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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244화 (244/424)

244화 아시테르의 기사단 (1)

“왔군.”

집무실에서 한창 서류더미에 시달리던 히스링이 상체를 일으켰다.

그 모습이 꼭 누군가와 겹쳐 보였다.

“군단장의 자리에 앉으면 다 그렇게 되는 건가요……?”

“후후후, 나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전 군단장님께서는 이렇게 많은 일들을 두고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을 신경 쓰고 다녔는지… 하여튼 시간이 지날수록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밖에는 안 들더군.”

히스링이 가벼운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그의 집무실로 들어선 이는 2년 전 마수 군단을 토벌하고 살아남은 1인 중 한 명, 아시테르였다.

그걸로도 모자라 발할라의 최고 간부까지 박살 내 더더욱 활약을 드높인 인물이었다.

다만 이것들은 사람들에게 크게 알려지지 않은 사실들이었다.

그나마 몇몇 단장들과 마법기사들만 알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시테르가 아레나의 아들인 것을 알았을 때는 누구보다 크게 놀랐던 히스링이었다.

“네가 아레나의 아들이었다니…….”

히스링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프로메테 가문과 오르페 가문은 과거 둘 사이를 돈독히 다지기 위해 정략결혼을 맺었다.

그 중심에 섰던 인물이 바로 아레나와 히스링이었다.

두 사람은 일곱 살이 되던 해 처음 만났으며 그 이후로도 잦은 만남을 가졌다.

히스링은 강하고 아름다운 아레나에게 호감이 있었으나, 아레나는 아니었다.

그녀는 딱딱하고 정석적인 히스링보다 자유롭고 부드러운 성격의 유미르에게 호감을 보였다.

하지만 자신이 누구인가!

천민 출신인 유미르와 다르게 히스링은 이스트 왕국의 5대 가문인 오르페 가문의 자제였다.

그가 할 수 있는 일들은 너무나도 많았다.

심지어 돈이면 돈, 실력이면 실력, 인성이면 인성.

어느 것 하나 유미르에게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아니, 오히려 초반에만 해도 유미르는 자신의 상대가 될 수 없다고 여겼다.

애초에 천민과 귀족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을 리 없을 테니까.

하지만 아레나의 마음은 몇 년이 지나도 돌아서지 않았다.

오히려 유미르를 향해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렇게 신경도 쓰지 않고 있던 유미르가 마침내 천민 최초로 마법기사단의 단장 자리까지 올랐을 땐, 히스링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미르의 능력은 대단했다.

마법실력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능력과 과감한 결단력.

그가 이끄는 심연 마법기사단은 연일 승승장구하며 위상을 드높였다.

어느 날 그 모습이 문득 부럽기도 했다.

히스링은 가장 위에서부터 시작했다.

그가 뚫고 올라가야 하는 벽은 이미 천장에 있었다.

하지만 유미르는 자신과 반대로 가장 밑바닥부터 시작했다.

자신은 잘해 봐야 본전이지만 유미르는 조금만 잘해도 그 벽들을 뚫고 올라설 수 있는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한 때는 유미르를 싫어하고 괴롭히기도 했다.

하지만 실제로 겪어 본 유미르는 너무나도 괜찮은 사람이었다.

아레나에게 일부러 접근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것 또한 아니었다.

그는 그저 마법을 사랑했으며 이곳 왕국을 좋아하는 한 명의 마법기사였을 뿐이었다.

그렇게 모든 것들에 대한 오해가 풀리고, 유미르와 잘 지내게 되었을 땐 어느새 친구이자 동료가 되어 있었다.

심지어 히스링은 유미르와 아시테르의 사이를 응원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일련의 과거 기억들이 스쳐지나가고 히스링이 다시 한 번 아시테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제보니 아레나를 닮은 구석들이 참 많았다.

거기다 아시테르의 얼굴엔 유미르의 모습도 공존했다.

“저어… 제 얼굴에 뭐가 묻었나요?”

“아니다. 잠시 옛날 기억들이 떠올라서 말이야.”

“아아…….”

“그나저나 2년 동안 원하는 것들은 많이 이루었나?”

“예!”

아시테르가 힘차게 답했다.

다른 이들이었다면 아시테르의 내면에 감추어진 거대한 마력의 흐름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어떻게 하는 건지 아시테르는 자신의 마력을 귀신같이 갈무리할 수 있었다.

때문에 다른 마도사들처럼 마력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질 않는다.

만약 평범한 마도사들이 아시테르를 보았다면 그저 평범하게만 보였을 터다.

흘러나오는 미약한 마력만 캐치해냈을 테니까.

하지만 히스링에게는 느껴지고 있었다.

“상당한 성취를 이룬 것 같구나.”

“아직 부족합니다.”

“네 녀석을 보고 있으면 네 아버지가 떠오르는구나.”

“제 아버지가요?”

“그래. 더없이 훌륭한 마도사였다 네 아버지는.”

“알고 있습니다.”

아시테르가 유미르의 얼굴을 떠올리며 웃었다.

저 웃음이 너무나도 유미르를 똑닮았다.

부드러우면서 인자해 보이는 웃음.

“아무튼. 나는 다음 마법기사단장으로 너 또한 생각해 두고 있었다. 하지만 내 못난 아들놈과 너는 단장선발전에 참가하질 않았지.”

“아… 그건…….”

“네가 무슨 생각으로 그리 했는지는 따로 묻지 않겠다. 다른 어떤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했겠지. 하지만 지금은 다시 묻고 싶구나. 이제는 준비가 되었나?”

“예.”

아시테르가 두 눈을 빛내며 답했다.

히스링이 물어보는 것이 무엇인지 대번에 알아차린 것이다.

그의 깔끔하고 명쾌한 대답에 히스링도 마침내 미소를 보였다.

“훌륭하군. 그렇다면 단원들은 네가 꾸리거라.”

“알겠습니다.”

“정식 마법기사단의 자리는 아니다. 너희들은 아마 특수 임무들을 수행할 거다. 그러니 인원은 너무 많은 것보다 정예인원들만 차출하는 것이 좋을 것 같구나.”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네가 원하는 사람들을 명단에 적어 제출하면 나의 권한으로 그들을 빼내 주마.”

“감사합니다.”

“그런데… 네가 무슨 일을 하게 될 지는 묻지 않는 거냐?”

히스링이 문득 궁금해 물었다.

이제보니 대화가 너무 막힘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의도를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아시테르가 답하고 있었던 것이다.

허나 그럴리 없다.

2년 만에 돌아온 녀석이 자신의 의중을 모두 알아차릴 리가 없질 않은가?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에 히스링도 실소를 금치 못했다.

“어떤 임무든 그건 모두 이스트 왕국을 위한 일 아니겠습니까? 저만큼이나 히스링 군단장님께서도 우리 왕국을 좋아하시잖아요.”

아시테르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 모습에 히스링이 손을 휘저었다.

“알겠으니 그만 나가 봐라. 그리고 명단은 꼭 내일까지 제출하도록.”

“예!”

아시테르는 다음 날 바로 명단을 적어서 제출했다.

미리 생각해 두기라도 한 것처럼 그가 곧바로 적어낸 명단에는 신선한 이름들이 적혀 있었다.

헤르다임이 그 명단들을 확인하곤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우와… 대체 이게 뭐람……?”

안에 적혀 있는 몇몇 인원들은 익숙한 이름들이었다.

이들은 아카데미 시절부터 아시테르의 친구들로 알려진 인원들이었다.

하지만 나머지 반절 정도는 너무나 신선했다.

헤르다임은 그 명단을 갖고 히스링을 찾아갔다.

“무슨 일이지?”

“아시테르 마법기사가 제출한 명단을 갖고 왔습니다.”

“호오… 조금은 고민할 줄 알았더니. 그 사이에 벌써 고민을 끝냈단 말인가?”

히스링이 순순히 그 명단을 받아들였다.

그리곤 명단에 적혀 있는 이름들을 읽어 내려가던 히스링도 어처구니 없다는 듯 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군단장님께서도 깜짝놀라셨나요?”

“이것 참… 누가 그 녀석 아들 아니랄까 봐…….”

명단 안에 적혀 있는 이름들 중엔 히스링이 모르는 이름들도 여럿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이름이 있었다.

오르페 르도 자비토.

히스링의 아들인 자비토도 이 명단에 적혀 있었다.

“아시테르 씨도 참… 쉽지 않은 인물들을 적어 냈어요.”

“후후, 그렇군.”

“그리고 군단장님의 아드님이신 자비토님의 이름도 명단에 있어요.”

“확인했다.”

“일단은 이대로 공문을 보낼까요?”

“그렇게 해 주게.”

“알겠습니다.”

헤르다임이 명단을 갖고 집무실을 나섰다.

그 사이 히스링은 다시 한 번 명단을 살펴보았다.

가이우스와 카이드는 처음 보는 이름이었다.

라빈이나 에이브릴, 에스파는 익숙한 이름.

세아츠리스도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었다.

“그런데 열 명 정도라… 인원이 너무 적지 않은가……?”

인상을 찌푸린 히스링이 명단을 슬쩍 옆에다 놓았다.

아쉽게도 지금은 아시테르가 짜놓은 단원들에 대해 고민할 때가 아니었다.

밀려드는 서류들을 빠르게 처리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렇게 히스링이 업무 서류들에 매달리는 동안 헤르다임은 빠르게 공문을 보냈다.

공문은 아시테르가 원하는 인물들이 속한 집단으로 보내졌다.

“흐음… 우리 인원을 빼 달라고?”

가장 먼저 공문을 받은 사람은 창파 마법기사단의 무그레날로 단장이었다.

그는 받아든 공문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근데 이 녀석 이름은 여기에 왜 들어가있는 거야?”

“자비토 녀석… 또 무슨 꿍꿍이인지.”

“어떻게 하실 겁니까?”

“별다른 수 있나? 나라에서 필요하다는데 보내 줘야지.”

“하지만 무그레날로 단장님! 자비토는 단장님의 뒤를 이을…….”

“됐어. 생각도 없는 녀석에게 그런 걸 강요할 수도 없지. 녀석이 창파 마법기사단을 이어받았으면 했지만… 그나저나… 자비토 녀석보다 데미리우스를 보내는 것이 더 아쉽군.”

명단 안에는 데미리우스도 포함되어 있었다.

데미리우스의 독마법은 여러 임무에서 다양하게 활용되었기 때문에 당장 자비토를 보내는 것보다 데미리우스를 보내는 게 더욱 아쉬웠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무그레날로는 곧바로 날인을 찍어 주었다.

공문을 받은 또다른 인물, 아그리나 단장도 별 고민 없이 날인을 찍어 주었다.

“아니, 너무 고민 없이 날 보내는 것 아닌가요?”

“왜. 가기 싫으냐?”

“아뇨.. 그건 아닌데…”

“곱게 보내 줄 때 가거라.”

“아무리 그래도 좀… 뭔가 기분이 이상한데…….”

“시끄럽다. 녀석이 널 필요로 한다길래 보내 주는 것 뿐이다.”

“…? 할망구 단장이 언제부터 아시테르 오빠를 챙겼다고요?”

“그 녀석 때문이 아니야. 과거 다른 인연 때문에 그러는 거다.”

아그리나 단장이 유미르와 아레나의 얼굴을 떠올렸다.

벌서 자비토와 데미리우스, 라빈의 영입이 끝났다.

자유 신분인 에스파는 더더욱 말할 것도 없었다.

“드디어 네가 단장이 되는 거냐!?”

공문을 받은 에스파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는 단장란에 적힌 아시테르의 이름을 보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어 곁에 있던 카이드와 가이우스, 세아츠리스도 미소를 보였다.

“와아… 살다살다 내가 무슨 집단에 소속되는 날이 오다니…”

공문을 집어든 카이드가 그것을 보며 허허로운 웃음을 보이고 있었다.

가이우스는 망설임없이 공문에 자신의 정보를 적었다.

“잘 알고 있죠? 가이우스 형님은 여기서 준 신분을 그대로……”

“알고 있다.”

“드디어네요.”

세아츠리스도 조금은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이어 곁에 있던 다른 여인이 우물쭈물 거리다 불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이번에 아시테르의 기사단에 입단할 엔류아였다.

“저 같은 부족한 사람도 함께라니… 정말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할게요!!”

“그게 무슨 소리에요? 마법기사단 안에서 치유 마도사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 건데.”

아시테르의 웃음에 엔류아가 그제서야 활짝 미소를 보였다.

“저, 열심히 할게요! 아시테르님과 다른 동료분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도록……!”

“이미 존재만으로 피해가 되지 않습니다. 으음~ 피해라니요. 얼토당토 않는 소리죠 암요.”

에스파가 콧구멍을 벌렁거리며 말했다.

그때 뒤에서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뭔데 벌써부터 그런 얼빠진 표정을 보이고 있는 거야? 에스파.”

일찍부터 여명 마법기사단에서 나온 에이브릴이었다.

그녀 또한 아시테르의 기사단에 합류하게 된 인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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