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화 군단장의 의지 (1)
하이드라를 삽시간에 집어삼킨 흑점이 점점 크기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하이드라의 몸은 완전히 흑점에 흡수된 상태였다.
그렇게 흑점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크기를 줄여 나가고 있었다.
“끄… 끝난 건가……?”
“테르세우스님이 마침내 승리하신 것 같은데……?”
“이겼다… 이긴 거야!! 우리가 이겼다아아!!!”
슬금슬금 눈치를 보던 마법기사들이 하나둘씩 말을 거들기 시작했다.
흑점 속에 빨려 들어가던 하이드라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흑점은 조용히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저것이 완전히 모습을 감추는 순간 하이드라도 이곳에서 사라지고 만다.
몇몇 마법기사들이 승리를 점치며 벌써부터 환호성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마수가 죽었다!!!”
“테르세우스님이 마수를 죽였어―!!”
“와아아아!! 우리가 이겼어!!”
그들이 두 팔을 번쩍 들며 승리를 자축했다.
지켜보던 발할라도 얼떨떨한 표정으로 테르세우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 엄청난 마수를 결국 단신의 힘으로 제압해 냈다.
그가 보인 마법은 그야말로 위대했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마법 공격들과 하이드라를 집어삼켜 버리는 어마어마한 마법까지.
테르세우스의 마법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자신들은 그런 테르세우스를 적으로 돌렸던 것이다.
“우리들은 애초에 이스트 왕국을 어찌하지 못했을 거야…….”
“테르세우스 군단장이 있는 한… 이스트 왕국은…….”
“아아아… 이럴 때 오르카이우스님은 어디 가셨단 말인가!”
마법기사들의 기세가 한층 더 상승했다.
초대형 마수까지 제압한 지금, 그들은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었다.
이 기세라면 발할라도 금방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반면 발할라는 마법기사들의 기상과 테르세우스의 엄청난 실력에 기세가 죽어 버리고 말았다.
마법기사들이 몸을 돌려 발할라에게 향하려는 순간이었다.
쩌저저정―!!!
허공에 선명한 균열이 일었다.
“흡……!”
그와 동시에 테르세우스가 입술에 핏물을 머금었다.
붉게 충혈된 테르세우스의 두 눈이 균열된 공간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럴 수가……!”하이드라는 놀랍게도 자신의 아공간을 힘으로 깨부수고 있었다.
막대한 양의 마기에 아공간에 금이 갔다.
이런 적은 태어나 처음이었다.
테르세우스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찰그라라랑―!!
깨져버린 공간 속에서 하이드라가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아홉 개의 머리가 어지러이 뒤엉키며 앞다투어 밖으로 빠져나왔다.
잔뜩 흥분한 머리들이 마법을 날리기 시작했다.
잠시나마 승리에 도취되어 있던 마법기사들의 얼굴에 순식간에 어둠이 드리웠다.
“아아…….”
콰라라랑!!
쿠르릉―!!!
재앙을 두 눈으로 볼 수 있다면 바로 지금의 장면들이 아닐까.
각기의 마법들이 쉴 새 없이 쏟아지며 주변의 인간들을 무자비하게 공격하고 있었다.
불길에 휘말린 기사들이 고통에 몸부림쳤고 독에 중독된 마도사들이 게거품을 물며 쓰러지기 시작했다.
테르세우스가 핏물을 닦으며 앞으로 걸어 나왔다.
“군단장님. 잠깐이라도 휴식을 취하시며 몸을 회복하십시오.”
시리아스가 테르세우스의 앞을 가로질렀다.
그의 양손에 가득한 불덩이가 마수를 향해 날아갔다.
“마수놈아!! 나 시리우스가 이곳에 있다!!!”
그는 일부러 크게 소리치며 마수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리고 이 작은 도발은 크게 성공했다.
예민해질대로 예민해진 하이드라가 시리아스의 목소리에 반응했다.
콰라라랑!!
꼬리 부분에 달린 머리가 대지를 긁으며 채찍처럼 휘었다.
시리아스의 불길이 그것을 막으며 하늘 높이 치솟아 올랐다.
허공으로 퍼진 불길이 한순간 하이드라의 시선을 가렸다.
“받아라―!”
강렬한 불길이 나선처럼 휘며 하이드라의 목을 잘라 버렸다.
나머지 머리들이 분노하며 시리아스를 집중적으로 노렸다.
홍련의 마법기사단이 시리아스를 보호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단장님!!! 위쪽으로 피하십시오!!”
“이쪽은 저희가 맡겠습니다!!!”
“단장님을 서포트해라!”
그들의 합류에 시리아스가 더욱 힘을 내었다.
그의 웅혼한 마력이 다시금 요동쳤다.
테르세우스가 부상을 당한 만큼, 저 마수도 멀쩡한 상태는 아닐 거란 생각이었다.
분명 지쳐있거나 데미지가 쌓여 있을 터다.
그러니 저놈을 죽이려면 지금이 기회였다.
회복할 틈 따윈 주지 않는다.
여력이 되는 한 시리아스는 계속해서 공격을 이어 가고 또 이어 갈 생각이었다.
콰드드득!!!
콰장차차차장!!!
하이드라는 보란 듯이 홍련의 마법기사단에 마법을 쏟아 부었다.
어느새 하이드라와 홍련의 마법기사단.
이 둘의 대결 구도가 만들어졌다.
다른 평범한 기사들은 감히 이 전투에 끼어들지도 못했다.
수많은 훈련으로 이루어진 유기적인 움직임.
자신들의 개입은 이 유기적인 움직임에 방해만 될 뿐이었다.
홍련의 마법기사단은 그동안의 전술들을 최대한으로 펼쳐내며 하이드라를 압박했다.
그런 홍련의 마법기사단의 모습은 가히 이스트 왕국에서도 내로라하는 마법기사단다웠다.
“대단해!!!”
“홍련의 마법기사단 힘내라―!!”
“힘내세요!!”
“마수를 죽여 주십시오!!”
먼발치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국민들이 크게 소리쳤다.
그들도 이곳에 남아 싸우는 마법기사들이 마음에 걸려 차마 먼 길을 오르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마법기사들이 보이는 곳에 올라 애타는 마음으로 이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하이드라가 마기를 퍼부우니 순간적으로 어둠이 지면에 내려앉았다.
그 짙은 마기 속에서 하이드라가 불꽃을 피웠다.
콰라라랑―!!!
커다란 폭음과 함께 홍련의 마법기사단 몇 명이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그들은 그 자리에서 절명한 채로 바닥을 뒹굴었다.
동료들의 죽음을 본 홍련의 마법기사들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끄아아아아아아아아―!!!”
“죽여!!! 저 새끼를 죽여야 해!!”
“이 빌어먹을 새끼이이!!”
그들이 악에 받혀 욕지거리를 내뱉기 시작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치밀어 오르는 감정에 이성마저 잃고 날뛰기만 할 것 같았다.
수년을 함께 해 온 동료들이 싸늘한 시신이 되어 차가운 대지 위에 누웠다.
조금 전까지 웃고 떠들던 이들이 하이드라의 독기에 피를 토하며 쓰러지고 있었다.
하나둘씩 동료를 잃어갈 수록, 홍련의 마법기사단도 천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나마 시리아스는 계속해서 마력을 끌어올리며 최대한으로 하이드라를 견제해 내고 있었다.
하지만 시리아스마저도 잔뜩 지쳐 있는 상태였다.
죽어 가는 동료들의 몫까지 다 해내려고 하니 무리가 올 수밖에 없었다.
“크하아아! 하아아아……!”
시리아스가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거친 숨을 들이마시고 있었다.
두 손을 부들부들 떨려 온다.
자신은 잠깐 상대했는데도 이 지경이었다.
그런데 테르세우스는 저런 괴물을 상대로 수십 분간을 싸웠다.
거기다 단신의 힘으로 잠깐이나마 저 마수를 압도하기까지 했다.
“젠장…!! 군단장님과의 차이가 이 정도였나……!”
자신의 꼬라지를 보라.
그거 잠깐 상대했다고 가슴이 터져 버릴 것처럼 턱밑까지 차올랐다.
거기다 더 이상 마력도 뜻대로 움직여 주질 않았다.
초위 수준에 올라서고 이렇게까지 한계 상황에 몰려 본 적은 처음이었다.
“제기랄… 젠장!!! 제에에젠장!!!”
시리아스가 연신 소리를 내질렀다.
이렇게라도 기합성을 터트려 몸을 움직이고자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테르세우스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이제 바통 터치네.”
“예……?!”
“잘 버텨 주었네. 이제부터는 다시 내가 맡도록 하지.”
“하지만 군단장님……!”
후우우웅―!!!
테르세우스의 전신에서 마력이 폭발하듯 끓어올랐다.
그 많은 마법을 사용했는데도 아직까지 저 정도의 저력이 남아 있다.
시리아스는 그런 테르세우스를 지켜보며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저 분이 인간은 맞긴 맞는 건가……?’
한계라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닐까.
그 사이에 몸을 회복한 테르세우스가 과감하게 하이드라와 홍련의 마법기사단 사이로 뛰어들었다.
잠깐 하이드라를 풀어 두었건만 벌써 수백 명의 사람들이 죽었다.
“더 이상의 희생은 없다.”
테르세우스가 두 팔을 펼쳤다.
그의 마력이 빠르게 공간을 장악했다.
허공에 떠오른 아공간들이 하이드라를 포위하듯 늘어섰다.
“캬아아아아아―!!”
하이드라가 가소롭다는 듯이 테르세우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모르고 당해 주었지만 두 번은 없다.
아홉 개의 머리가 아공간을 향해 마기를 내뿜었다.
아공간이 감당할 수 있는, 그 이상의 막대한 마기를 하이드라는 양껏 뿜어내고 있었다.
테르세우스의 두 팔이 파르르 떨렸다.
그야말로 엄청난 양의 마기!
평생 동안 함께 해온 아공간이 이렇게나 요동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테르세우스가 입가에 미소를 보였다.
“너도 견디기 힘든 게로구나…….”
그의 입술에 또다시 핏물이 고였다.
울컥 올라온 핏물이 턱을 타고 발밑으로 뚝뚝 떨어졌다.
그러나 테르세우스는 눈앞의 마법에 무서울 정도로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공간이 다시금 균열을 일으켰다.
테르세우스가 감당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한 마리의 마수가 이렇게나 방대한 양의 마기를 뿜어 낼 수 있다는 것부터가 사실은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네놈 손에 우리 왕국이 멸망하게 둘 수는 없다..”
테르세우스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가 다시 한번 발을 구르자 마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구… 군단장님……?”
그것을 지켜보던 시리아스가 무언가 잘못되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테르세우스의 얼굴이 너무나도 비장했다.
쿠드드드드등―!!!
몸을 일으키는 대지를 딛고 테르세우스가 높이 올라섰다.
그의 시선과 하이드라의 시선이 마주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열여덟 개의 눈동자들.
그 눈동자들 앞에서도 테르세우스는 전혀 위축됨이 없었다.
오히려 그는 두 눈을 불같이 뜨며 하이드라를 노려보고 있었다.
“모두 멀리 떨어져라아아아!!!”
그때 테르세우스의 사자후가 대기에 울려 퍼졌다.
엄청난 소리에 마법기사들 모두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았다.
시리아스가 재빨리 테르세우스의 명령을 다시 한번 옮겼다.
“군단장님의 말씀을 못 들은 거냐?! 모두 떨어져!!!!”
“떨어져라!!!”
“여기서 벗어나!!”
“이곳에서 벗어나라고!!!”
기사들이 여기저기 테르세우스의 명령을 발 빠르게 옮겼다.
그것을 본 테르세우스가 희미하게 웃으며 파르르 떨리는 손을 앞으로 움직였다.
그의 손짓에 따라 아공간이 격한 떨림을 보이며 똑같이 움직였다.
“네 것이니… 다시 가져가거라. 어리석은 미물아.”
수많은 아공간에서 동시에 쏟아지는 칠흑빛 광선.
그것은 조금 전 하이드라가 쏘아 낸 마기의 덩어리들이었다.
거기다 테르세우스는 지금까지 아공간에 저장해 두었던 마법의 전부를 이곳에 쏟아 내고 있었다.
모든 속성을 담은 마법이 동시다발적으로 하이드라를 공격했다.
몇 배는 더 강력해진 마기가 사정없이 하이드라의 몸에 구멍을 내었다.
거친 폭발이 일어나고 핏물이 허공에 분수처럼 튈 때마다 하이드라의 머리들이 고통스런 비명을 토해 내며 휘청거렸다.
놈은 정신없이 쏟아지는 마법 공격들 속에서 테르세우스를 찾았다.
저 인간만 죽이면 된다.
그러면 이 마법도 끝이 날 터다.
피투성이가 된 머리 하나가 테르세우스를 향해 빠르게 전진했다.
“테르세우스님!!!”
“군단장님!! 위험합니다!”
“피, 피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격렬한 외침에도 테르세우스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는 두 팔을 든 채로 우직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아아…….”
“으아아아―!!!”
하이드라의 머리가 테르세우스를 덮치려는 순간, 누군가 달려드는 머리를 단번에 잘라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