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에서 왔습니다만-229화 (229/424)

229화 발할라의 최후

한 번.

단 한 번의 마법으로 몬테고르와 푸글레시가 피를 뿜으며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가, 가이우스……”

“제기랄… 쎄잖아…….”

멀쩡한 모습의 가이우스가 우뚝 서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를 올려다보던 몬테고르가 입술을 들썩였다.

“우리를… 죽였다고 해서 안심하지 마라… 뒤에는 펜도님이 계시니까…….”

“상관없다.”

가이우스는 그들의 숨통을 끊어 주었다.

순식간에 몬테고르와 푸글레시를 제압해 낸 가이우스를 보며 다른 동료들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특히나 가이우스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은 더욱 충격을 받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저 사람은 누구야……?”

“나도 잘 모르겠어…….”

발할라 최고 간부 중 한 명이었던 가이우스가 이제는 아시테르를 주군으로 모시기 시작했다.

그 말은 즉, 아시테르가 엄청난 전력을 얻었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가이우스를 바라본 유미르가 피식 웃었다.

“좋은 동료들이 하나둘씩 생기고 있구나.”

아시테르의 곁에는 어느새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연연인 알렌시아를 비롯해 오랜 친구로 지내온 에스파.

그리고 그 옆에는 어렸을 때부터 아시테르를 바라온 세아츠리스도 있었다.

아시테르를 든든하게 지켜 주는 가이우스도 이제는 함께였다.

저 다섯 명만 해도 어지간한 기사단쯤은 가볍게 상대해 낼 것이다.

“우리 아들도 이제 다 컸어. 그렇지? 아레나.”

“우리도 나이를 먹고 있으니. 아시테르도 그만큼 성장했겠지.”

두 사람의 시선이 앞에 나타난 펜도를 바라보고 있었다.

발할라 최고 간부를 상징하는 붉은 옷.

온통 붉은 색으로 물든 옷을 입은 펜도가 보기 좋게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그는 지금 눈앞에 펼쳐진 작금의 상황이 쉽게 이해되질 않았다.

다른 녀석들이라면 몰라도 몬테고르와 푸글레시는 그가 공들여 키운 수하들 중 하나였다.

둘이 함께 있으면 어느 누구에게도 쉽게 당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들은 벌써 바닥에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거기다 수백에 다다르는 수하들도 모습을 보이질 않았다.

“이게 뭐냐…? 이게 뭐야?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냐고오!!!”

기껏 키워 낸 수하들이 모두 죽어 있었다.

두 눈을 부릅뜬 것은 펜도만이 아니었다.

곁에 있던 베살로와 렌터키도 놀란 눈치였다.

그들이 이끌고 온 백여 명의 수하들.

이제는 그들이 전부였다.

“저기 두 사람이…….”

베살로가 앞에 보이는 유미르와 아레나를 가리켰다.

검을 들고 있는 유미르와 불길을 피워낸 아레나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때 펜도의 시선에 뒤편에 자리한 가이우스가 보였다.

“가이우스으으으으―!!!!”

분노에 찬 펜도가 가이우스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가이우스의 시선도 자연스레 펜도에게로 향했다.

“네가 어째서 거기에 있는 거냐!?”

“이곳이 내 자리이기 때문에 여기에 있다만.”

“너… 설마 우리를 배신한 거냐?”

가이우스는 말없이 아시테르의 앞에 섰다.

마치 펜도가 아시테르를 노리겠다면 자신이 먼저 상대해 주겠다는 무언의 메시지와도 같았다.

그 모습에 펜도가 이를 갈았다.

“저 찢어죽일 새끼! 하여간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는 새끼였다니까!!”

“어떻게 하죠…? 펜도님…….”

상대를 살핀 베살로가 그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일단 앞에 두 명부터 족치고… 그 다음 저 배신자까지 갈아 마신다.”

“역시 그렇게 나오실 줄 알았다니까!!”

몸이 근질거려 대기하고 있던 렌터키가 먼저 앞으로 튀어나갔다.

그녀를 본 유미르가 앞으로 걸어 나갔다.

“여기서부터는 나 혼자 해도 되지?”

“마음대로 해.”

“그래도 아들한테 선물 하나쯤은 주고 가고 싶어서 말이야.”

유미르가 검을 들어올렸다.

동시에 환한 빛무리가 검을 감싸안기 시작했다.

“와아… 검사는 진짜 오랜만에 보네. 근데 어쩌지? 검사같은 나약한 존재가 내 아이들을 상대하기엔 무리일 것 같은데. 으히히히!!!”

괴랄하게 웃어젖힌 렌터키가 마력을 끌어올렸다.

보랏빛을 머금은 마력이 단숨에 마법진을 그렸다.

그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기괴한 생명체였다.

마수들의 신체를 덕지덕지 기워 넣은 것 같은 기괴한 모습이었다.

“저게 뭐야…….”

마수들보다도 더 괴물처럼 생긴 끔찍한 모습에 지켜보던 이들도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곁에 있던 가이우스가 입을 열었다.

“렌터키는 주로 흑마도사들과 연구를 진행해 온 마도사입니다. 그 과정에서 마수들을 길들여 보기도 하고 놈들의 신체를 다시 배합해서 더욱 강한 생명체를 만들어 내기도 했습니다.”

“에…….”

“그럼 저것도 다 다른 마수들의 신체를…….”

“맞습니다. 각기 다른 마수들의 신체를 떼와서 하나의 마수에 합친 것이죠. 흑마도사들과 렌터키는 저것을 키메라라고 부릅니다.”

“끔찍하네 정말…….”

“마수들을 저렇게 이용할 생각을 하다니…….”

그러나 키메라들도 유미르의 상대는 아니었다.

애초에 어비스 던전에서 수많은 마수들을 상대해 온 유미르에게 인간이 만들어 낸 조잡한 마수 따위가 비빌 수 있을 리 없었다.

우두머리급도 안되는 키메라에게 유미르가 일검을 휘둘렀다.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던 검선이 한순간 방향을 틀며 곧은 직선을 그렸다.

그것을 본 아시테르가 두 눈을 빛냈다.

마치 순간적인 가속이 붙은 듯 보였다.

아시테르의 시선을 본 유미르가 피식 웃었다.

역시나 아시테르라면 알아볼 줄 알았다.

그렇다면 계속해서 보여 줘야겠지.

마침 눈앞에 있는 키메라가 다시 재생하기 시작했다.

유미르는 검을 고쳐 잡고 다시 기수식을 취했다.

검은 빨랐다가 느리게.

느리게 움직였다가 다시 빠르게 움직였다.

그 기묘한 움직임에 아시테르는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저건 대체 무슨 검술인지…….”

완급의 조절이 유려하게 이어진다.

예측할 수 없는 유미르의 검에 키메라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할뿐이었다.

검끝이 돌아갈 때마다 선이 궤도를 바꾸었다.

뒤따라오는 환한 빛무리가 키메라의 몸을 사정없이 찢어 놓았다.

유미르의 검술을 지켜보던 아시테르가 연신 감탄을 쏟아 냈다.

그동안 지켜봐 왔던 검술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유미르의 검술이 아시테르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 주고 있었다.

그 사이 키메라는 모두 터져 버리고 말았다.

렌터키가 준비한 키메라는 모두 3마리.

안타깝게도 세 마리 모두 유미르의 검에 속절없이 당해 버리고 말았다.

“말도 안 돼…….”

렌터키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심혈을 기울여 만든 키메라가 이토록 쉽게 제압당할 줄은 꿈에도 예상치 못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녀가 상대하는 이는 평범한 마도사가 아닌 유미르였다.

만약 다른 마도사들과의 전투였다면, 그녀의 키메라는 상당히 빛을 보았을 것이다.

“비켜라. 내가 상대하겠다.”

유미르가 보통이 아님을 깨달은 베살로가 곧바로 마법을 사용했다.

베살로는 강철로 이루어진 손아귀를 만들어 내었다.

그것을 본 유미르가 피식 웃었다.

“강철 마법이라…….”

눈앞에 있는 베살로도 분명 상당한 수준의 마도사였다.

그러나 유미르는 베살로보다 훨씬 더 뛰어난 강철 마도사를 알고 있었다.

유미르의 검이 수직으로 상승했다.

철커어엉―!!

스카아아아앙―!!!

강철로 된 손아귀에 직선이 그어졌다.

양쪽으로 갈라진 강철 사이로 유미르가 몸을 날렸다.

“어림없는……!”

베살로가 곧바로 강철 방패를 만들어 내었다.

그러나 이것 또한 유미르가 알고 있는 마도사에 비하면 물렁한 수준이었다.

유미르는 단칼에 방패를 베고 앞으로 나아갔다.

전광석화같은 그의 움직임에 렌터키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이제야 알았다.

자신을 상대할 때 유미르는 전혀 제대로 된 실력을 드러내질 않았던 것이다.

“으아아아―!!!”

자존심 상한 그녀가 울부짖고 있는 때 베살로가 강철 골렘을 일으켰다.

상대가 골렘까지 소환하자 유미르가 눈에 이채를 띠었다.

단순한 강철 마도사인줄 알았더니, 진짜는 이쪽인 모양이었다.

몸을 일으킨 강철 골렘이 손아귀를 펼치며 유미르를 붙잡으려 했다.

그러나 유미르는 깃털처럼 가볍게 떠오르며 손쉽게 손아귀를 피해 냈다.

이어 허공에서 한바퀴 회전한 유미르가 검을 한껏 당겼다.

달빛 가르기.

수평으로 날아간 환한 달빛이 골렘의 몸통에 선명한 자국을 남겼다.

한 번에 베어 버릴 생각이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단단한 몸이었다.

그러나 상관없다.

‘베고자 하면 베지 못할 것이 없다.’

그것이 유미르가 비체에게 배운 첫 번째였다.

달빛으로 이루어진 오러가 순식간에 여러 갈래로 빗발쳤다.

쉬지 않는 검격에 강철 골렘의 몸이 진동하듯 흔들리기 시작했다.

콰라라랑!!!

쿠구구궁―! 쿠구궁!!!!

엄청난 연격에 베살로조차 정신을 못차릴 지경이었다.

골렘을 케어해야 하는데 그게 완전히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마력으로 골렘을 수복해도 금세 부서져버리니, 밑 빠진 독에 물을 들이붓는 격이나 마찬가지.

“저럴 수가…….”

그 광경을 지켜보던 가이우스조차 처음으로 눈동자가 흔들렸다.

저런 검격을 연달아 맞고 과연 자신은 얼마나 버텨 낼 수 있을까.

아무리 마법으로 막아 낸다고 해도 자신 없었다.

‘세상은 역시 넓구나…….’

검술로 저 정도 경지에까지 이르려면 대체 얼마만큼의 뼈를 깎는 수련을 해야 할까.

놀랍다 못해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더군다나 렌터키와 베살로를 동시에 상대해 내고 있음에도 유미르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과연…….”

살아오면서 봐온 강자 중 손에 꼽을 정도였다.

자연스레 가이우스의 마음 한쪽에서도 호승심이 끓어올랐다.

전투 마도사인 그로서는 강자와 싸우는 것 또한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다만 지금까지는 딸을 지키기 위해 본능을 억눌렀을 뿐이다.

화르르릉―!!

그때 한쪽에서는 펜도와 아레나의 싸움이 펼쳐지고 있었다.

푸른 불길에 펜도의 마법이 완전히 파훼되고 있었다.

“하필 화염 마도사냐?!”

마력으로 이루어진 실을 이용하는 펜도의 마법은 불과는 상성이 안 좋았다.

피어오르는 불길을 실로 막을 수도, 베어 낼 수도 없었다.

더군다나 아레나가 만들어 내는 불길은 다른 여느 화염 마도사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질긴 마력으로 이루어진 실이라 어느 정도는 버텨 내야 정상인데 녹아내리는 시간이 너무나도 빨랐다.

“재밌나요?”

“뭐?”

“사람들을 죽이는 것. 재미로 그랬다면서요?”

“으하하하―!! 그렇게라도 안하면 내가 심심해 미칠 것 같아서 말이야.”

“다행이네요.”

“뭐가?”

“당신을 죽이는데 일말의 죄책감도 가지질 않아도 되니까요.”

“하!! 아무리 내가 당신과 마법 상성이 안 좋다곤 해도. 날 너무 만만하게 보는 것 아닌가?”

펜도가 활짝 두 팔을 벌렸다.

아레나는 마법을 사용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피해가 가질 않도록 고도의 컨트롤을 보이고 있었다.

심지어 펜도 자신의 마법이 빗나가더라도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다른 이들까지 보호해 주었다.

그렇다면 지금 상황을 헤쳐나갈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마음이 약한 사람은 곧 약점 투성이니까.

“내가 재밌는 것 좀 보여 줄까?”

펜도의 마력이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투명한 마력의 실이 사람들의 몸 곳곳에 연결되었다.

“내 마법은 마리오네트거든. 그래서 이렇게 하는 것도 가능해.”

펜도의 마법에 당한 사람들이 기괴한 방식으로 몸을 꺾으며 움직였다.

두두두둑―!!

투둑!!!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연신 들려왔다.

저렇게 기괴한 방식으로 움직임을 보이니 몸이 멀쩡할 리 없었다.

“으아아아―!!!”

“사… 살려 주세요!! 살려 주십시오!!”

“아파… 너무 아프다고…….”

여기저기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그 비명 소리를 들으며 펜도는 즐거워하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