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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211화 (211/424)

211화 아칼의 최후 (2)

쿵!!

발톱을 막아낸 것은 다름 아닌 아칼이었다.

“제인스…….”

불러도 대답은 없다.

이미 피의 골렘은 멈춰 있었다.

녀석의 몸체가 점점 산화하기 시작했다.

제인스의 생명력과 함께 피의 골렘도 죽은 것이다.

“고생많았다…….”

투콰앙!!!

아칼은 앞에 있는 마수를 한번에 날려 버렸다.

그러곤 싸늘한 시체로 변한 제인스를 돌아보았다.

“뭐가 좋아서 웃고 있는 거냐… 멍청한 놈.”

제인스의 입꼬리는 분명 올라가 있었다.

이곳에서 죽을 인재가 아니었는데…….

마탑의 연구에 빠져 있던 제인스를 데리고 나온 것이 바로 아칼이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제인스는 지금도 마탑에서 마법을 연구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미안하다. 나 때문에…….”

“여기서 죽는다고 단장 원망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먼발치서 하르멜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 다리를 잃은 하르멜로가 이쪽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그동안 열심히 살았고 재밌었잖습니까. 솔직히 단장을 만나 백상 마법기사단으로 들어온 것이 내 인생에 가장 잘한 일입니다.”

“하르멜로…….”

“크흐흐흐 아쉽습니다. 단장 데리고 소개팅 나가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다 말아먹었네. 크흐흐… 다리 두 짝 없는 놈을 어느 여자가 좋아하겠습니까.”

하르멜로가 자신의 하반신을 내려다보며 웃었다.

핏물이 아직도 흘러나오고 있었다.

녀석은 살 수 없다.

제대로 된 치료 마도사가 붙어도 살 수 있을까 말까한 상처다.

“단장… 살려 주세요… 저 살고 싶어요…….”

바닥에 쓰러져 있던 랜써니가 눈물을 흐릴며 아칼을 올려다보았다.

커다란 발톱이 배를 관통해 있었다.

거기다 살점은 여기저기 뜯겨나가 핏물이 낭자했다.

“랜써니…….”

“너무… 아파요. 단장… 이렇게 죽기 싫은데… 저 좀, 저 좀 살려 주세요……!”

콰직!!

그때 누군가 랜써니의 숨통을 끊어 주었다.

커다란 철창을 든 핸드릭이었다.

“핸드리이이익!!! 이게 무슨 짓이냐?!”

감히 동료의 숨통을 끊다니!

분노한 아칼이 핸드릭의 멱살을 붙잡았다.

하지만 핸드릭의 표정은 차가웠다.

“이게 랜써니를 위한 일입니다.”

“뭐!?”

“조금이라도 빨리 랜서니의 숨통을 끊어 주는 게… 저 녀석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는 말입니다. 거기다 랜써니가 계속 저런 식으로 말하고 있으면… 다른 녀석들에게도 트라우마가 생길 겁니다. 지금은 마음의 빈틈도 우리에겐 치명적입니다.”

핸드릭은 이 상황에서도 냉정하게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랜써니가 계속해서 살려 달라 울부짖었다면 나머지 사람들에게도 분명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핸드릭은 사전에 그것을 차단한 것이다.

아칼은 입술에 피가 날 정도로 이를 꽉 깨물었다.

동료들의 죽음.

제인스뿐만이 아니었다.

이미 수많은 동료들이 죽음을 맞이했다.

“끄아아아아―!!”

늘상 각오했던 일이었지만, 현실은 더 가혹했다.

분노한 아칼이 마력을 한계까지 끌어올렸다.

더 이상은 안 된다.

더 이상은 동료들이 죽게 둘 수 없었다.

한계를 뛰어넘어 마지막까지 발악하던 아시테르 일행도 이제는 끝이 보였다.

저 아이들마저 죽게 할 순 없다.

아칼의 신형이 빠르게 움직였다.

사라번이 소환한 또 하나의 대전사가 아시테르 일행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감히이이이이이!!!”

대기를 찢은 아칼의 마법이 마수들을 찢어발겼다.

이어 아시테르 일행에게 다가간 아칼이 대전사를 단 한 방에 끝내 버렸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몸체가 반절이나 날라 간 대전사가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하아… 하아아…….”

최후의 일격을 날린 아칼이 뜨거운 숨을 내뱉었다.

머릿속이 하얘지는 와중에 살아남은 단원들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만 강하게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그의 몸이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푸슉!!

그러나 아칼은 자신의 배를 뚫고 나온 창을 내려다봐야 했다.

“아…….”

“단장님!!!”

“아칼 단자아아아아아아앙!!!!!!”

“안 돼!!!”

“으아아아―!”

아칼의 복부를 뚫고 나온 것은 케클립스의 창이었다.

핏물이 허공으로 비산한다.

붉은 방울들을 보며 아칼이 이를 악물었다.

전신을 뒤덮은 야수가 케클립스를 향해 발톱을 휘둘렀다.

“비스트 클로우(Beast Claw.)”

쩌저저저정!!!

콰드드드드드드드득!!!

세 갈래로 뻗어 나간 발톱이 케클립스 뒤편의 마수들까지 베었다.

그와 함께 아칼이 쓰러지고 말았다.

“너는 매번 나를 놀라게 만드는구나 인간!”

케클립스가 상처 난 자신의 몸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그는 이 전투가 너무나 즐거워 잔뜩 흥분한 상태였다.

특히나 조금 전 그 일격.

자신을 떼어 놓기 위해 아칼이 보여 준 그 일격은 케클립스조차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어나라 인간!! 나랑 조금 더 놀아 보자!! 여기서 죽지 말란 말이다 인간!!!”

케클립스가 아칼의 머리를 들어올렸다.

그러나 아칼은 이제 옴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전신에 힘이 빠져 그의 팔과 다리는 축 늘어져 있었다.

“하아… 하아… 빌어먹을 새끼…….”

이 괴물 같은 놈은 그래도 죽질 않는다.

오히려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듯 보였다.

단장으로써 뒤에 있는 단원들을 지켜야 하는데.

이제는 정말 한계였다.

손가락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눈앞에 있는 것은 케클립스가 아닌 자신의 죽음이었다.

“미안하다. 모두 지켜내지 못해서…….”

털썩.

탁.

아칼을 내려놓은 케클립스가 아칼의 얼굴을 짓밟았다.

마지막까지 발악하던 적을 발밑에 내리깔고 있는 이 순간의 쾌감.

이 즐거움은 잊을 수 없다.

“너는 너보다 다른 녀석들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그러니 여기서 지켜봐라. 네가 지키려고 했던 인간들이 내 손에 죽어 가는 모습을. 너는 가장 마지막에 죽여 주도록 하마.”

케클립스가 사악하게 미소를 지었다.

아칼이 두 눈을 부릅뜬 채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나 그가 발버둥치면 발버둥칠수록 케클립스가 더욱 강하게 짓눌렀다.

슈콰앙!!

그때 먼발치서 날아온 한줄기의 빛이 케클립스를 강타했다.

갑작스러운 기습에 케클립스도 순간 놀라 뒤로 물러났다.

“뭐냐……?!”

분명 인간들은 이곳에 다 모여 있었다.

마지막 발악을 하곤 있지만, 저 가시덤불이 무너지는 것도 시간문제.

그러면 이제 곧 살육의 시간의 시작이었다.

배고픈 마수들이 인간들을 뜯어먹으면 흘러내리는 피를 흡수해 하이브는 더더욱 성장한다.

이곳에 있는 인간들은 하나같이 많은 마력들을 지니고 있어, 하이브가 어쩌면 케클립스보다도 더욱 뛰어나고 대단한 마수를 만들어 낼지 모른다.

그러면 여왕인 사라번의 힘은 더욱 강대해질 터.

그런 기대 속에서 남은 유희를 즐기고자 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발 떼라.”

투콰앙!!!

연이어 날아온 검격에 케클립스가 두 팔을 교차해 막아 냈다.

팔이 저릿해질 정도로 묵직한 일격.

놀란 케클립스가 고개를 들었다.

그곳으로 걸어오는 사내가 있었다.

지금까지 봤던 인간들과는 격이 다르다.

그에게서 풍기는 분위기와 기운은 케클립스로 하여금 긴장하게 만들 정도로 위험했다.

“너… 인간은 맞는 거냐?”

슈콰아앙!!!

또다시 반월을 그린 빛줄기가 날아왔다.

케클립스가 창을 휘둘러 그것을 튕겨 내었다.

사내는 케클립스 따윈 쳐다도 보지 않았다.

그는 쓰러진 아칼의 곁에 앉았다.

“아칼…….”

“이… 이 목소리는……!”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냐.”

“아, 아아…….”

아칼이 눈시울을 붉혔다.

꿈에서도 잊지 못했던 목소리였다.

자신이 태어나 가장 존경했던 사내.

죽은 줄로만 알았던 사내.

그럼에도 늘 등 뒤를 그리며 따라나섰던 사내.

그 사내가 지금 눈앞에 있었다.

“단장님이십니까…….”

“멍청한 녀석… 내가 지금 단장을 그만 둔 지가 언젠데.”

“단장님은 단장을 그만 두었어도 우리들은 늘 심연의 마법기사단이었습니다.”

“그랬었냐… 나도 그랬었다. 늘 마음속에는 너희들을 품고 있었어. 이렇게 늦게 찾아와 정말 미안하다.”

“어딜 가계셨던 겁니까… 우리들은 단장님의 뜻을 잇고 있었는데… 보고싶었습니다 단장…….”

아칼이 희미한 미소를 보였다.

평소 이렇게 잘 웃던 녀석이 아니었다.

겉으로는 퉁명스러우면서도 정은 많았던 동료.

유미르는 아칼을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세월이 무색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그간의 공백 따윈 느껴지지 않는, 끈끈한 무언가가 이어져 있었으니까.

달라진 것은 서로의 모습뿐이었다.

“너도 많이 늙었네.”

“그러는 단장은 왜 하나도 안 늙은 겁니까? 사람 질투나게.”

“으흐흐흐, 너도 그런 말을 할 줄 알았냐?”

유미르가 웃는다.

그래, 이 웃음이었다.

아칼이 아시테르를 통해 비추어 봤던 웃음.

늘 그리워했던 그 웃음말이다.

“웃는 모습이 아들이 똑같이 닮았더군요.”

“오오? 너도 내 아들을 알고 있는 거냐?”

“당연하죠. 당신 아들 지키느라 내가 지금 이 꼴이 된 것 아닙니까.”

아칼이 슬쩍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평소 유미르와 대화를 나눌 때의 아칼이었다.

분노한 케클립스가 인간들을 쳐다보았다.

감히 이 몸을 두고 저렇게 편안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니.

결코 가만둘 수 없었다.

“키에에에에―!!”

포효한 케클립스가 유미르를 향해 돌진했다.

그러나 녀석을 막는 것은 다른 사람이었다.

“오랜만에 회포를 푸는 자리에 눈치 없이 끼어들지 말아요. 나도 지금 참고 있는 것 안보여요?”

화르르르릉―!!

푸른 불꽃이 타올랐다.

커다란 불꽃기둥이 마수들을 휩쓸었다.

“저… 저 마법은?!”

익숙한 마법이었다.

그동안 늘상 봐 왔던 마법이니까.

하지만 그 위력은 그동안 봐 왔던 것과 달랐다.

푸른 불꽃은 사방에서 케클립스를 압박했다.

평소라면 이깟 마법쯤은 몸으로 뚫고 지나갔을 테지만, 이번엔 그러지 못했다.

본능이 강하게 경고하고 있었다.

이 푸른 불꽃에 함부로 몸을 던지면 안 된다고.

단번에 마수들을 정리한 아레나가 쓰러진 아시테르의 앞에 섰다.

“아들…….”

“어머니……?”

아레나의 목소리였다.

아시테르가 힘겹게 고개를 들어올렸다.

아레나의 모습을 확인한 아시테르가 해맑게 웃었다.

“어머니… 오셨군요.”

“몸은 괜찮은 거니?”

“네… 그냥 좀 지쳐서 그래요…….”

“어휴… 이 녀석이 이런 상황에 웃음이 나와?”

“물론이죠. 솔직히… 이번에는 꼼짝없이 죽겠구나 했는데… 어머니랑 아버지가 와주셨잖아요.”

아시테르가 아레나와 유미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마법기사단 하나가 도와주러 오는 것보다 여기 있는 이 두 사람이 와주는 것이 훨씬 더 든든했다.

“다행이에요. 제가 부족해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어머니 아버지 덕분에…….”

“그런 말 마렴.”

아레나가 따듯한 손길로 아시테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렇게 편안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건만 다른 쪽은 푸른 불꽃이 초열지옥을 만들어 내는 중이었다.

알렌시아와 세아츠리스도 순간 넋을 놓고 아레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시테르의 어머니임과 동시에 이스트 왕국 홍련의 마법기사단 전단장이었던 여인.

거기다 그녀에게서 흘러나오는 독보적 아우라는 다가서는 것조차 어렵게 만들었다.

세월을 곱게 품은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이 곧 얼음장처럼 차갑게 변했다.

아시테르를 곱게 눕혀 준 아레나가 몸을 일으켰다.

“고생했어요. 이제 내게 맡기고 모두 뒤로 물러나 주시겠어요?”

그녀의 서릿발같이 차가운 눈동자가 마수들을 훑었다.

슈와아아아―!!!

아레나의 전신에서 엄청난 마력이 흘러나왔다.

지친 백상 마법기사단을 끝내기 위해 마수 무리가 덮쳐 왔다.

콰르르릉!!!

불꽃의 장벽이 몸을 일으키며 마수들을 집어삼켰다.

이어 여러 갈래로 퍼진 불길이 남은 마수들마저 불태워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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