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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227화 (227/424)

227화 군단장의 의지 (3)

모든 머리를 잘린 하이드라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꼿꼿이 펼쳐진 목들이 하나둘 축 늘어지기 시작하더니, 끝내 지탱하고 서 있던 몸뚱이마저 바닥에 쓰러졌다.

숨죽여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기사들이 환호성을 터트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주… 죽었다!!!”

“드이어 마수가 쓰러졌다아아아!!!”

“우리가 이겼다!!!”

“이스트 왕국 만세!!!”

“군단장님 만세에에에!!!”

커다란 외침이 끊임없이 전장에 울려 퍼졌다.

털썩.

여기저기 바닥에 주저앉는 사람들이 발생했다.

전투가 끝나자 긴장이 한번에 풀린 탓이다.

뜨거운 숨을 몰아쉬던 칸도 두 손으로 다리를 짚었다.

마지막은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

조금이라도 힘과 컨트롤이 부족했더라면 꼼짝없이 하이드라의 마기와 함께 날아갈 뻔했다.

텁썩.

그때 누군가가 뒤에서 칸의 어깨를 짚었다.

“잘했다.”

목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칸이 슬쩍 미소를 보였다.

“단장을 지키는 것도 제 역할입니다.”

“그래. 그 역할 충실히 해주었구나.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히스링도 입가에 미소를 보였다.

단장의 칭찬에 칸도 기분이 좋아졌다.

“구… 군단장님!!!”

“군단장님이!!!”

그때 뒤에서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들려왔다.

히스링이 곧바로 몸을 돌려 테르세우스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치료 마도사!! 치료 마도사를 불러라!!”

다급하게 다려가면서도 히스링은 치료 마도사를 찾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테르세우스의 곁에 있는 이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가까이서 테르세우스를 살피던 랑프레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이는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도 테르세우스를 보며 끝내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빠르게 달려온 히스링이 두 눈을 부릅떴다.

미동조차 없다.

아무런 움직임도 없다.

사람이 숨을 쉬면 작은 움직임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테르세우스에게선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질 않았다.

“아아…….”

테르세우스는 두 눈을 감은 채, 입가엔 희미한 미소를 띠우고 있었다.

본 것이다.

하이드라가 끝내 쓰러지는 모습을.

마법기사들이 힘을 합쳐 저 괴수를 죽이는 그 장면을!!

마지막으로 두 눈에 담을 수 있어서 행복했던 것이다.

하이드라가 쓰러지는 것을 보고나서야 테르세우스는 마침내 눈을 감을 수 있었다.

히스링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붉게 충혈된 그의 두 눈이 테르세우스의 마지막 모습을 담고 또 담았다.

입술을 질끈 깨문 랑프레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단장님… 보고 드리겠습니다. 초대형 마수를 처치하였고, 도망치는 발할라의 잔당들도 속속들이 잡아들이고 있습니다. 전투는 모두 승리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사망자들이 발생. 수도를 지키는 기사들 중 사망자는 총 1만여 명이 넘는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그중에는 군대…….”

“그만.”

히스링이 랑프레의 말을 끊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테르세우스의 뺨을 어루만졌다.

살이 모두 빠지고 앙상하게 뼈만 남은 얼굴이었다.

“언제까지… 군단장님을 이곳에 서있으시도록 둘 거냐. 안으로 모시자.”

히스링이 테르세우스를 안아들었다.

과연 인간이 이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가벼운 무게였다.

테르세우스를 안아든 히스링이 무거운 걸음을 옮겼다.

“다.. 단장님! 저희가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맞습니다. 단장님께서도 지금 정상적인 몸 상태가 아니질 않습니까!”

“저희가 테르세우스님을 모실테니 단장님께서도 휴식을 취하셔야 합니다.”

마법기사들이 히스링에게 다가와 말했다.

그러나 히스링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테르세우스님은 내가 모시겠다. 30년 동안 모셔 온 나의 상관이다. 그럴 수 있도록 배려해 주겠나.”

붉어진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철의 단장이라 불리는 히스링이 눈물을 보이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으아아아―!!!”

꾹 눌러 참고 있던 랑프레가 끝내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모두가 함께 억누르고 있었지만, 한 명의 울음보가 터지기 시작하니, 다른 기사들도 결국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군단장님…….”

“테르세우스님……!”

“흐끅… 끄흐으으…….”

여기저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모두가 죽은 테르세우스를 바라보고 있었다.

“군단장님…….”

칸이 자신의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마지막으로 테르세우스가 붙잡아 주었던 손이었다.

그는 칸의 손을 잡으며 이스트 왕국의 미래를 부탁한다는 말을 했었다.

어쩌면 언젠가 이런 상황이 올 것을 미리 예상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너무 빠릅니다. 이건 예상과는 다르시지 않습니까……?”

칸조차도 앞으로도 군단장은 테르세우스 일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그것은 당연한 일과도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 당연한 흐름이 깨져 버리고 말았다.

갑자기 나타난 마수.

그 마수 때문에 모든 것이 깨져 버리고 말았다.

나중에 마법기사단의 단장이 되었을 때, 칸의 앞에는 늘 군단장 테르세우스가 있었다.

그가 해맑은 미소를 보이며 단장의 패를 수여하는 장면.

꿈속에서도 늘 그리던 장면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이 불가능하게 되어 버렸다.

테르세우스의 몸은 점점 차가워졌고 딱딱하게 굳어갈 것이다.

칸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군단장님…….”

군단장 테르세우스의 죽음.

이 사실은 빠르게 전장 전체에 옮겨 갔다.

내성에서 끝까지 자리를 지키던 왕의 귀에도 이 소식은 여지없이 전해졌다.

“그런가…….”

헨카일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오랜 친구를 잃고 말았다.

숨 막히는 왕성 속에서 유일하게 마음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친구를.

언젠가 왕의 자리에서 물러났을 때, 그는 신분과 나이를 떠나 테르세우스와 많은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럴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이 사람… 오래도록 내 곁을 지켜 달라니까 뭐가 그리 급하다고 떠나갔나…….”

헨카일로가 읊조리듯 말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에는 쓸쓸함이 가득했다.

“전하…….”

“그를 죽인 것은 마수였는가. 아니면 짐과 국민들인가…….”

“군단장님께선 왕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신 겁니다. 군단장님이 아니었다면 더 큰 피해를 입었을 겁니다…….”

“짐도 알고 있네…….”

헨카일로가 몸을 일으켰다.

마수의 등장과 함께 발할라는 도망치기에 바빴다.

그들은 겉으로 이 나라의 혁명을 꿈꿨다.

그러나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이는 없었다.

나라가 잘못되었다 말하면서,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킬 용기는 없었다.

“테르세우스는 늘 말했지. 발할라도 결국 우리 왕국의 국민들이라고. 그들을 포용해야 한다고.”

“기억합니다.”

“허나 이것만은 테르세우스가 틀린 것 같군. 그들은 우리 왕국의 국민들이 아니야. 모두가 목숨을 걸고 용기있게 싸울 때. 그들은 이 나라를 두고 도망쳤다. 그러니 지금부터 나는 공식적으로 선포한다. 우리 기사들과 함께 마수와 싸운 발할라가 있다면 그들을 돕되, 남은 이들은 모두 왕국의 적으로 표한다!”

“예!!!”

“예!!”

곁에 있던 왕실기사단과 신하들이 고개 숙여 우렁차게 답했다.

이어 헨카일로가 먼 하늘을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테르세우스의 장례는 누구보다 성대하게 치르게.”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내 오랜 친구의 마지막 가는 길이니… 작은 소홀함도 있어선 안 된다. 내가 지켜볼 것이야.”

“예.”

헨카일로는 애써 한 마디 더 붙였다.

사실 그가 말하지 않아도 테르세우스의 장례를 준비하는 데엔 소홀함이 없을 터다.

그럼에도 그가 이런 말을 덧붙인 것은 자신이 특히나 더 신경쓰고 있음을 알린 것이다.

더불어 테르세우스의 장례에 딴지를 거는 귀족들이 있다면 결코 가만 두지 않겠다는 무언의 경고나 다름없었다.

* * *

“하… 하하… 이것 참.. 어이가 없을 지경이로구나…”

먼발치서 이 모든 것들을 지켜보고 있던 반켈이 쓴웃음을 지었다.

하이드라는 자신의 일생을 바친 역작이나 다름없었다.

놈을 소환하기 위해 바친 세월이 몇십 년이다.

그런 하이드라로도 이스트 왕국을 파멸시키지 못했다.

모든 것을 다 파괴할 것처럼 나섰던 하이드라도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었다.

하이드라가 약했느냐?

아니 그것은 아니었다.

이스트 왕국 수도의 반절 가까이가 하이드라에 의해 파괴되었으니까.

수도의 반절을 부숴 버린 놈이 약할 리가 없었다.

“어마어마한 존재였구나 테르세우스……!”

발할라의 최고 간부 중 하나인 레이칸을 손쉽게 제압한 것만 봐도 그가 강할 거라 짐작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마신이라 일컬어지는 하이드라를 한순간이나마 단신의 몸으로 압도하다니…….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테르세우스는 엄청난 마법으로 하이드라를 압도해 내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의 뒤를 이어 받아 마법기사들이 끝내 하이드라를 죽이는데 성공했다.

오랜 기간에 걸친 반켈의 대계가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쯧… 이렇게 된 이상 사라번을 이용해 후일을 도모하는 수밖에 없나…….”

지금쯤이면 사라번도 마법기사단을 전멸시키고 자신의 세력 확장에 최선을 다하고 있을 터다.

다행이 사라번은 하이드라보다는 아래 급수의 마수였기 때문에 반켈의 통제가 가능했다.

그가 몸을 돌리려는 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있었군.”

“오르카이우스님?”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의 주인은 오르카이우스였다.

오르카이우스가 반켈을 향해 미소를 보였다.

“아주 기특한 짓을 했더군 반켈.”

“그게 무슨…….”

“나 몰래 그런 것들을 준비해 오다니.. 솔직히 좀 놀랐어.”

후우우웅―!

오르카이우스의 위로 빛이 번졌다.

빛의 창.

그것을 본 반켈이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후후 이게 무슨 의미입니까?”

“보이는 그대로지.”

“이해할 수가 없군요. 당신도 이스트 왕국을 싫어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제가 도운 것뿐인데..”

“그래. 나는 작금의 이스트 왕국을 싫어한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스트 왕국을 멸망시키고자 하는 것은 아니었다.”

“왕국을 멸망시키고 새로운 왕국을 다시 세우면 되는 것 아닙니까.”

“아니. 너는 그 선을 넘었다. 네가 행하려 한 것은 인간의 멸족이었어. 단순히 이스트 왕국을 멸망시키는 선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으하하하하!!! 그래서, 이제와 나를 죽이기라도 하겠다는 겁니까?”

“못할 이유가 없지. 너 때문에 나는 내 동료들과 오랜 친구를 잃었거든. 네놈이더구나 살아남은 레이칸을 비롯해 수많은 발할라 동지들을 죽인 것이.”

“웃기는군. 평소에는 신경쓰지도 않았으면서 이제와 이러는 것이 가증스러울 정도야!! 하지만 뭐 상관없다. 어차피 네놈과 발할라가 실패한 시점에서 나는 따로 행동하려 했으니까.”

“그럴 순 없을 거다. 너는 내 손에 죽을 테니까.”

“글쎄… 그게 과연 당신 마음대로 될까 의문이로군.”

반켈이 손짓하자 모습을 감추고 있던 흑마도사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전세가 역전된 상황에 반켈이 대놓고 흉악한 미소를 지었다.

“크하하하 이제 어떻게 할 거냐?! 나는 사실 처음부터 네놈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치 자신은 깨끗한 척. 비운의 주인공인 척!! 그 짜증나는 태도가 거슬렸는데, 차라리 잘 되었어. 내 수하들과 함께 너를 죽여 주마.”

“다 지껄였나?”

슈파아아앙―!!!

쩌저저정!! 콰지지직―!!

빛의 창이 사방으로 쏟아지며 흑마도사들의 몸을 꿰뚫었다.

이어 하늘 위에 떠오른 마법진이 찬란한 빛을 뿜어내며 물러나는 흑마도사까지 사정없이 공격했다.

수하들이 속절없이 당하는 모습을 본 반켈의 두 눈동자가 눈에 띠게 흔들렸다.

순식간에 주위가 정리되었다.

살아남은 수하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오르카이우스의 차가운 시선이 반켈에게로 향했다.

“이런 떨거지들을 데리고 그렇게 우쭐대고 있었던 거냐?”

반켈이 입술을 들썩거렸다.

어마어마한 마력이 오르카이우스에게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뭔가 착각하고 있나 본데. 나는 발할라의 수장이 되기 이전에 여명의 마법기사단을 창단한 마법기사단장이었다. 군단장의 후보까지 올랐던 이 나를. 너무 우습게보고 있던 것 아니냐?”

키유유웅―!

오르카이우스의 안광이 폭사되자 세상이 온통 하얀 빛으로 물들었다.

“아… 안 돼!!!”

반켈이 있는 힘을 다해 오르카이우스에게 저항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새햐얀 빛이 사라질 때쯤 붉은 핏물이 흘러나와 대지를 적셨다.

툭.

수백 개의 빛에 몸이 꿰뚫린 반켈이 힘없이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죽은 반켈을 바라보던 오르카이우스가 고개를 돌려 이스트 왕국쪽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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