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5화 반란
이스트 왕국 어디에서도 비명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은 없었다.
그야말로 왕국 전역에 걸친 대대적인 반란.
그 중심에는 발할라가 있었다.
그들이 얼마나 왕국 깊숙이 뿌리내려 있었는지는 이번 반란을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
최고 간부 중 하나인 펜도는 현재 르마리타 시에서 학살의 즐거움을 맛보고 있었다.
그의 마법은 마리오네트.
마력의 실로 인간이나 마수들을 조종하는 마법이었다.
그리고 이 마법은 르마리타 시에게 공포 그 자체로 다가오고 있었다.
펜도를 따르는 수하들이 일시에 르마리타 시를 점령했다.
르마리타 시는 발할라의 움직임에 제대로 된 대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들을 지켜 주고 있던 마법기사들 중에서도 발할라의 일원들이 존재했다.
그들의 배신에 마법기사들도 빠르게 무너지고 말았다.
“조율 마법기사단에도 발할라의 끄나풀들이 있었다니……!”
내부에서 도와줘 버리니 도시의 함락은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었다.
무혈로 입성한 펜도는 수하들을 이용해 참혹한 학살극을 시작했다.
민간인들은 건드리지 말라는 오르카이우스의 엄명에 그들은 바깥으로 빼놨다.
하지만 귀족들은 다르다.
“귀족들을 건드리지 말라는 말은 없었으니까.”
오히려 오르카이우스는 이스트 왕국의 귀족들을 싫어한다.
그래서 더욱 마음이 편했다.
“실컷 죽일 수 있으니까. 마음대로 해도 되잖아?”
펜도가 즉석에서 만들어낸 투기장.
그곳에는 붙잡혀 온 인간들이 들어가게 된다.
누가 그곳에 들어갈지는 랜덤.
그곳에서 서로에게 싸움을 붙여 승자를 정하기만 하면 된다.
어느 누가 이기던 상관없다.
펜도에게 이것은 단순한 즐거움에 불과했으니까.
개중에는 마법기사들도 참전하게 되는데 이들 간의 싸움이 가장 볼만했다.
“후후 펜도님. 고약한 취미를 즐기고 계시는군요.”
“오? 반켈! 벌써 그쪽 일은 끝난 거야?”
“물론입니다. 성공적으로 소환을 마쳤습니다.”
“이번에 소환한 마수가 벌레 여왕이라고 했나?”
“네. 그렇습니다.”
“어떤 마수인지 궁금하네… 제법 오랜 기간 동안 대장이랑 같이 그걸 준비하지 않았어?”
“맞습니다.”
“으하하하 이스트 왕국 녀석들. 그것 때문에 골머리 썩고 있겠네.”
뭐가 그리 재밌는지 펜도의 입가엔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펜도는 다른 간부들 중에서도 잔인한 성정으로 유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반켈은 펜도를 가장 마음에 들어 했다.
펜도야말로 자신의 대업을 이루는데 가장 필요한 인재.
그를 살짝 자극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펜도님.”
“응? 뭔데? 빨리 말해. 나 이것저것 즐기는 데 방해하지 말고.”
“이번에 레이칸님이 타이에프 도시를 먼저 점령한 것 같군요. 이어 근처 도시까지 진격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르카이우스님께서 이번에 레이칸님의 활약을 주시하고 있다고… 이러다 펜도님이 레이칸님보다 뒤로 밀리는 것은 아닐지…….”
“크흐흐흐… 그런 유치한 도발에 내가 넘어갈 것 같아 반켈?”
그러면서도 펜도의 인상은 좀 전보다 일그러져 있었다.
역시나 펜도는 자신의 감정을 좀처럼 숨기질 못하는 어린아이와 같다.
슬쩍 자극해 주었으니 그는 반켈의 의도대로 더욱더 움직여 줄 것이다.
그러면 된다.
반켈은 펜도를 떠나 곧바로 다른 곳으로 향했다.
“다른 녀석들은 잘해 줄 텐데… 문제는 복수에 눈깔이 뒤집힌 년이랑 속을 알 수 없는 놈. 그 두 사람이구만…….”
아첼리시아는 분명 마법기사 아카데미쪽으로 향했을 것이다.
그녀는 지금 자신의 친구를 죽인 글로리아에게 강한 복수심을 품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반켈의 예상대로 에첼리시아는 다른 누구보다 빠르게 마법기사 아카데미로 향하고 있었다.
“내 친구 아필라를 죽인 그 여자는 절대로 용서 못하지.”
아첼리시아는 수하들과 함께 마법기사 아카데미를 공격했다.
왕국 곳곳에서 난리가 나는 통에 아카데미도 이미 적들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교관들이 무장하고, 그들을 돕기 위해 마법기사들도 도착해 있었다.
“뭐야. 진짜로 왔잖아.”
파이프를 물고 있던 여인.
크실리아 글로리아가 아첼리시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뒤편에는 발할라가 가득가득 했다.
어디 그렇게 숨어 있었는지 척 봐도 천 명은 넘어 보였다.
발할라는 과거 학생들을 죽인 주범들.
그녀와 다른 교관들이 막아서긴 했지만, 그날은 이스트 왕국 아카데미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안겨준 날이었다.
“어서 와라 애송이. 이번엔 제대로 갚아 주도록 하마.”
“저기 있어 아필라. 네 원수가……!”
글로리아와 아첼리시아는 서로를 단번에 확인했다.
글로리아가 마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하자 헐렁한 한쪽 소매가 거세게 흩날리기 시작했다.
남은 한쪽 팔에 얼음으로 이루어진 랜스가 들렸다.
글로리아의 팔을 앗아 간 인물이 바로 아필라였다.
글로리아 역시도 그날의 일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방심한 적은 없다.
적들을 상대할 때는 늘 최선을 다했으니까.
다만 상대의 필사의 일격.
그것이 글로리아의 팔을 자르는 데 성공 했을 뿐이다.
그 일격을 막아 내지 못한 것은 오로지 자신의 실력 부족 때문.
누구도 원망하진 않는다.
하지만 뼈에 깊이 새겨 두고 또 새겨 두었다.
그날 이후 글로리아는 정진하고 또 정진했다.
후일에 자신을 찾아올 저 여인을 위해.
저 여인을 완벽하게 넘어섬으로써 자신의 성장을 또다시 증명해 낼 수 있을 터였다.
“기다리고 있었다. 근데 생각보다 좀 늦게 왔네? 그날은 날 죽일 듯이 노려보길래 금방이라도 찾아올 줄 알았는데 말이야.”
“그러려고 했어. 대장이 말리지 않았더라면.”
“대장? 너희 발할라놈들을 이끄는 그 개자식 말이냐?”
“우리 대장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마.”
“아니. 나는 함부로 말할 자격이 있다. 그 개 같은 자식 때문에 잃은 가족들과 동료들 그리고 제자들이 과연 얼마나 될 것 같나?”
“그건 관심 없어. 알고 싶지도 않고.”
“이거 완전 나쁜 년일세. 자기 친구만 소중한 줄 알지. 다른 사람들은 죽어도 상관없다 그거냐?”
“응. 그래도 돼. 날 이해해 주는 사람은 대장과 아필라 뿐이었으니까.”
“후우… 너는 내 제자가 아니지만, 오늘은 특별히 인생 선배로써 너를 훈육해 주도록 하겠다.”
글로리아가 랜스를 허리에 걸치고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아첼리시아가 미간을 찌푸렸다.
글로리아가 손가락으로 까딱까딱하며 도발을 한 것이다.
“어디 한 번 덤벼 봐라.”
“원한다면.”
휘릭―!
아첼리시아가 팔을 휘두르자 검붉은 색깔의 마력이 대기를 격했다.
얼음 방벽으로 공격을 막은 글로리아가 입가에 호선을 그렸다.
그래, 이 묵직한 일격.
아첼리시아의 수준이 어떤지 단번에 알 수 있는 일격이었다.
글로리아가 랜스를 뻗자, 십일자로 뻗어 나간 얼음서리가 아첼리시아를 덮쳤다.
촤르륵!!!
붉은 장막이 아첼리시아를 보호했다.
그것을 본 글로리아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네 친구는 물. 너는 피. 잘 어울리는 한쌍이었군. 그나저나… 예전에 그런 들은 적이 있단 말이지. 피를 다루는 마녀에 대해 말이야.”
“뭐……?”
“마녀도 아닌 것이 마녀로 살아간다는 후문.”
“…….”
“너지? 그 주인공이. 반쪽짜리 피의 마녀 아첼리시아.”
아첼리시아가 한쪽 눈썹을 꿈틀했다.
반응을 보니 그녀가 맞는 모양.
글로리아가 말을 이었다.
“인간 주제에 마녀가 되고 싶어 마녀를 사냥해 그들의 피를 마시며 살아갔다던. 싸이코 같은 마도사가 너잖아.”
“그래서… 그게 어떻게 어떻다는 거지?”
“너는 정말 여러모로 교육의 필요성이 있어 보이는 구나.”
콰드드득!!!
얼음창이 단번에 아첼리시아를 뚫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창이 뚫은 것은 핏물로 이루어진 분신체였다.
“건방 떨지 마.”
아첼리시아가 본격적으로 마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검붉은 마력이 공간을 지배하듯 움직였다.
“건방이라니… 싸가지 없이. 그걸 할 줄 아는 게 너밖에 없을 것 같나?”
글로리아의 전신에서 마력이 폭발하듯 흘러나왔다.
서릿발 같은 바람이 주위를 덮쳤다.
핏물이 수직으로 상승하는 공간과 모든 것이 얼어붙기 시작한 공간이 서로 충돌하기 시작했다.
그 속에서 아첼리시아와 글로리아가 본격적으로 맞붙었다.
그들의 전투를 본 다른 사람들은 그저 입을 떡하니 벌릴 수밖에 없었다.
“저게… 초위급 마도사들의 싸움…….”
“글로리아님께서도 마법기사단장급의 힘을 갖고 계신다더니……!”
“가까이 가지 마라! 괜히 휘말렸다간 모두 죽는다!!”
“저기 발할라의 간부는 글로리아님께서 상대할 거다. 우리는 우리 할 일을 하는 거다!”
교관들이 발할라군을 상대로 마법을 퍼부었다.
마법기사 아카데미의 교관들답게 그들의 마법은 정교하고 날카로웠다.
몰려오던 발할라 군이 쏟아지는 마법 세례에 조금씩 밀려나는 찰나, 아군 진영에서 연쇄적인 폭발이 일어났다.
“무슨 일이냐!!”
“갑자기 이게 무슨……!”
“어떻게 된 일인지 확인해!! 빨리!!!”
안쪽에서 시작된 공격.
그들은 마법기사 아카데미에 숨어들어 있던 발할라의 일원들이었다.
드래프트 사건 이후 이미 대대적인 숙청이 이루어졌었는데도 아직 걸리지 않은 발할라 인원들이 남야 있었다.
“발할라를 위하여!!!”
“우리들의 혁명을 위하여어어!!!”
그들은 자신의 몸을 희생해 가며 강한 폭발을 일으켰다.
이 때문에 후방에서 혼선이 빚어지기 시작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에 아카데미 측도 상당히 당황한 모양이었다.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교관들과 마법기사들 때문에 전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나 다름없었다.
쿠우웅!!!
그때 랜스가 강하게 바닥을 때렸다.
“이런 멍청이들!!! 그깟 일로 허둥지둥대지 말란 말이다아아!!!”
글로리아의 외침이 교관들과 마법기사들을 일깨웠다.
아군을 단번에 휘어잡는 글로리아의 카리스마는 그야말로 대단했다.
그녀의 말 한마디에 오합지졸 같았던 교관들과 마법기사들이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글로리아는 아첼리시아와 싸우면서도 전열을 정비했다.
“3관 교관들은 뒤쪽으로! 2관 교관들은 앞을 막는다!! 4관 교관들은 부상병들을 후송해!”
그녀의 명령에 교관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이어 글로리아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거기 순록기사단 놈들!! 거기서 뭣하고 있는 거냐! 빨리 밥값 안 해?!”
적들을 앞에 두고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순록 마법기사단에게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녀의 불같은 시선에 마법기사들이 울상을 지었다.
그들이라고 밀려나고 싶어서 밀려나고 있나.
최선을 다해 싸우고 있지만 생각보다 적들의 실력이 만만치 않았다.
“발할라라고 해서 만만하게 봤는데… 그게 아니었잖아……!”
“저들 중에 마법기사를 관두고 참여한 자들도 있다. 방심하지 마라!”
“후우… 미치겠네 진짜 이거……!”
순록 마법기사단이 이곳에서 무언가를 해줘야 하는데 그들의 존재감은 점점 묻혀 가고 있었다.
오히려 학생들을 가르치던 교관들이 더 밀어붙이고 있었다.
하기야 이곳 마법기사들의 스승들이기도 하니, 이들이 활약하는 것도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반면 수하들이 죽던 말던 아첼리시아는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의 관심은 오직 글로리아일 뿐이었다.
“한눈을 팔아……?”
촤라라락―!
수십 개의 붉은 핏방울이 일제히 글로리아에게로 쏘아져 나갔다.
글로리아의 랜스가 대기를 격하니 육각형의 얼음장이 생겨나 핏방울들을 모두 막아 내었다.
세상이 온통 붉은 빛으로 가득해졌다.
아첼리시아의 두 눈동자에 형형한 안광이 발산되었다.
“피의 축제.”
마력 전개를 통한 아첼리시아의 마법.
허공에 떠오른 무수한 핏물들.
그 붉은 점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폭발하기 시작했다.
글로리아의 주변을 감싸는 얼음벽이 핏물들을 막아 내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사방에서 터지던 핏물들 사이로 붉은 물결이 회오리를 일으키듯 회전하기 시작했다.
얼음들마저 파괴할 정도의 위력.
그것을 본 글로리아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사방에 핏물이 빗발치니, 온 세상이 붉게 물들어 가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글로리아 역시도 그동안 놀고만 있진 않았다.
콰드드득!!!
한순간 마력의 파장이 번지더니 붉은 핏물이 모조리 얼어붙기 시작했다.
아첼리시아의 마력이 글로리아의 마력에 잡아먹힌 것이다.
이를 본 아첼리시아의 얼굴에 처음으로 변화가 일었다.
“자아… 이제 반격의 시작이다. 애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