 멀지는 않습니다만…….”

“그럼 안내해 주세요.”

“예……?”

“도시가 지금 위험에 처한 것 아닌가요? 다른 것은 몰라도 마수들 때문이라면 도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아… 아아…!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사내, 산트로초가 아레나를 향해 연신 고개를 숙였다.

반면 아레나는 도시에 나타난 마수들이 혹시나 비체가 말한 그것이 아닐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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