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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230화 (230/424)

230화 위대한 이들의 죽음

입술을 질끈 깨문 아레나가 곧바로 마법을 펼쳤다.

육망성을 그린 불길 한가운데로 펜도가 있었다.

“뭐… 뭐야?! 너…! 가만히 있어! 안 그러면 이 사람들이 죽는다고!”

“…….”

“제길… 제기랄 뭐하는 거야?! 여기 있는 사람들이 죽는다니까?!”

그러나 아레나는 마법을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뜨거운 불길이 용암처럼 튀어오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펜도가 당황해 몸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이대로 있다간 죽은 목숨이었다.

그 짧은 틈을 아레나는 놓치지 않았다.

그녀의 불꽃이 순식간에 마력의 실들을 태워 버렸다.

이어 대지에서 솟구친 커다란 불기둥이 한순간에 펜도를 집어삼켜 버렸다.

“끄아아아아!!!”

펜도의 고통스런 비명이 짧게 울려 퍼졌다.

발할라 최고 간부에 올랐던 펜도는 결국 허무한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아시테르나 다른 일행들이 나설 필요도 없었다.

아레나와 유미르가 순식간에 정리해 버리고 말았다.

아시테르 일행은 곧바로 영지에 갇힌 사람들도 풀어 주었다.

펜도가 사람들을 지독하리만치 괴롭힌 탓에 멀쩡한 사람들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이들은 살아남았다고 기뻐하고 있었다.

“그런데 당신들은…….”

원로 귀족 중 한 명이 아레나와 유미르를 알아보았다.

그러자 유미르가 웃으며 손가락을 자신의 입술에 가져갔다.

비밀로 해달라는 제스쳐였다.

“아아… 살아계셨던 겁니까…….”

“그야말로 진정한 영웅입니다.”

“이럴 때 나타나서 우리들을 구해 주시다니… 두 분이야말로 진정한 마법기사들이십니다……!”

“그런 말씀 마세요. 여러분들을 위해 다른 마법기사들도 목숨을 걸고 싸웠으니까요.”

“아, 아아… 그건 그렇죠…….”

그제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귀족 한 명이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이곳 영지를 총괄하던 사람들이 대다수 살아남은 덕분에 영지 관리는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차츰 안정을 찾아가려는 그때 누군가 급하게 달려와 외쳤다.

“소, 속보입니다…….”

“속보? 무슨 일인데?”

“수도에 초대형 마수가 나타났었다고 합니다.”

“초대형 마수……?!”

초대형 마수라는 말에 유미르와 아레나가 가장 먼저 반응했다.

그들이 어비스 던전에서 나온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유미르가 다급한 움직임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묻겠습니다. 초대형 마수가 지금 수도에 나타났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괜찮습니다.”

그의 대답에 유미르와 아레나가 동시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제는 괜찮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마수는 쓰러졌다고 합니다. 테르세우스님과 다른 마법기사들이 힘을 합쳐 놈을 쓰러트렸습니다.”

“테르세우스님이… 역시!”

유미르가 주먹을 꽉 말아쥐며 눈을 밝혔다.

그래, 이스트 왕국에는 테르세우스가 있었다.

그가 있는 한 이스트 왕국은 강국이었다.

그런데 소식을 전하는 사내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테르세우스의 이름을 거론하던 그가 안색을 굳혔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유미르가 입을 열었다.

“혹시 다른 무슨 일이 있습니까?”

“마수도 죽였고 발할라의 반란도 막긴 했습니다만… 그 과정에서 테르세우스 군단장님이 전사하셨… 다고 합니다..”

믿을 수 없는 소식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테르세우스가 죽다니.

아레나가 들고 있던 팬던트를 떨어트렸다.

유미르도 순간 멍한 얼굴이 되고 말았다.

뒤늦게 정신을 되찾은 그가 사내의 양쪽 어깨를 붙잡았다.

“저, 정말입니까? 확실한 정보입니까……?”

“네. 저도 믿기 힘들지만… 정말이라고 합니다. 테르세우스님께서 전사하셨다고… 수도의 국민들도 지금 울음바다라고 들었습니다.”

“말도 안 돼… 테르세우스님이 죽다니…….”

“아아…….”

유미르에 이어 아레나까지 울음을 터트렸다.

그들에게 있어 테르세우스는 멘토이자 스승이었으며 때로는 부모와 같은 사람이었다.

그런 테르세우스가 죽었다니…….

두 귀로 듣고도 믿기 힘들었다.

“테르세우스님이…”

그리고 이 소식은 빠르게 다른 동료들에게도 전해졌다.

아시테르가 두 손을 부르르 떨었다.

“그… 그럴 리가 없어요. 테르세우스님이 죽다니요… 테르세우스님은 비체 할아버지만큼이나 강한 분이신데…….”

“…….”

“아, 뭔가… 뭔가 잘못 전달된 게 아닐까요? 아니면 적들에게 혼란을 주기 위해…….”

“테르세우스님은 적들이 물러날 때까지 죽어서도 전장에 서 계셨다고 합니다.”

“죽어서도 전장에 서 있었다니…….”

“자신이 쓰러지면 아군의 사기에 영향을 받으니,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서 계셨던 모양입니다.”

“테르세우스님 곁에는 누가 없었습니까? 어떻게…….”

“뒤늦게 달려온 여명 마법기사단이 테르세우스님의 뒤를 이어받아 싸웠으며 히스링 단장이 끝내 마수를 죽이는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소식을 전하는 사내의 목소리는 무겁기 짝이 없었다.

마수를 죽이는데 성공한 것은 분명 기쁜 일이었으나, 테르세우스가 전사한 것은 그 기쁨을 능가하는 슬픔이었다.

“군단장님이…….”

테르세우스는 그야말로 이스트 왕국에 수호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가 죽었다고 하니 도무지 실감이 나질 않았다.

“아…….”

아시테르의 한쪽 눈에서 투명한 이슬이 뺨을 타고 떨어졌다.

테르세우스는 군단장의 선을 지키면서 아시테르를 은근하게 신경 써주었다.

거기다 아시테르의 스승님이기도 했다.

그래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테르세우스가 얼마나 강한 마도사인지.

“그렇게나 강하신 분이… 으흑…….”

아시테르가 흐느끼며 울기 시작했다.

백상 마법기사단의 단장인 아칼에 이어 테르세우스마저 잃고 말았다.

유미르가 그런 아시테르를 감싸 안았다.

“울지 마라 아들… 테르세우스님은 누구보다 명예로운 죽음을 맞이하셨다.”

“네… 알아요. 그치만…….”

“많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신 거겠지. 그분은 그런 분이니까.”

“맞아요… 우직한 면이 있으시죠…….”

“그러니 그만 슬퍼해라.”

“그치만… 아버지도 울고 계시잖아요…….”

유미르도 아시테르만큼이나 눈물을 펑펑 쏟고 있었다.

못생겨 보일 정도로 구겨진 그의 두 눈가는 붉게 물들어 있었다.

콧물까지 흘리며 입술을 질끈 깨물고 있는 유미르를 보며 아시테르가 더욱 눈물을 흘렸다.

유미르는 말없이 그를 껴안으며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아레나도 말없이 다가와 유미르의 품에 안겼다.

“여보… 테르세우스님이…….”

“이곳으로 올라와 마지막으로 찾아뵈려고 했는데…….”

유미르가 말끝을 흐렸다.

울음 때문에 더 이상 말이 나오질 않았다.

세 사람은 그렇게 한바탕 눈물을 쏟았다.

너무나도 슬프게 우는 세사람 때문에 다른 이들도 자리를 피해 주었다.

그렇게 한나절동안 눈물을 쏟고 나서야 유미르가 퉁퉁 부은 눈을 비볐다.

“이제 그만… 더 이상 눈물은 되었어.”

“네… 계속 이러고 있을 수만은 없지…….”

“테르세우스님이라면 분명 웃으면서 자신을 보내 주길 바라실 거야. 그런 분이니까.”

“아마 칭찬해 달라고 말씀하실 수도 있고. 은근히 자신이 잘한 것들은 들춰내고 싶어하셨잖아.”

“맞아… 그랬었지… 으흑…….”

추억을 회상하자 유미르가 또다시 눈물을 보였다.

그에겐 아버지나 다름없는 사람이었다.

비체가 나타나기 전까지 테르세우스는 유미르에게 그러한 존재였다.

그러한 것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아레나였기에 말없이 그를 위로해 주었다.

“차라리 마음껏 슬퍼해.”

아레나가 유미르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가 다시 울기 시작하니, 뚝 그쳤던 아시테르도 눈물을 훔쳤다.

그 모습을 본 아레나가 피식 웃었다.

“하여간… 아직 애라니까. 둘 다.”

그녀의 눈에는 그저 큰아들, 작은 아들이었다.

그래도 이 두 사람이 아레나에게는 가장 소중한 가족들이었다.

그들이 슬퍼하니 아레나는 가슴 한편에 또 다른 슬픔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한동안 아시테르 가족은 그들만의 시간을 보냈다.

마음을 추스린 그들이 바깥으로 나섰을 때는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던 알렌시아가 아시테르를 꼬옥 안아 주었다.

“네가 얼마나 슬퍼했을지 알아…….”

“알렌시아…….”

“기운 내 아시테르…….”

“고마워…….”

아시테르를 위로하는 알렌시아를 보며 유미르와 아레나도 미소를 보였다.

퀭한 모습을 보아하니 알렌시아도 밤잠을 설친 것 같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아시테르가 걱정되어 이렇게 한달음에 달려와 있던 것이다.

“고맙구나.”

아레나가 알렌시아에게 감사 인사를 표했다.

아시테르를 걱정해 주는 그녀의 마음이 너무나도 예뻐 보였다.

그리고 아시테르를 걱정했던 것은 알렌시아만이 아닌 듯했다.

뒤편으로 세아츠리스와 에스파, 가이우스가 앉아 있었다.

그들은 알렌시아를 배려해 잠시 뒤로 물러나 있었던 것이다.

“다들 정말 좋은 사람들이네.”

그들의 배려를 알아 본 유미르가 활짝 웃었다.

“자, 이제 가 볼까. 테르세우스님께 마지막으로 인사드리러 가야지.”

유미르의 말에 모두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이우스가 아시테르의 뒤편으로 섰다.

“모시겠습니다.”

“고마워요.”

“별말씀을.”

테르세우스가 아시테르에게 어떤 존재인지는 가이우스도 다른 이들을 통해 전해 들었다.

그럼에도 그는 일부러 내색하지 않았다.

아시테르 일행은 준비를 마치자마자 곧바로 수도로 향했다.

유미르와 아레나는 신분을 숨기기 위해 따로 변장을 한 상태였다.

그들의 신분을 증명하는 패는 따로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두 사람이 구해 준 영지의 귀족들이 기꺼이 임시 신분을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귀족들의 증명이 담긴 신분패를 건네니, 수도에 입성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고맙게도 가이우스의 신분패까지 만들어 준 덕분에 한결 더 수월했다.

어쨌든 수도에 입성하자마자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줄지은 장례 행렬이었다.

사람들의 슬퍼하는 곡소리를 듣고 있으니, 그때서야 제대로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테르세우스의 죽음.

온 세상이 떠들썩해지고 이스트 왕국 전역이 슬픔에 잠기는 일이었다.

그만큼 위대했던 인물이 숨을 거둔 만큼, 이스트 왕국은 그에게 최고 예우를 해주고 있었다.

유미르와 아레나가 말없이 장례 행렬의 뒤를 따랐다.

다른 이들 또한 마찬가지.

여기저기 곡소리가 울려 퍼졌다.

수도의 모습은 그야말로 처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 어디에 시선을 두어도 핏자국이 있었으며, 많은 건물이 파괴되거나 반파되어 있었다.

눈에 보이는 광경들만으로도 이곳에 나타났던 마수가 얼마나 대단했을지 충분히 짐작 가능할 정도였다.

거기다 발할라와 마수까지 상대하느라 다른 수많은 마법기사들도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그들의 장례까지 함께 치러지는 통에 수도는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국왕 헨카일로는 왕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은 마법기사들을 위해 한 치의 소홀함도 없이 장례를 준비해 주었다.

위로부터 말단에 이르기까지 모두 똑같이 신경써 주었다.

그들의 숭고한 죽음을 기리며 왕성은 아낌없이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뿐만 아니라 살아남은 사람들을 위해서도 헨카일로는 국정에도 힘을 아끼지 않았다.

“모두가 지켜 낸 왕국이다. 이제는 내가 나설 차례야.”

헨카일로는 잠도 제대로 이루지 않으며 나라를 보살폈다.

이는 다른 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또한 최선을 다해 헨카일로를 보필하고 또 보필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헨카일로가 있는 곳으로 히스링 단장이 찾아왔다.

“전하. 이제는 전 군단장 테르세우스를 떠나보낼 시간입니다.”

“그래… 알겠다.”

무거운 목소리로 답한 헨카일로가 몸을 일으켰다.

바깥으로 보이는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맑기만 했다.

“오늘따라 야속하기만 하구나… 아무 일 없다는 듯 맑기 만한 저 하늘이 말이야… 혹시 이것도 짐의 괜한 샘이라고 말 할 셈이냐? 테르세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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