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화 무법지대 벨제부트 (2)
에스파의 시선이 타샬리아 주변을 살폈다.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인원은 총 5명.
모두다 무장을 한 상태였다.
에스파가 뒤로 고개를 돌려 아시테르를 쳐다보았다.
때마침 에스파를 바라본 아시테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아, 그럼 제압 들어가겠습니다.”
에스파의 활에 마력으로 이루어진 화살이 동시에 다섯 개나 끼워졌다.
활시위를 당기니 마력화살이 동시에 각기 다른 방향으로 쏘아져 나갔다.
퍼벅!
퍼버벅!!
두 개의 화살이 정확하게 적들의 몸에 명중했다.
눈치 빠른 한 명이 자신과 함께 곁의 동료들을 보호해 주는 바람에 나머지 화살들은 튕겨나가 버리고 말았다.
“아니 이거 한번에 끝내려고 했는데. 부끄럽게시리.”
에스파가 다시 활을 들어올렸다.
빠르게 움직인 그가 순식간에 몸을 숨겼다.
“누구냐!!”
타샬리아를 겁박하려던 사내가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다른 인원들도 황급히 주변을 경계했다.
그러나 그들의 시선으로는 에스파를 쫓을 수 없었다.
마력으로 움직임을 빠르게 하는 방법까지 익힌 에스파였기에 그들의 시선을 따돌리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몸을 숨긴 에스파가 빠르게 화살을 당겼다.
“어디 얼마나 잘 막아 내나 볼까.”
에스파가 본격적으로 활을 쏘기 시작하니, 사방에서 정신없이 화살이 날아오는 형국이 되었다.
형체는 없는데 화살은 쉴새없이 날아오니 적들도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러나 에스파는 적들에게 잠깐의 틈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방어 마법을 펼치던 마도사가 슬슬 힘에 부치기 시작했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다른 동료들은 어떻게 해서든 에스파를 쫓으려 했으나 그들의 힘으로는 역부족이었다.
“이 비겁한 새ㄲ…….”
답답함에 욕지거리를 내뱉으려는 순간 에스파의 화살이 날아와 사내의 목을 꿰뚫어 버렸다.
“꺄악―!!”
바로 앞에 있었던 타샬리아가 겁에 질려 비명을 내질렀다.
이어 다른 화살들이 곁을 스쳤다.
놀랍게도 에스파의 화살은 타샬리아만 정확하게 피해 가고 있었다.
방어 마법을 펼치던 마도사도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에스파의 화살이 그를 고슴도치로 만들어 버리는 것은 그야말로 한순간이었다.
나머지 한 명도 달아나려다 가이우스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쿠웅!!
사내를 한번에 날려 버린 가이우스가 타샬리아쪽으로 걸어갔다.
“사.. 살려 주세요… 죄송해요… 제가 잘못했어요…….”
타샬리아가 가이우스를 보자마자 두 손이 닳도록 빌고 또 빌었다.
겁에 잔뜩 질린 그녀의 두 눈에선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가이우스의 뒤편에서 세아츠리스가 걸어왔다.
타샬리아의 두 눈동자가 눈에 띄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세… 세아츠리스……?”
“타샬리아…….”
“다, 당신이 어떻게 여기에…….”
그 순간 타샬리아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아아… 날 잡으러 왔나보구나…….”
타샬리아는 그동안 어린 마녀들을 납치해 인간들에게 팔아넘겼다.
그녀가 사랑했던 인간이 원했던 일이었기에 이를 악물고 악독하게 벌였던 행동이었다.
그의 마음에 들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행동이라 여겼다.
그러니 따로 변명의 여지는 없다.
무슨 이유가 있든 타샬리아가 벌였던 일은 마녀들에게 용서받을 수 없는 행동이었다.
거기다 마녀여왕은 마녀들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인물이었다.
아마 타샬리아가 마녀숲으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무거운 형벌을 피하긴 어려울 터다.
그걸 잘 알고 있었기에 타샬리아는 늘 불안한 마음을 가슴 한 켠에 품고 살아왔었다.
헌데 자신을 붙잡아 가기 위해 설마하니 콰트로 중 한 명인 세츠리아스가 올 줄은 몰랐다.
“여왕님께서도 화가 많이 나셨나보네. 아끼는 당신을 여기까지 보낼 정도면…….”
“미안하지만 여왕님께서 절 보낸게 아니에요.”
“뭐…? 그럼 당신이 어째서 여기에 있는 거지?”
“글쎄요. 그 이유를 당신에게 말할 필요는 없어보이는군요.”
“아…….”
세아츠리스가 마력을 끌어올리니 대지에서 가시덤불이 올라왔다.
이를 본 타샬리아가 고개를 푹 숙였다.
정상적인 상태여도 자신은 세아츠리스의 상대가 되질 못했다.
하물며 마력을 모두 잃은 지금의 상태로는 더더욱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상대의 선택에 자신의 목숨이 오갈 뿐이었다.
순순히 살기를 포기하는 타샬리아를 보며 세아츠리스가 입을 열었다.
“반항하지 않는 건가요?”
“보다시피 마력을 모두 잃어서. 나는 껍데기에 불과해…….”
그녀의 말은 정말이었다.
아까부터 타샬리아에게선 단 한줌의 마력도 느껴지질 않았다.
그것을 확인한 세아츠리스가 마력을 거두었다.
대지를 뚫고 올라왔던 가시덤불이 그대로 모습을 감추었다.
그 광경을 본 타샬리아가 두 눈을 깜빡거렸다.
“날 죽이려는 것 아니었어..?”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졌네요. 당신은 이미 마녀로서 생명을 다했으니까.”
“아…….”
마력을 모두 잃은 마녀는 더 이상 마녀라 부를 수 없었다.
타샬리아 또한 그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입술을 꽉 깨물었다.
비참하기 이를데 없었다.
그동안 겪은 갖은 수모와 치욕들, 그 기억들이 한꺼번에 스쳐지나갔다.
“아냐… 차라리…. 차라리 날 죽여 줘…….”
그녀의 입에서 힘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솔직히 마음 한구석에선 세아츠리스를 보자마자 안도하고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서 마침내 무언가를 찾아낸 것만 같았다.
그녀가 죽음을 내려면 달게 받을 생각마저 들고 있었다.
하지만 세아츠리스는 지금 그녀에게 죽음보다 더한 형벌을 내리고 있었다.
“죽지 말고 살아요. 함부로 죽으려 하지도 말아요. 당신 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 어린 마녀들을 위해서도 당신은 쉽게 죽어선 안 돼요. 오히려 고통속에 살아가며 그들에게 속죄해야 하지.”
“나도… 내가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아? 인간들에게 속아서 마력을 잃고 나는…….”
“관심 없어요. 당신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는.”
“뭐……?”
“당신이 선택한 삶이었잖아요. 그러니 모든 것은 당신이 책임져야죠. 이제와 하소연하듯, 알아달라는 것처럼 말하지 말아요.”
한없이 싸늘하고 차가운 말투였다.
세아츠리스의 두 눈에는 일말의 감정조차 느껴지질 않았다.
그녀를 동정하지도, 원망하지도 않는 무감정한 눈빛.
그것을 본 타샬리아는 마침내 절망하고 말았다.
“내게 죽고 일말의 죄책감이라도 덜어내려 했다면. 안타깝게 되었군요. 저는 당신을 죽이지 않겠습니다.”
세아츠리스는 냉정하게 돌아서 버리고 말았다.
척 봐도 타샬리아가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아왔을지는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녀들은 인간들에게 특별한 취급을 받는다.
헌데 마력을 모두 잃은 마녀는 그때부터 평범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아름다운 미모까지 지녔으니, 그때부터 악덕한 인간들이 어떤 선택을 했을 지는 안봐도 눈에 훤했다.
“알았어…….”
타샬리아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세아츠리스는 냉정하게 그녀를 두고 자리를 벗어나 버렸다.
마녀들의 일이었기에 아시테르나 다른 이들도 함부로 이 일에 나설 순 없었다.
그들은 그저 세아츠리스의 선택을 존중하며 함께 자리를 나서 줄 뿐이었다.
떠나가는 그들을 바라보며 타샬리아는 한참동안이나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한편 아시테르는 그 길로 곧장 벨제부트까지 걸어나갔다.
타샬리아와 마주쳤던 곳에서 그다지 멀지 않았기 때문에 벨제부트에 도착하는 것은 금방이었다.
“들어가기 전에 잠시.”
프레이아가 준비해두었던 것을 꺼내 세아츠리스에게 건넸다.
마도사의 로브인데 얼굴을 반쯤 가릴 수 있는 식으로 제작되었다.
“괜한 시비에 휘말릴 수 있기 때문에 얼굴은 가리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세아츠리스님 같은 경우는 너무 아름다우셔서.”
프레이아의 말에 에스파가 격하게 공감했다.
솔직히 세아츠리스의 미모는 매일봐도 지겹지가 않을 정도였다.
“미남 미녀는 한 1~2년만 보고 있으면 그 외모가 덜해 보인다던데… 세아츠리스는 솔직히 나날이 미모를 경신하는 느낌이랄까.”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며 에스파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이를 가볍게 무시하고 아시테르는 벨제부트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이우스도 아시테르의 뒤를 따랐다.
“같이 가요.”
세아츠리스도 어느새 아시테르의 옆에 걸었다.
뒤에 홀로 처진 에스파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 나는…….”
“에스파―! 빨리 안 올거냐?”
뒤를 돌아본 아시테르가 에스파를 찾았다.
그때서야 에스파의 입에 미소가 걸렸다.
“크으… 역시 너밖에 없다 친구야.”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에스파가 가벼운 발걸음을 옮겼다.
허나 그 걸음은 얼마 못가 멈춰야만 했다.
벨제부트에 들어선지 얼마 되지도 않아 누군가 그들의 앞을 막아선 것이다.
“뭐야, 나름 몰래 들어온 것 아녔어 우리……?”
눈앞의 사내를 보며 에스파가 작게 속삭였다.
호리호리한 체형에 기다란 장발을 한 사내가 길쭉한 팔을 펼치며 말했다.
“이야… 이거 알아서 이렇게 찾아와 줄 줄은 몰랐는데?”
그의 손에는 특이하게도 사신들이나 쓸법한 낫이 들려 있었다.
새하얀 피부에 중성적인 외모를 가진 사내, 란니발이 미소를 보였다.
그의 시선이 자연스레 한곳으로 향했다.
“일전에 우리 수하들을 죽이고 마녀들을 빼간 놈. 너 맞지? 몽타주가 딱 넌데.”
란니발이 가이우스의 앞에 서서 물었다.
그러자 가이우스도 지지 않고 그의 시선을 받아 냈다.
“그렇다만.”
“그렇다만? 하! 이거 완전 당돌한 사내네. 그런 주제에 이렇게 제 발로 벨제부트에 기어들어 온다고? 당신 미친 거야? 아님 배짱이 좋은 건가?”
란니발이 교태 섞인 몸짓을 보이며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의 시선이 묘하게 가이우스의 위아래를 훑었다.
그 끈적한 시선에 에스파가 절로 미간을 찌푸렸다.
“왜저래……?”
“당신이 벨제부트의 지배자인가?”
가이우스가 란니발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자 란니발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참… 다짜고짜 우리 대장부터 찾는 거냐?”
슈와아아아―!!!
한순간에 퍼진 강렬한 마력이 대기를 휘감았다.
란니발의 장발이 거세게 흩날리기 시작했다.
엄청난 마력이 폭발하듯 터져 나오자 주변 모두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했다.
란니발이 가공할만한 마력을 내뿜었지만, 눈앞에 있는 누구 하나 움츠러드는 기색이 없었다.
‘호오… 그냥 어중이떠중이들은 아니라는 얘기인가……?’
일반적인 놈들이었다면 이쯤에서 겁을 집어먹거나 사색이된 얼굴들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 말은 즉, 자신의 마력을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내고 있다는 얘기였다.
결코 평범한 이들은 아니라는 얘기.
“흐음… 너희는 뭐 하는 놈들일까?”
란니발이 인상을 쓴 채로 물었다.
“어어이 란니발 형씨. 무슨 문제 있나?”
“뭐야? 뭔데 그래?”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주변의 사람들이 하나둘씩 이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란니발은 카이드를 따르는 세 명의 지파장 중 한 명이었다.
그런 란니발이 이렇게까지 기세를 드러내는 경우도 별로 없었기에 모두가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와 동시에 누군가 어둠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다른 이들은 갑작스럽게 나타난 그녀 때문에 놀란 표정들을 보였지만, 아시테르는 일찌감치부터 그녀의 존재를 눈치채고 있었기에 별달리 놀라지 않았다.
“와씨, 깜짝이야! 대체 어디서 나타난 거야 저 여자는……!”
에스파가 호들갑을 떨며 뒤로 물러났다.
그런 에스파를 가볍게 무시한 여인이 란니발에게 고개를 돌렸다.
“무슨 일이야 란니발.”
“리제라. 재밌는 놈들이 벨제부트 안으로 들어온 것 같은데?”
“재밌는 놈들?”
“응.”
“조용히 처리하자. 카이드님께서도 마침 이 근처에…….”
휘우우웅―!!
허공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함께 누군가 대지로 떨어지듯 착지했다.
“아하하하하―!!!”
“카이드님?”
“카이드?”
시원한 웃음을 터트린 흑발의 사내가 고개를 들었다.
이곳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마력이 그를 전율케 만들었다.
“멀리서부터 느껴지더라고. 당신. 엄청나게 강하지?”
카이드 시선이 정확히 세아츠리스에게 닿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