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3화 움직이는 사우스 왕국
“결국 사우스 왕국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웨스트 왕국이랑 협정이 끝났나보군.”
“맞습니다. 그들이 움직였을 때 가장 신경 쓰이는 곳은 웨스트 왕국이었을 겁니다. 거기에 웨스트 왕국과 사우스 왕국도 서로 사이가 안 좋았기에 빈자리를 칠 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모종의 거래가 오갔던 모양입니다. 웨스트 왕국 국경에 있던 병력들이 대거 이동했다는 보고입니다.”
“흐음… 제 2차 전쟁인가…….”
히스링이 펼쳐놓은 지도를 보며 인상을 굳혔다.
지금까지는 사우스 왕국과 끊임없는 소모전만 벌였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다를 것이다.
사우스 왕국이 본격적으로 움직이면서 그들의 군대도 적극적으로 북상할 것이다.
“이미 많은 마법기사단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사우스 왕국과의 전쟁이 시작될 것이란 얘기는 계속해서 오갔기 때문에 저희들 또한 빈틈없이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사우스 왕국놈들… 놈들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겠다 이 말입니다!”
마법기사단의 단장들이 의지를 다지며 말했다.
하지만 히스링 군단장이나 아그리나 단장은 조금 염려되는 부분들이 있었다.
2년 동안 새로운 병력들이 많이 추가되었다곤 하나 아직 미숙한 이들이 많았다.
전장에서의 합은 중요하다.
아무리 전술을 잘 짜도 군사들이 유기적으로 움직이지 못한다면 안 하느니만 못하는 꼴이 될지 모른다.
나름대로 전쟁을 치를 수 있다는 생각에 대비 전술 훈련을 많이 해오긴 했다.
가끔은 모의 전쟁도 치르며 실전 경험을 드높였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부족하다는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적어도 5년.
아니, 1년만 더 있었어도 군사들을 잘 가다듬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더 이상 시간이 없다.
적들은 이스트 왕국이 정비하고 성장할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우리 기사들과 병사들을 믿는 수밖에.”
히스링이 조용한 어조로 말했다.
“맞습니다. 우리들이 군사들을 믿어야죠.”
“나라를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는 모두가 같을 겁니다.”
“우리 왕국의 군사들은 강합니다.”
단장들이 한 마음으로 외쳤다.
그들 또한 사우스 왕국에 대한 전의를 불태우고 있는 상태.
히스링이 그들을 살폈다.
발할라에 이어 마수까지 난리치는 판국에 살아남은 이들이었다.
그 경험이 이들에게 더 많은 깨달음을 주었을 터다.
특히나 새롭게 합류한 단장들.
칸과 알렌시아의 활약이 눈에 띄었다.
돌풍 마법기사단과 일섬 마법기사단이 바쁘게 움직여준 덕분에 더욱 빠르게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모두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겁 없이 국경을 넘으려는 사우스 왕국에게 우리들의 힘을 보여주는 거다.”
히스링이 모두의 면면들을 살피며 말했다.
“예!!”
“예!!”
“예!!”
“예!!”
이곳에 모인 모든 단장들이 일제히 우렁차게 답했다.
* * *
사우스 왕국이 수상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얘기는 아시테르의 귓가에도 들려왔다.
다른 왕국의 동태를 살피는데 민감한 벨제부트인만큼 그 소식통이 상당히 빨랐다.
“아무래도 우리 돌아가 봐야 하는 것 아닐까?”
에스파가 아시테르의 곁에서 말했다.
최근 벨제부트의 주인이 되었다곤 하나, 그들은 어디까지나 이스트 왕국의 마법기사였다.
이스트 왕국이 위험해진 지금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마침 아시테르도 에스파와 같은 생각이었다.
“우리도 가야지. 우리 왕국을 지키러.”
사우스 왕국이 호시탐탐 이스트 왕국을 노린다는 얘기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에게 입이 닳도록 들어왔다.
부모님이 이스트 왕국을 사랑하는 만큼, 그 또한 이스트 왕국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거기다 이제는 아시테르의 소중한 사람들도 이스트 왕국에 대거 살고 있었다.
“뭐야?! 전쟁이라도 하러 가는 건가?”
근처에서 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카이드가 눈을 반짝였다.
세아츠리스도 어느새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저도 함께 갈래요.”
“세아츠리스 너도? 하지만 너는…….”
“설마 아시테르 오빠… 이제와 안 된다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겠죠……?”
“아니 그건 아닌데… 하지만 괜찮겠어? 네가 참전하게 되면 마녀숲까지 곤란하게 되는 것 아냐?”
“저는 지금 마녀숲의 일원으로 함께 하는 게 아니고 오빠의 동료로서 함께 하는 거예요. 그러니 상관없어요.”
세아츠리스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그녀의 말에 에스파와 카이드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끄덕 거렸다.
“세아츠리스가 오면 엄청난 전력이 될 거다!”
“맞아. 이제와서 세아츠리스를 두고 간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얘기지. 너 괜히 그러는 거지?”
에스파가 아시테르의 옆구리를 쿡쿡 찔러댔다.
란니발을 포함한 지파장들도 아시테르의 앞에 섰다.
“저희들도 데려가 주시는 겁니까.”
“야, 너희들까지 가면 벨제부트는 뭐 어떻게 하라고?”
카이드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자 란니발도 함께 인상을 찌푸렸다.
“설마 우리는 두고 가려는 생각이냐?”
“당연한 것 아냐. 너희 지파장들까지 우르르 달려가 봐. 그러면 밑에 있는 수하들까지 우르르 달려 나올 건데. 벨제부트는 그럼 완전 난장판이 될 거고. 무엇보다 이스트 왕국에서 우리들을 단체로 반기겠냐?”
카이드의 말에 다른 지파장들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들의 반응에 오히려 카이드가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왜 그래? 그 반응들은 뭐야?”
“아니… 카이드 너도 생각이란 걸 하고 사는 구나 싶어서.”
“그러게요. 카이드님도 그런 깊은 생각을 하시는군요.”
“의외였다.”
“아니 이것들이!!!”
카이드가 괜히 발끈하며 소리쳤다.
아시테르도 카이드의 의견에 동의했다.
“벨제부트 사람들을 모두 이끌고 가는 것은 불가능해요. 거기다 여기도 이제야 다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데 지파장들이 모두 빠질 순 없죠. 데려가는 것은 카이드와 리제라. 두 사람만 할 게요.”
“호오, 리제라까지? 아시테르 너 의외로…….”
“리제라는 어쌔신인데다 정보를 수집하고 퍼트리는 일까지 능숙하니까.”
아시테르의 시선이 리제라에게 머물렀다.
그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은 리제라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아직까지 그를 마주하는 것이 어색한 그녀였다.
“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뭐야 리제라? 뭘 또 그렇게 얼어 있어?”
카이드가 괜히 리제라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어쨌든 그렇게 아시테르와 함께 떠날 인원들은 정해졌다.
다른 인원들은 벨제부트를 관리하는데 일조할 터였다.
“여기는 내가 맡고 있을게. 맘 편히 다녀와.”
마르체니 공주도 아시테르의 부담을 덜어 주었다.
사실 그녀도 숨 막히는 왕성에 있는 것보다 이곳에 있는 것이 훨씬 더 나았다.
거기다 여기는 왕성의 시선이 닿질 않는 곳.
권력 다툼하는 귀족들도 이곳에 있는 마르체니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을 터였다.
“제9기사단은 복귀하지 않는 겁니까?”
“저희는 마르체니 공주님의 호위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마르체니 공주님이 이곳에 계시는 한, 저희도 이곳에 계속 머물 것 같습니다.”
아시테르의 질문에 기사 한 명이 답해 주었다.
그렇다면 안심이다.
“자비토 너는?”
마지막으로 아시테르의 시선이 자비토에게로 향했다.
어째서인지 그는 아직까지도 벨제부트에 머물러 있었다.
아시테르의 시선을 받은 자비토가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분명 마음 속 안에는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한데, 쉽게 꺼내질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아시테르가 부드러운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다시 창파 마법기사단으로 돌아가는 거야?”
“아니… 거기엔 이미 내 자리가 없을 거다.”
“그럼 어떻게 하게?”
“그게… 그… 네가 말한 것도 있고 하니, 당분간은 너와 함께 다녀볼까 싶기도 하고… 그렇다고 해서 너를 그 뭐냐…….”
“에이 답답하게!! 그냥 남자답게 시원하게 말해! 너와 가고 싶다! 나도 네 동료가 되고 싶다! 똭!!!”
에스파가 자비토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외쳤다.
별안간 자비토의 얼굴이 빨개지기 시작하니 다른 이들도 배시시 웃기 시작했다.
“뭐야? 겨우 그 말하기가 쑥스러워서 그런 거였어? 으하하하 너도 웃기는 놈이네.”
카이드가 손가락으로 자비토를 가리키며 대놓고 크게 웃었다.
그를 따라 지파장들도 웃음을 터트렸다.
세아츠리스도 하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는데 그 사이로 그녀의 입꼬리가 올라가 있는 것이 보였다.
“아니… 아니 이씨! 시끄러!! 그리고 나보다 약한 놈은 함부로 웃지 마라!!”
“억지도 그런 억지가 없네!!! 으하하하!!!”
카이드가 연신 자비토의 등을 두드리며 웃었다.
반면 지파장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
자비토가 두 손을 부르르 떨었지만 카이드에게 만큼은 별 수 없었다.
10전 10패.
이곳에 있는 동안 카이드와 열 번을 겨루었지만 다 패배하고 말았다.
도대체 이런 괴물 같은 놈을 아시테르는 어떻게 이겼단 말인가!
사실상 이곳에 있는 이들 중 카이드를 이길 수 있는 이는 아시테르밖에 없었다.
그나마 세아츠리스가 카이드와 동수를 이루었지만, 이는 카이드가 중간에 포기해 버렸기 때문에 승부가 나질 않았다.
“쳇…….”
그래서일까.
어느새 자비토의 목표는 카이드가 되어 있었다.
언젠가 무조건 저 천진난만한 녀석을 따라잡는다.
그것이 여기서 생긴 자비토의 새로운 목표였다.
“아시테르님! 이스트 왕국에서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수하 중 한 명이 안쪽에 알렸다.
“그래요?”
아시테르는 곧바로 바깥으로 향했다.
그곳에 미리 와서 대기하고 있던 이는 군단장의 직속 기사였다.
“당신이 아시테르입니까?”
“네. 제가 아시테르입니다.”
“군단장님께서 찾으십니다.”
“군단장님께서요?”
“예.”
“알겠습니다. 곧바로 군단장님께 가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사내는 미심쩍은 눈초리로 아시테르를 바라보고 있었다.
‘군단장님은 대체 이 자를 왜 급하게 찾으시는 걸까….’
새롭게 군단장 직속으로 들어온 지라 그는 아시테르가 어떤 인물인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다 아시테르가 머물고 있는 곳이 하필 벨제부트였으니…….
그때 뒤이어 나오는 이들을 보며 사내가 헛바람을 집어삼키고 말았다.
특히나 몇몇은 숨이 막힐 정도로 방대한 마력을 내뿜고 있었다.
‘무슨 마력들이……!’
마치 마법기사단의 부단장이나 단장들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에게서나 느낄 법한 중압감을 이곳에서 느끼고 있으니, 사내가 식은땀을 흘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가볍게 짐을 챙긴 아시테르가 웃으며 말했다.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예에… 천천히 하십시오.”
그러면서도 그의 시선은 세아츠리스와 에스파에게로 향해 있었다.
이제보니 두 사람에게서 가장 많은 마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반대로 카이드는 사내를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마법기사들은 원래 저런 옷들을 입는 건가?”
“보통 그렇지.”
“너희가 가도 저런 옷을 입어?”
“아마 그렇겠지?”
“난 싫은데…….”
사내가 걸친 로브를 보며 카이드가 탐탁지 않은 표정을 보였다.
그 모습을 본 가이우스가 입을 열었다.
“원한다면 따로 갑옷을 맞추겠나?”
“호오…! 갑옷!!!”
갑옷이라는 말에 카이드가 두 눈을 반짝였다.
휘황찬란한 갑옷을 입고 전장을 누비는 것!
한번쯤 머릿속에서 그려본 장면들이었다.
“오오…! 이왕이면 단단하고 화려하고 멋진 걸로 부탁할게요!”
“그런 갑옷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은 전해 보지.”
“고오맙습니다!”
카이드가 싱글벙글 웃었다.
“자아, 그럼 가 볼까?”
모든 준비를 마친 아시테르가 동료들을 바라보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