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6화 하이브의 출현 (2)
아루투스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사라번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찾으셨습니까 여왕님.”
“가서 저 인간들을 죽여라!!”
사라번의 명령에 아루투스가 곧바로 움직였다.
아루투스는 인간형의 모습을 하고 있는 마수였는데, 머리에는 뿔 같은 투구가 달렸고 팔에는 비늘로 이루어진 특이한 검이 들려 있었다.
아루투스는 여왕 사라번에게 고개를 숙여 보이곤 몸을 움직였다.
하이브가 무리해서 소환한 만큼, 그 값어치를 할 수 있는 마수가 바로 아루투스였다.
아루투스는 엄청난 마기를 발산하며 아칼을 향해 돌진했다.
아칼은 아루투스에게 맡기고 사라번은 다른 인간들을 둘러보았다.
“하찮은 것들… 모두 죽여 주마……!”
갑옷마수들에 이어 다른 마수들까지 소환한 사라번이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인간들은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는 마수들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가장 처음 보낸 개미들은 정찰병들이나 다름없다.
사라번의 주력 부대는 이 갑옷마수들이었다.
갑옷마수들은 그 힘을 드러내듯 인간 마도사들을 하나둘씩 쓰러트리고 있었다.
인간 마도사들의 힘도 제법이었지만 막대한 양의 숫자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듯했다.
이를 막아 줄 아칼은 아루투스에게 완전히 발이 묶이고 말았다.
이를 본 반켈이 미소를 보였다.
“저 마수는 제법이로구나. 마법기사단장의 발을 묶을 수 있을 정도라니.”
“흥. 아루투스만으로도 이곳은 정리가 가능하다.”
“그럼 믿고 나는 다른 곳으로 가 보마.”
“어딜 가려는 거냐? 네놈이 떠나가면 나는 이곳의 모든 것을 잡아먹을 텐데.”
“그렇게 하던지. 마음대로 해라. 나는 너 말고 또 다른 녀석을 소환하러 가 봐야 한다.”
“또 다른 녀석을 소환 한다고? 이번엔 어떤 녀석을 소환하려는 거지?”
“하이드라를 소환할 거다.”
“뭐……?”
“못 들었나? 하이드라를 소환할 거라고 했다.”
“완전히 미친놈이었군.”
사라번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이드라라면 사라번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놈이었다.
그녀가 벌레여왕이라 불린다면, 하이드라는 늪지대의 마신이라 불리는 위험한 놈이었다.
아홉 개의 뱀의 머리에 하나의 몸통을 가진 녀석.
그 아홉 개의 머리가 각기 다른 마법들을 사용한다.
그야말로 재앙이나 다름없는 녀석이었다.
자존심 쎈 사라번조차 하이드라와는 맞붙는 것을 꺼려할 정도였다.
반켈은 이곳을 사라번에게 맡기고 이만 떠나가 보았다.
지금쯤이면 이곳의 일이 이스트 왕국에도 알려졌을 터다.
그렇다면 곧바로 지원을 보내기 위해 마법기사단을 파견했을 터.
“비어 있는 왕국을 발할라가 노리면 되는 거지.”
이미 오르카이우스와 최고 간부들이 병력을 이끌고 이스트 왕국 근처에 주둔해 있었다.
그들이 일시적으로 공격을 시작하면 비로소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전쟁은 곧 수많은 죽음을 불러일으킨다.
거기다 반켈의 수하들도 이미 발할라의 내부에 심어 두었다.
그들은 이스트 왕국의 마법기사들뿐만 아니라 민간인들도 닥치는 대로 죽여 버릴 것이다.
그렇게 쌓인 수많은 시체들 위로 마침내 늪지대의 마신이라 불리는 하이드라가 소환될 예정이었다.
“멍청한 오르카이우스놈. 말만 번지르르한 네놈에게 곧 최후를 선물해 주도록 하마.”
오르카이우스는 모든 이들이 평등한 세상을 꿈꾸고 있다.
웃기는 소리.
그러면서도 자신과 최고 간부들은 이스트 왕국 최고 권위에 오르려 한다.
뿐만 아니라 발할라 사람들에게 그는 많은 약속들을 해왔다.
그것들을 모두 지키면?
또 다른 불평등을 야기할 뿐이다.
결국 그는 평등이라는 단어로 사람들을 선동했을 뿐이다.
어떻게 모든 왕국민들이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은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오르카이우스와 함께 하는 이들도 마찬가지.
그들도 혁명에 성공하면 어떻게 해서든 인생 역전을 꿈꿀 뿐이었다.
어떻게 보면 왕국에 대한 열등감으로 찌들어 있는 패배자들의 집단이 바로 발할라였다.
당장 그들의 대장인 오르카이우스조차 테르세우스에 대한 열등감으로 찌들어 있다.
그런 주제에 발할라 인원들의 앞에서는 마음이 넓은 대인배로써 자신을 꾸미고 있다.
“뭐… 상관없지. 발할라와 이스트 왕국이 열심히 싸워 줄수록 나만 좋은 거니까. 켈켈.”
시체가 쌓이면 쌓일수록 마수들을 소환할 수 있는 여건이 좋아진다.
거기다 전쟁 때문에 갈 곳 없어진 인간들은 잡아다 실험의 재료로 써도 좋다.
어디 그뿐인가.
전쟁 통에 살아남기 위해 슬슬 뭐든 시키는 것은 다 하는 인간들도 생겨날 것이다.
그놈들은 이용해 먹기에도 좋다.
발할라에 심어둔 수하들이 몇몇 발할라 간부들을 설득하는데도 성공했다.
결국 이스트 왕국이 이기던 발할라가 이기던 최후의 승자는 반켈이 될 것이다.
당장 여기 있는 벌레여왕 사라번만 해도 굉장히 위험한 마수였다.
하이브로 살아 있는 생명을 양분삼아 끝없이 마수들을 생성해 내니까.
우루투스 같은 강한 마수들도 결국 하이브가 생성해 낸 마수일 뿐이다.
그리고 그 하이브의 주인이 사라번이니 놈들이 사라번을 따르는 것 뿐.
하지만 하이브의 통제권을 반켈이 가져올 수 있다면……?!
놈들은 언제든 사라번을 배신할 수 있다.
“그러니 그동안 마음껏 살아 있는 것들을 잡아먹고 강한 마수들을 키워 내거라. 나중에 다시 내가 회수하러 올 테니.”
세상을 집어삼키려 해도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이 병력의 수급이었다.
발할라나 이스트 왕국의 인원들을 반켈쪽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끌어들인 놈들은 언제든 반켈을 배신할 수 있다.
허니 그보다는 맹목적인 충성심으로 반켈, 자신을 따르는 병사들이 필요했다.
그 고민 끝에 나온 방법이 바로 사라번을 소환해 내는 것이었다.
사라번에게 제어 마법을 걸어 두고 하이브에 자신의 마력의 핵을 담은 마석을 심어둔다.
사라번은 반켈의 제어 마법을 푸는데만 몰두하느라 마석의 존재는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그 사이 마석은 점점 하이브를 집어삼키고 결국 그 통제는 반켈의 손아귀에 넘어올 것이고.
“기대되는구나 사라번. 그때가 되서 네 얼굴이 얼마나 보기 좋게 일그러질지.”
홀로 웃음을 흘린 반켈이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 계획의 핵심은 하이드라였다.
하이드라가 소환되어야 이스트 왕국의 마법기사단을 상대할 수 있다.
거기다 오르카이우스가 경계하는 테르세우스.
그 괴물 같은 사내도 죽일 수 있을 터였다.
“발할라놈들이 테르세우스를 죽여 주면 더 좋고.”
오르카이우스도 대마도사라 불릴 만큼 뛰어난 실력을 지닌 마도사였지만, 역시나 테르세우스만큼은 아니었다.
테르세우스는 반켈조차 인정할 만큼 괴물 같은 강자였다.
겨우 테르세우스 한 사람 때문에 사우스 왕국조차 침략을 꺼려할 정도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까.
아마도 과거 전쟁을 겪었던 사우스 왕국 트럼프들이 현역에 있는 한 이스트 왕국을 향한 침략은 없을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테르세우스… 그 자의 특별하지. 다른 이들의 마법을 아공간에 모아 돌려줄 수도 있고 그 마법들을 융합해 새로운 마법을 창조해낼 수도 있다. 녀석의 아공간에 얼마나 많은 마법들이 저장되어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이번만큼은 테르세우스 그놈도 쉽진 않을 것이야… 벌레여왕도 이곳의 일이 끝나면 전장으로 합류할테니… 때마침 마녀여왕도 많은 힘을 소진해 휴식기에 들어갔으니 정말 더없이 좋은 기회구나.”
반켈 입장에선 웨스트 왕국이 그토록 기특할 수 없었다.
그들 덕분에 마녀여왕과 마녀들의 힘이 크게 소진되었다.
마녀숲에서 무언가를 하려면 가장 먼저 마녀여왕의 시선을 피해야만 했다.
하지만 마녀여왕이 숙면에 들어가면서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흐흐흐흐… 웨스트 왕국. 특별히 너희는 가장 마지막에 끝내주도록 하마.”
잔뜩 흥이 오른 반켈이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나 그는 이곳을 너무나 일찍 떠나 눈치채지 못했다.
마녀숲으로 무섭도록 빠르게 다가오는 두 명의 인간들을 말이다.
반켈이 떠나간 것을 느낀 사라번이 비웃음을 흘렸다.
“어리석구나 인간. 감히 너 따위가 늪지대의 마신이라 불리는 하이드라를 통제할 수 있을 것 같으냐?!”
이쪽 세계에서도 하이드라는 지배자급에 속해 있는 녀석이었다.
어쨌든 하이드라가 이곳에 모습을 드러내기만 해도 세계의 균열은 더욱 크게 일어날 것이다.
그러면 된다.
“모든 것은 그분의 계획대로.”
벌레여왕 사라번이 할 일은 아포칼립스의 문을 찾는 것.
그녀는 하이브에서 나오는 수많은 마수들을 이용해 곧바로 아포칼립스의 문부터 찾아낼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눈앞의 귀찮은 인간들부터 없애버려야 했다.
“짜증나는구나. 가라.”
하이브가 주변의 생명력을 빨아들였다.
나무가 썩어가고 풀벌레들이 부패하듯 녹아내렸다.
뒤이어 죽은 마도사들의 시체까지 이용했다.
“나오너라 아이야.”
또다시 하이브 위로 커다란 알이 생겼다.
알의 색깔이 아직 익지 않아 부화는 조금 느릴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상관없다.
아직 시간적 여유는 충분했으니까.
그동안 사라번은 발악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여기저기 마법 공격이 쏟아졌다.
죽어 가는 마수들을 보고 있으면서도 아깝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저런 수준의 마수들은 약간의 생명력만 있다면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
아루투스 같은 대전사 급은 엄청나게 많은 생명력을 필요했다.
혹은 저기 보이는 아칼이나 몇몇 초위급 마도사들의 생명력을 사용해야 했다.
“그러고보니… 여기 맛있는 영양분들이 많구나?”
아칼뿐만 아니라 초위급 마도사가 몇 명 더 보였다.
그중에 가장 귀찮아 보이는 존재.
사라번은 그녀에게로 시선을 집중했다.
“저 아이부터 죽여라.”
사라번의 명령에 허공을 떠돌던 벌형태의 마수들이 일제히 낙하했다.
그들이 노리는 곳엔 세아츠리스가 서있었다.
슈콰가각!!
카드득! 파바방!!!
채찍처럼 휘둘러진 가시덤불들이 벌마수들을 막았다.
이어 아시테르의 불꽃이 한바탕 마수들을 휩쓸어 버렸다.
몰아치는 전격이 지네 마수들과 갑옷 마수들을 박살내자마자 에스파의 화살이 이들을 서포트했다.
“내가 있다는 것도 잊지 말아주라!!”
날아오는 공격들을 모두 튕겨낸 디안드레가 손가락을 치켜올렸다.
그래도 지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디안드레만이 아니었다.
다른 마법기사들도 슬슬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었다.
아칼은 아루투스에게 붙잡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
이 모든 상황을 파악한 제인스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부단장인 자신이 나서야 할 때였다.
“모두 이쪽으로 움직여라! 주변에 있는 동료들의 시체도 수습해!!!”
삼분의 일이 넘는 숫자가 당했다.
사망자도 있었지만 중상자들도 더러 있었다.
이제는 하이브에서 내려오는 모든 마수들을 상대해 낼 수 없다.
놈들을 놓치더라도 생존에 집중해야 했다.
“제기랄!! 어째서 마녀들은 오지 않는 거냐고!!”
“지원군…! 지원군이 필요합니다!!”
“쓰펄!!! 마수들의 숫자가 너무 많아!!”
아비규환이었다.
마수들에게 산채로 붙잡혀 먹히는 마도사들도 있었다.
마력이 떨어진 마도사들은 그야말로 쉬운 먹잇감이었다.
상대적으로 수준이 떨어졌던 마도사들부터 차례로 마수들에게 먹히고 있었다.
다른 이들이 동료들을 돕기 위해 나섰지만 그것도 솔직히 한계에 가까웠다.
제인스의 골렘들도 집중되는 공격에 점점 형체를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그 와중에 다른 거대한 마수가 등장했다.
“저건 아니지…….”
마수를 본 켈링턴이 양팔을 끌어모았다.
하늘 위로 합쳐진 거대한 바위가 마수의 공격을 막아 내는데 성공했다.
애벌레처럼 생긴 거대한 마수가 독액을 뿌려대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아시테르가 한번에 날아올라 불꽃으로 독액을 태워 버렸다.
그의 눈빛이 빛났다.
이 상태로는 끝이 없다.
그러니 적들의 보스를 노려야 한다.
그때 딱 아시테르의 시선에 들어오는 마수가 있었다.
하이브의 정상에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는 마수.
도도한 표정으로 인간들을 내려다보고 있던 사라번과 아시테르가 두 눈을 마주쳤다.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