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화 두 사람의 차이
콰아아앙!!!
강한 충격에 오르카이우스가 뒤로 밀려났다.
그가 만들어낸 빛은 아공간에 잠식되었다.
쿨럭!
피를 뿜어 낸 오르카이우스가 심장을 움켜쥐었다.
테르세우스가 씁쓸한 표정으로 오르카이우스를 바라보았다.
“참으로 기구한 운명이지. 저주받은 아이라 불렸던 나는 지금에 이르러서 왕국의 군단장이 되었고… 희망의 빛이라 불렸던 그대는 복수의 화신이 되어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으니…….”
“다 네놈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아니지. 아니야. 자네에게는 얼마든지 기회가 있었고, 나보다도 훨씬 더 이전부터 이곳과 가까운 자리에 위치해 있었네.”
“그게 무슨 헛소리냐! 나는…….”
“잊었나보군. 그대는 이스트 왕국을 밝히는 여명이라 불리며 많은 이들의 기대 속에 살아왔지만, 나는 낯설고 특이한 마법을 사용한다며 저주받은 아이로 불리며 살아왔었네.”
“그래… 그랬었다!! 네놈은 이 불길한 마법을 사용하는 마도사였어!! 그런데도 국왕은 네놈을 군단장에 올렸지!! 내가 아닌 네놈을 말이다아아아……!”
태양에서 흘러나온 불길이 테르세우스를 덮쳤다.
그러나 테르세우스는 그것들을 모두 막아 내었다.
“이럴 수가…….”
최선을 다해 공격하고 있건만, 그 어떤 공격도 테르세우스에게 통하질 않았다.
과거에 테르세우스와 오르카이우스는 비등비등한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차이가 난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크게 벌어져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질 못했었다.
그런데 지금 둘 사이의 간격은 너무나도 벌어져 있었다.
마치 커다란 벽이 눈앞을 막아서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어째서 이렇게 되어 버렸는지 궁금해 하는 눈치로군.”
“네놈… 언제 이렇게 강해진 것이냐……?!”
“바보 같기는… 내가 강해진 것이 아니라 자네가 약해진 걸세.”
“뭐라……?”
“당연한 것 아닌가? 자네와 나는 걷는 길이 다르니까. 그러니 강해지는데 갖는 마음가짐도 달랐던 게지.”
“알아듣게 말해라……!”
“오르카이우스. 그대는 적들을 죽이기 위해 강해졌지만, 나는 나와 내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강해졌다네.”
“그게 어쨌다는 것이냐! 무슨 차이가 있다는 거지?!”
“둘 간에 차이는 크지. 너에게는 어쩌면 두 번 아니, 세 번 그 이상의 기회가 부여될 수 있었겠지만, 나는 아니었거든. 적을 죽이는 데 실패하면 후일을 도모할 수 있잖나. 더욱 강해져서 그들을 죽이러 가도 되고 강한 동료들과 손을 잡고 적들을 죽이러 가면 되니까. 하지만 지키는 것은 늘, 매 순간순간이 마지막 기회네. 지켜내지 못하면 죽음뿐이야. 결국 두 번의 기회 따윈 없는 것이지.”
“……?!”
“오르카이우스. 너에게는 ‘뒤’라는 것이 있었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없었어. 절벽을 뒤에 두고 싸우는 자와 퇴로를 확보해 두고 싸우는 자는 그 마음가짐부터 다른 법이지.”
“하하하… 그래서 너와 내가 이렇게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게 되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냐? 잘났구나 테르세우스!!”
“못난 사람…….”
쿠우우웅!!!
콰라라랑―!!!
그때 바깥에서 커다란 굉음이 들려왔다.
놀란 것은 테르세우스만이 아니었다.
오르카이우스도 동그래진 눈으로 바깥을 바라보았다.
“이것도… 자네의 계획인가……?”
“뭐… 뭘 말이냐……?!”
갑자기 느껴지는 엄청난 마기에 오르카이우스도 상당히 당황한 눈치였다.
그렇다면 이것은 오르카이우스조차 몰랐던 일이었다.
“심상치 않구만…….”
테르세우스의 얼굴이 눈에 띠게 굳었다.
* * *
테르세우스와 오르카이우스가 싸우기 조금 전.
레이칸의 폭주는 반켈의 예상대로였다.
눈이 뒤집힐 대로 뒤집힌 레이칸은 주변에 보이는 인간들을 모두 죽이기 시작했다.
테르세우스도 이것은 예상하지 못했을 터다.
“그나저나 어마어마하구만…….”
레이칸이 만들어낸 광경들은 그야말로 재앙이나 다름없다.
조금 전까지 멀쩡하게 있던 건물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수십, 수백 명의 사람들이 단번에 피투성이가 되어 싸늘한 주검으로 변하는 데엔 잠깐의 시간조차 걸리지 않았다.
그 광경들을 보며 반켈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잘하고 있다 레이칸!! 죽여라 마구, 마구 죽여라!!”
지금 이런 상황도 모른 체 오르카이우스는 테르세우스와 싸우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가하고 있을 터다.
그러니 준비를 하려면 지금이 적기였다.
“시작해 주마… 이 왕국에 진짜 재앙을 내려 주도록 하겠다!!”
반켈은 미리 준비해 두었던 재단으로 몸을 옮겼다.
아무도 모르게 만들어 놓은 소환진.
이 소환진 위로 수많은 이들의 피가 스며들었다.
오랫동안 준비한 일이었다.
실수란 없다.
미리부터 대기하고 있던 흑마도사 9명이 반켈을 맞이했다.
“고생하셨습니다. 모든 준비를 마쳤습니다. 반켈님.”
“마침내 때가 왔다.”
“후후 우리들이 세상의 위로 서는 때입니다.”
“그래. 드디어!! 그동안 우리들은 음지에 숨어 살아왔다.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라 불렸지…! 하지만 이제부터는 다를 것이다!!! 우리들은 이제 당당하게 햇빛 아래로 나선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인간들을 발아래 둘 것이다! 크하하하하하하하!!!”
크게 대소한 반켈이 마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이어 다른 흑마도사들도 각자의 위치에서 마력을 불어넣었다.
오랫동안 준비해 온 만큼, 소환진이 본래부터 갖고 있는 마력의 양도 엄청났다.
거기에 열 명의 흑마도사의 마력까지 더해지니 소환진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 떨림과 대기의 울림이 마치 환희하는 것 같았다.
짙은 먹색의 구름이 피어났다.
이어 녹색 빛깔의 아지랑이가 사방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그 안에서 드러난 황동색의 눈동자.
겨우 눈동자 하나만 드러났을 뿐인데 이곳을 가득 메울 수준의 크기였다.
[나를 깨운 것이 너희들인가.]
“늪지대의 마신이여!! 우리가 너를 소환했다.”
[인간이 나를?]
“그렇다! 이곳에 현신하여 너의 위용을 보이라!”
[가소로운 인간들이로구나.]
콰르르르릉!!!
커다란 꼬리가 소환진을 통해 튀어나왔다.
칠흑 빛깔의 비늘이 촘촘히 박혀 있는 꼬리가 단 한 번 움직인 것만으로 공동의 기둥을 부숴버렸다.
“크하하하하하!!! 이거다!! 이런 위용을 바랐던 것이다아아!!!”
그 전에 보았던 벌레 여왕과는 달랐다.
저기 있는 저 웅장한 크기의 꼬리를 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떨릴 정도였다.
[나를 깨운 것을 후회하게 만들어 주마.]
키야아아아아―!!
소름 끼치는 포효와 함께 안개 속으로 거대한 마신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농밀한 마력이 마치 늪지대처럼 끈적하게 주변을 잠식해 가기 시작했다.
점점 더 거대해지기 시작한 마신의 모습이 마침내 공동을 뚫고 하늘 위로 치솟아 올랐다.
하나, 둘, 셋 늘어나기 시작한 뱀의 머리가 어느 덧 아홉 개까지 늘어났다.
두 개의 뿔이 돋아난 머리가 황동색 눈동자로 반켈을 응시했다.
“으흐흐흐… 으흐흐흐흐!! 내가 너를 소환했다…! 그러니 나의 말을 따르거라! 내가 너의 주인이다아!!!”
[어이가 없을 지경이로군.]
“감히 내게 그 따위 태도를 보이다니!!”
반켈이 수하들에게 손짓했다.
소환과 함께 준비되었던 제어의 마법.
커다란 사슬이 늪지대 마신의 몸을 묶었다.
아홉 개의 머리가 아래의 사슬을 확인했다.
“내 말을 듣지 않으면 엄청난 고통이 따를 것이다. 심지어 나는 너를 곧바로 죽일 수도 있다!”
[어디 한번 해보거라.]
“뭐… 뭣…?!”
[나도 궁금하구나. 네가 정말 나를 죽일 수 있을지 말이다.]
“허어… 이거 정말 한 번 된통 당해 봐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쿵!
반켈이 들고 있던 지팡이로 대지를 때렸다.
그의 마력이 사슬로 뻗어 나갔다.
촤르르륵―!!
사슬이 반켈의 마력에 반응했다.
검붉은 마력이 흘러나왔다.
곧 있으면 늪지대의 마신은 고통에 몸부림칠 것이다.
반켈은 늘 이런 식으로 마물들을 다스려왔다.
이번에도 역시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늪지대의 마신, 하이드라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저 반켈을 내려다보기만 할뿐이었다.
“음……?!”
뭔가 이상함을 느낀 반켈이 다시 한번 마력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반응이 없다.
[오만하구나… 인간 주제에 감히 날 묶어 둘 수 있을 것이라 여기다니.]
“이… 이럴 리가 없다! 제어의 사슬은……!”
쩌저정!!!
하이드라는 보란 듯이 사슬을 끊어 냈다.
뒤이어 공기마저 묵직하게 만드는 거대한 마기가 사방에 뻗어 나왔다.
[그래도 나를 이곳에 불러 주었으니, 목숨만은 살려 주도록 하마. 그곳에서 지켜보거라. 너의 세계가 어떻게 파괴 되는지를……!]
캬아아아아―!!!
커다란 포효와 함께 하이드라가 몸을 일으켰다.
아홉 개의 머리에서 여러 가지의 마법이 동시에 발현되었다.
퍼어엉!!
퍼버버벙!!
콰르릉!! 파콰아아앙!!!
여기저기 폭발이 일어났다.
주변의 모든 것을 파괴한 하이드라가 세상 위로 올라섰다.
* * *
“이 기운은…….”
인간이 낼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마수들에게서나 흘러나오는 마기.
심지어 이 정도로 방대한 마기를 내뿜을 정도라면…….
결코 평범한 마수일 리가 없었다.
테르세우스가 곧바로 몸을 날려 성벽 위로 향했다.
오르카이우스도 그를 따라 성벽 위로 올라섰다.
“발할라 네놈들… 대체 우리 왕국에 무슨 짓을 하려는 겐가……?!”
“이… 이건 나도 모르는 일이다! 나도 저런 마수는 처음 본단 말이다……!”
오르카이우스가 억울하다는 투로 말했다.
그는 정말로 저 마수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그럼 발할라 너희들이 꾸민 일이 아니란 말이냐……?!”
“당연하지!! 우리는 왕국을 바꾸려 했을 뿐이지 왕국 자체를 멸망시킬 생각이 아니라고.”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난 것인가…….”
테르세우스가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를 본 오르카이우스가 놀란 표정을 보였다.
“너 설마… 그 상태로 저 마수에게로 가려는 거냐?”
“당연한 걸 뭘 묻는 겐가.”
“이런 미친놈! 너는 이미 나와의 싸움에 지쳐 있는 상태다. 그런데도 저길 가겠다고?”
“가야지.”
“이해할 수 없군…….”
“후후 날 걱정해 주는 거냐?”
“미친 소리도 작작해라. 내가 널 왜 걱정하냐.”
“그것 참 아쉽게 되었구만…….”
“정신 나간 놈… 무모하다 무모해. 네가 아니더라도 저 마수를 막을 마법기사들은 많다. 그러니……”
“아니. 그래도 나는 가야 한다.”
“어째서?”
“군단장이잖나.”
“…….”
당연하다는 듯한 말투에 순간 오르카이우스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테르세우스가 그런 오르카이우스를 보며 웃었다.
“미안하지만 우리 두 사람의 승부는 다음으로 미루어야겠어.”
“누가 순순히 보내 준다고 하더냐?”
“후후후 그대가 나를 막을 것 같지는 않은데.”
그 말 그대로였다.
오르카이우스도 차마 테르세우스를 막아설 순 없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왕국의 전복이었지 왕국을 아예 멸망시키려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나는 너와 함께 싸우지 않을 거다.”
“상관없네.”
“저 마수와 싸우다가 네놈이 죽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가야지.”
“아깝지 않은 거냐? 그동안 네가 쌓아 올린 것들이 있는데…….”
“지금 이 순간을 위해 내 모든 것들을 쌓아 올렸는데 아까울 리가.”
테르세우스의 얼굴에 처음으로 긴장이라는 단어가 보였다.
눈앞에 보이는 초대형 마수.
아홉 개의 머리를 가진 마수가 주변의 모든 것들을 파괴하며 사람들을 죽이고 있었다.
“나는 내 모든 것을 바쳐 우리 왕국을 지키기 위해 이 자리에 올라섰네. 그게 자네 대신 내가 군단장에 올라선 이유야. 그러니 이제 그만 그 괴로운 과거에서 빠져나오게.”
테르세우스가 떠나기 전 오르카이우스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환하게 미소 짓는 테르세우스를 보며 오르카이우스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