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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200화 (200/424)

200화 던전에서 온 사람들 (2)

아레나와 유미르가 사람들을 따라 도시에 도착했을 땐, 그야말로 전쟁을 방불케 하는 수준의 전투가 이어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밀려드는 마수들을 저지하기 위해 성벽 위로 돌과 물건들까지 쌓아 방어선을 구축해 놓았다.

늑대처럼 생긴 마수 한 마리가 중년사내의 머리를 물려고 할 때, 유미르가 마수의 머리통을 먼저 깨부숴 버렸다.

점액처럼 질질 흐르는 핏물에 중년인이 기겁을 하며 뒷걸음질 쳤다.

“가… 감사합니다……!”

“뒤로 물러나 계십시오.”

유미르가 중년인의 행색을 살폈다.

평범한 농민이었다.

무기를 잡은 손조차 어색하다.

이 중년 사내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주위를 둘러봐도 기사들이나 병사들의 수가 현저히 적었다.

나머지는 모두 평범한 시민들일 뿐.

기사나 병사도 아닌 평범한 시민들까지 나서서 이 도시를 보호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사내들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여인들 또한 도시를 보호하기 위해 잡기들과 돌들을 나르고 있었다.

“이런…….”

마수들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을 보며 유미르와 아레나가 동시에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군사들의 숫자가 현저히 적었다.

아직까지 지원군도 도착하지 않은 모양.

“우리 왕국이었으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인데…….”

“일단은 우리들이 도와줘야겠어. 지원군이 오기도 전에 도시 사람들이 몰살당하고 말거야.”

“내가 오른쪽. 당신은 왼쪽?”

유미르의 말에 아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이 막아내기엔 마수들의 수가 너무나도 많아 역부족이었다.

마수들에게 산채로 잡아먹히는 사람들도 보였다.

살아 있는 지옥도가 있다면 지금 이곳이 바로 그랬다.

성벽 아래로 떨어지면 무참히 뜯겨 죽어버린다.

위에서 싸우는 병사들과 기사들의 꼴도 말이 아니었다.

날카로운 발톱에 몸이 꿰뚫린 자도 있었고 팔이 잘려 한 손으로 검을 들고 싸우는 이도 있었다.

“빌어먹을 마수들… 지긋지긋하네 정말…….”

어비스 던전에서 오래 생활할 때까지만 해도 마수들에 대한 생각이 조금은 무뎌지고 있었는데, 이렇게 보니 역시나 마수들은 인간에게 위험한 존재들이었다.

유미르의 검이 수평으로 지나가자 환한 빛무리가 반월 모양으로 뻗어 나갔다.

콰라랑!!

촤라라락―!!

단 일검에 십수 마리의 마수들을 벤 유미르가 그대로 앞으로 쏘아져 나갔다.

“너희들의 상대는 여기 있다!!!”

유미르는 일부러 크게 소리쳐 마수들의 이목을 끌었다.

성벽에 매달려 있던 마수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마수들의 한가운데로 바닥에 착지한 유미르가 검을 들어 올렸다.

후우웅!!

그의 영기가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

이어 수십 갈래로 갈라진 빛무리가 마수들을 향해 무차별로 떨어져 내렸다.

콰과과강!!!

콰과앙!!!

“키에에에에―!!”

“케에엑!!”

수많은 마수들이 빛무리에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

유성우처럼 떨어지는 빛무리를 보며 사람들도 감탄을 토해 내고 있었다.

“대단해… 어디서 저런 기사분이……!”

“혹시 로얄 나이츠 중 한 분이 아니실까?”

“하지만 저런 검술을 쓰는 분이 있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내가 전에 수도에 가서 로얄 나이츠 전원을 본 적이 있는데… 저분은 로얄 나이츠가 아니야.”

“로얄 나이츠가 아닌데 저런 실력을 지닌 사람이 있다고……?”

이들이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유미르는 일당백, 아니 일당천 이상의 실력을 보이며 마수들의 사이를 종횡무진 누비고 다녔다.

검 한 자루로 수십 마리의 마수들을 베는 유미르의 모습을 보며 이들은 짜릿한 쾌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화르륵―!!

그때 한쪽에서 푸른 불길이 치솟기 시작했다.

화려한 검술을 보이며 휘황찬란한 광채로 마수들을 죽이는 유미르와 다르게 아레나의 마법은 깔끔했다.

그녀의 불꽃은 마수들을 단숨에 태워버렸다.

어찌나 강한 불꽃인지 마수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어… 엄청나다…….”

“대체 뭐 하는 분들이지……?”

“기연이다… 우리 도시가 기연을 얻은 거야……!”

맨크라이아 도시의 시민장, 무키우스는 아레나와 유미르를 보며 두 눈을 화등잔만하게 뜨고 있었다.

겨우 두 사람.

단 두 명의 등장만으로 마수들이 눈에 띌 정도로 줄어들고 있었다.

환한 빛무리가 번쩍거릴 때마다 마수들의 피가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동시에 푸른 불꽃은 파도처럼 밀고 나가며 마수들을 모두 태워버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무력!

이곳에 있는 모두가 힘을 합쳐도 마수들을 몰아내기 힘들었는데, 저들은 겨우 두 사람의 힘만으로 마수들을 몰아내고 있었다.

“경이롭구나… 정말 경이로울 지경이야…….”

“대마도사와 전설의 마검사가 온 것 같습니다.”

“저 빛을 보십시오… 마치 달빛처럼 보이질 않습니까?”

“초승달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푸른 불꽃을 사용하는 마도사가 있다는 말은 단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마수들을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태워버리고 있어요…….”

여기저기 치솟은 푸른 불기둥.

불기둥에 휩쓸린 마수들은 곧바로 비명횡사하고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들불처럼 번지는 불꽃은 마치 마수들을 탐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 속도를 높이고 있었다.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아레나를 보고 있으면, 저 사람이 과연 인간은 맞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어쨌거나 아레나와 유미르가 참전해준 덕분에 도시의 병사들과 시민들도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아니 이 이상의 전투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유미르와 아레나 둘이서 던전 게이트에서 흘러나오는 마수들을 모두 상대해내고 있었으니까.

그 모습을 보며 무키우스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저분들은 도와라…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다……!”

“남은 병력들을 모두 투입시킬까요?”

“일반 시민들은 남고 병사들과 기사들은 나를 따르라!!”

무키우스가 군사들을 이끌고 성밖으로 나섰다.

그들을 본 마수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휘리링―!!

촤라락!!!!

마수들의 움직임을 눈치 챈 유미르가 검을 휘둘렀다.

달빛 검기가 단숨에 마수들의 몸을 반절로 갈라 버렸다.

“이래선 끝이 없겠는데.”

유미르가 시선을 돌렸다.

저 앞쪽에 열린 던전 게이트.

저곳에서 마수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저 게이트부터 파괴해야겠어…….”

아레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녀 또한 유미르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부탁해도 될까!?”

“알겠어. 내가 처리할게. 대신 이곳 좀 부탁해. 뒤에 일반 시민들이 있어서.”

“오케이!!”

유미르가 기운을 끌어모으자 그의 전신에서 엄청난 폭발력이 일었다.

치솟은 검기가 허공에 보름달처럼 떠올랐다.

“달빛의 몰락.”

후우우웅―!

콰과가가강!!!!!

보름달처럼 떠오른 검기가 마수들의 한가운데로 떨어졌다.

그와 함께 달빛 무리가 마수들을 짓눌러 버렸다.

보름달이 지면을 강타함과 동시에 엄청난 폭발이 일며 마수들의 사체가 사방으로 튀었다.

유미르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근처의 마수들까지 정리해 버렸다.

이 말도 안 되는 광경을 보며 무키우스는 군사를 물릴 수밖에 없었다.

“무키우스님! 어째서 멈추시는 겁니까?”

“도우러 가 봤자다…….”

“예?”

“애초에 저분들에게 우리들의 도움은 필요도 없었던 거다.”

“하지만…….”

“가 봤자 방해만 될 것이다. 감히 우리가 넘볼 수 없는… 그런 경지에 있는 분들이다…….”

무키우스는 유미르의 검술을 보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특히나 조금 전에 본 검술.

그것은 이미 검술이라는 개념을 뛰어넘은 미지의 그것과 같아 보였다.

만약 저 보름달같이 생긴 검기가 도시 위로 떨어졌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심지어 저 보름달 같은 것을 여러 개를 만들 수 있다면?

“저분들이 만약 다른 뜻을 품는다면… 우리 도시는 그대로 멸망이다…….”

겨우 단 한 사람으로도 멸망이 보이는데 옆에 있는 여인은 한술 더 떴다.

아레나는 허공에 수백 개의 불덩이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불덩이는 일제히 던전 게이트쪽으로 향했다.

콰가가강!!

파바방!! 파바바바방!!!

무차별로 쏟아지는 불덩이에 마수들도 속수무책이었다.

이어 아레나가 두 팔을 들어 올렸다.

그녀의 위로 화염 형상의 커다란 새가 만들어졌다.

푸른 불꽃을 온몸에 휘감은 새는 아레나의 명령에 따라 던전 게이트를 향해 비상했다.

“가라.”

날개 주변으로 생긴 불꽃이 일제히 산개하며 마수들을 집어삼켰다.

이어 푸른 불꽃의 새가 그대로 던전 게이트를 파괴해 버리고 말았다.

“우와아아아―!!!”

“오오오오!!!”

“와아아아―!!”

던전 게이트가 파괴되자마자 여기저기서 우레와 같은 함성이 쏟아져나왔다.

유미르와 아레나는 나머지 마수들의 목숨도 취했다.

언제나 그랬듯, 마수들에게 자비는 없었다.

불길을 회수한 아레나를 보며 유미르가 미소를 보였다.

“역시 당신의 마법은 언제 봐도 대단하다니까…….”

“어머머… 아버님은 나보다 당신이 더 강할거라고 하시던데.”

“그건 그냥 내 기분 맞춰주려고 하신 말씀이지.”

“나도 아버님과 같은 생각인데?”

“아… 그런가? 으허… 으허허허!!”

유미르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웃어 젖혔다.

유미르가 있던 곳에는 수백 마리 마수들의 시체가 쌓여 있었다.

반면 아레나가 맡았던 곳은 마수들의 흔적도 찾아볼 수 없었다.

푸른 불꽃은 순간적으로 폭발하듯 강한 열기를 내뿜는다.

그것에 닿는 순간 지금처럼 형체도 남김없이 사라져버렸다.

마수들도 모두 죽이고 던전 게이트까지 파괴했으니, 이제 이곳에서 더 이상 할 일은 없었다.

유미르의 시선이 던전 게이트가 있던 곳으로 향했다.

“마수들이 끊임없이 튀어나오긴 했지만 상대적으로 약한 마수들이었어. 아마 스승님이 말씀하신 곳은 여기가 아닌 모양이야.”

“아버님께서 말씀하신 놈들이 이렇게 약한 마수들일 리가 없지… 그래도 밖에 무슨 일이 생기긴 하려는 모양이네… 갑자기 이런 던전 게이트가 형성되고 브레이크가 일어나다니…….”

“그러게… 걱정이네. 우리 아들도…….”

“잘 하고 있으려나……?”

“후우… 워낙 맹한 녀석이라…….”

아레나와 유미르가 자연스럽게 대화를 주고 받는 동안 일단의 무리가 이곳으로 오고 있었다.

그들의 차림새를 보아하니 지원군 같아 보였다.

모두 갑옷을 차려입었고, 말들은 마갑까지 착용하고 있었다.

“이곳은 검사들도 많은 모양이야.”

“그러게… 우리 왕국처럼 검술을 포기하진 않은 모양이네.”

“마도사들도 꽤 되는데?”

“오고 있는 병력의 수가 제법이네.”

아레나와 유미르는 뒤편까지 살피고 있었다.

그때 두 사람의 곁으로 무키우스가 다가왔다.

“두 분께서는 저희 도시에 은인들이십니다.”

“예?”

“아… 별 것 아닙니다.”

무키우스가 아레나와 유미르를 향해 깊게 허리를 숙이자 두 사람이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무키우스는 감격한 얼굴로 눈물을 흘리며 입을 열고 있었다.

“혹시나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두 사람을 저희 도시로 모시고 싶습니다. 가진 것은 많지 않지만 이렇게 두 분을 떠나보낸다면 제가 도시 시민들을 볼 면목이 없어질 겁니다. 은인께 작은… 아니 큰 대접이라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아이고… 어지간하면 저희도 밥 한 끼 얻어먹고 가겠습니다만…….”

“저희가 시간이 없어서요. 죄송하지만 베풀어주시는 호의는 마음만 감사히 받겠습니다.”

“하지만 두 분이 아니었다면 저희 도시는…….”

“어느 도시가 위험에 처했더라도 저희들은 똑같은 행동을 했을 겁니다. 마수들을 죽이는 것이 제 일이거든요.”

“저는 이 사람이 마수들을 잘 죽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이고요.”

아레나가 유미르를 보며 웃었다.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던 무키우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럼 두 분은…….”

“부부입니다.”

“부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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