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화 아시테르 vs 카이드 (2)
아시테르와 카이드의 싸움을 보며 모두가 숨을 죽였다.
승패의 양상을 쉽게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치열한 전투가 이어지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싸움을 눈으로 쫓아가는 것도 힘들었다.
그만큼 두 사람의 움직임이 빨랐다.
“저게 말이 돼……?”
“카이드의 창술을 하나하나 막아 내고 있어. 거기다 반격까지 하고 있다니…….”
“아니 근데 다 떠나서 저게 인간들이 싸울 수 있는 장소가 맞긴 한 거야……?”
아시테르가 만들어 낸 불꽃이 거진 초열지옥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붉은 화염밖에 없는 곳에서 카이드는 아무렇지도 않게 창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를 상대하는 아시테르도 더 많은 화염들을 발산하며 치열한 공방전을 펼쳤다.
휘콰아앙!!
파아아아아앙!!
창이 움직일 때마다 불꽃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붉은 화염 사이로 번지는 환한 빛들.
그것들이 넘실넘실 울릴 때마다 아시테르와 카이드의 모습도 언뜻 스쳐지나갔다.
“아아아악!!! 이거 너무 답답하잖아!!!”
“근데 상대도 대단하네요… 아시테르 오빠가 만들어 내는 화염 속에서 저만큼이나 싸우다니…….”
“나도 아시테르가 이렇게까지 최선을 다해 공격하는 것은 근래 들어 처음 봤어.”
“상대도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제가 나섰다 하여도 이기기 힘든 싸움이 되었을 것 같군요.”
가이우스는 카이드의 창술을 보며 순수한 감탄을 토해 내고 있었다.
그가 이렇게까지 인정하는 강자도 드물었다.
기다란 창으로 날카롭게 파고들면서도 때로는 받아내기 버거울 정도로 묵직한 일격을 날린다.
거기다 창의 공격이 워낙 자유분방하게 들어와 막거나 피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변칙적인 공격들에 위력적인 일격.
이것만으로도 벌써 상대하기가 껄끄러워진다.
허나 아시테르는 용케도 그것들을 모두 피하거나 막아 내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대단하네요…….”
세아츠리스가 그들의 싸움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녀도 어느샌가부터 머릿속으로 카이드와의 싸움을 그리고 있었다.
그녀의 마법으로 저 카이드를 어떻게 상대할 수 있을까.
하지만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카이드의 창술도 문제였지만, 그가 사용하는 마기도 문제였다.
날카롭고 위협적인 창술에 파괴적인 위력을 더해 주는 마기.
그것들을 아시테르는 순수한 마력으로 막아 내고 있었다.
“진짜 대단한 사람이에요 아시테르 오빠는…….”
끝없이 타오르는 불꽃을 보며 세아츠리스와 다른 이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충격을 먹은 이는 단연 자비토였다.
그는 아시테르의 마법을 보며 너무나도 어이가 없어 헛웃음밖에 새어나오질 않았다.
‘나와 저녀석의 차이가… 이 정도나 된다고……?’
그래봤자 자신보다 한 수 아래 아니면 비슷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눈앞에서 아시테르의 힘을 직접 보게 되니 그 생각을 달리할 수밖에 없었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아시테르는 분명 자비토보다 훨씬 더 뛰어난 수준에 머물고 있었다.
그가 완성해 내고 싶어하는 마력 전개조차, 아시테르는 이미 그것을 완벽하게 끌어내는 수준이었다.
마력으로 주변 일대를 장악한 그가 수많은 불꽃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증거였다.
더군다나 저 수많은 창격과 강한 위력의 마기로도 아시테르의 마력 전개는 깨트릴 수 없었다.
아시테르는 그야말로 이곳을 완전히 불바다로 만들어 버리고 있었다.
“미쳤어… 이건 미쳤다고……!”
“인간이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건가……?”
화르르릉―!!
터져 나온 화염이 란니발과 다른 일행들이 있는 곳까지 덮쳤다.
렐린이 앞으로 나서서 실드를 쳐주었다.
쿠웅!!!
실드를 묵직하게 때리는 위력에 렐린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신 또한 화염 속성을 다룰 줄 알았다.
때문에 화염 마법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이해를 하고 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아시테르의 화염은 무언가 결이 달랐다.
“이게 대체 무슨…….”
자신의 화염 따윈 아시테르의 화염 앞에서는 그저 작은 불씨에 지나지 않은 것 같았다.
“말도 안 돼…….”
화염 마도사들 사이에 차이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화염을 다루는 스킬일 것이라 여겼다.
고급 술식을 이해하고 그것을 캐스팅해 내기만 하면 화염 마법의 수준은 자연스레 높아지는 것이라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시테르의 화염을 직접 경험해 보니, 어쩌면 그동안 자신이 생각해 왔던 것들을 전면 부정해야 할 것 같았다.
“근본적으로 달라…….”
대체 저 화염을 구성하는 마력의 농도는 얼마나 짙은 것일까.
그리고 저런 화염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저 마도사는 얼마나 뼈를 깎는 노력을 해왔을까.
그을린 렐린의 실드가 와장창 깨져 버리고 말았다.
“초위급……?”
“초위급이면 높은 거냐?”
“당연하지… 모든 마도사들이 목표로 하는 수준인데…….”
“뭐야… 그렇게나 대단한 놈이었어? 저놈이?”
“나는 지금 경외심마저 들고 있어요. 저 사람은 이미 초위급, 그 경지를 넘어선 것 같이 느껴지거든요…….”
초위급은 마력과 마법을 수준급으로 다루는 경지로 생각된다.
하지만 지금 아시테르를 보고 있으면 마치 아시테르가 곧 마법인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카이드가 공격할 때마다 아시테르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마법을 펼치는 것이 아닌, 마법이 스스로의 의지를 가지고 아시테르를 보호하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아아…….”
결국 화마에 뒤덮여 두 사람의 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가까이 다가가 보려고 해도 그럴 수 없었다.
넘실거리는 화염이 마치 그들을 경계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가까이 다가가면 옯겨 붙으려 했다.
그래도 끝없이 들려오는 굉음들 때문에 전투는 이어지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흐라아아아―!!!”
카이드의 기합성이 터지고 흑빛이 세상을 뒤덮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곧바로 스멀스멀 피어오른 붉은 기운이 흑빛으로 점철된 세상을 무너트렸다.
두 기운의 팽팽한 접전을 보며 다른 사람들도 순간 넋을 잃고 말았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하루가 지나도록 끊임없는 전투를 치렀다.
“미친…….”
“하루 종일 싸우는 게 가능한 거야……?”
“쉬지도 않고……?”
“아니 근데 대체 저 인간은 뭐야? 마력이 무한이냐?”
그들은 아시테르를 보며 또다시 감탄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루를 꼬박 싸우면서도 그는 계속해서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으니까.
놀라운 것은 카이드도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마기를 쏟아 내며 싸웠으면서도 카이드는 끝까지 창을 부여잡고 싸웠다.
화르르륵―!!
오랫동안 시야를 가렸던 화염이 점차 걷히기 시작했다.
그속에서 홀로 창을 들고 있는 사내.
카이드가 보였다.
피투성이가 된 그 모습을 보며 란니발과 다른 동료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카이드가 이렇게까지 망가진 모습은 처음이었다.
“카이드!!!”
“카이드님!!!”
수하들이 그를 향해 달려나갔다.
불꽃이 걷히는데 이상하게도 아시테르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자비토가 불안한 시선으로 안쪽을 바라보았다.
“야 설마…….”
갑자기 불이 걷히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마도사가 더 이상 마력을 사용하지 못할 때 보통 마법이 풀린다.
그 말은 즉.
“아시테르!!!”
“야!! 괜찮냐!?”
“주군!!!”
마음이 다급해진 에스파가 안쪽으로 뛰어들었다.
그와 동시에 가이우스도 발을 박찼다.
세아츠리스도 잔뜩 걱정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반응을 살핀 란니발이 그제서야 미소를 보였다.
리제라가 카이드에게 바짝 다가와 박수를 치려했다.
그러나 가까이서 본 카이드의 상태는 더더욱 심각했다.
온몸에 화상을 입은 것도 모자라 핏물이 굳었다가 녹았다가 다시 굳었다가 하길 여러 번.
일반적인 상처라 볼 수 없는 끔찍한 상처들이 온몸에 도배되어 있었다.
“아아… 카이드님…….”
인간이 어떻게 이런 몰골로 살아 걸어 나올 수 있단 말인가……!
카이드의 끔찍한 상태에 모두의 얼굴이 굳어 버리고 말았다.
이것은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니었다.
“천하의 카이드를 이런 꼴로 만들어 버리다니… 무섭구나… 무서워…….”
직접 보지 못했으면 믿지 못했을 것 같다.
하지만 아시테르의 마법은 지켜보는 이들마저 기가 질리게 만들었다.
그때 카이드가 활짝 웃었다.
새하얀 이를 드러낸 그가 창을 툭 떨어트렸다.
“빌어먹을… 결국 못 이겼어…….”
털썩.
카이드가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정신을 잃은 그를 란니발이 부축해 주었다.
두 눈을 부릅뜬 란니발이 두 팔을 부르르 떨었다.
리제라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안쪽을 바라보았다.
“카이드님이… 패배하셨다고……?”
카이드가 이런 상태면 상대도 결코 멀쩡할리 없었다.
화염이 완전히 걷히고 아시테르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 또한 온몸에 피칠갑을 하고 있었다.
땅바닥에 앉아 있던 그가 두 팔로 몸을 지탱했다.
“엄청나잖아…….”
아시테르로선 창술이 이렇게나 무서운 것이란 걸 처음으로 깨닫는 순간이었다.
어지간한 마법들은 창술 앞에 막혀 버리고 말았다.
온 세상을 불길로 뒤덮어도 카이드는 고고한 자세로 서서 창을 휘둘렀다.
우직하게 창을 휘두르면, 창에 실린 마기가 화염을 걷어 내고 짓쳐들었다.
싸움이 끝난 지금도 그 장면들이 생생했다.
스쳐도 핏물이 허공으로 뿌려질만큼 위험했다.
아찔한 순간들의 연속.
그 시간의 틈 속에서 두 사람은 분명 웃고 있었다.
이만한 강자를 만난 것에 잔뜩 흥이 오른 것이다.
그래서 서로 무아의 세계에 빠져들었던 것 같다.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카이드가 거친 숨소리를 내쉬고 있었다.
“내가 졌다… 못 이기겠다 너는…….”
카이드가 힘겹게 뱉은 한 마디였다.
그 말을 듣자마자 아시테르가 화염을 거두었다.
폭포수처럼 쏟아지던 그의 마력도 어느새 고갈되어 마나홀이 고통을 쏟아 내고 있었다.
뒤늦게 밀려오는 끔찍한 통증들에 아시테르도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아시테르으으으!!!”
“주군!! 살아계셨군요! 다행입니다!”
“오빠?!”
아시테르를 향해 달려오는 동료들.
그들을 보고 있으니 아시테르도 긴장의 끈이 풀리기 시작했다.
“와아… 진짜 간신히 이겼다.”
아시테르의 시선에 쓰러지는 카이드의 모습이 들어왔다.
자신의 승리였다.
그것을 확인한 순간 거짓말처럼 아시테르도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아시테르 오빠!?”
세아츠리스가 그의 가까이로 붙었다.
가이우스가 서둘러 쓰러진 아시테르를 업어 올렸다.
그 순간 그들의 앞을 가로막는 이들이 있었다.
란니발과 다른 일행들이었다.
“뭐지?”
자비토가 경계심을 드러내며 앞으로 걸어나왔다.
그 또한 저들이 허튼 짓을 하려 한다면 곧바로 공격할 기세였다.
이는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
아시테르의 상태가 심상치 않아보이는 이상, 앞길을 방해하는 이들이 있다면 쓰러트리고 지나갈 뿐이었다.
그들의 기세가 아까와는 다르게 살벌하게 변했다.
마주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살이 아려올 정도의 살기.
그것을 본 란니발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군. 이게 진짜 너희들의 힘인가…….”
“저희는 당신들을 막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벨제부트의 주인을 모시려는 겁니다.”
리제라의 시선이 아시테르에게로 향했다.
정신을 잃은 줄만 알았던 카이드가 입을 열었다.
“내가 졌으니 이제 그녀석이 이곳의 주인이야. 그러니까 의심할 필요 없다. 내 이름을 걸고 보장할게.”
“…….”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그 녀석보다 내가 더 심각한 상태거든? 그러니까 빨리 좀 같이 옮겨 줄래? 나도 진짜 죽을 것 같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