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화 글로리아의 죽음
글로리아의 분위기가 급변했다.
사나워진 마력이 아첼리시아의 마력을 모조리 얼려 버리고 있었다.
자신의 마력으로 공간을 지배하는 기술이 바로 마력 전개.
그런데 잠깐이지만 아첼리시아가 밀리고 있다는 것은 글로리아가 더 강한 마력으로 공간을 지배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내가 진다고? 웃기지 마……!”
아첼리시아의 마력 전개인 피의 축제는 마력으로 이루어진 핏물이 사방에서 폭발하는 마법.
거기다 그녀는 주위의 핏물들까지도 마력을 부여해 자신의 컨트롤 안에 둘 수 있었다.
헌데 그 핏물들이 모조리 얼어붙고 있었다.
빙결의 여제라 불리는 글로리아의 공간 안에서 그녀는 피의 통제권을 서서히 잃어 가고 있었다.
콰드드드득―!!
쩌저저저저저저정!!
이어 솟아오르는, 얼음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창.
그 주변의 핏물들이 얼어붙어 산산조각 나고 있었다.
그만큼 창에서는 강한 한기가 내뿜어지고 있었다.
창을 본 아첼리시아의 안색도 굳어져 있었다.
슈우우웅―!!
거대한 창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사방의 대기가 얼어붙어 버리는 것만 같았다.
아첼리시아가 두 팔을 뻗었다.
피의 폭풍이 거대한 얼음창의 진격을 막아섰다.
거대한 얼음을 조금씩 깎아내리듯 피의 폭풍이 거세게 몰아쳤다.
그러나 우직한 얼음창은 자신이 갈 길을 멈추지 않았다.
“그 정도로는 어림없다.”
글랜시아가 얼음창에 마력을 더했다.
촤라라락!!!
쩌저정―!! 쩌정!!!
피의 폭풍마저 얼려 버리는 옛 거신 아이기스의 창.
글로리아는 이 창을 그렇게 명명하고 있었다.
아이기스의 창이 공간을 뚫고 아첼리시아를 공격하려는 찰나, 글로리아가 갑자기 핏물을 내뿜었다.
“흡……!”
그녀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다.
복부를 뚫고 나온 붉은 가시.
쓰라린 고통이 전신에 전해졌다.
글로리아가 이를 악물었다.
전신에 힘을 꽉 준다.
그리곤 앞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것은 상징적인 행동이었다.
복부가 관통당하고 핏물을 토해내도 자신은 물러서지 않겠다는!
그 의지를 스스로에게 보이기 위한 행동이었다.
“날 너무 무르게 봤구나 애송이.”
아이기스의 창은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끝까지 창을 내밀었다.
급하게 만들어 낸 아첼리시아의 방패로는 창을 막아 낼 수 없었다.
콰과광!!!
아이기스의 창이 아첼리시아의 몸 일부까지 얼려 버리는데 성공했다.
“크윽…!! 지독한 년……!”
밀려오는 고통에 얼굴을 일그러트린 아첼리시아가 글로리아를 쳐다보았다.
설마하니 배가 관통당해도 끝까지 공격을 이어 올 줄은 몰랐다.
본래 사람은 자신이 공격당하면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방어하게 마련.
하지만 글로리아는 그런 움직임이 조금도 없었다.
심지어 자신이 공격당했는데도 끝까지 이를 악물고 앞으로 걸어 나왔다.
그 모습에 아첼리시아마저도 순간 기가 질리고 말았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지……?!”
“왜냐고……?”
“네가 그렇게까지 싸워야 하는 이유 말이야. 너는 뭐 때문에 그런 각오로 싸우는 거냐고!”
“그것 참 멍청한 질문이로구나.”
글로리아가 마력으로 자신의 배를 얼려 버렸다.
엄청난 고통이 뒤따를 텐데도 글로리아는 이를 악물고 버텨 냈다.
“내가 여기 대가리거든.”
글로리아가 입가의 핏물을 닦아 냈다.
촤라락!!
아첼리시아가 자신의 마법으로 얼어붙은 팔을 그대로 잘라 버렸다.
그 모습을 본 글로리아가 의외라는 듯 웃었다.
“제법 화끈한 면이 있었구나.”
“…시끄러.”
“현명하네. 아마 팔을 자르지 않았더라면 한기가 너를 잠식했을 거다.”
“당신 걱정이나 해. 당신은 여기서 살아나가지 못할 테니까.”
“후후후 나 하나 죽고 널 막아 내는 거면 아주 싸게 먹히는 꼴이지.”
글로리아가 품에서 파이프를 하나 꺼냈다.
아시테르가 아카데미를 떠나기 전 선물해준 파이프였다.
“갑자기 그 못난 녀석 생각이 왜 나는지 모르겠구만.”
파이프를 입에 문 글로리아가 아첼리시아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인상을 굳혔다.
“전투 중에 파이프를…….”
쩌저저정!!!
글로리아의 발밑부터 모든 것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그녀의 마법을 본 아첼리시아가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보였다.
“또 그 마법이야? 그렇다면 이 싸움은 나의 승리야.”
“글쎄. 과연 그럴까.”
글로리아도 아첼리시아를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
마력 전개는 이름만큼이나 엄청난 마력을 잡아먹는 마법이었다.
그러니 글로리아와 아첼리시아 모두 마력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
쩌저정―!
마침내 글로리아의 마력 전개가 깨지고 말았다.
이를 확인한 아첼리시아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것 봐. 내가 이겼다니까. 아필라를 죽인 대가는 톡톡히 치르게 해주겠어.”
붉은 핏물이 커다란 뱀의 형상을 만들어냈다.
형형한 눈빛이 글로리아를 응시했다.
슈와아아―!
붉은 뱀이 빠르게 이동했다.
녀석의 굵은 몸통이 똬리를 틀며 서서히 글로리아를 조여왔다.
그녀가 들고 있던 랜스도 힘을 이기지 못하고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글로리아는 아첼리시아를 보며 웃고 있었다.
“드디어 미친 거야? 죽기 직전인데 왜 웃고 있는 거지?”
“내가 말했잖나. 널 훈육해 주겠다고. 반성의 시간을 갖도록 해라.”
쿠웅!!!
글로리아가 발을 굴렀다.
그러자 대지를 타고 뻗어갔던 서릿바람이 한순간에 솟구쳐 올랐다.
사방에서 솟구쳐 오르는 서릿바람을 보며 아첼리시아는 웃고 있었다.
얼음도 아닌 서릿바람.
이 정도에 당해 줄 아첼리시아가 아니었다.
다행이 그녀는 자신을 보호해 둘 마력쯤은 남겨 놓았다.
“안됐네. 비장의 수 같은데.”
촤르르륵―!
핏방울들이 장막을 만들며 서릿바람을 막아섰다.
하지만 서릿바람의 방향은 아첼리시아 쪽이 아니었다.
“우리 빙결 마도사들은 늘 한 가지의 궁극적인 목표가 있거든. 그게 뭔 줄 알아?”
“그까짓 걸 내가 왜 궁금해 해야 하지!?”
“그건 바로― 영원히 녹지 않는 얼음. 그것을 만들어 내는 거다.”
“그러니까 그걸 왜…….”
그 순간 서릿바람이 한데 뭉치며 커다란 얼음벽을 만들어 내었다.
반투명의 얼음이 직육각형체를 만들어 순식간에 아첼리시아를 가두었다.
뒤늦게 그것을 깨달은 아첼리시아가 마법을 사용해 얼음을 깨부수려 했다.
콰앙!!
투두두두두둥!!!
그러나 얼음은 깨지긴커녕 금조차 가질 않았다.
이를 본 아첼리시아의 얼굴은 낭패한 기색이 역력했다.
현재 남아 있는 마력으로 이곳을 빠져나가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내 아첼리시아가 웃음을 보였다.
“아하… 아하하하… 아하하하하하하!!!”
광소하는 그녀를 보며 글로리아가 혀를 찼다.
“드디어 미치기라도 한 거냐? 그곳에서 생각 좀 하랬더니, 벌써부터 그러고 있으면 어떻게 하나?”
“당신 바보야? 머리가 안 돌아가?”
“하아?”
“여기서 뭐? 생각을 하고 있으라고? 어차피 당신이 죽으면 이 마법은 풀리게 되어 있어. 자아… 그러면 여기서 문제. 우리 둘 중에 과연 누가 먼저 죽을까?”
“그야 당연히 나겠지?”
글로리아는 당연한 걸 뭘 물어보냐는 표정이었다.
당황한 기색 하나 없는 그녀의 반응에 오히려 인상을 찌푸린 쪽은 아첼리시아였다.
그러자 글로리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그 정도도 생각하지 못했을까봐. 안심해라. 그 마법은 내가 죽어서도 풀리지 않는 마법이니까.”
“뭐…? 거… 거짓말 치지 마! 세상에 죽어도 풀리지 않는 마법이 어딨어?!”
“거짓말인 것 같으면 직접 그곳에서 경험해 보거라.”
글로리아의 입가에 미소를 보였다.
물고 있던 파이프가 희미한 빛을 잃어가며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으아아아―!!”
바닥에 쓰러지는 글로리아를 보며 아첼리시아가 괴성을 질렀다.
마침내 친구의 복수엔 성공했다.
이제 글로리아의 죽음과 함께 자신을 가둔 얼음 장막도 무너져 내릴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얼음 장막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그럴 리가 없어…! 저년이 죽었잖아!! 저년은 죽었는데 어째서……!”
아첼리시아가 다시 한번 마법을 사용했다.
그녀가 만들어 낸 핏물들이 사방에 부딪혔다.
하지만 역시나 얼음 장막에는 흠집조차 남질 않는다.
아첼리시아는 믿을 수가 없어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정말로 마법은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꼼짝없이 이곳에 갇혀진 신세.
뒤늦게 수하들을 생각한 아첼리시아가 주변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녀의 주변에는 이미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뒤편으로 돋아나있는 수많은 얼음들.
그 얼음파편에 휘말린 수많은 수하들이 싸늘한 주검이 되어 누워 있었다.
“저 여자 설마…….”
일부러 뒤편의 수하들까지 노렸단 말야!?
사실 글로리아는 아첼리시아와 싸우는 한편 모든 전황을 아우르고 있었다.
교관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한편 힘겨워 보이는 곳은 그녀의 마법으로 도와주고 있었다.
이는 아무나 하고 싶다고 해낼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결국 이겨도 이긴 게 아니었다.
아니, 졌다는 표현이 아첼리시아의 머릿속을 강하게 때리고 있었다.
그것도 완벽한 패배.
사소한 것을 쥐려 했으나 결국 커다란 것을 놓치고 말았다.
달려온 교관들이 글로리아의 시신을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글로리아니이이임!!!”
“끄어어어―!!!!”
“정신차려 보십시오! 글로리아님!!!”
그러나 글로리아는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그녀의 복부에서 흘러나온 핏물이 온대지를 붉게 적셨다.
아첼리시아는 얼음 장막에 갇혀 그 광경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녀는 글로리아의 피조차도 굴복시키지 못했다.
얼음 장막에 갇힌 그녀가 흘러나온 글로리아의 피를 다룬다는 것은 말도 안 돼는 얘기였으니까.
“으아아아아!!!”
아첼리시아가 괴성을 질러대었다.
그러나 그녀는 철저히 고립되고 말았다.
아첼리시아를 구하겠다고 몇몇 수하들이 호기롭게 나섰으나, 이미 전세는 많이 기운 상태였다.
더군다나 이곳으로 합류한 창파 마법기사단이 남은 발할라군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국가에 반기를 든 자들이다. 남김없이 죽여라.”
무그레날로 단장이 무거운 표정으로 말했다.
웨스트 왕국과의 전쟁이 끝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왕국으로 복귀하자마자 또다시 전투를 이어 가야 했다.
그나마 저번 전쟁은 제 3자의 입장으로 참전한 것이었지만 이번엔 다르다.
죽이는 자들도, 죽는 자들도 모두 이스트 왕국 사람들이었다.
절로 마음이 무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참에 발할라의 뿌리를 뽑아야 했다.
그들이 일시에 들고 일어난만큼, 반대로 지금이 그들의 씨를 말릴 수 있는 적기이기도 했다.
살려 두면 그 불씨가 다시 살아나 또 다른 겁화로 왕국을 불태울 것이다.
그러니 모질게 그들 모두를 죽여야만 했다.
교관들이 고군분투 해준 덕분에 이미 발할라군의 사기도 많이 꺾여 있었다.
더군다나 뒤늦게 살아나기 시작한 순록 마법기사단이 무서운 기세로 발할라 군을 공격하기 시작하면서 전세는 뒤집어졌고, 그 마무리를 창파 마법기사단이 하는 느낌이었다.
마무리되어 가는 전투를 지켜보던 무그레날로 단장이 뒤늦게 글로리아의 시신이 있는 곳을 발견하였다.
“글로리아님…….”
차가운 바닥에 누워 있는 글로리아의 모습.
생기를 잃어 얼굴은 창백했다.
하지만 그녀의 입가만은 희미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뭣들 하고 있어. 글로리아님을 옮겨라. 언제까지 이 차가운 바닥에 누워 있게 할 셈이냐.”
“예……!”
발할라군은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전투가 완전히 끝나고 모두가 죽은 시신을 수습했다.
마법기사들보다 교관들의 시체가 반을 넘게 차지했다.
이곳이 뚫리면 마법기사를 꿈꾸는 아이들마저 모두 발할라의 손에 죽고 만다.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교관들은 더욱 기를 쓰고 이곳을 지키려 했을 것이다.
“교관들의 수가 많이 줄었습니다. 이래서야 아카데미를 계속 운영할 수 있을지…….”
“괜찮습니다. 새로운 교관을 뽑는 것은 어렵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학생들은 아닙니다. 우리들이야 대체할 사람이 있지만 학생들은 대체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질 않습니까. 저희들은 학생들을 지킨 것만으로 만족합니다. 그건 아마 글로리아님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교관 한 명이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무그레날로가 무거운 얼굴로 글로리아의 앞에 섰다.
크실리아 가문의 커다란 별이 지고 말았다.
테르세우스와는 다른 방식으로 묵묵히 뒤를 받쳐 주던 인물이었다.
“그동안… 고생하셨습니다.”
척.
무그레날로가 주먹을 가슴에 가져가며 경의를 표했다.
척! 척!
척.
그러자 뒤에 있던 마법기사들과 교관들 모두 그녀를 향해 똑같이 경의를 표했다.
이어 뒤편에 있던 조교 한 명이 눈물을 머금고 종이를 써 내려갔다.
크실리아 글로리아 사망.
종이 위엔 그녀가 마지막으로 물고 있던 피 묻은 파이프가 올려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