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화 하이브의 출현 (1)
하이브에서는 마수들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지금이야 백상 마법기사단이 막아낼 수 있는 정도지만 곧 이들만으로는 역부족일 듯 보였다.
“너는 곧바로 왕국에 도움을 요청해라.”
아칼이 곁에 있는 단원 한 명에게 명령을 내렸다.
단원은 빠르게 전장을 이탈했다.
이제 왕국의 마법기사단이 도와주러 올 때까지 버텨 내야만 한다.
“마녀들은 아직 이 상황을 모르는 건가?”
이스트 왕국보다는 마녀숲과 조금 더 가까운 위치였다.
그 때문에 마법기사단보다는 마녀들이 이곳에 먼저 도착할 것이다.
아칼의 마법이 하이브에서 내려오는 마수들의 몸을 두 동강내 버렸다.
그 순간 지네마수가 아칼의 가까이로 파고들었다.
아칼은 당황하지 않고 곧바로 마력을 돌렸다.
일자로 뻗어 나간 마력의 칼날이 지네마수를 정확히 삼등분으로 나눠 버렸다.
아칼은 앞에 있는 마수들을 상대할 뿐 아니라 틈틈이 단원들을 돕기도 했다.
그의 마력은 날카로운 성질을 지녀 마수들을 마구 난자해 버렸다.
홀로 수십 마리의 마수들을 상대하는 아칼의 마법에 제인스도 감탄을 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 더 성장하신 건가…….”
“제인스! 너는 서쪽을 맡아라.”
“네!”
제인스가 한달음에 달려나갔다.
그가 마력이 깃든 손가락을 몇 차례 휘두르니, 마법진이 나타남과 동시에 골렘의 손이 등장했다.
콰직!!
골렘은 지네마수를 찍어 누르며 소환되었다.
웨스트 왕국과의 전쟁에서도 마도병기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강력한 힘을 보인 제인스의 골렘이었다.
골렘은 마수들을 상대로도 강한 면모를 드러내었다.
마수들이 매섭게 공격했지만 방어력만큼은 마수들을 훨씬 능가하는 골렘이었다.
거기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시작해 보자고.”
제인스가 마력을 더욱 끌어올리자, 골렘의 양쪽 팔에서 레이저처럼 마력이 쏘아져 나가기 시작했다.
“퀘에에엑!!”
“쿠에엑!!!”
마수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때 하늘 위로 불꽃의 비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 마법은……?!”
하늘을 뒤덮는 불꽃을 보며 제인스가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골렘으로 딱 활약을 시작하자마자 더 거창한 놈이 등장해 버리고 말았다.
“이 자식… 살살 좀 하지. 내 활약상이 묻히게 말이야…….”
하늘을 뒤덮은 불꽃은 벌처럼 생긴 마수들을 대거 추락시켜버렸다.
이어 땅위를 빠르게 기어 다니고 있던 지네들의 몸에도 옮겨 붙었다.
길게 뻗은 가시덤불에도 불꽃이 옮겨 붙었다.
순간 가시덤불을 복구하는 것도 잊어버린 채, 세아츠리스는 눈앞의 광경에 시선을 빼앗겨 버리고 말았다.
“와아… 세상에 이런 마법이…….”
화염 마도사라면 여럿 봐왔지만 이런 마법을 사용하는 사람은 아시테르가 처음이었다.
불꽃이 비처럼 내려 수많은 마수들을 한꺼번에 태워 버리는 장면은 정말로 장관이었다.
심지어 곁에 있던 다른 동료들조차 순간 넋을 놓고 바라볼 정도였다.
“미친놈이네 진짜…….”
“저런 게 가능한 거야……?”
“와… 그 사이에 더 마법이 발전했잖아…….”
“근데 이런 대단한 마법을 왜 전쟁에선 쓰지 않은 거냐?”
“그러게… 전쟁터에서 이런 마법 썼으면 훨씬 더 쉽게 이겼겠다.”
여기저기 말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알렌시아도 아시테르의 마법에 감탄하는 한편,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아시테르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자신도 질 수 없다.
나름 아시테르를 라이벌로 생각하고 있던 알렌시아였기에 그녀는 더욱 많은 마력을 사용했다.
한꺼번에 몰아친 전격이 수많은 마수들을 사냥했다.
아시테르를 비롯해 모두가 많은 마수들을 죽이고 있지만, 그럼에도 살아 있는 마수들의 수가 엄청났다.
“음……!?”
그때 하이브 위로 거대한 무언가가 나타났다.
그것을 본 아칼이 곧바로 앞으로 나섰다.
“너희들은 뒤로 물러서라.”
“예!? 하지만…….”
“저건 내가 상대한다.”
마수들의 무리로 우뚝 솟아 있는 거대한 사마귀.
자이언트 멘티스가 갈색빛 눈동자로 아칼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지금 이곳에 있는 인간들 중 아칼에게서 가장 강한 냄새가 풍겼다.
[나는… 여왕님을 지키는 대전사 중 하나다.]
자이언트 멘티스는 사념으로 자신의 뜻을 전하며 몸을 움직였다.
녀석은 두 팔 대신에 낫처럼 생긴 커다란 발톱을 지니고 있었다.
그 발톱을 거세게 휘두르니 바람이 칼날처럼 날아갔다.
스가앙―!!
아칼의 뒤편에 있던 나무들이 깔끔하게 잘려나갔다.
우르르 쓰러지는 나무들을 보며 마법기사들도 긴장했다.
저 일격에 잘못 맞았다가는 그대로 절명할 것이 분명했다.
그만큼 위력적인 공격이었다.
심지어 자이언트 멘티스는 움직임도 덩치에 맞지 않게 날렵했다.
녀석의 발톱이 날아오는 마법들을 쳐냈다.
그 사이 가까이로 다가온 아칼이 마법을 사용했다.
세 줄기로 뻗은 거대한 마력의 칼날이 자이언트 멘티스의 몸을 활퀴었다.
“키야아아아―!!!”
자이언트 멘티스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아칼을 쫓았다.
거대한 발톱이 연속적으로 대지를 찍었다.
아칼은 용케도 그것들을 피해내며 반격을 시작했다.
수십 갈래의 칼날이 자이언트 멘티스의 몸을 때렸고 옆에서 날아온 얼음덩어리가 꼬리를 찍어 눌렀다.
자이언트 멘티스는 양쪽을 번갈아 쳐다보며 발톱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날아온 바람의 칼날이 세아츠리스의 가시덤불을 마구잡이로 헤집어 놓았다.
나무마저도 간단하게 베어 버리는 자이언트 멘티스의 공격이건만, 놀랍게도 세아츠리스의 가시덤불은 녀석의 공격을 버텨 내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가시덤불 울타리 이곳저곳에 틈이 생겨나고 말았다.
그리고 그 사이를 비집고 마수들이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여기!! 여기를 막아!!”
“이쪽도 지금 급해!”
세아츠리스가 급하게 가시덤불을 더 겹겹이 쌓으려 했지만 마수들도 그 틈을 쉽게 놓아 주려 하지 않았다.
그때 아시테르가 발끝에 마력을 모으며 몸을 튕기듯 움직였다.
화륵!
공중에 불꽃이 피어나는 소리와 함께 아시테르의 시원한 질주가 시작되었다.
아시테르의 불꽃이 울타리 주변으로 퍼져 나갔다.
그는 일직선으로 움직이며 틈을 비집고 나오려는 마수들에게 검을 휘둘렀다.
스각―!!! 스가각! 스겅!!!!
마수들의 몸이 절단되어 떨어져 나갔다.
역시나 마수들에게만큼은 가차 없는 아시테르였다.
뒤를 이어 선임 마법기사들이 아시테르를 서포트해 주었다.
그 광경을 본 아칼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쪽은 걱정없겠군. 그나저나 뭐하는 거냐… 너무 늦는다 마녀들……!”
벌써 도착했어야 할 마녀들이 아직도 오질 않고 있다.
이대로 백상 마법기사단만으로 전투를 치르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들의 마력은 무한대로 솟아나는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며칠 휴식을 취했다곤 하지만 백상 마법기사단은 여전히 전쟁의 후유증을 겪고 있는 중이었다.
때문에 백상 마법기사단의 컨디션은 백퍼센트가 아니었다.
서둘러 다른 이들이 지원을 와 줘야 했다.
“좋지 않구만… 아직 저 안에 얼마나 많은 마수들이 있는지도 모르고… 어떤 놈이 튀어나올지도 모르니…….”
쓰러진 자이언트 멘티스를 밟고 있던 아칼이 걸음을 옮겼다.
분명 자이언트 멘티스는 자신을 여왕을 지키는 대전사 중 한 놈이라고 말했다.
그 말은 동일한 급의 마수들이 몇 더 있을 거란 얘기였다.
아니면 이보다 더 강한 마수들이 저 하이브 안에 있을지도 몰랐다.
“그럼 나오기 전에 저걸 부숴 버리는 수밖에 없나.”
어쩌면 저 하이브 자체가 던전 게이트일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마수들을 내뱉는 던전 게이트라면 결국 저 하이브를 부수지 않는 한 마수들은 계속해서 쏟아져 나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백상 마법기사단은 전멸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아칼의 주변으로 마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후우웅!!!
사방팔방으로 날아다니던 마력의 칼날이 일시에 하이브를 향해 쏟아져 나가기 시작했다.
파바바방!!!!! 콰라랑!!!
아칼의 마법이 순식간에 하이브에 수십 개의 상처를 남겼다.
근처에 있던 마수들도 휘말려 죽음을 면치 못했다.
하이브가 다시 한번 크게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데미지를 입긴 하는군.”
놀랍게도 하이브에는 상처가 생겨나고 있었다.
그 말은 즉, 더 강한 마법으로 저 하이브를 부술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아칼이 다시 한번 초위 마법을 준비했다.
그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마법.
아칼의 전시에서 흘러나온 마력이 곧 야수 형상을 이루었다.
야수는 커다란 울음 터트리며 손톱을 휘둘렀다.
다섯 개의 거대한 손톱이 한번에 하이브를 활퀴었다.
하이브의 표면에 커다란 상흔이 다섯 개나 남았다.
뒤이어 아칼의 마법에 휩쓸린 마수들이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분해되어 바닥에 널브러졌다.
선명하게 새겨진 상흔을 보며 백상 마법기사단도 환호를 터트렸다.
“역시 우리 단장이구만!!”
“미쳤다 미쳤어!!!”
“멋집니다 단장님!!!”
아칼의 선전에 그들 모두 사기를 끌어올렸다.
아칼뿐만 아니라 제인스와 아시테르, 알렌시아 거기다 세아츠리스까지.
강한 마도사들의 선전에 이대로라면 충분히 하이브를 부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진짜는 이제부터였다.
하이브에서 튀어나온 갑옷처럼 딱딱한 피부를 가진 마수들.
마수들 사이로 마침내 하이브의 주인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가로소운 인간들이여. 쓸데없는 저항은 그만두고 순순히 내 아이들의 영양분이 되어라.]
하이브에서 튀어나온 갑옷 마수들의 이마엔 사슴벌레처럼 두 개의 날카로운 턱이 달려 있었다.
그뿐 아니라 어지간한 마법쯤은 견뎌 낼 수 있을 정도로 쓸 만한 마법 저항력을 갖췄다.
거기다 하이브의 주인, 사라번은 그녀를 지키는 마수들까지 뒤이어 한꺼번에 쏟아 냈다.
하이브의 완성도는 아직 높지 않다.
하이브는 살아 있는 것들을 영양분으로 삼는다.
하지만 하이브를 소환하기 위해 바쳐진 제물의 양이 생각보다 적었다.
“정말 괜찮은 거냐? 눈앞에 있는 인간들은 강하다.”
“그딴 걸 물을 생각이었으면 인간들이나 더 준비해 놓지 그랬나?”
“충분할 거라 생각했다만…….”
“하이브가 아직 60프로 밖에 완성되지 않았어. 더 강한 녀석들이 나오기엔 하이브가 견뎌 내질 못해. 거기다 나의 힘도 아직 온전히 이전되지 않았다.”
사라번의 뒤에 자리한 것은 다름 아닌 흑마도사 반켈이었다.
“이곳은 너에게 맡기겠다 사라번.”
“시끄러. 인간 주제에 내게… 끄으으아아악―!!”
사라번이 갑자기 고통스런 비명을 토해내었다.
머리를 움켜쥔 그녀가 반켈을 노려봤다.
반켈의 마법 한 번이면 사라번은 끔찍한 고통을 겪는다.
거기다 그가 죽으면 사라번 또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것이 반켈이 곧바로 사라번에게 건 제어 마법이었다.
“너는 말버릇부터 고치는 게 좋을 거다 벌레여왕.”
“감히 내게 그딴 식으로 말하지 마라.”
“쯧……!”
“끄아아아―!!!”
반켈의 주문에 또다시 사라번이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괴로워할 때마다 하이브가 함께 요동쳤다.
“지금은 눈엣가시 같은 마법기사들이 눈앞에 있으니 참겠다. 하지만 다음번에 만났을 때는 이 정도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감히… 감히!!!”
사라번의 두 눈에서 흉광이 일었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눈앞의 인간을 찢어 죽이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었다.
그래서 사라번의 분노는 다른 쪽으로 향했다.
쿠르르르릉―!!!
하이브가 몸살에 떨 듯 강한 경련을 일으켰다.
잠깐 동안 마수들이 나오지 않을 정도의 커다란 떨림이었다.
이어 하이브의 정상에 커다란 알이 생겨났다.
정기가 빨려 나가기라도 한 것처럼 일순간 하이브의 몸체가 줄어들었다.
알에 금이 가기 시작하자 그것을 뚫고 한 마리의 마수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녀석의 이름은 아루투스.
오랫동안 사라번을 지켜온 충신이자, 하이브에서도 손꼽히는 강자 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