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화 던전 브레이크
지나치게 위화감을 느끼지 않도록 아칼은 일부러 한 단계 낮추어서 말했다.
한편으로는 이스트 왕국 마법기사들의 수준이 과거보다 훨씬 올라와 있으니, 이제는 마법기사단장급이면 콰트로 마녀들과 비교해도 손색없을 수준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아칼의 말에 모두가 세아츠리스를 바라보았다.
단장이 저렇게 말할 정도라면 분명 대단한 실력을 지녔다는 얘기였다.
그동안 전투에서 본 마녀들의 마법 실력도 수준급이었는데, 그보다 더 뛰어난 마녀.
그것이 바로 곁에 있는 세아츠리스라는 얘기였다.
“멋있다…….”
“대단한 전력이 들어오는 거네…….”
“단장!! 이러다 우리 마법기사단이 왕국 최강이 되는 것 아냐?”
“나중에 있을 마법기사단 대전에서 우리 마법기사단이 우승할 수도 있겠는데? 이번에 들어온 신예들도 상당한 실력자들이고. 우리 선임기사들도 여명 마법기사단에 비해 뒤처지지 않잖아?”
“바보냐? 마법기사단 대전에 어떻게 세아츠리스 씨가 참가해?”
“못할 것 뭐 있어? 우리 단장이 마법기사단의 단원으로 받아 주면 되잖아!?”
“그러네? 그 방법도 있네?”
“그래그래!!”
“근데 알렌시아는 어떻게 하고……?”
그제서야 뒤늦게 그들의 시선이 알렌시아에게로 향했다.
콰트로 마녀가 괜히 백상 마법기사단과 함께 하겠다고 말을 했겠나.
세아츠리스는 아시테르와의 인연 때문에 이곳으로 들어왔을 것이다.
그것도 일반적인 감정이라면 이런 과감한 결단은 결코 불가능할 터.
세아츠리스는 특별한 감정으로 아시테르를 따라 나섰을 것이 분명했다.
결국 그들은 알렌시아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세아츠리스가 알렌시아쪽을 바라보았다.
“다들 무슨 일 있으신가요?”
“흐음… 그게… 아시테르는 알렌시아의 애인이라…….”
“괜찮아요.”
“아니… 세아츠리스 씨가 괜찮아도 알렌시아가 안 괜찮을 텐데…….”
“저도 신경 쓰지 않으니까 걱정 마세요.”
그러나 말과 다르게 알렌시아와 세아츠리스 사이에는 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 스파크가 튀는 것을 두 사람만 못 느끼고 있었다.
쿠르르릉―!!
콰드드드드드득!!!
그때 멀리서 굉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굉음뿐만 아니라 지축이 흔들리는 느낌마저 들었다.
아니 실제로 땅이 경련을 일으키듯 흔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뭐야!?”
“이게 무슨 소리야?”
그들의 시선이 굉음이 들린 쪽으로 향했다.
현재 이곳에 남아있는 기사단은 백상 마법기사단뿐.
그들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전열을 갖추어 이동했다.
웨스트 왕국이 다시 기습을 가하는 것일 수도 있으니, 그들의 이동은 은밀하고 신속했다.
헌데 예상과 다르게 그들의 눈앞에 보이는 것은 던전 게이트였다.
아니, 이것은 던전 게이트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대지 위로 생긴 게이트에서 거대한 하이브가 우뚝 솟아오르고 있었으니까.
이것 때문에 지형지물이 바뀌기 시작했으니, 대지가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었다.
이 광경을 본 백상 마법기사단의 안색이 굳었다.
“저게 대체 뭐냐……?”
“글쎄… 근데 기분 나쁘게 살아 숨 쉬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어…….”
“저게 나타나면서 방금 그 소리가 들린 건가?”
“아시테르. 저런 건 어디서 본 적 없어?”
“저건 나도 처음 보는 종류인데… 저것도 마수인가?”
어비스 던전에 살면서 온갖 마수들은 다 경험해 봤지만, 저렇게 거대한 것은 처음이었다.
아칼도 경험해 보지 못한 경우였다.
던전 게이트가 생기자마자 브레이크 되는 것도 처음 봤지만, 그곳에서 저런 지형지물이 올라오는 것도 처음이었다.
덕분에 인상을 잔뜩 찌푸릴 수 밖에 없었다.
이곳은 마녀숲에 더 가깝지만, 이스트 왕국과도 근접해 있는 지역.
때문에 그냥 지나칠 순 없다.
“저 정체 모를 것을 조사한다. 다들 준비해라.”
아칼의 말에 백상 마법기사단 모두가 신속하게 움직였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게이트 위로 나타난 하이브에 다가갔다.
가까이 갈수록 진하게 퍼지는 지독한 냄새에 인상이 절로 찌푸려질 정도였다.
“아오, 이게 뭔 냄새야 정말…….”
“시체 썩는 냄새랑 비슷한 것 같아…….”
“제기랄… 느낌이 좋지 않은데…….”
“단장!! 저기!!”
부단장이 하이브의 한쪽을 가리켰다.
그곳에 작은 구멍이 열리더니 개미처럼 생긴 마수들이 하나씩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마수들은 열을 이루어 하이브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놈들은 강력한 턱을 이용해 가로막는 나무를 단번에 부숴 버렸다.
“일단 놈들이 내려오는 것을 막는다.”
“네!!”
“알겠습니다!”
내려오는 마수들을 저지하기 위해 마법기사단 모두가 뛰어들었다.
아시테르는 알렌시아의 곁에 섰다.
그녀가 전격의 창을 만들자마자 아시테르가 화염으로 전격의 창을 감싸 안았다.
“시원하게 한 방 부탁해!”
“맡겨 둬.”
전쟁 중에 익힌 복합 마법이었다.
불꽃을 휘감은 전격의 창은 일직선으로 시원하게 뻗어 나갔다.
콰라랑―!!!
화려한 폭발과 함께 개미 마수들이 우후죽순 쓰러졌다.
다행이 강한 마수들은 아닌 모양이었다.
몸체가 탄탄하지 않으니, 일반적인 마법에도 견디지 못하고 쉽게 녹아내렸다.
때문에 잔뜩 긴장했던 백상 마법기사단도 조금은 느슨해지고 있었다.
“단장. 이 자식들 생각보다 별 것 없는데요?”
“생긴 건 무섭게 생겼길래 엄청 긴장했는데… 사르르 녹아요, 얘네들.”
“오히려 죽이는 게 재밌네.”
“여기 또 몰려온다!”
마치 무슨 놀이라도 되는 것처럼 마법기사단 모두가 다양한 마법들을 사용했다.
아시테르도 생각보다 쉽게 죽는 마수들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뭐지……?”
이 정도면 높은 수준의 마법을 사용하는 게 비효율적일 정도였다.
다른 이들도 비슷한 생각들을 하는 모양.
그때 아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멍청이들!! 마력을 아껴라!! 적은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고 있다. 방심하지 마!!”
단장의 외침에 다들 일제히 우렁차게 답했다.
그러곤 마수들을 죽일 수 있을 정도의 수준으로 최소한의 마법들만 사용했다.
쓸데없이 고급 마법을 사용해 마력의 소모가 커지는 것을 조심했다.
아칼의 말 한 마디에 곧바로 행동을 달리하는 마법기사단원들을 보며 세아츠리스가 눈을 빛냈다.
마법에 대한 자존심이 강한 마녀들은 통제하기가 어려운 부분들이 있었다.
그에 반해 마법기사단원들은 마치 하나가 된 것처럼 일심 단결하여 움직였다.
이스트 왕국의 마법기사단이 강한 이유가 어쩌면 이러한 모습들 덕분인지도 몰랐다.
“대단하군요.”
마법기사들의 실력을 보며 세아츠리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웨스트 왕국과의 전쟁에도 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백상 마법기사단의 전투를 지켜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과연 이들이 전쟁터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는 말이 곧바로 이해가 되는 광경이었다.
“저도 가만히 있을 순 없죠.”
이제는 그녀가 움직일 차례였다.
세아츠리스가 마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하니, 마치 그녀를 중심으로 대기가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에스파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게 뭐야……?”
그는 경악에 가까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마치 대기 중에 떠도는 마나들을 한데 끌어 모아 마력으로 뭉치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어지는 마법은 더더욱 에스파를 놀라게 만들었다.
세아츠리스의 발밑에서 시작한 땅의 움직임이 곧 앞으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두르르릉―!!
땅에서 뻗어 나온 가시덤불들이 한순간에 새장을 형성하듯 모이며 마수들을 가두었다.
“아시테르 오빠 지금이에요.”
세아츠리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시테르가 화염을 만들었다.
커다랗게 몸집을 불린 화염은 곧 가시덤불 안으로 떨어졌다.
화염은 단숨에 개미 마수들을 불태워 버렸다.
이를 본 에스파가 짜릿한 쾌감에 소리를 질렀다.
불길이 옮겨 붙은 마수들이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새장 밖으로 나오는 마수들을 보며 에스파가 활을 들어올렸다.
“나머지는 나한테 맡기라고.”
에스파는 믿을 수 없는 속사 실력으로 튀어나오는 마수들을 모조리 맞춰 버렸다.
이어 알렌시아의 전격이 주위를 깔끔하게 정리해 버렸다.
네 사람의 합을 보며 주변 마법기사단원들도 혀를 내둘렀다.
“어후… 어마무시하구만…….”
“이번 신입들은 장난이 아니라니깐…….”
“가시줄기처럼 생긴 걸 소환하는 게 세아츠리스의 마법인가……?”
“저 많은 수의 마수들을 한번에 가두다니… 어마어마한 마력량이네…….”
세아츠리스는 곧바로 가시덤불을 이용해 마수들을 가로막는 거대한 울타리를 만들어 버렸다.
그녀의 마법 덕분에 마법기사단원들도 전투를 치르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가둬 놓고 패는 기분이네.”
“뭐야 이거?”
“이거지!! 이 기분이지!!”
백상 마법기사단이 적극적으로 전투를 이어 나가는 가운데, 또다시 하이브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요동치던 하이브의 위쪽에서 커다란 구멍들이 생겨났다.
“여기서 더 마수들을 내보낼 생각인가.”
“그래도 이 정도 숫자들이라면 해 볼 만한 것 아닙니까?”
“여기서 더 늘어나 봤자…….”
그 순간 그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엄청난 숫자의 마수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번엔 벌처럼 생긴 마수들이었다.
놈들은 꼬리에 달린 독침을 발사하며 마법기사들을 공격했다.
거기다 공중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탓에 마법을 맞추기도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끄아아―!!”
독침에 맞은 마법기사단원 한 명이 거친 비명을 토해 냈다.
독침에 맞은 자리가 금세 꺼멓게 죽어가기 시작했다.
“치유 마도사!!”
곁에 있던 동료가 크게 소리쳤다.
백상 마법기사단에 지원 나왔던 치유 마도사가 황급히 움직였다.
이를 확인한 아시테르가 동료들에게 소리쳤다.
“모두 독침이 날아오는 것을 조심해!!”
“디안드레!! 부탁한다!”
“그렇지 않아도 준비하고 있던 중이다.”
에스파의 말에 디안드레가 마력을 끌어올렸다.
이제는 서포트 역할인 그가 나설 차례였다.
디안드레의 마법이 순식간에 커다란 베리어를 만들었다.
“저것도 튕겨낼 수 있어?”
“당연하지. 내 마력의 특성은 튕겨 내는 거니까.”
그것을 증명하듯 베리어에 튕겨져 나간 독침들이 다시 벌처럼 생긴 마수들을 공격했다.
이를 본 마법기사들이 호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세아츠리스도 가시덤불을 더 높게 형성하여 베리어가 닿지 않는 부분들을 보호해 주었다.
거기다 돋아난 가시들이 다가오는 마수들까지 공격해, 공격과 수비 둘 다 해내고 있었다.
굉장한 세아츠리스의 마법에 모두가 감탄을 흘렸다.
에스파가 입술을 질끈 깨물며 활을 들어올렸다.
“좋아. 나머지는 나한테 맡겨두라고.”
다른 사람들은 마법으로 날아다니는 벌을 맞추기 어려워 하지만 자신은 달랐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을 위해 그동안 고된 훈련을 감내해 왔는지도 모른다.
목표물을 바라보는 에스파의 눈빛이 빛나기 시작했다.
슈슈슝―!!
파바박!! 파바바바박!!!
에스파가 날리는 화살들이 단 한 번도 빗나가지 않고 마수들을 맞췄다.
화살이 날아갈 때마다 공중을 날던 마수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보며 동료들이 에스파를 향해 엄지를 치켜올렸다.
슈콰아아악!!!
대기가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수십 마리의 마수들이 낙엽 떨어지듯 우수수 떨어졌다.
모든 것을 찢어발기는 마법.
아칼의 마법이었다.
그는 마수가 아닌 하이브를 직접 노렸다.
콰드드득!!!
하이브에 커다란 상처가 남았다.
마치 고통을 느끼기라도 하는 것처럼 하이브가 더욱 요동쳤다.
이어 커다란 구멍에서 또다른 마수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대체 저 안에는 얼마나 되는 마수들이 있는 거냐…….”
이번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지네를 닮은 마수들이었다.
놈들은 수십 개의 다리를 이용해 빠르게 이동했다.
“끄아아―!!”
“왜 하나같이 다 징그러운 것들만 있는 거야!?”
“제기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