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에서 왔습니다만-213화 (213/424)

213화 든든한 지원군

“어느새……!”

“다른 곳에만 시선이 가 있으니, 네 주변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줄도 모르는 거지. 원래 등잔밑이 어두운 법이잖아.”

푸른 불길.

그 위로 수많은 마수들이 죽어 있었다.

“하! 제 발로 죽을 자리를 찾아왔구나.”

“글쎄. 정말 그런 것 같아?”

아레나가 만들어낸 푸른 불길이 하이브를 뒤덮기 시작했다.

쿠르르릉!!

하이브가 크게 일렁이기 시작했다.

고통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것도 고통을 느끼는 살아있는 것이었다니… 끔찍하네…….”

아레나가 더욱 강한 불길을 만들어 냈다.

“날 너무 얕보고 있는 것 아닌가?”

사라번이 손가락을 움직였다.

그러자 하이브 위로 여러 마수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어 사라번의 등에서 뻗어 나온 네 개의 촉수가 아레나를 공격했다.

화르릉!!

푸른 불길이 허공에 타오르며 촉수를 막아 냈다.

이어 솟구친 불덩이가 다가오는 마수들을 때렸다.

사라번이 눈매를 좁혔다.

아레나의 주변을 차지하는 농밀한 마력들.

그것은 대기 중에 머물던 마력이 아니었다.

인위적으로 아레나가 만든 마력의 공간이었다.

그 속에서 아레나는 자유자재로 불꽃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감히… 내 앞에서 잔재주를 부려?!”

사라번이 진득한 마기를 끌어 올렸다.

칠흑 빛깔의 커다란 손아귀가 아레나를 향해 쇄도했다.

아레나의 푸른 불길도 거세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커다란 꽃을 피웠다.

꽃잎이 흐드러지며 대기가 불살라지듯, 뜨거운 불길이 삽시간에 번졌다.

칠흑 빛깔의 손아귀도 불길에 닿자 형체가 희미해져 갔다.

마기마저도 태워 버리는 아레나의 강력한 불길에 사라번이 두 눈을 부릅떴다.

케클립스를 압도한 저 사내도 그렇고, 자신의 마기를 말끔히 태워 버리는 이 여자까지.

대체 어디 있다가 갑자기 나타난 것이란 말인가!?

“나를 방해하지 말란 말이다아아아아아!!!”

사라번이 포효하자 강한 마기가 폭발하듯 퍼졌다.

하이브가 이에 반응해 요동쳤다.

“흡……!”

마기의 파동이 워낙 거세 아레나도 순간적으로 뒤로 물러나고 말았다.

푸른 불길마저 뚫어 낼 정도의 위력.

그 사이 하이브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새로운 마수들은 소환해 내었다.

시꺼먼 알을 깨고 나오는 마수들이 아레나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아레나……!”

위의 상황을 확인한 유미르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당장 저곳으로 올라가고 싶었지만 그러면 아시테르 일행이 위험해지고 만다.

케클립스는 제압했지만 아직 지상에 남아있는 마수들이 많았다.

그가 이도저도 못하는 사이 산들거리는 바람이 귓가를 스쳤다.

“……?”

“당신은 누구십니까?”

바람과 함께 도착한 인물이 있었다.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그가 유미르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행히 유미르는 이 가면의 정체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트라이포스가 어떻게 이곳에……?”

가면을 쓴 무리가 속속들이 이곳에 도착했다.

이스트 왕국의 집행부 소속 특별임무단 트라이포스.

그들이 이곳에 도착한 것이다.

“아시테르……!”

한 사내가 빠르게 안착해 아시테르의 상세를 살폈다.

어느새 뒤로 다가온 세아츠리스가 그를 경계했다.

“떨어져요.”

“저는 수상한 사람이 아닙니다.”

“가면을 쓰고 있는데 수상한 사람이 아니라고요?”

“아, 이거 실례.”

사내가 가면을 들어올렸다.

가면 안에서 부드러운 인상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렇게 경계할 필요 없어요. 우리는 이스트 왕국에서 왔고. 저는 아시테르의 형이니까.”

“네?!”

“그나저나… 이 녀석 또 엄청나게 무리를 한 모양이군요.”

상처투성이로 쓰러져 있는 아시테르.

그 모습을 보며 테오도라가 낮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살아 있으면 되었다.

마녀숲 근처에서 백상 마법기사단 홀로 마수들을 상대로 전쟁을 치르고 있다는 보고를 듣자마자 곧바로 달려왔다.

보통 마수들을 상대로 전쟁이라는 단어는 쓰지 않는다.

그런데 보고를 하러 온 마법기사는 분명 전쟁이라는 단어를 썼다.

수많은 마수들이 둥지처럼 생긴 요새에서 내려오고 있다는 말과 함께.

여기저기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 왕국 소란에 가용할 수 있는 마법기사단은 없었다.

모두가 왕국 전역에 임무를 수행하러 나섰다.

하필이면 이런 때에 발할라가 난리를 치기 시작한 것이다.

때문에 백상 마법기사단을 도우러 올 병력을 보내는 게 늦어지고 말았다.

결국 테오도라가 다급하게 승인을 얻어 트라이포스를 데려오는데 성공했다.

“미안하다 아시테르… 너무 늦게 왔어.”

백상 마법기사단의 상태는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대부분의 기사들이 죽고 살아남은 나머지 인원들도 심각한 부상들을 안고 있었다.

“아시테르님!!”

뒤늦게 나타난 엔류아가 신속히 아시테르의 곁에 붙었다.

그녀는 곧바로 아시테르 옆에 앉아 치유 마법을 시작했다.

“엔… 류아? 여길 어떻게…….”

“제가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어요… 일단은 아무 말씀 말아요. 치료부터 시작할게요.”

그녀는 눈시울을 붉히며 아시테르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엔류아에게 아시테르는 은인이었다.

거기다 엔류아가 살아오면서 본 가장 강한 사람이었다.

그런 아시테르가 이런 모습으로 누워 있으니 마음이 진정되질 않았다.

그때 테오도라가 엔류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진정해요. 마음을 다스리고 차분하게.”

“…네.”

“그럼 여기는 엔류아 씨에게 맡길게요.”

모두가 임무를 나간 탓에 치료 마도사를 구할 수 없었다.

왕궁의 치료 마도사들은 함부로 밖으로 나설 수 없는 상태고, 다른 치유 마도사들은 마법기사단과 함께 임무에 나섰다.

마수들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다면 부상을 입은 사람들도 많을 터.

어떻게 해서든 치유 마도사를 찾아보려 하는데 머릿속에 엔류아가 떠올랐다.

제 9기사단에서 활약했던 엔류아가 지금은 쉬고 있다는 정보.

헌데 때마침 엔류아도 백상 마법기사단의 소식을 알기 위해 마법기사부에 와 있던 참이었다.

덕분에 따로 찾아다닐 필요도 없었다.

“저도 데려가 주세요!!”

심지어 테오도라가 그녀에게 함께 가달라고 부탁할 필요도 없었다.

아시테르가 있는 백상 마법기사 단의 상황 설명만으로도 엔류아는 망설임 없이 그곳에 가기를 희망했다.

테오도라가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엔류아가 레이스부채를 펼쳐 들었다.

그녀가 부채를 부치기 시작하자 마력이 광범위하게 퍼졌다.

제 9기사단이 끝없이 훈련에 매진할 수 있었던 이유.

그것은 바로 엔류아의 광역 치료 덕분이었다.

그녀는 아시테르뿐만 아니라 그의 동료들까지 모두 한꺼번에 치료를 하고 있었다.

“하하…. 제 9기사단에서 활약했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 정도 수준의 치료 마도사인줄은 몰랐는 걸. 내동생도 참 복받은 녀석이네.”

테오도라가 피식 웃었다.

아시테르의 곁을 세 명의 여인이 지켜 주고 있다.

거기다 아시테르의 오랜 친구인 에스파도 아시테르의 곁을 지켰다.

그럼 이제 뒤는 안심이었다.

트라이포스 중 한 명이 후위를 맡았다.

그 사이 테오도라가 전방을 살폈다.

하이브에서는 마수들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선두에서 한 사내가 그것을 막고 있다.

트라이포스의 대장인 비트홀라는 아니었다.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사내.

그는 비트홀라와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아니 비트홀라보다 더욱 강렬한 힘으로 마수들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우리 대장이 밀리는 것처럼 보이다니… 엄청나게 대단하네…….”

“아시테르의 아버지에요.”

“에……?”

테오도라가 놀라 고개를 돌렸다.

아시테르의 아버지면 테오도라에게도 고모부라는 소리였다.

세아츠리스가 유미르쪽을 가리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분이 고모부라고……?”

한 손에 검을 들고 당당하게 마수들의 중앙으로 파고드는 사내.

그가 검을 움직일 때마다 환한 빛무리가 그를 감싸 안았다.

“검사……?”

이스트 왕국은 검술을 버리고 마법을 택했다.

그들은 마법이 검술보다 훨씬 더 뛰어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 생각을 달리해야겠다.

세상에 저만한 위력을 보이는 검술이라니.

일검에 수십 마리의 마수들이 베여 나간다.

거기다 움직임은 마법으로 따라갈 수조차 없다.

비트홀라도 유미르와 함께 싸우고 있지만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이 정도 수준의 검사라니…….”

자신과 대등,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

유미르가 뒤를 돌아봤다.

트라이포스가 도착한 덕분에 마수들이 더욱 빠르게 정리되고 있었다.

거기다 치료 마도사까지 도착해 아시테르와 동료들을 치료해 주고 있었다.

상황은 점차 안정을 찾아가고 있었다.

“이곳을 맡겨도 되겠습니까.”

“예……?”

“여기 마수들을 부탁합니다. 일당백이라 불리는 트라이포스라면 충분하겠죠.”

어지간한 마법기사단 하나가 오는 것보다 트라이포스가 훨씬 더 믿음직하다.

때문에 유미르는 그들에게 뒤를 맡기고 하이브로 몸을 날렸다.

아레나는 여전히 사라번과 격렬한 전투를 벌이는 중이었다.

휘콰아앙!!

유미르가 하이브 위로 착지함과 동시에 달빛이 주변을 격했다.

“당신…….”

“이스트 왕국에서 지원군이 도착했어.”

“아아… 다행이네.”

“트라이포스가 왔어. 한 명은 우리 아들을 알고 있는 모양이야.”

“트라이포스에 있는 사람이?”

아레나가 인상을 찌푸렸다.

딱히 생각나는 인물은 없었다.

“당신과 같은 프로메테 가문의 불꽃을 사용하더군.”

그때서야 아레나는 그가 누군지 알 것 같았다.

“내 제자 녀석 인가보네.”

“당신에게 제자가 있었어?”

“지난번에 잠깐 이스트 왕국에 다녀왔잖아. 그때 제자를 하나 거두었지.”

“별일이네. 어지간히도 마음에 들었나 봐? 당신이 제자로 받아 줄 정도면.”

“당연! 우리 오빠의 아들인걸!!”

“에!? 조카 녀석이었어?!”

“후후 이름은 테오도라라고. 아시테르만큼이나 뛰어난 재능을 가졌어.”

“아이고 이런…! 우리 조카님한테 인사나 해 둘걸.”

“이따 하면 되지 뭘.”

“그러네. 그럼 일단은 이곳부터 정리를 해볼까.”

아레나와 유미르가 동시에 사라번을 쳐다보았다.

사라번의 안색이 점점 창백해지고 있었다.

감당 안 되는 괴물들이 둘씩이나 하이브 위에 있었다.

유미르의 검이 하이브를 꿰뚫었다.

달빛이 폭발함과 동시에 푸른 불길이 사라번을 공격했다.

사라번이 마기를 이용해 자신을 보호하려 했다.

하지만 이미 안까지 파고든 유미르가 검을 휘둘렀다.

스라라랑―!!!

파도처럼 밀려 나간 달빛 검기가 사라번의 몸을 때렸다.

“끼야아아아―!!!”

사라번이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촉수들을 움직였다.

그러나 유미르의 주변을 감싼 푸른 불꽃이 촉수들을 모두 막아 내고 있었다.

“여기서… 여기서 무너질 순 없다아아―!!!”

사라번이 최후의 발악을 시작했다.

하이브가 급하게 마수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마수가 알을 깨고 나오기도 전에 유미르가 검으로 휩쓸어 버렸다.

“아아… 아아아아…….”

압도적인 무력 앞에서 사라번은 절망을 맛보고 있었다.

고작 인간들에게 이렇게 밀릴 줄은 몰랐다.

아니, 조금만 더 시간이 주어졌더라면!

그랬다면 지금 눈앞에 있는 인간들도 충분히 이길 수 있었다.

“이제 그만 너희 세계로 돌아가라.”

차가운 검날이 사라번의 목에 닿았다.

세상이 빙글 돈다.

익숙한 그녀의 몸이 보였다.

하지만 이렇게 정면에서 보니 익숙하지만 낯선 모습이었다.

머리가 있어야 하는 곳에선 핏물이 분수처럼 터져 나오고 있었다.

“으아아아―!!!”

목이 잘린 자신의 몸을 보며 사라번이 절규했다.

그녀는 불같은 시선으로 유미르와 아레나를 노려보았다.

“나는 이곳에서 무너지지만 너희 세계는 곧 멸망을 면치 못할 것이다!! 어리석은 인간이 늪지대의 마신을 소환하려 하고 있으니까!!!”

“뭐……?”

“늪지대의 마신에게 너희 모두 죽음을 맞이하라!!”

사라번이 발악하듯 소리쳤다.

그녀의 몸이 조금씩 먼지가 되어 흩날리기 시작했다.

절규하며 발악하는 사라번의 두 눈에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아, 아아아… 이렇게 죽을 순 없…….”

화르르륵!!

푸른 불길이 남은 사라번의 머리마저 태워 버렸다.

“더는 듣고 있기 싫어서.”

마수의 머리를 말끔하게 태운 아레나가 조용히 말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