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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212화 (212/424)

212화 아칼의 최후 (3)

지쳐 쓰러져 있던 백상 마법기사단원들이 아레나의 마법을 지켜보며 순수한 감탄을 토해 냈다.

“대단해…….”

세아츠리스도 아레나의 마법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세상에 푸른 불꽃을 다루는 사람이라니.

마법에 일가견이 있는 마녀들 중에서도 푸른 불꽃의 마법을 사용하는 이는 없었다.

거기다 아레나는 갖고 있는 마력의 양도 엄청났다.

그녀가 본격적으로 마력을 펼치기 시작하니 주변 일대가 아레나의 마력으로 가득해졌다.

“마력 전개.”

아레나를 중심으로 웅혼한 마력이 사방으로 퍼졌다.

이어 그녀가 손짓하는 곳마다 허공에 불길이 일었다.

잠깐의 준비 동작도 필요없다.

마치 그곳에 불꽃이 원래 있던 것처럼 푸른 불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한 송이씩 한 송이씩 피어나던 푸른 겁화가 순식간에 그 수를 더했다.

마침내 허공에 피어난 수백 개의 청화(靑花)가 만개했다.

“와아…….”

“아름다워…….”

푸른 불꽃이 꽃송이를 피울 때마다 마수들이 비명속에 사라져 갔다.

너무나도 뜨거운 불길에 핏물마저 튀지 않는다.

아레나는 마수들을 막아 내는 한편 유미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유미르는 아칼을 일으켜 근처 바위에 몸을 기대 주었다.

“아시테르에게 먼저 가 봐야 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 아들에게는 아레나가 갔어. 그러니 괜찮아. 우리 안사람 엄청나게 강하거든.”

“후후후… 그 사이 더 강해지신 겁니까. 아레나님은.”

“내가 아주 엄청난 여인을 아내로 두었지.”

유미르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레나를 바라보는 유미르의 눈빛엔 애정이 담겨 있었다.

예전부터 두 사람이 서로를 위하고 아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때는 세상의 눈치를 보느라 티를 내지 못했는데 이제는 아니었다.

아레나와 유미르는 각자의 위치에서 싸우면서도 서로 끊임없이 시선을 주고 받았다.

“아쉽군요…….”

“뭐가 말이냐?”

“단장님과 아레나님이 꽁냥꽁냥하는 모습을 조금 더 지켜봤어야 했는데…….”

“…보면 되잖아 아칼.”

“으흐흐흐… 맞습니다. 그러면 되지요…….”

아칼의 웃음이 바래졌다.

그의 공허한 시선이 백상 마법기사단원들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그러나 시야가 흐릿했다.

보이지 않는 세상속에서 아칼이 물었다.

“얼마나 살아남았습니까? 제 단원들은…….”

“엄청 많이 살아남았다.”

“역시 그렇습니까? 그럼 저를 따라왔던 심연 기사단의 동료들은…….”

“녀석들은…….”

유미르가 말을 잇지 못했다.

아칼이 있는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

그곳에 인간들의 시체가 널려 있었다.

“좋은 곳으로 갔을 거다.”

“바보같이 착하고 좋은 녀석들이었습니다…….”

“나도 잘 알고 있다.”

“후후 어쩌면 다들 단장을 닮아가길 원했는지도 모릅니다.”

“나 같은 놈이 뭐 대단하다고… 너희들은 너희들의 삶을 산 거야. 모든 선택의 중심에는 너희 스스로가 있었을 테니까.”

아칼이 희미한 미소를 보였다.

마지막까지 이런 얘기를 해주는 것도 어쩐지 유미르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장.”

“…….”

“비록 단장처럼 모두를 살리진 못했지만… 최선을 다했습니다.”

“알고 있다. 그러니 이제 말은 그만 해라.”

“그래도 마지막으로 본게 단장의 웃는 모습이라… 썩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군요.”

그 말을 끝으로 아칼이 고개를 떨구었다.

시뻘건 핏물이 턱을 타고 뚝뚝 바닥으로 떨어졌다.

숨을 거둔 아칼을, 유미르는 우두커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단장님!!!”

“단자아아앙!!!”

“아칼 단장니이이임―!!!”

뒤편에서 절규에 가까운 소리들이 들려왔다.

아칼을 따르는 새로운 시대의 흐름들.

그들의 목소리가 전장을 울렸다.

“아칼 단장!!!!”

“으아아아―!!!”

단장인 아칼부터 시작해 선임기사들의 전멸.

이로써 백상 마법기사단은 궤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고 말았다.

그래도 선임 기사들의 의지는 후임 기사들에게 충분히 전달되었다.

워셀의 시체를 바라보던 샤를이 눈물을 보였다.

“평소 나서지도 않던 사람이……!”

워셀은 샤를을 지키기 위해 몸을 날렸다.

이어 켈링턴도 워셀과 함께 마수들을 막아서다 죽음을 맞이했다.

조금전까지 살아서 환하게 웃던 이들이 이제는 싸늘한 시체가 되어 바닥에 누워 있었다.

“으아아아―!!!”

두 사람에게 다가가는 마수들.

놈들은 죽은 워셀과 켈링턴의 시체를 뜯어먹으려 했다.

“이 지긋지긋한 새끼들아―!!!”

샤를이 마법으로 마수들을 죽였다.

죽이고 또 죽였다.

마수들이 다시 물밀 듯이 밀려들었다.

선임기사들 모두 후임 기사들을 지키기위해 아낌없이 목숨을 내놓았다.

“근데 누가 그런 걸 바랐냐고!!! 제기랄!! 다 같이 살아나가면 되잖아!! 어째서……!”

뒤이어 아칼마저 숨을 거두고 말았다.

부단장에 이어 단장까지 목숨을 잃자, 커다란 슬픔이 단원들을 덮쳤다.

그러나 슬퍼할 겨를도 없다.

하이브에선 아직까지도 마수들이 소환되고 있었다.

“크하하하 결국 죽어 버렸구나 그 인간!”

불길에 막혀 움직이지 못했던 케클립스가 크게 웃었다.

유미르는 말없이 아칼의 시체를 들어올렸다.

“어딜 가려고!!”

케클립스가 창을 휘둘러 유미르를 공격했다.

하지만 그는 케클립스를 단숨에 뛰어넘어 아시테르 일행이 있는 곳까지 다가갔다.

“당신…….”

잔뜩 굳은 유미르의 얼굴을 보며 아레나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보였다.

유미르가 저렇게 분노하는 모습은 아레나조차 처음이었다.

“아칼을 잘 부탁합니다.”

유미르는 아칼을 알렌시아에게 넘겨 주었다.

“스승님…….”

알렌시아는 백상 마법기사단에 들어온 이후부터 줄곧 아칼에게 많은 것들을 배워 왔다.

그는 알렌시아를 제자로 들이고 나서부터 한치의 소홀함도 없이 최선을 다해 그녀를 가르쳐왔다.

이 세상에 알렌시아가 유일하게 믿고 기댄 어른.

그 존재가 바로 아칼이었다.

그런 아칼을 잃고 말았다.

싸늘한 주검으로 변한 아칼의 앞에서 알렌시아가 눈물을 보였다.

“눈물을 닦아요. 아직 전투는 끝나지 않았으니까. 약한 모습 보이지 말아요.”

뒤편에서 세아츠리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끄러워요. 당신이 뭘 안다고…….”

“여기서 당신만큼 슬프지 않은 사람은 없어요.”

“그건 나도…….”

콰라라라랑―!!!

지축을 흔드는 폭발이었다.

그 중심에는 유미르가 서 있었다.

그의 검이 번뜩일 때마다 엄청난 폭발이 일었다.

“크아아아―!!!”

케클립스가 창을 겨누며 덤벼들었다.

스르릉一!

유미르의 검이 부드럽게 움직이며 케클립스의 창을 튕겨 냈다.

이어 원만한 곡선을 그린 검이 케클립스의 몸을 베었다.

“뭐?!”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상처조차 낼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한 케클립스의 피부였다.

그런데 유미르는 아무렇지도 않게 케클립스의 몸에 상처를 남기고 있었다.

심지어 케클립스의 몸에 남은 달빛이 그의 몸을 잠식하듯 번져 갔다.

“제법이구나!!!”

케클립스가 다시 창을 꼬나들어 거센 공격을 가했다.

창의 연격에 이어 꼬리 공격까지.

빈틈없이 이어지는 케클립스의 파상공세에 유미르도 조금은 밀리는 듯 보였다.

“어떠냐 인간!! 너는 날 즐겁게 만들어 줄 수 있느냐!?”

“시끄럽다.”

콰드드득!!

유미르의 검이 케클립스의 팔을 베었다.

아주 잠깐의 찰나.

그 틈이면 충분했다.

케클립스의 팔을 베는 것 정도는.

놀란 케클립스가 자신의 왼쪽 팔을 바라보았다.

잘려나간 부위에서 핏물이 콸콸 쏟아지고 있었다.

“끄으으―!!”

케클립스가 유미르를 노려보았다.

유미르 또한 차가운 시선으로 케클립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 팔을 잘라가다니… 너를 너무 얕본 모양이구나.”

“내 동료들의 복수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크흐흐… 기껏 팔 한 번 자른 것 가지고 그런 기고만장한 표정이라니!”

꾸드드득!

츄롸아압!

잘려 나간 부위에서 팔이 다시 돋아났다.

케클립스의 엄청난 재생 능력에 여기저기서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

이를 본 사라번이 미소를 보였다.

케클립스가 강한 이유는 그의 창술도 있었지만, 엄청난 재생 능력도 한몫했다.

아무리 공격해 본들 케클립스는 다시 몸을 재생하면 그만이었다.

슈콰아아앙!!

스가가각―!! 채채채채챙!!!

케클립스의 창과 유미르의 검이 부딪히며 여기저기 스파크가 튀었다.

서늘한 달빛이 단숨에 케클립스의 다리를 잘라 버렸다.

“감히……!”

대노한 케클립스가 창을 수직으로 그어올렸다.

그러나 유미르의 모습은 이미 눈앞에 없었다.

어느새 측면으로 빠진 그의 검이 케클립스의 꼬리를 베었다.

이어 한쪽 팔을, 옆구리를, 그리고 발목을 베며 상처를 남겼다.

케클립스가 이를 악물고 마기를 끌어올렸다.

파아앙!!!

폭발한 마기를 뚫고 케클립스가 유미르를 노렸다.

그러나 놀랍게도 유미르는 좀 전의 자세로 케클립스의 공격에 완벽히 대비하고 있었다.

카아앙!!!

회심의 일격이 빗나갔다.

이어진 것은 유미르의 반격.

그의 검이 휘황찬란하게 빛날 때마다 케클립스의 몸에서 핏물이 튀었다.

재생하면 자르고, 재생하면 또다른 검상을 남긴다.

심지어 몸에 머무는 달빛이 재생 능력마저 점점 더디게 만들고 있었다.

“말도 안 돼……!”

이럴 순 없다.

눈앞의 인간은 조금 전에 상대했던 인간과는 차원이 다른 강함이었다.

공격은 닿질 않았고, 수비는 막아 내질 못했다.

단단한 피부도, 뛰어난 재생 능력도 유미르의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나 다름없었다.

촤라라락―!!!

케클립스의 몸이 또한번 갈라졌다.

“끄아아아아아!!!”

케클립스가 고통스런 비명을 질러 대었다.

“너는 네 재생 능력을 원망하게 될 거다.”

스가가각!!

스릉!! 촤라랍! 촤르르르륵!!

검날이 빠르게 움직이며 달빛 검기가 어지럽게 번뜩였다.

재생하면 베고 재생하면 또 벤다.

유미르는 그렇게 케클립스의 몸에 고통을 아로새겼다.

보다못한 사라번이 인상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케클립스!!! 뭐하고 있는 거냐!? 어서 저 인간을!!”

“여… 여왕님! 사… 살려 주십시오… 제발 저 좀… 사라번님……!”

케클립스는 바닥을 기며 손을 뻗었다.

이제는 재생 능력이 유미르의 손속을 따라가질 못했다.

“뭣들 하느냐!! 가서 케클립스를 도와라!!!”

사라번이 다급하게 소리치자 마수들이 움직였다.

그 순간 유미르가 몸을 회전하며 검으로 수평을 그렸다.

“보름달 베기.”

완벽한 원형을 이루며 뻗어나간 달빛 검기가 다가드는 마수들을 두동강 내버렸다.

그의 엄청난 검술 앞에서 마수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그만해… 그만해 줘…….”

케클립스의 몸은 아직도 재생되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유미르는 검으로 산산조각 내버리고 있었다.

“너희는 내 아들을 저렇게 만들고 내 오랜 동료들의 목숨까지 취했다… 결코 쉽게 죽진 못할 것이다.”

유미르의 불같은 시선이 이번엔 하이브 위쪽의 사라번에게로 향했다.

벌레 여왕 사라번.

과거 비체에게 들은 적이 있다.

하이브라는 특이한 요새로 수많은 마수들을 소환해 내는 마수.

하이브는 생명체를 거름으로 삼아 다양한 마수들을 만들어 낸다.

그러니 저 하이브와 벌레 여왕을 죽이지 않으면 이 전투는 끝나지 않는다.

콰지지직!!

새하얀 검신이 케클립스의 몸을 관통했다.

대지에 박힌 케클립스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녀석은 이미 싸울 의지를 완전히 잃고 말았다.

“멍청한 케클립스놈!!!”

사라번이 분노해 소리쳤다.

이렇게 된 이상 지금까지 모은 영양분으로 새로운 마수를 탄생시켜야 했다.

다행이 양질의 영양분들을 하이브에 흡수시켰으니 조금만 시간을 끈다면…….

“한눈 팔 때가 아닌 것 같은데?”

“뭣?!”

놀란 사라번이 몸을 돌렸다.

어느새 하이브 위로 올라온 아레나가 그곳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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