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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222화 (222/424)

222화 세계수의 열매

세아츠리스가 아시테르를 잠시 따로 불러내었다.

불려 나온 아시테르가 무슨 일이냐며 물었다.

“오빠에게 줄 것이 있어서.”

“줄 것?”

“이거.”

세아츠리스가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새하얀 솜같이 생겼으면서도 초록 알맹이를 지니고 있는 작은 열매였다.

“이게 뭐야?”

“이번에 정말 신기한 일이 벌어졌었어.”

“신기한 일?”

“응. 세계수의 열매 옆에 작은 열매가 하나 더 있었어.”

“뭐?! 그럼 이건…….”

“맞아. 세계수의 열매야.”

그녀의 말에 아시테르가 놀란 표정을 보였다.

가녀리고 기다란 세아츠리스의 손바닥에 올려져 있는 이 작은 열매를 얻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다.

“이 작은 열매를 얻기 위해서…….”

“그래. 이 열매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마녀들이 피를 흘려왔어.”

“그러게… 겨우 이 작은 열매를 위해서… 그런데 이걸 왜 나한테 준다는 거야?”

“우리 마녀숲을 지키기 위해 애써준 것도 있고… 이번에도 크게 다쳤었잖아. 잘 갖고 있다가 위험한 상황이 오면 이 열매를 먹어.”

“아니야. 나는 괜찮으니까 세아츠리스 네가 갖고 있다가…….”

“안 돼. 이건 이미 오빠 꺼야.”

세아츠리스가 억지로 아시테르의 손에 세계수의 열매를 쥐어 주었다.

아시테르가 그것을 다시 세아츠리스에게 주려 했다.

그러나 그녀는 완강히 거절했다.

“솔직히 말할게 세아츠리스… 내가 지금 이 열매를 갖고 있으면 곧바로 웨스트 왕국에 전해 주고 싶어져…….”

“그래도 상관없어. 오빠와 그 왕국의 공주랑 친분이 있는 것 정도는 알고 있으니까.”

“아…? 그걸 어떻게 알았어?”

“마녀숲에는 내 눈과 귀가 많거든. 그러니까 설사 그렇게 한다고 해도 상관없어.”

“어째서…? 내가 웨스트 왕국에 이 열매를 전해 주면 그동안 이것을 지키기 위해 피를 흘린 마녀들에게 미안해지는 일 아니야……?”

“그때는 세계수의 열매가 없었어. 이미 한 번 사용했기 때문에 웨스트 왕국이 달라고 부탁해도 줄 수가 없었거든.”

“아니 그런데 왜 웨스트 왕국은…….”

“믿질 않았던 거야. 우리들이 거짓말을 하는 줄 알고 있었지. 하지만 실제로 세계수 열매가 열린 것은 바로 며칠 전이었어. 여왕님께서도 이 시기쯤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확신할 순 없었어… 아무튼 세계수 열매가 이렇게 두 개의 열매를 맺을 줄 알았더라면 우리들도 하나는 웨스트 왕국을 향해 양보할 수 있었을 거야.”

세아츠리스의 말은 진심이었다.

물론 마녀여왕의 생각은 어떨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자신이 여왕이었다면 그렇게 해주었을 것이다.

그러니 어쩌면 세아츠리스는 감히 아시테르를 통해 웨스트 왕국에 미안함을 갚으려는 것일지도 몰랐다.

아시테르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사정이 있었구나…….”

“그들을 원망하지는 않아. 나 같아도 여왕님이 그런 상황에 처했었다면 그렇게 했을 거야.”

“…….”

“그 열매를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아시테르 오빠 마음이야. 이제는 오빠 것이니까. 본래는 백상 마법기사단 단장에게 전해 주려는 생각이었는데… 이제는 그렇게 할 수 없게 되었으니까…….”

“아아… 그래서 내게…….”

“살아계셨어도 오빠에게 이 열매를 주었을지도 몰라.”

“왜?”

“그야… 앞으로 내 단장님이 될 사람이잖아?”

세아츠리스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다른 이들에게는 다소 차가운 면이 있어 보여도 아시테르에게만은 여전히 따뜻한 그녀였다.

아시테르가 품속에 소중히 세계수의 열매를 넣었다.

“무슨 얘기를 그렇게 오래 해?”

두 사람을 찾으러 온 에스파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곁에는 알렌시아가 함께 있었다.

그녀는 심기가 불편했는지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이상한 얘기를 주고받은 것은 아니겠지?”

“무슨 이상한 얘기?”

“그냥…….”

“후후 나랑 세아츠리스가 이상한 얘기를 주고받을게 뭐가 있겠어. 그나저나 몸은 좀 괜찮아?”

아시테르가 알렌시아의 몸을 상세히 살폈다.

세아츠리스는 그런 아시테르를 뒤에서 지켜볼 뿐이었다.

에스파가 슬쩍 세아츠리스의 곁으로 다가왔다.

“어떻게 해요.”

“뭘요?”

“아시테르의 곁에는 이미 임자가 있잖아요. 짝사랑 그거 상당히 아프고 질긴 거예요. 그러니까 시작도 하질 말아요.”

“후후 저는 괜찮아요.”

“에…? 제가 또 짝사랑 선배라서 좀 잘 아는데…….”

“지금은 얼마든지 양보할 수 있어요.”

“아니 이건 또 무슨 소리래? 그럼 뭐 아시테르를 빼앗기라도 하겠단 말인가요?”

세아츠리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굳이 빼앗을 필요까지 있을까.

그녀는 말없이 웃기만 할 뿐이었다.

그러다 다시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나저나 말 편히 해도 괜찮아요. 아시테르 오빠의 절친한 친구라면서요. 그럼 저에게도 소중한 사람인데.”

“아니… 그… 저… 아…? 아… 나는 천천히 말을 놓도록 할게… 요…….”

에스파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직 에스파에게 말 놓기란 무리인 일이었다.

그러기엔 세아츠리스는 아직도 뭔가 거대하고 대단한 존재 같았다.

그래서 대하기가 어려운…….

잠시 휴식을 취했던 본대가 다시 길을 떠났다.

이스트 왕국으로 향하는 길은 생각보다 멀게만 느껴졌다.

아무래도 마음이 급해져 더욱 그런 모양이었다.

근처 마을을 지나던 일행들이 발걸음을 멈춰 섰다.

“저… 저게 뭐야……?”

“이런 미친…….”

마을 중앙에 있는 커다란 나무.

그 나무에 달려 있는 것은 잎사귀가 아닌 시체들이었다.

밧줄에 묶어 시체들을 매달다니 상당한 악취미였다.

“대체 어떤 놈들이…….”

그들이 따로 알아보기도 전에 마을을 점령하고 있던 도적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커다란 검을 든 중년인이 검날에 혀를 대는 기이한 장면까지 연출하며 앞으로 걸어나왔다.

그의 시선이 사람들의 면면을 훑었다.

“호오… 이것 봐라.”

예쁘고 아름다운 여인들이 더러 보였다.

거기다 곁에 서 있는 사내들의 행색은 남루했다.

마치 전투에서 도망쳐온 피난민들 같았다.

“으흐흐흐…! 지금 이스트 왕국이 난리가 나긴 난 모양이구나. 이렇게 도망 오는 인간들이 있고. 그나저나… 저 정도 차림을 보니 귀족들인가……?”

“이 사람들. 당신이 그랬습니까?”

“아아… 저 뒤에 있는 것? 당연히 내가 그랬지.”

“어째서 저런 짓을 벌인 겁니까?”

유미르가 중년인의 앞에 섰다.

중년인, 베테예프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하나같이 나약하고 비실해 보이는 것들뿐이었다.

개중에 몇몇 몸집이 좋아 보이는 사내들도 보였지만, 몸 곳곳에 상처들이 있는 것을 보아 부상을 입은 모양이었다.

무엇보다 이곳에 있는 자신의 수하들은 50명 남짓.

이들을 상대하기에 차고 넘치는 숫자였다.

그러니 자신만만해질 수밖에 없었다.

베테예프가 웃었다.

“어째서라니? 흐음… 그렇게 묻는다면. 그냥. 이라는 말이 가장 어울리는 말 같구만.”

“그냥이라…….”

유미르의 떨리는 눈동자가 뒤편의 나무를 바라보고 있었다.

노인이고 아이고 할 것 없이 마을 사람들 모두가 나무에 걸려 있었다.

적국인 사우스 왕국조차 이런 비인륜적인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스강―!

유미르의 검이 단숨에 베테예프의 팔을 베어 넘겼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였다.

그 잠깐의 찰나에 베테예프의 팔이 잘려 나갔다.

그것을 인지한 순간 핏물이 분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크아아아!!!”

고통에 비명를 지른 베테예프가 잘려 나간 팔을 움켜잡았다.

유미르의 검이 다른 쪽 팔도 잘라 버렸다.

“어떻게 사람을 죽이고… 그냥이라는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유미르가 어떻게 베테예프의 팔을 자르는지, 그것을 본 도적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저 빛이 번뜩이는 순간 베테예프의 팔이 날아간 것만 눈으로 확인했을 뿐이다.

“주… 죽여라!!”

“저놈을 죽여!!”

“대장이 당했다―!”

어리석은 도적들이 유미르를 향해 달려들었다.

누가 먼저 나설 것도 없었다.

유미르가 가볍게 검을 휘두르는 것만으로 상황은 금방 정리가 되었다.

“진짜 대단하시다… 너의 아버지…….”

에스파가 감탄을 흘렸다.

유미르는 단 한 명의 도적도 죽이지 않았다.

쓰러져 있는 그들을 향해 유미르가 입을 열었다.

“당신들에게 살아서 죽은 이들의 몫을 갚아 나가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뭐…?! 이 꼴로 우릴 더러 뭘 하라는 말이냐!?”

“살아도 산 게 아닌 것처럼. 정신이 깨어 있는 그 순간순간 당신들의 손에 죽어 간 사람들을 떠올리며 반성하고 또 반성하며 살아가십시오.”

유미르가 얼음장처럼 차가운 말투로 말했다.

감히 그의 말에 대꾸하는 이가 없었다.

그때 누군가 안쪽에서 빠르게 튀어나왔다.

혹시나 놓친 사람이 있는 건가 싶어 유미르가 검을 고쳐 잡았다.

검끝이 상대를 겨누었다.

“제가 붙잡을게요!!”

에스파가 도망치는 이를 향해 마법활을 쐈다.

하지만 상대는 가볍게 그것을 손으로 쳐내 버렸다.

“어……?”

사내를 알아본 아시테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레나가 곁에서 입을 열었다.

“왜 그러니? 아는 사람이야?”

“네. 일전에 저와 함께 마녀들을 구해 준 사람이에요.”

“그래?”

아레나와 유미르의 시선을 끄는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사내가 안고 있는 어린아이.

아이를 안은 사내의 표정은 너무나도 절박해 보였다.

“아버지!! 저 사람은 나쁜 사람이… 어라…? 어떻게 말씀드려야 하지…? 아무튼 도적들과 한패는 아니에요!”

“그래. 그런 것 같구나.”

빠르게 마을을 통과하려던 가이우스도 아시테르 일행을 돌아보았다.

어느새 몸을 날린 아시테르가 가이우스의 옆으로 다가왔다.

“대체 무슨 일인데 그렇게 급하게 가시는 거예요?”

“딸이… 내 딸이 위독한 상태다……!”

가이우스가 자신의 품안에 안겨 있는 어린 딸아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릴리아가 뜨거운 숨을 연신 뱉어내고 있었다.

붉게 물든 얼굴에는 굵은 땀방울들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비켜라…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내 딸을 살려야 한다……!”

“잠시만요…….”

콰아앙!!!

가이우스가 대지를 박차고 아시테르를 뛰어넘으려 했다.

그러나 그의 앞을 가로막는 이들이 있었다.

“물러서 아시테르. 이 사람 발할라야.”

가이우스가 입고 있는 옷은 발할라의 최고 간부임을 나타내는 옷이었다.

그것을 알아차린 마법기사들이 가이우스의 앞을 막은 것이다.

“비켜 주었으면 좋겠는데… 나는 내 딸을 살려야 한다. 여기서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어……!”

“미안하지만 그럴 순 없을 것 같아요. 당신을 이대로 보냈다간 이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요.”

“나는 발할라에 배신당한 사람이다. 놈들은 내 딸을 고쳐 준다고 해놓고 이 지경으로 만들어놨어!! 그러니 비켜라!”

슈우우우웅-!!!

가이우스의 전신에서 엄청난 마력이 폭발했다.

그는 자신을 가로막는 모든 이들을 부숴 버릴 기세였다.

그때 유미르가 가이우스의 앞에 섰다.

“진정하시겠습니까.”

“비키란 말이다!!”

콰아앙!!

가이우스의 주먹과 유미르의 검이 부딪혔다.

묵직한 힘에 유미르도 눈에 이채를 띠었다.

가이우스는 릴리아를 끌어안은 채로 몸을 회전했다.

파쾅!!

수직으로 상승하던 발이 검날에 가로막혔다.

가이우스는 잔뜩 흥분한 상태.

이런 상황에서 대화가 순조롭게 이어질 리 없었다.

유미르가 검을 회전시켜 가이우스의 팔을 베었다.

놀랍게도 그의 검기는 가이우스의 팔에 상처를 내 버렸다.

“뭣……?!”

가이우스의 부릅뜬 눈이 자신의 팔을 살폈다.

어지간한 마법에는 흠집조차 나질 않는 몸에서 핏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럴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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