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화 아시테르 vs 카이드 (1)
아시테르의 시선과 카이드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래. 너라면 이렇게 나올 줄 알았지.’
카이드는 결과가 어떻든 아시테르가 직접 자신에게 승부를 걸어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란니발이 나서려 할때도 말리지 않았다.
지더라도 여자는 포기하면 그만.
하지만 카이드를 쓰러트리지 않는 한 아시테르가 원하는 것은 이룰 수 없었다.
결국 아시테르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려면 어쩔 수 없이 카이드와 싸워 이겨야 했다.
그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카이드가 슬쩍 운을 띄운 것이다.
걸려들었다.
카이드는 아시테르를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하하하!! 너 정말 나를 이기고 벨제부트를 갖고 싶은 거냐?”
“네. 이 벨제부트의 주인이 되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래, 그래. 근데 그게 쉽진 않을 텐데.”
“괜찮습니다. 그래도 해낼 거거든요.”
앞으로 걸어나온 아시테르를 보며 카이드가 활짝 웃었다.
궁금했다.
대체 뭐 때문에 저 사내는 자신감 넘치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일까.
그래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팟!
가볍게 발을 굴렀을 뿐인데 카이드의 몸이 하늘 높이 뛰어올랐다.
공중에서 한 바퀴 구른 카이드가 가볍게 바닥에 착지했다.
“사실 나도 너랑 싸워 보고 싶었거든!”
벌써부터 잔뜩 흥분한 카이드를 보며 란니발이 이마를 짚었다.
“벌써 시작됐군.”
“차라리 잘됐어요. 카이드님이 나서서 다 정리해 버리면 되니까.”
“하긴… 솔직히 우리들에 비해 카이드의 실력은…….”
벨제부트의 주인으로 오랫동안 군림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일이었다.
거기다 카이드는 지금까지 자신에게 걸어오는 승부를 피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그는 벨제부트를 방문하는 강자들과 싸워 보기를 즐기는 수준이었다.
“카이드가 여기서 얼마나 싸웠는지 아냐? 적어도 삼천 번 이상. 그 수많은 싸움에서 단 한 번도 지지 않은 녀석이 바로 저놈이야.”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기대하고 있는 거잖아요.”
“후후 저 녀석도 곧 후회할거다. 감히 겁도 없이 카이드에게 덤벼든 것을.”
카이드와 아시테르가 마주섰다.
싸움을 구경하던 구경꾼들은 이미 다 빠져 버렸다.
이곳에 남아 있는 이들은 아시테르의 동료들과 카이드의 수하들.
서로 자신의 대장을 믿고 있는 눈빛이었다.
“야. 뭣하면 내가 대신 나서 줄까?”
뒤에 있던 자비토가 말을 꺼냈다.
그러자 아시테르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미안하지만 이건 내가 해야 할 일이라서.”
“그래 뭐 그럼 어쩔 수 없고.”
자비토가 뒤로 물러났다.
아시테르가 강하다는 것쯤은 자비토도 알고 있다.
그 또한 이스트 왕국에서 활동하는 마법기사이기 때문에 아시테르와 관련된 소문들을 몇 번씩 듣곤 했으니까.
하지만 그래 봤자 자신과 칸보다 한 수 아래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세 번째 대결이 펼쳐질 때도 주저없이 앞으로 나섰던 것이다.
아시테르가 나서는 것보다 자신이 나서는게 훨씬 더 승리할 확률이 높다고 계산한 것이다.
하지만 이제와 생각해 보니 무언가 이상했다.
가이우스도, 세아츠리스도 그가 지켜보기에 자신과 싸워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실력 있는 마도사들이었다.
특히나 세아츠리스는 한순간이나 몸에 전율이 일 정도로 대단했다.
그런 두 사람이 아시테르를 지나치게 따르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저 아시테르의 사람 됨됨이가 좋아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헌데 지금 상황에 이르러서도 어느 누구 하나 나서겠다는 이가 없다.
오히려 그들은 무한한 신뢰의 눈빛으로 아시테르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를 읽은 자비토가 슬쩍 에스파의 옆구리를 찔렀다.
“야. 어째서 아무도 말리지 않는 거냐?”
“뭘?”
“지금 상황에 아시테르가 나서는 것 말이야. 아무리 아시테르가 여기서 대장 노릇을 하고 있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아시테르를 중심으로 이 사람들이 모였기 때문인 거지 실력은 아니잖아? 나는 차라리 아시테르보다 저 여자나 저기 험악하게 생긴 형님이 나서는 게 맞다고 보는데.”
“무슨 소리야.”
에스파가 오히려 피식 웃으며 자비토를 바라보았다.
아, 그러고보니 자비토는 오랫동안 아시테르 일행과 마주하질 않았으니 모르고 있을 수 있다.
“우리들 중 아시테르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없어. 그러니 아시테르가 나서는게 맞지.”
“뭐……?”
“말 그대로야. 우리들 중 어느 누구도. ‘최근의’ 아시테르를 이긴 적이 없어.”
에스파가 강한 자신감을 드러내며 말했다.
그의 눈빛이 아시테르에게 닿았다.
테르세우스가 죽고 2년.
그동안 아시테르는 미친 사람처럼 수련에 수련을 거듭했다.
밥 먹는 시간,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온통 마법에 관한 생각들뿐이었다.
그 옆에 있는 가이우스와 세아츠리스, 에스파도 어떻게 해서든 아시테르의 수련을 도울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2년 동안을 고생해 왔다.
그동안 과연 아시테르와 다른 일행들이 얼마나 마법을 부딪혀 왔겠는가?
수를 셀수도 없이 서로의 마법을 겨루었다.
초반에는 세아츠리스가 종종 아시테르를 이기기도 했고, 가이우스가 아시테르를 궁지에 몰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에 이르러서는 두 사람 모두 아시테르를 이기지 못했다.
그 엄청난 성장에 에스파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그만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는지는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봐 왔기에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방법은 아시테르가 아니면 따라하기가 불가능했다.
노력의 천재라 일컬어지는 에스파조차 엄두가 나질 않았다.
‘특히나 개미굴던전은 정말…….’
지난날을 잠시 떠올리던 에스파가 치를 떨었다.
곁에 붙어다 보니 자연스럽게 강해졌다는 말.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이번 2년 동안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아무튼 그가 생각하기로 아시테르를 이길 수 있는 마도사는 없다.
그때 카이드가 작게 심호흡을 했다.
이어 그가 손아귀를 펼치니 기다란 창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
검붉은 빛깔의 창끝에는 호랑이가 조각되어 있었다.
호랑이의 입에서 뻗어나온 창신은 날카로운 예기가 가득했다.
후우우웅―
창신 전체를 감싸는 칠흑빛 기운.
그것을 본 아시테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그가 이렇게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카이드가 뿜어내는 기운은 마력이 아니었다.
마력보다 아시테르가 훨씬 더 잘 알고 있는 것.
“응? 반응이 왜그래? 너 설마 내가 사용하는 이 기운을 알고 있는 거냐?”
“인간이 어떻게… 마기를 사용할 수 있지……?”
카이드가 발산하고 있는 기운은 분명 마기였다.
마력과 흡사한 듯 보이지만 이것은 마수들이 내뿜는 기운과 더 닮아 있었다.
“호오… 재밌네. 이걸 알아보는 사람이 있구나.”
카이드가 창을 꼬나잡으며 창신을 들어올렸다.
그러자 강한 기세가 발산하며 대기를 울렸다.
순간 대기가 강하게 일렁일 정도로 엄청난 기운이었다.
그런 기운을 아무렇지도 않게 발산한 카이드가 웃고 있었다.
“너라면 날 재밌게 해 줄 수 있을 것 같구나.”
아시테르는 자신의 기운을 흘려내고 있었다.
그러다 아시테르의 전신에서 마력이 폭발하듯 흘러나왔다.
슈와아아아―!!!
붉은 아지랑이가 아시테르의 전신을 감쌌다.
그것을 확인한 카이드가 광소했다.
“역시!! 힘을 감추고 있었던 거구나?!”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전신이 저릿저릭해지는 감각.
자신에게 이만큼이나 위협적인 기운을 내뿜는 상대는 처음이었다.
카이드가 참지 못하고 빠르게 창을 휘둘렀다.
섬전과도 같이 쏟아지는 일격.
그리고 그것을 피해내는 아시테르의 엄청난 움직임.
심지어 아시테르는 카이드의 안쪽까지 파고들며 공격을 전개했다.
파콰과광!!!
쿠우우우우웅―!!!
지축을 울리는 소리가 연신 터져나왔다.
대기가 일그러질 때마다 환한 빛무리가 폭발하듯 터져나왔다.
그 속에서 아시테르와 카이드는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었다.
일렁이는 아시테르의 불꽃을 뚫고 창신이 무섭게 돌진했다.
허리춤을 숙여 창을 피한 아시테르가 곧바로 두 개의 마법을 캐스팅했다.
발밑에서 시작된 불꽃기둥이 카이드를 덮쳤다.
이어 양옆에 퍼진 불꽃이 수평선을 그렸다.
콰아아아아앙!!!
수직으로 창을 세워 공격을 막아낸 카이드가 곧바로 창신을 회전시켰다.
창끝에서 시작된 칠흑빛 물결이 커다란 원을 만들어 내며 불꼴을 휘감았다.
카이드의 두 눈이 번뜩인 순간 창끝이 아시테르를 향해 뻗어 나갔다.
불꽃을 휘감은 거대한 기운에 아시테르가 눈을 부릅떴다.
아시테르는 이 공격을 막아내기보다 피하는 쪽을 택했다.
그가 사선으로 몸을 빼내는 순간 카이드가 웃었다.
“걸려들었네?”
뒤편에서 시작된 노도와 같은 기운이 한순간에 아시테르를 덮쳤다.
강한 공격 이후에 뒤따라 오는 공격이라니.
아시테르도 순간 헛바람을 집어삼킬 정도였다.
콰아아앙!!!
붉은 화염과 칠흑빛 기운이 충돌하며 강한 파장을 일으켰다.
가까스로 몸을 보호한 아시테르가 뒤로 물러섰다.
주륵―
가슴팍에 상처가 벌어지며 핏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창끝이 아시테르의 가슴을 베고 지나간 것이다.
“와아… 진짜 뜨겁네 이거.”
공격에 당한 것은 카이드도 마찬가지.
아시테르의 화염에 어깨 부분에 부상을 입은 카이드가 괜히 팔을 돌렸다.
부우우웅―!
창신이 어지러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재밌다. 재밌어!!”
마력을 사용하는 창술사가 이렇게나 까다로운 상대인 줄은 몰랐다.
마법에 주력을 두며 검사나 다른 무인들이 사라져가고 있는 이스트 왕국이었기에 카이드처럼 창을 다루는 사람들은 더더욱 만나기 힘들어졌다.
그나마 이스트 왕국에서 주로 다뤄지고 있는 창은 랜스였다.
거기다 랜스의 용도는 돌진해서 찌르는 정도뿐.
카이드처럼 자유자재로 창을 다루며 날카로운 공격을 해오는 이는 또 처음이었다.
거기다 공격 한 번 한 번이 위력적이었다.
“야, 근데 너 진짜 대단하다. 내 속도를 따라오다니. 너 그냥 평범한 마도사가 아니구나?”
“창을 다루는 사람을 상대하는게 이렇게나 까다로운 일인줄은 몰랐네요.”
“아하하하하!! 창술사는 처음 상대하나 봐?”
부우웅―!
창을 고쳐 잡은 카이드가 다시 자세를 취했다.
그의 전신에서 흘러나온 마기가 창신 끝으로 뻗어나왔다.
“이제 더 골치아파질 거야.”
“상관없어요. 어쨌든 이기는 것은 나일 테니까.”
불꽃이 넘실넘실 춤을 추듯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 사이로 아시테르가 빠르게 움직였다.
카이드의 동공도 바쁘게 움직였다.
과연 마도가사 맞나 싶을 정도로 빠른 움직임.
거기다 아시테르가 움직이는 곳마다 불길이 일어 더더욱 그의 형체를 찾기가 힘들었다.
“대체 이건 무슨 마법이야…? 아니 그나저나… 이거 마법이 맞긴 한 거냐?”
콰아앙!!!
간발의 차로 카이드의 창이 아시테르의 주먹을 막았다.
손목이 시큰해질 정도의 묵직한 공격.
카이드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창술사인 나를 그런 식으로 압박하겠다고? 하!”
창이 제자리에서 회전하기 시작했다.
카이드의 창이 어지러이 수많은 선을 그렸다.
그러자 놀랍게도 아시테르의 불꽃이 창의 바람에 조금씩 걷어지기 시작했다.
쿠우웅!!
빈틈을 노린 아시테르의 공격이 카이드의 창에 막혔다.
부드럽게 움직인 창선이 아시테르를 노렸다.
날카롭게 파고드는 공격들 속에서 아시테르가 반격의 실마리를 잡았다.
“호오… 이 상황에 반격까지?”
놀란 것은 카이드도 마찬가지였다.
설마하니 이런 난격 속에서 상대가 반격해 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역시 재밌을 것 같았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