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화 아칼의 최후 (1)
백상 마법기사단의 상태는 최악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상태에 빠져 있는 이는 아칼이었다.
케클립스가 창을 들어 올렸다.
한쪽 팔을 잃은 아칼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단장님!!!”
“아칼 단장!!”
뒤편에서 수하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케클립스를 눈앞에 두고 한눈을 팔 수는 없었다.
“빌어먹을…….”
온전한 상태로 싸웠어도 승부를 장담할 수 있었을까.
아칼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와서 이런 생각을 해본들 무의미하다.
그보다는 살아남기 위해 모든 것을 집중해야 했다.
케클립스는 아칼과 남은 백상 마법기사단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까지군. 너희들도.”
놈이 창을 들어 아칼에게 겨누었다.
케클립스의 창술도 까다로웠지만, 뒤편에 있는 저 꼬리도 문제였다.
창이 움직이는 사이사이 꼬리도 함께 공격해 온다.
그 합공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마치 두 개의 창을 쓰는 것 같았다.
더군다나 피부도 단단해 어지간한 마법으로는 상처조차 내지 못하는 수준.
까다롭기 짝이 없는 상대였다.
“후우…….”
아칼이 호흡을 골랐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한다.
냉정해져야 한다.
놈에게도 약점은 있을 터.
지금까지의 공격들을 되돌려 생각해 보자.
어느 부분을 공격당했을 때 놈이 더 반응했는지.
움직이면서 일정 부분들에 대해서는 방어를 하진 않았는지.
특이한 습관 같은 것은 없는지.
분석해내야 했다.
저 녀석을 쓰러트리려면……!
“아시테르!!!”
뒤편에서 아시테르를 부르는 알렌시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아시테르도 한계에 이른 것이다.
아칼이 케클립스에게 발이 묶여 있을 때 가장 무리한 녀석이 바로 아시테르였다.
아시테르는 과연 유미르의 아들다웠다.
녀석은 누구 한 명도 잃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다가드는 마수들을 모두 상대해 냈다.
화염이 끊이질 않고 전장을 뒤덮었다.
마치 타오르는 화마 속에서 싸우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
그만큼 아시테르는 모든 마력을 소진할 때까지 싸우고 또 싸웠다.
“하여간 어마어마한 자식…….”
저런 녀석을 과연 누가 신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초위급 마도사인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까지 해낼 줄은 몰랐다.
잿더미가 되어 버린 왼쪽 전장은 마수들의 시체로 가득했다.
아시테르의 트레이드 마크인 불꽃의 소나기.
그 속에서 모두 타버린 마수들을 보며 아칼은 물론 다른 이들도 감탄을 자아내고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아시테르는 아레나의 주특기 마법들까지 자유롭게 구사하며 동료들을 지켜 내기까지 했다.
그렇게나 무리하며 싸웠는데 쓰러지지 않으면 그게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었다.
마력을 대부분 소진한 아시테르가 비틀거리며 몸을 휘청였다.
그의 앞에는 아칼을 비롯한 다른 선임 마법기사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아직… 아직 더 싸울 수 있어…….”
부들거리는 무릎을 꽉 붙잡았다.
안간힘을 다해 다리를 고정시키려 했지만, 경련이 일어난 것처럼 다리는 계속해서 떨렸다.
이제 보니 팔에도 힘이 안 들어가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여 봤던 것이 언제일까.
그래도 몸을 일으켜야 한다.
이런 상황을 하루 이틀 극복해 본 것도 아니었으니.
이번에도 극복해 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러나 아시테르의 몸에 침투해 있던 독이 다시금 퍼지기 시작했다.
“하아… 하아…….”
굵은 땀방울을 흘린 아시테르가 숨을 거칠게 내쉬었다.
그를 걱정한 알렌시아가 곁에 붙었다.
그녀도 마수들에게 많은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지쳐 있기는 알렌시아도 마찬가지.
아니 알렌시아만이 아니었다.
이곳 모두가 부상을 입었고 지쳐 있는 상태였다.
그러니 더더욱 자신이 나서야 했다.
“이제 그만해. 더 이상은 무리야 아시테르.”
“아니 나는 아직 조금 더…….”
아시테르가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려는데 따뜻한 감촉이 전해졌다.
그의 얼굴이 알렌시아의 품에 쏙 들어갔다.
“진정해 아시테르. 진정하고 네 상태부터 돌아봐.”
에스파도 아시테르의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 또한 여기저기 상처로 가득했다.
턱밑에 굳은 피딱지를 닦아 내며 에스파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동안 상당히 0강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아시테르에게 자신은 짐이 되는 것 같았다.
아시테르의 몸이 저렇게 망가질 때까지 자신은 도대체 무얼 한 것인가.
“그거 활 몇 번 쐈다고… 제기랄!!”
욕지거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아시테르와 함께 끝까지 싸우는 모습을 고대하며 강해져 왔건만, 현실은 훨씬 더 빨리 지쳐 나가떨어지는 모습뿐이었다.
눈시울이 붉어질 정도로 억울했다.
아시테르는 알렌시아를 포함한 모두를 지키기 위해 마법을 쉬지 않고 사용했다.
그 엄청난 마법들 앞에 에스파는 작아지고 말았다.
나란히 걷는 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제일 친한 친구이자 자신을 처음으로 인정해 주었던, 아시테르의 뒤라도 안전하게 지켜주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이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아시테르가 저렇게 망가질 때까지 자신이 할 수 있는 거라곤 부르르 떠는 두 손을 붙잡고 기도하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상심한 표정 짓지 마 에스파. 네가 못한 게 아니야. 저 녀석이 지나치게 뛰어난 거라고.”
디안드레가 에스파의 마음을 읽고 애써 위로해 주었다.
허나 그의 말은 에스파에게 들려오지 않았다.
“이렇게 계속 아시테르가 싸우는 것만 바라보고 있다간… 나중에도 이렇게 될지 몰라. 나는 아시테르가 지켜 주길 바라면서 뒤에서 바라만 보고 있긴 싫어… 나도 당당하게 아시테르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고!”
에스파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는 자신의 두 다리를 퍽퍽 때렸다.
몸을 일으키고 다시 마력을 끌어올렸다.
이전과는 다르게 희미한 형상의 활이 손아귀에 잡혔다.
마력을 많이 잡아먹지도 않는 마법인데도 이 모양이다.
“아직 더 싸울 수 있겠어? 에스파.”
그때 아시테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쪽을 바라본 에스파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자신보다 더 심각한 상태인 아시테르조차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마력이나 실력으로 뒤쳐진다면 적어도 정신력만큼은 비등하거나 이겨 먹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에스파 스스로도 지금까지 남들보다 못하다 하면 서러울 정도로 열심히 노력해 왔다.
어느 누구와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을 만큼.
뼈를 깎고 살을 도려내는 심정으로 수련을 거듭해 왔다.
남들보다 뒤처지는 실력을 지니고 있기에, 마력에 속성 부여조차 못하는 자신이었기에!
더욱더 노력해 왔다.
그러니 정신력만큼은 자신 있었다.
에스파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띠었다.
“당연한 걸 뭘 묻고 그러냐.”
“너무 무리하고 있는 것 아냐?”
“그러는 너도 금방 쓰러질 것 같은데?”
“나는 아직 할 만한데?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네.”
“둘이 대체 뭐 하는 거야?”
가운데서 알렌시아가 인상을 찌푸렸다.
하여간 이놈의 허세는…….
이런 상황에서조차 둘은 서로 지지 않겠다는 듯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왜 그래요. 보기 좋은데.”
뒤에서 세아츠리스가 걸어 나왔다.
아시테르만큼이나 방대한 마력을 쏟은 인물이 바로 세아츠리스였다.
과연 콰트로 마녀라는 존재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세아츠리스는 모두에게 똑똑히 보여 주었다.
솔직히 그녀가 아니었다면 백상 마법기사단은 지금보다 더한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아시테르가 그녀를 데려온 것이 신의 한수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아시테르의 불꽃이 화려했다면 세아츠리스의 가시덤불은 과묵한 든든함을 보였다.
“제 이름의 뜻은 지키는 자. 여러분들은 마음껏 날뛰세요. 제가 지켜드리겠습니다.”
세아츠리스가 가시덤불을 움직였다.
대지를 가로지른 가시덤불이 순식간에 울타리를 세웠다.
가시덤불은 곧 촘촘한 그물을 만들어 마수들의 앞길까지 가로막아 버렸다.
아직까지도 이런 마법을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대단하기만 했다.
하지만 세아츠리스도 겉으로만 멀쩡한 척 하는 것일뿐, 그녀 역시 상당히 지쳐 있는 상태였다.
“고마워 세아츠리스.”
모두가 그곳으로 마법 공격을 시작했다.
아시테르도 있는 힘을 다해 마력을 쥐어 짜냈고, 에스파도 어떻게 해서든 화살을 만들어 내었다.
이어 디안드레가 가시덤불에 자신의 마법을 걸었다.
알렌시아도 가시덤불에 다가드는 마수들 위주로 전격을 날려 주었다.
그들의 합공을 보며 선임마법기사들도 투지를 불태웠다.
“보고 있냐!? 선배쯤 되어서 막내들한테 뒤처질 셈이냐!?”
“아씨… 이러면 쉬지도 못하잖아……!”
“어차피 죽을 각오로 남았잖냐. 갈 땐 가더라도 한 마리라도 더 데려가자!!!”
선임 기사들이 밀려드는 마수들을 막아 세웠다.
놈들의 발톱이 어깻죽지를 파고들고 날카로운 이빨이 머리를 물어뜯었다.
배를 관통당한 마법기사는 눈앞의 마수를 붙잡고 과감하게 동귀어진을 택했다.
자신을 얼려 버림과 동시에 주변의 마수들까지 모두 얼어붙게 만들었다.
마법기사들이 이렇게 하나둘씩 쓰러져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마수들은 넘쳐나는 상황이었다.
살아 있는 지옥과도 같은 이곳에서 제인스는 조금씩 절망을 맛보고 있었다.
“모두 죽지 말란 말이다아아아아!!!”
제인스의 발밑으로 마법진이 퍼졌다.
보통 골렘들을 소환할 때는 초록빛의 마법진이었다.
헌데 이번에는 다르다.
그의 발밑에 퍼진 마법진은 붉은색을 띠고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샤를이 소리를 질렀다.
“부단장!!”
그러나 이미 늦어 버린 뒤였다.
제인스는 자신의 피를 대가로 피의 골렘을 소환해 냈다.
일반적인 골렘과 다르게 피의 골렘은 전혀 다른 성질을 띤다.
검붉은 색의 골렘이 붉은 눈동자를 움직였다.
새로운 골렘의 등장에 마수들이 득달같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슈콰아앙!!!
골렘의 일격에 수십마리의 마수들이 얼굴을 잃고 몸통만 남아 버렸다.
“저… 저게 뭐야……?”
지금까지 소환되었던 골렘들과는 전혀 다른 위력.
피의 골렘이 큼지막한 손으로 마수를 찍어 눌렀다.
뒤이어 녀석의 양쪽 어깨에서 마력의 응집체가 쏟아져 나갔다.
콰랑―!!
콰라라라랑!!!
거친 폭발이 연달아 일어났다.
폭발에 휘말린 마수들이 그대로 절명하고 말았다.
엄청난 위력을 보이는 골렘을 보며 모두가 얼빠진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저런 골렘은 본 적이 없었는데……?”
“부단장은 지금까지 저런 골렘을 갖고 있었으면서 소환하지 않은 거야?”
“소환하지 않은 게 아니고 못한 거야…….”
“뭐……?”
“저 골렘은 소환자의 생명력과 맞바꿔 소환되는 골렘이니까…….”
샤를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피의 골렘은 소환사가 최후의 보루로 남겨 놓는 골렘이었다.
녀석은 소환사가 살아 있는 한 계속해서 복구된다.
하지만 녀석의 움직임이 멈출 때가 바로 소환사의 심장도 멈추는 순간이었다.
“제인스 부단장… 바보같이 왜……!”
제인스 부단장은 모두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한 것이다.
피의 골렘은 전장의 한복판에 서서 수많은 마수들과 장렬히 싸우고 있었다.
골렘이 상처를 입거나 강한 공격을 퍼부을 때마다 제인스가 피를 토하며 괴로워했다.
그러나 그는 엄청난 정신력으로 버티고 또 버텼다.
끔찍한 고통이 전신을 덮쳐 왔지만, 자신이 쓰러지면 피의 골렘도 멈춘다.
다른 마법기사들이 조금이라도 마력을 회복할 때까지 자신은 버티고 또 버텨내 줘야 했다.
“아쉽네… 단장 자리까지 꼭 올라가보고 싶었는데…….”
지금까지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어렸을 때부터 만났던 친구들의 얼굴.
평생 동안 봐 왔던 부모님의 얼굴.
그리고 많은 동료들과 추억들.
아칼을 처음 만났을 때가 강렬하게 떠올랐다.
굳게 다문 입술, 날카로운 눈매로 자신을 쳐다보던 얼굴.
반갑다는 짤막한 인사까지.
그때까지만 해도 자신이 아칼을 모시게 될 줄은 몰랐었다.
“단장… 덕분에… 행복했었습니다.”
털썩.
무릎을 꿇은 제인스의 앞으로 마수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녀석의 커다란 발톱이 수직으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