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화 아시테르의 마법기사단 (3)
아시테르도 크로마제를 보며 마주 웃었다.
크로마제는 정말로 마법기사 아카데미 드래프트 1순위를 차지했다.
심지어 압도적인 기량 차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만큼 열심히(?) 가르쳤던 아시테르도 뿌듯해지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훌륭하게 성장한 제자를 보고 있으니, 스승의 마음을 깨닫는다.
크로마제는 아시테르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저는 새로 생길 마법기사단에 지원할 생각입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 나오자 다들 놀라는 분위기였다.
“새로 생긴 마법기사단?”
“예.”
모두가 크로마제의 시선을 쫓았다.
그곳에는 아시테르가 앉아 있었다.
“저기 있는 사람은 누구야?”
“처음 보는 사람인데? 저분도 단장님이신가?”
“부단장님 아닐까?”
“근데 방금 크로마제가 새로 생길 마법기사단이라고 말하지 않았어?”
“그러게… 근데 마법기사단이 새로 창단된다는 얘기는 못 들어 봤는데……?”
크로마제의 얘기를 들은 학생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게 당연하다.
크로마제도 들은 지 얼마되지 않은 소식이니까.
딱 상황에 맞춰 아시테르에게 연락이 오지 않았더라면 다른 기사단에 입단할 뻔했다.
‘스승님 나이스!’
그야말로 황금 같은 타이밍이었다.
어쨌든 크로마제의 폭탄 선언 덕분에 모두가 아시테르를 주목했다.
아시테르의 대답은 당연했다.
그가 손을 들어 올리자 순간 숨 막힐 듯한 침묵이 이어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전보다 훨씬 더 뜨거운 함성이 쏟아져 나왔다.
“역시 크로마제!!! 안정된 길을 걷는 것보다 완전히 새로운 길을 걷는 걸 선택했구나!!”
“진짜 대단하다는 말 밖에는 안 나온다… 나라면 당연히 여명 마법기사단이나 창파 마법기사단 같은 메이저 기사단으로 들어갔을 텐데…….”
“그러니까 크로마제가 ‘진짜’ 인거지.”
“아무튼 응원한다!!”
열화와도 같은 성원에 크로마제가 손을 들어 화답했다.
다만 몇몇 마법기사단 단장들은 크로마제의 선택에 아쉬움을 드러내었다.
“녀석… 모험을 하는 군.”
“쯧… 우리 기사단에 왔으면 엄청 잘해 줬을 건데.”
“아쉽지만 어쩔 수 없죠.”
“그나저나 신생 마법기사단에서 저 녀석을 데려갈 줄이야… 혹시 이전에 만나기라도 했었나?”
그들의 물음에 아시테르는 웃음으로 대답할 뿐이었다.
괜히 이전에 아시테르와 크로마제가 뜨거운 사제 관계였다는 것을 말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
“아시테르. 너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던 거냐?”
“응. 크로마제는 이전부터 나의 마법기사단에 들어오고 싶다고 말했었거든.”
“크로마제와 네가 인연이 있는 줄은 몰랐군.”
칸도 아쉬움이 잔뜩 드러나 있는 얼굴이었다.
자신의 기사단에 대한 애착이 강한 만큼, 칸 입장으로서도 크로마제를 놓친 것이 아쉬울만 했다.
뒤에 시립해 있던 가이우스와 에스파가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카데미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예가 아시테르의 기사단에 합류하게 되었으니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쨌든 순조롭게 아카데미에서의 일이 끝이 났다.
* * *
“어땠습니까 스승님! 제 덕분에 완전 인기스타가 되셨던데.”
“꼭 그렇게 요란하게 했어야 했냐?”
“당연하죠! 우리 스승님이 마법기사단을 창단하시는데 제자된 도리로서 가만히 있을 수 있겠습니까!?”
“어휴… 나는 그냥 조용히 너만 데려오고 싶었는데.”
그러면서도 아시테르의 표정엔 웃음이 가득해 있었다.
그가 기분이 좋은 것을 눈치챈 크로마제도 해맑게 웃었다.
아시테르의 시선이 크로마제를 살폈다.
예전에는 까칠함과 퉁명스러움으로 가득한 녀석이었는데, 어느덧 이렇게 환한 미소를 지을 줄 아는 청년으로 성장해 있었다.
“그보다 마법 수련은 게을리 하지 않았겠지?”
“당연하죠! 스스로를 극한으로 몰아붙이며 열심히 수련했습니다!”
“잘했다.”
“그런데… 부단장 자리는 벌써 정해진 겁니까?”
크로마제의 얘기에 에스파가 슬쩍 앞으로 나섰다.
그가 가슴을 활짝 펴며 고개는 45도 각도로 살짝 치켜들었다.
“그래. 이 몸이 바로 부단장님이시다.”
“오오 에스파 형님! 해내실 줄 알았습니다!!”
“너… 너어는 놀라지 않는 거냐?”
“당연한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당연히 부단장의 자리에 에스파 형님이 앉을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아니… 진짜 감동이다 크로마제!! 좋다! 너도 그럼 나의 제자가 되거라!!”
“그건 싫습니다!”
해맑게 거절하는 크로마제, 그리고 고개 숙이는 에스파.
이 두 사람을 보고 있으면 절로 분위기가 밝아지는 것만 같았다.
“그나저나 정식으로 시작하는 마법기사 생활이 스승님의 마법기사단이라 정말 꿈만 같습니다.”
“너는 이미 우리들의 동료나 마찬가지였어.”
“감사합니다, 에스파 형님.”
“정식으로 환영한다 크로마제.”
“감사합니다, 스승님.”
크로마제까지 성공적으로 데려왔으니 이제 딱 한 사람만 남았다.
마지막 남은 한 사람도 아시테르가 직접 움직여 데려와야 했다.
“그런데 아시테르. 아직 한 명이 더 남았다고 하지 않았어?”
“예? 제가 마지막이 아니었습니까?”
두 눈이 동그래진 크로마제가 놀라 말했다.
“아직 한 사람 더 남았어. 데려올 사람이.”
“그게 누군데?”
“예전에 너도 만났던 친구야. 에스파.”
“나? 그럼 내가 아는 사람이라는 건데?”
“응. 이제 그 친구를 데리러 가려고.”
“좋아. 그럼 나도 따라가겠어.”
“저도 함께 하겠습니다!”
이에 질세라 크로마제가 손을 번쩍 들며 말했다.
가이우스는 아시테르의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기 때문에 따로 말을 꺼내지도 않았다.
아시테르는 아카데미를 나와 다른 동료들은 거처로 돌려보냈다.
다들 아쉬워하는 눈치였지만 하는 수 없이 아시테르의 말에 따라 해산했다.
아쉬워해도 어쩔 수 없다.
이제 가게 될 곳은 사람들을 많이 데려갈 수 없는 곳이었다.
설사 많이 데려가도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은 소수였다.
아시테르의 다음 목적지는 레플렉시오 감옥이었다.
마지막 단원은 레플렉시오 감옥 안에 수감 중이었다.
“형이 잘 처리해 줬나 모르겠네.”
그를 데려오기 위해 곧바로 테오도라에게 연락을 취했었다.
트라이포스에 있는 테오도라만이 도와줄 수 있는 일이었다.
아시테르가 레플렉시오 감옥에 도착하자 그곳을 지키고 있던 문지기가 그를 알아 보았다.
“오랜만에 오셨군요 아시테르 기사님.”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후후 이곳은 늘 똑같습니다. 바깥과는 단절된 세상이니까요.”
“여기는 아무 일 없는 게 가장 좋은 일 아닌가요.”
“아하하하 그렇습니다. 따분한 일상이 가장 행복한 곳이죠. 그나저나, 오늘도 그 친구를 보러 온 겁니까?”
“아니요. 오늘은 조금 다른 일로 왔습니다.”
“예? 의외로군요. 매번 그 친구만 만나고 가시 길래 오늘도 그러시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고보니… 오늘은 다른 동료분들도 데려오셨군요.”
“후후 맞습니다. 제 기사단원들입니다.”
“기사단원…? 혹시 이번에 마법기사단장에 오르신 겁니까?!”
사내가 놀라 말했다.
곁에 있던 다른 동료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시테르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이번에 새로 마법기사단을 창단하게 되었습니다.”
“이거 축하드립니다!! 이제는 아시테르 단장님이라 불러야겠군요!”
“감사합니다.”
“그럼 바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얼마나 많이 왔던 것인지 별도의 검사도 없이 아시테르는 곧장 레플렉시오 감옥 안으로 안내되었다.
그와 함께 온 에스파나 크로마제, 가이우스도 무사 통과였다.
“그 녀석이 무척이나 반가워할 것 같습니다.”
“아하하하 그럴까요?”
“당연하죠! 안 그런 척 해도 그 녀석 은근히 아시테르 기사님을 기다린다고요.”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그러고보니 아시테르 기사님께서 안 오실 때 여성분께서 몇 번 다녀가셨는데.”
“여성분이요? 이름이 뭔지 물어봐도 될까요?”
“펜레레 가문의 레니엘이라는 이름이었습니다.”
“아아 펜레레 가문…….”
펜레레 가문이라면 반키라스와도 연관이 깊은 귀족 가문이었다.
“그 여성분께서 늘 많은 것들을 준비해 오십니다.”
“후후 그렇습니까.”
아시테르가 미소를 보였다.
레니엘이 반키라스에게 마음을 써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를 외면하지 않고 계속해서 챙겨 주는 그녀의 마음씨가 너무도 감사했다.
안내를 따라 안으로 들어서니 미리부터 와있던 반키라스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레플렉시오 감옥의 수장이 앉아 있었다.
“어서오십시오 아시테르 기사님.”
그가 몸소 일어나 아시테르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이제는 평범한 기사가 아닌 한 마법기사단의 단장이었으니, 그만큼 예우를 차려준 것이다.
아시테르도 그에게 예를 차렸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저야 뭐 늘 똑같습니다. 그나저나… 공문은 잘 받았습니다. 그 내용도 충분히 반키라스에게 얘기해 주었고요.”
반백 머리의 중년인이 반키라스를 돌아보며 말했다.
아시테르도 반키라스쪽을 쳐다보았다.
“네 생각은 어때?”
“함께 하면서 제 죗값을 치르겠습니다.”
“좋아. 깔끔한 답변이네.”
아시테르가 만족스런 미소를 짓고 있을 때 크로마제가 슬쩍 인상을 찌푸렸다.
척 봐도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청년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귀족 가문에서 자라온 크로마제는 부드러우면서도 귀티나는 분위기를 풍기는 반면 반키라스는 좀 더 거칠고 야생스러운 분위기였다.
마침 반키라스도 크로마제쪽으로 시선을 옮기고 있었다.
“뭘 봐?”
“뭐……?”
“내 얼굴에 뭐 묻었냐?”
척 봐도 ‘나 귀족 가문의 자제요’ 하고 써져 있는 크로마제의 모습에 반키라스가 짜증부터 냈다.
상대 쪽에서 먼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을 내뱉으니, 크로마제라고 기분이 썩 좋을 리가 없었다.
“스승님. 저놈은 뭡니까? 설마 저 녀석도 마법기사단에 합류하는 겁니까?”
“아아 소개를 해줘야지 참. 인사해. 여기는 반키라스. 과거 나와 인연이 있던 녀석인데…….”
“저 녀석은 뭡니까 아시테르 형님?”
“너도 인사해 반키라스. 여기는 내 제자인 크로마제!”
“형의 제자라고요……?”
반키라스가 피식 웃었다.
그것이 마치 비웃는 것 같아 크로마제가 발끈했다.
“뭐냐 지금 그 반응은?”
“딱 봐도 곱게 자란 약골 같은 녀석이… 아시테르 형님의 제자라는 게 영 못 미더워서 말이야. 혹시 아시테르 형님 약점이라도 잡아서 뭘 좀 가르쳐 달라 한 거냐? 우리 형님이 영 마음이 약해서 그런 걸 어쩌지 못하시더라고.”
“뭐야?! 웃기는 소리 하지 마 임마. 이 몸은 아시테르 스승님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뜨거운 던전 생활을 보낸 ‘진짜’ 제자시다.”
크로마제가 가슴을 당당히 펴며 말했다.
그러자 반키라스가 지지 않겠다는 듯 말을 이었다.
“호오… 그거 재밌네. 나도 마침 아시테르 형한테 마법 좀 배웠는데. 어디 누가 더 강하지 해볼까?”
“그거 재밌는 소리네. 자신 있냐 너?”
반키라스와 크로마제가 의지를 활활 불태우자 아시테르가 손을 들어올렸다.
“둘 다 그만.”
두 사람이 잔뜩 열이 오르려는 그때 아시테르가 끼어들었다.
“확실히 두 사람이 비슷한 나이 대라 그런지 만나자마자 서로 죽이 척척 잘 맞는 구나.”
“이게 어딜 봐서 잘 맞는다는 겁니까 스승님!”
“이게 어딜 봐서 잘 맞는다는 거예요, 형!”
지금도 둘이 동시에 대꾸하고 있었다.
두 사람이 서로를 쳐다보았다.
못마땅해 하는 두 사람의 표정.
하지만 아시테르는 그런 두 사람도 곧 친해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다른 듯하면서도 어딘가 닮아 있는 두 사람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