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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220화 (220/424)

220화 과거로부터 이어진 연

내성에 도착한 테르세우스는 곧바로 헨카일로를 찾았다.

다행이 헨카일로는 무사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호오… 테르세우스 설마 내가 걱정되어서 다시 돌아온 것인가?”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크흐흐 말로는 아닌 척 해도 내가 그대에게는 꽤나 중요한 사람이었던 게야. 그렇지?”

“나참… 이 판국에 그런 말씀을 하시고 싶으십니까.”

헨카일로가 해맑게 웃었다.

그때 주변에서 연이어 폭발 소리가 들렸다.

슈우우웅!!

후웅! 후르릉―!

테르세우스가 아공간으로 충격을 흡수했다.

발할라의 수하들이 결국 내성까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허허… 설마했는데…….”

아무리 그래도 이곳은 왕이 있는 내성의 깊숙한 곳이었다.

벌써 적들이 이곳까지 들이닥칠 수 있을 줄은 테르세우스조차 예상하지 못했다.

“저희들이 전하를 지키겠습니다.”

제 1왕실기사단이 헨카일로를 위시한 채 원을 그렸다.

테르세우스도 몸을 돌려 주변을 살폈다.

“부탁하지.”

제 1왕실기사단이 헨카일로를 지키는 동안 테르세우스는 주변 정리에 나섰다.

그가 본격적으로 마법을 펼치기 시작하니 대기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마력의 파도가 넘실거릴 때마다 적들은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크아아악!!”

“커헉!!”

여기저기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테르세우스는 마법을 멈추지 않았다.

아공간에서 흘러나오는 마법들은 적들을 사정없이 공격해대고 있었다.

“이것이 군단장님의 실력…….”

제 1왕실기사단이 헨카일로를 지키면서도 테르세우스의 실력에 놀라고 있었다.

늘 헨카일로의 곁에만 머무는 제 1왕실기사단이었기에 그들도 테르세우스의 전투를 이렇게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테르세우스는 단 한순간의 틈도 주지 않고 적들을 몰아세웠다.

뿐만 아니라 이 정도는 가볍다는 듯 헨카일로를 향한 공격들까지 모두 막아 내었다.

“과연… 테르세우스의 전투는 언제나 아름답구만…….”

그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헨카일로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 대단합니다… 마법을 저렇게 펼치는 사람은 태어나 처음 봅니다.”

“군단장님이 나서고부터 공기가 바뀐 것 같습니다.”

“적들이 저렇게까지 꼼짝을 못하다니…….”

그들의 반응에 헨카일로가 대신 뿌듯해 했다.

그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입을 열었다.

“당연한 일이다. 쟁쟁한 사람들을 곁에 두고 오랫동안 이스트 왕국의 군단장 자리를 유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거든!”

유독 테르세우스와 관련한 것들에만 헨카일로는 가벼운 언행을 보였다.

덕분에 때로는 테르세우스와 둘도 없는 친구 사이로 보이기도 했다.

발할라 수하들을 물리친 테르세우스가 한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흐음… 그렇게 지켜보고 있을 것이 아니라 직접 나서지 그러나?”

“내가 이곳에 있는 것을 알고 있었나?”

“그대의 마력을 읽었기 때문에 곧바로 이곳으로 온 거다.”

“이것 참 영광이로군. 일부러 마력을 흘린 보람이 있는 셈인가.”

한쪽에서 모습을 드러낸 사내.

그의 얼굴을 가린 금빛 가면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새로운 인물의 등장에 제 1왕실기사단이 더욱 경계했다.

“오랜만이로구나 테르세우스. 날 단번에 알아본 모양이야.”

“어느샌가부터 짐작하고 있었다. 발할라를 이끌고 있는 것이 어쩌면 네가 아닐까 싶었거든. 오르카이우스.”

오르카이우스라는 말에 몇몇 인원들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모두 그 이름을 알고 있는 자들이었다.

오르카이우스가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내가 발할라의 수장인 것을 짐작했다? 호오… 이것 참 의외로군.”

“다만 한 가지 의외인 것이 있네.”

“뭐가 말이냐?”

“어째서 자네가 발할라의 수장이 된 건가?”

“으흐흐흐, 그거야 당연히 이 빌어먹을 왕국에 대한 원망 때문 아니겠나.”

오르카이우스의 시선이 헨카일로를 향해 있었다.

헨카일로도 오르카이우스를 잘 알고 있었다.

“자네가 발할라의 수장이었군…….”

“국왕께도 의외인 일인가 봅니다?”

“오르카이우스… 자네가 갑자기 홀연히 자취를 감췄을 때도 우리 모두는 그대의 선택을 이해할 수 없었네…….”

“나도 당신을 이해할 수 없었어. 어째서 내가 아니라 테르세우스였던 거지?”

“뭐라……?”

“어째서 내가 아니라 테르세우스였냐는 말이다!!!”

오르카이우스의 목소리가 격정적으로 떨리고 있었다.

오랫동안 묵혀 온 감정이었다.

그것을 바깥으로 드러내니 천하의 오르카이우스라도 감정을 내비추지 않을 수 없었다.

“설마… 군단장에 관한 일을 말하는 건가?”

“당연히 군단장에는 내가 올라섰어야 했어!! 이스트 왕국에 더 많은 영토를 가져다 준 것도 나고! 더 많은 위업을 쌓은 것 또한 나다! 거기다 마법 실력 또한 내가 테르세우스를 앞서고 있었다. 어느 것 하나 부족한 것이 없었는데 어째서 당신은 테르세우스에게 군단장의 자리를 수여한 것이지!?”

불같은 시선이 꽂혔다.

그러나 헨카일로는 담담한 표정이었다.

그 답은 헨카일로가 아닌 테르세우스에게서 나왔다.

“그래. 자네는 분명 뛰어난 마법기사였지. 자네가 창단한 마법기사단인 여명도 지금까지 누구보다 뛰어난 위업을 세우고 있을 정도니까.”

“그런데 왜!!! 내가 아니고 네가 되었느냔 말이다!! 대답해 보아라! 그건 내가 평민이었기 때문이 아닌가?!”

“역시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구만.”

“닥쳐라!!!”

오르카이우스가 손아귀를 펼치자 허공에 빛의 화살이 만들어졌다.

슈파아아아앙!!!

여러 발의 화살이 테르세우스를 향해 날아갔다.

아공간으로 그것들을 모두 막아낸 테르세우스가 손끝을 돌렸다.

오르카이우스의 위로 떠오른 태양.

저 태양이야말로 오르카이우스를 상징하는 마법이었다.

“빛의 종말.”

파바바바바방!!!

콰과과과광!! 콰르르릉―!!

태양의 불줄기에서 시작된, 유성우처럼 쏟아지는 빛의 파편들.

하나하나가 엄청난 위력을 지닌 것들이었다.

“어서 전하를 모시고 피하게!”

테르세우스가 뒤편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그의 신호에 제 1왕실기사단도 헨카일로를 데리고 움직였다.

헨카일로가 떠나기 전 테르세우스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테르세우스!! 죽으면 가만두지 않을 걸세!!!”

“어차피 제가 죽어도 가만두지 않으시리란 것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농담을 주고받는 여유라니.

그 모습 덕에 헨카일로도 안심할 수 있었다.

테르세우스는 곧바로 아공간의 영역을 확장했다.

“여전하구나 네놈의 마법은.”

“오르카이우스. 그대야말로.”

파바바바방!!

슈슈슝!!

쏟아지는 빛의 파편들을 흡수해 낸 아공간이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이를 확인하자마자 오르카이우스가 몸을 움직였다.

뒤편에 아공간이 모습을 드러내기도 전이었다.

태양처럼 떠오른 마력의 덩어리가 또다시 빛을 쏟아냈다.

콰르르릉!!!

동시다발적으로 폭발이 일었다.

그것들을 막아낸 테르세우스가 눈동자를 굴렸다.

“후우… 여전히 엄청나구만…….”

빛의 파편은 단숨에 건물 내부를 걸레짝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나마 테르세우스가 아공간으로 어느 정도 흡수했기에망정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주변은 완전히 황폐화가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무차별로 마법을 사용했다간 그대의 수하들도 마법에 휘말릴 텐데.”

“상관없다. 나는 네놈과 헨카일로만 죽이면 되거든.”

“쯧… 삐뚤어진 복수로구만.”

“그렇게 생각해도 또한 상관없다.”

콰르르릉!!!

빛의 기둥이 이곳저곳에 나타나며 테르세우스를 압박했다.

아공간에서 뻗어 나온 푸른 기운이 빛의 기둥들을 감싸 안았다.

이어 테르세우스가 일으킨 마력의 파장이 대기를 격했다.

파콰앙!!!

강한 충격과 함께 한순간 오르카이우스의 마법이 깨졌다.

두 눈을 부릅뜬 오르카이우스가 발을 굴렀다.

쿵!!

슈와아아아―!!

그의 전신에서 흘러나온 마력이 주변 일대를 장악했다.

거대한 태양이 찬란하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주변의 모든 것들을 새하얗게 물들이는 빛이었다.

마치 모든 것들이 원래의 것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저마다의 빛을 잃고 하얗게 물들어 갔다.

백색의 세상에 갇힌 테르세우스가 침음성을 흘렸다.

이런 마법은 또 처음이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미지의 세계 속에서 테르세우스가 차분히 눈을 감았다.

그리곤 몸 안의 마력을 느끼며 집중했다.

어느 곳에 있던, 무슨 상황이건 가장 먼저 스스로를 잃지 않아야 한다.

나 자신이 이곳에 존재하고 있음을 인지하는 순간 모든 것이 시작된다.

결국 이것을 깨부수는 방법 또한 있을 터.

휘이이이잉―!!!

새하얀 공간 안에 또다른 마력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오르카이우스의 마력으로 가득 찬 공간 안에서 테르세우스의 마력이 비집고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모든 마법엔 결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결을 파악하는 순간 파훼법은 만들어진다.

“소용없다. 너는 나의 태양 아래서 죽어 갈 것이다!!”

악에 받친 오르카이우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테르세우스의 마음엔 흔들림이 없었다.

부동과도 같은 그의 마음이 중심을 잡고 마력이 차츰 공간에 균열을 일으켰다.

이어 그것들을 집어삼키는 아공간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나의 힘은 모든 것들을 집어삼킬 수 있네. 설사 그것이 태양이라 하더라도.”

테르세우스의 두 눈에서 한 차례 안광이 폭사되어져 나왔다.

그와 함께 방대하게 흘러나온 마력이 오르카이우스의 마력 전개를 깨트려 버렸다.

놀란 오르카이우스의 두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동안 테르세우스를 죽이기 위해 연마하고 또 연마해 온 마법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보란 듯이 자신의 마법을 깨트려 버렸다.

테르세우스의 아공간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저곳에서 또 마법이 흘러나올 차례였다.

테르세우스는 다른 이들의 마법을 아공간에 저장해두는 특이한 힘을 지녔다.

그것 때문에 테르세우스는 한번에 여러 마법을 캐스팅하는 것이 가능했다.

안에 있는 것을 내보내기만 하면 되니까.

“크으으아아아!!!”

오르카이우스가 분노의 괴성을 지르며 다시금 마력을 끌어올렸다.

더욱 강렬한 빛이 찬란하게 빛났다.

그것을 보며 테르세우스도 두 눈을 반짝였다.

오르카이우스.

자신의 라이벌이면서도 한때는 동경의 대상이었던 사내.

그가 만들어 내는 빛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누군가는 이 빛을 희망의 빛이라 부르기도 했다.

이스트 왕국을 밝히는 여명.

오르카이우스는 그 여명이었다.

마법기사들을 이끌고 왕국을 지켜 내던 빛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의 빛에는 어둠이 드리우기 시작했다.

밝고 찬란하기만 했던 그 빛이 색을 바랬다.

그것은 지켜보는 이들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때문에 많은 이들이 오르카이우스가 그것을 극복해 내리라 믿고 있었다.

허나 기대와 다르게 오르카이우스는 점점 더 엇나가 버리고 말았다.

슈콰아아앙!!!

찬란한 빛이 테르세우스의 아공간에 막혔다.

그것을 집어삼킨 테르세우스가 다시금 빛을 쏘아 보냈다.

아공간에서 흘러나온 빛은 오르카이우스가 만들어 낸 빛과 달랐다.

밝고 찬란한 빛이 아닌, 투박하게 바래진 빛.

같은 마법인 듯 보이지만 다른 마법이었다.

이것이 테르세우스가 오르카이우스를 동경했던 이유 중에 하나였다.

오르카이우스는 테르세우스조차 가질 수 없는 찬란한 빛을 지닌 마도사였다.

그 누구도 그를 따라할 수도, 대신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오르카이우스는 결국 그런 자신의 강점을 살리지 못했다.

그는 부족한 것을 자신에게서 찾지 않고 다른 곳에서 찾기 시작해 버렸다.

그 이후로 천천히, 그는 천천히 삐뚤어져 갔다.

그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알아차렸을 때는 너무 늦어버렸을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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