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화 반켈의 배신
“발할라의 사람인가?”
“물론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애써 이렇게 당신을 찾아올 이유가 없지 않았을까요.”
“후후 발할라가 아니더라도 내가 좀 인기가 많아서 말이야. 내 목숨에 관심을 갖고 있는 자들이 꽤 되거든.”
“오늘 그 사람들의 바람을 제가 대신 이루어드릴 수도 있겠네요.”
“그게 말처럼 쉽진 않을 걸세. 이래 보여도 쉽게 죽을 수가 없는 사람이라.”
휘콰아앙!!!
밀려드는 마력을 가볍게 막아낸 테르세우스가 레이칸을 살폈다.
마력을 다루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실력이 높은 것을 보니… 발할라에서도 제법 위치가 되는 모양일세.”
“호오… 그걸 겨우 마법 하나에 알아낸단 말입니까?”
“본래 사소한 마법 하나에도 그 사람의 정수가 녹아 있는 법이지.”
테르세우스의 주변으로 아공간의 점들이 생겨났다.
레이칸이 슬쩍 마른침을 삼켰다.
오르카이우스에게 테르세우스의 마법에 대해 들은 적이 있다.
테르세우스는 다른 사람들과는 차별화된 굉장히 특이한 마법을 사용한다.
아공간에 다른 이들의 마법을 저장해 둘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저장된 마법에 자신의 마력을 더할 수 있다는 것.
그 두 가지만으로도 상당히 성가신 마법이었다.
“어디 한번 제가 당신을 뚫을 수 있을지 볼까요.”
레이칸이 두 팔을 교차했다.
양쪽 발밑에서 시작된 마력의 탄환들이 빠르게 쏘아져 나갔다.
테르세우스는 가볍게 손짓하는 것만으로 탄환들을 아공간으로 빨아들였다.
“자네 것이니 다시 가져가게.”
파바바방!!!
아공간에서 튀어나온 탄환들이 더욱 빠른 속도로 레이칸을 노렸다.
황급히 방벽을 만들어 낸 레이칸이 두 눈을 부릅떴다.
방금 자신이 만들어 낸 마법이 맞나 싶을 정도로 강력한 위력이었다.
“호오… 이것 참 진짜였군요.”
테르세우스의 마법을 확인한 레이칸이 마력을 일으켰다.
거대한 마력이 휘몰아치며 테르세우스를 덮쳤다.
“부피를 키운다고 되는 것은 아니지.”
이번에도 역시 작은 아공간 속으로 마력이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조금 전보다 빨려 들어가는 속도가 훨씬 빨랐다.
놀란 레이칸이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이건 뭐 공격하는 족족 아공간 속으로 들어가 버리니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아니 그럼 잠시만… 내가 공격하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
“정말 그렇게 생각하나?”
테르세우스가 친절하게 위편을 가리켰다.
그때서야 레이칸은 허공에 떠있는 검은 먹구름을 발견했다.
마른하늘에 상당히 부자연스러운 먹구름이었다.
쿠르르릉!!!
먹구름에서 사정없이 뇌전이 내려치기 시작했다.
“하!!!”
레이칸이 마력을 휘감아 갑옷을 만들어 냈다.
쩌저정!!
쩌정!!!
하나하나가 엄청난 위력을 지녔다.
강한 충격에 몸이 짓눌리는 기분이었다.
“이야… 과연 한 나라의 군단장이라 이겁니까.”
테르세우스가 만들어 낸 마력의 구체가 레이칸을 향해 날아갔다.
이를 확인한 레이칸이 피식 웃었다.
“근데 그거 아십니까? 사실 저도 꽤 재밌는 마법을 익혔습니다.”
레이칸의 마력이 구체를 감싸 안았다.
구체의 크기가 순식간에 두 배로 불어났다.
“다시 가져가시겠습니까?”
레이칸이 팔을 휘두르자 구체가 거짓말처럼 회전했다.
콰드드드드드드등―!!!
대지를 긁으며 다가오는 마력의 구체를 보고 테르세우스가 두 눈에 이채를 띠었다.
“정말 재미난 마법을 사용하는구만.”
“제가 그래서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꽤나 재밌는 마법을 익혔다고요.”
“헌데… 그 마법은 이런 개인전에 사용하기에는 별로 적합하지 않은 것 같군.”
테르세우스는 대번에 레이칸의 마법이 가진 진정한 힘을 꿰뚫어 보았다.
다른 이들의 마법을 증폭시키는 마법.
조금 전 테르세우스에게 돌려 준 것은 레이칸이 섬세한 마력으로 조절해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니 이상한 일이었다.
저런 마법은 대인전을 치를 때 더욱 빛을 발한다.
헌데 어째서 굳이 자신을 찾아왔을까.
사실 레이칸은 지금 오르카이우스의 명령을 어기고 이곳으로 온 것이었다.
그는 오르카이우스가 지나치게 테르세우스를 경계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테르세우스가 강하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과거의 얘기일 뿐.
더군다나 그의 강함은 어느 정도 부풀려진 얘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당장 일전에 부딪혀 보았던 엔달라프 단장도 듣던 것만큼이나 대단한 실력은 아니었으니까.
그러니 테르세우스도 비슷한 경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때문에 과감하게 테르세우스를 먼저 찾아왔다.
자신이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테르세우스를 먼저 처리하고자 했다.
직접 만나 본 테르세우스는 역시나 기대 이상은 아니라는 느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얼마든지 자신이 상대해 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레이칸이 미소를 보였다.
이를 본 테르세우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갑자기 웃는 이유가 뭔가?”
“아닙니다. 그보다 저를 너무 원망하지 말아 주십시오.”
양옆으로 뻗어 나온 마력이 순식간에 테르세우스를 덮쳤다.
휘리링!!
파바바방!!!
정신 못 차릴 정도로 빠른 공격이 이어졌다.
뒤엉키는 먼지 속에서 테르세우스의 모습이 점차 사라져갔다.
“여기 전투가 벌어졌어!!”
“적이다!!”
뒤늦게 달려온 마법기사들이 레이칸을 향해 마법을 날렸다.
이를 본 레이칸이 입꼬리를 실룩거렸다.
“고맙다. 잘 쓸게 밥버러지들아.”
레이칸의 마력이 날아오는 마법 공격들을 감싸 안았다.
증폭.
그의 마력은 다른 마법들을 증폭시킬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그리고 그 증폭된 힘은 고스란히 테르세우스를 향해 날아갔다.
슈슈슝!! 파바바방!!
콰라랑―!!
아공간은 마법 공격을 흡수한다.
그럼 물리적인 충격은 어떨까?
레이칸은 일부러 마법들을 테르세우스의 주변으로 떨어트렸다.
폭발의 영향이 테르세우스에게 미치도록.
파편들이 그에게 튈 수 있도록!
물리적인 충격을 가하기 위해 레이칸은 마법을 아끼지 않았다.
“으하하하!!! 이스트 왕국의 군단장이라고 하더니! 별 것 아니었잖아?!”
“테르세우스님?!”
“군단장님께서 이곳에 계신다!!”
“테르세우스님을 습격한 누군가가 있다!!”
주변 여기저기에서 시끄러운 소리들이 들려왔다.
레이칸이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불청객들은 빠져줬으면 좋겠는데.”
그가 손짓하자, 허공에 나타난 마력의 창들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그 순간 테르세우스의 아공간이 점처럼 나타나 레이칸의 마법을 빨아들였다.
“뭐야. 살아 있었습니까?”
“고작 이 정도로 내 목숨을 취할 수 있을 리가 있나.”
먼지를 털어 낸 테르세우스가 레이칸을 바라보았다.
아까와는 사뭇 달라진 분위기.
그의 눈동자가 한층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어 차가운 목소리가 들린다.
“확실히 자네는 그냥 두기엔 우리 국민들에게 많은 피해를 입힐 수 있겠어.”
“우후후후, 가만두지 않으면? 뭘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어떻게 하긴… 이렇게 하지.”
테르세우스의 전신에서 엄청난 마력이 폭사 되어졌다.
사방에서 나타난 아공간에서 여러 마법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이깟 것쯤은 막아 내면 그만입니다.”
레이칸이 방벽을 만들어 쏟아지는 마법들을 모두 받아내었다.
그사이 아공간이 레이칸과의 거리를 좁혔다.
“이 정도면 어떤가?”
지근거리까지 다가온 아공간이 다시금 마법을 쏟아 내었다.
바로 옆에서 시작되는 마법들이, 나타나자마자 방벽에 부딪혔다.
그 묵직한 울림이 연속되자, 레이칸도 순간 두 눈을 부릅떴다.
대체 저 인간은 얼마나 많은 마법들을 이 짧은 시간에 발현하는 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그 생각도 잠시, 그가 만들어 낸 방벽이 점차 깨지기 시작했다.
“벌써 한계가 드러난 건가?”
아공간에서는 마법들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 레이칸이 당하는 것은 한순간.
그는 무리를 해서라도 아공간의 포위 속에서 빠져나오려 했다.
“놓치지 않아.”
테르세우스가 마력을 이동해 레이칸을 완벽히 가두었다.
당황한 레이칸이 최대한의 마력을 끌어올렸다.
“으아아아―!!!”
레이칸은 잠깐 동안 테르세우스가 쏟아 낸 마법들을 모두 받아들였다.
이어 사방으로 마법들을 튕겨 냈다.
감싸 안은 마력들을 힘의 방향을 바꿔 준 것이다.
이대로 이 마법들이 주변 마법기사들을 공격하고 건물을 부순다면 잠깐의 틈은 분명 생겨날 것이다.
그 틈에…….
“이 정도로는 어림없네.”
슈파바바박!!!
베리어에 막힌 마법들이 그 자리에서 소멸하고 말았다.
레이칸은 너무 놀란 나머지 순간 몸이 굳어 버리고 말았다.
이제야 겨우 알아차렸다.
처음부터 자신을 가두고 있던 이 커다란 베리어를 말이다.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었군.”
분위기를 달리한 테르세우스가 걸음을 옮겼다.
그의 마력으로 이루어진 수많은 검날이 허공에 떠올랐다.
이를 본 레이칸의 두 눈동자가 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미안하지만 자네는 살려 둬선 안될 것 같군.”
수많은 검날이 일제히 레이칸을 향해 쏟아지기 시작했다.
“으… 으아아아―!!”
파바바바박!!!
파바바바바바바바방―!!
슈슉!
그때 나타난 누군가가 레이칸의 뒷덜미를 잡아끌었다.
“나를 붙잡으시오……!”
그는 레이칸을 데리고 순식간에 베리어 안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그 날랜 솜씨에 테르세우스조차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내가 놓치다니…….”
레이칸이 커다란 베리어로 생각한 이것은 사실 테르세우스의 마력 전개였다.
헌데 그의 마력으로 가득한 이 공간을 누군가가 뚫고 들어온 것이다.
그것뿐만 아니라 레이칸을 데리고 순식간에 빠져나가기도 했다.
“쯧…….”
테르세우스가 혀를 차며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곳에는 잘려 나간 레이칸의 오른쪽 다리가 보였다.
“그래도 부상을 입었으니 당분간은 날뛰지 못할 테지.”
뒤이어 한 마리의 마물 시체가 보였다.
“마물……?”
테르세우스가 이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동안 간신히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반켈이 뜨거운 숨을 내쉬었다.
테르세우스.
그가 강한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거란 생각은 못해 봤다.
그 어마어마하게 드넓은 마력 전개는 무엇이란 말인가!
수하로 부리는 마물들을 희생시키지 않았더라면, 마력 전개 안으로 파고드는 것은 아예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크아아아아아―!!!”
고통에 얼룩진 레이칸이 비명을 토해 냈다.
잘린 다리를 부여잡고 그가 바닥을 뒹굴었다.
살면서 이런 치욕은 처음이었다.
이렇게까지 무력해지는 기분도 처음이었다.
압도적인 실력 차 앞에서 레이칸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무지에서 시작된 만용이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크읍……!”
반켈이 두 눈을 부릅떴다.
그 짧은 찰나의 순간.
잠깐 머물렀을 뿐인데 자신에게도 상처가 남았다.
아마 그 공간에 더 머물렀더라면 더욱 험악한 꼴을 당했을 것이다.
“무섭구나 테르세우스……!”
“반켈!!! 이 쓸모없는 밥버러지 같으니라고!! 더 빨리 와서 나를 구했어야지!! 아니 그보다 어서 나를 치료해라!! 죽이겠다!! 죽여 버리러 가야겠다 테르세우스를!!!”
분노한 레이칸이 고래고래 소리쳤다.
이를 본 반켈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목숨까지 걸어가며 구해 줬건만 고맙다는 얘기는커녕,
그 순간 반켈의 입가에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마침 제가 회복 포션을 갖고 있습니다. 이걸 드시지요.”
반켈은 품에 있던 병을 레이칸에게 건넸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레이칸에게 그것이 회복 포션인지 아닌지 확인하는 여유 따윈 없었다.
그는 반켈에게 병을 받자마자 뚜껑을 열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감히 나를 이렇게 만들다니…! 가만 두지 않겠다!!!”
레이칸이 두 눈을 부라렸다.
상처가 빠르게 회복되며 레이칸의 마력이 갑자기 폭주하기 시작했다.
“뭐야!? 이거 갑자기 왜 그래! 너!! 나한테 뭘 준 거냐!?”
“후후후 레이칸님. 당신이 드신 것은 사실 피메트입니다.”
“뭣…?! 야 반켈!!!”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마음껏 날뛰시지요.”
“너… 너어어어 가아아암히!!! 네가아아아!!!”
파콰과과광!!!!
평소보다 몇 배는 더 강한 위력의 마법이 펼쳐졌다.
하지만 레이칸이 죽인 것은 반켈의 꼭두각시 마물이었다.
“크하하하하하하, 죽기 전까지라도 마음껏 누리십시오! 지금 당신은 테르세우스조차 어쩌지 못하는 최강의 마도사일테니까요!”
“반케에에에엘!!!”
레이칸의 마력이 폭주하며 주변에 거센 폭발을 일으켰다.
그러나 반켈은 이미 그 자리를 벗어나고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