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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250화 (250/424)

250화 본격적인 활약

예비 병력들과 함께 불벤에 있던 바카드는 사우스 왕국 하트 군대를 이끄는 천인장 중 한 명이었다.

그의 밑에는 자그마치 천 명이나 되는 수하들이 있었다.

가장 높은 곳에 막사를 설치해 두었던 바카드는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그동안 천인장까지 오르기 위해 얼마나 고생해 왔던가.

그 일련의 기억들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갔다.

숱한 전쟁터에서 살아남으며 강해지고 또 강해졌다.

살아남는 것도 대단한데, 그 와중에 맡겨진 임무들까지 충실히 해내며 착실히 공을 세워 나갔다.

그렇게 도달한 위치가 바로 천인장이었다.

누군가는 오천인장과 만인장을 두고 고작 천인장에 올랐다며 비웃을지 모르나, 바카드에게 그 자리는 너무나도 자랑스럽고 벅찬 위치였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는 겁니까.”

“후후후 마일드. 내가 이 자리까지 오는데 얼마나 힘든…….”

“그 얘기라면 이제 그만해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들어라. 네가 내 수하라면 들을 의무가 있어.”

“하아…….”

마일드라 불린 사내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럴거면 차라리 빨리 임무에 나서는 것이 나았다.

계속해서 대기만하고 있으니, 하루가 멀다 하고 바카드의 자랑 아닌 자랑질을 들어 줘야만 했다.

그때 먼발치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적습이다!!”

“적이 공격해 왔습니다!!!”

땡―!!

때애애애애앵―!!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적의 침입을 알리는 경종이 울렸다.

수하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말을 이어가려던 바카드가 표정을 달리했다.

“이스트 왕국놈들이 쳐들어온 건가?”

“이스트 왕국 기사단이 공격해 오고 있습니다!!”

“적들의 숫자는?”

“그게… 파악된 숫자는 현재 5명입니다!”

“뭐라고? 내가 지금 잘못들은 거냐?”

바카드가 인상을 팍 쓰며 물었다.

그럼 고작 5명이 처들어왔다고 이런 소란을 피우고 있다는 말인가?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자신의 밑에는 천명이나 되는 수하들이 주둔하고 있다.

그런데 겨우 다섯 명 때문에 이런 소란을 보일 리 없었다.

허나 그의 수하는 다시 한번 적들의 숫자를 확인해 주었다.

“그사이에 한 명 더 늘었습니다! 후방을 보조해 주고 있는 궁사가 있습니다.”

“궁사라고? 근데 뭐? 한 명? 그럼 다 합쳐도 6명이라는 얘기냐?”

“네 그렇습니다!”

수하의 대답에 바카드가 뒷목을 붙잡았다.

얘네들이 오늘따라 뭘 잘못 먹었나.

60명, 아니 600명도 아니고 고작 6명으로 이렇게나 호들갑이라니…….

그 순간 다시 한번 굉음이 일었다.

이번에는 한층 더 가까이서 일어난 폭발이었다.

“뭐야? 여기는 제대로 싸울 줄 아는 놈이 단 한 명도 없는 거냐?”

눈매를 좁히며 먼 곳을 바라보니 창을 든 사내가 이쪽으로 걸아오고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수십 명의 수하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어……?”

나름대로 강도 높은 훈련을 받은 군사들이었다.

거기다 수하들 모두 경무장을 하고 있었다.

헌데 지금 저게 무슨 꼴이란 말인가……!

얇은 체인으로 만들어진 갑옷은 형편없이 찢어져 있고 병장기들은 부러져 있었다.

휘릭―!

사내가 다시 창을 꼬나잡았다.

이번에는 좌에서 우로 창이 움직였다.

콰가가강―!!

칠흑빛 물결이 전방을 휩쓸었다.

말 그대로 전장 일대를 휩쓸어 버렸다.

이렇다 할 반항조차 해보질 못했다.

일격에 절명한 수하들을 보며 바카드가 순간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 사이 사내의 동료로 보이는 다른 기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 명은 맨몸으로 바카드의 수하들을 때려죽이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새 하얗고 기다란 무언가를 들고 마음껏 휘두르고 있었다.

거기다 뒤에서 쉬지 않고 날아오는 화살들이 놀랍게도 수하들의 목과 발목을 겨냥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바카드가 크게 소리쳤다.

“겁먹지 마라! 그래 봤자 열 명도 안 돼!! 놈들도 금방 지치게 되어 있다! 모두 공격해!!”

바카드의 외침에 뒤로 물러나던 사우스 왕국의 병사들이 다시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검과 활을 든 그들을 보며 카이드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카이드의 창이 춤을 추듯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창날에서 검은 바람이 실려 나왔다.

촤라라락―!!

콰드드등!!!

검을 들고 서 있던 병사의 몸이 갈기갈기 찢겼다.

카이드의 창격 앞에서 경무장 갑옷 따위는 무용지물에 불과했다.

어떻게든 그의 공격을 막아 보려 방패를 들었던 병사도 순식간에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카이드는 창 하나만을 들고 적진의 한 가운데에서 여유롭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뒤이어 라빈이 허공에 떠올랐다.

그녀는 뼈를 이용한 화려한 검무로 적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아직 이게 다가 아닌데.”

대지에서 솟아오르는 뼈들.

날카로운 뼈들에 몸이 관통당한 병사들이 비명 소리를 내질렀다.

라빈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양손에 든 뼈를 들며 회전하듯 움직였다.

공격에 닿은 병사들의 얼굴이 갈려 나가는 것처럼 휩쓸렸다.

“못 보던 사이에 쟤는 더 살벌해졌네, 진짜…….”

뒤에서 두 사람을 보조해 주던 에스파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지 않아도 기괴한 마법을 쓰는 라빈인데 저렇듯 손속에 자비까지 베풀지 않으니 더더욱 무서워 보였다.

아마 적들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귀신처럼 보일 터였다.

“뭘 그렇게 보고만 있어?”

“저기 두 사람이 다 해먹어서 나는 할 게 없네.”

“거짓말 하지 마. 네가 잘하는 것 있잖아.”

“내가 잘하는 거?”

“그래. 적들의 대장을 멀리서부터 단숨에 노리는 것. 그게 네 가장 큰 장기 아니야?”

“호오…? 나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네, 에이브릴.”

“그야…….”

에이브릴이 말끝을 흐렸다.

그녀가 시선을 돌릴 동안 에스파가 활을 들어 올렸다.

사실 그는 이미 적들의 대장이 어디쯤에 있는지 파악을 완료한 상태였다.

저렇게 대놓고 대장의 막사를 눈에 띄는 곳에다 설치해 두었는데 모를 수가 없었다.

거기다 갑옷까지도 ‘내가 이곳의 대장이요.’ 라고 써져 있는 듯 했다.

화려한 투구를 쓰고 있는 사내에게로 에스파가 활을 겨누었다.

슈우우웅―!

파아아아아아앙―!!!

화살 끝에 마력이 모이는가 싶더니, 이내 빠른 속도로 쏘아져 나갔다.

대기를 가르며 나아가는 화살이 점차 속도를 더했다.

뒤늦게 화살의 존재를 확인한 마일드가 방패를 들고 몸을 날렸다.

“위험합니다! 피하십시오!!”

푸른 마력이 방패에서 흘러나와 실드를 만들어냈다.

투콰아앙!!

곧바로 커다란 폭음과 함께 마일드의 몸이 뒤로 밀렸다.

대체 어디서부터 쏜 화살이 길래 이런 묵직한 위력을 내는 것인가!

마일드가 부릅뜬 눈으로 화살이 왔던 곳을 되짚어봤다.

그러다 너무도 놀라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화살을 쏜 에스파와 에이브릴이 작은 점으로 보일 정도로 먼 거리였다.

“이게 무슨 일이냐?! 적이 벌써 가까이에 다가온 건가?!”

“바카드님. 피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뭐? 내가 수하들을 두고 어디로 피한다는 말이냐! 이곳은 나의 전장이다. 여길 두고 다른 곳으로 갈 수 있을 리가 없질 않느냐!”

“하지만 이곳에 있다가는 개죽음만 당할지도 모릅니다.”

“마일드. 너는 나와 나의 수하들을 믿지 못하는 거냐?”

“바카드님!! 이건 믿고 말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적들의 실력이 너무나도 뛰어납니다. 저희들이 감히 상대해 볼 수 있는 존재들이 아니란 말입니다!”

마일드가 전장을 살피며 말했다.

벌써 이백 명은 족히 죽여 버린 창술사가 이곳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새하얀 무기를 들고 화려한 움직임을 보이는 여인도 창술사와 경쟁하듯 수많은 병사들을 도륙 내고 있었다.

거기다 더 성가신 것은 바로 저 활잡이였다.

그것도 그냥 화살이 아닌 마력으로 이루어진 화살이었다.

파바바방!!!

연이어 날아온 화살을 방패로 막아낸 마일드가 이를 악물었다.

겨우 몇 개의 화살만 받아 냈을 뿐인데 벌써 방패를 부여잡은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저 멀리서 쏘는데도 이딴 위력인 거냐……!”

어이가 없어 헛웃음밖엔 새어나오질 않았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점을 느꼈다.

“근데 분명 6명이라고 말하지 않았나? 그럼 나머지 둘은…….”

그가 다른 적을 찾아보기도 전에 가까이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아, 그럼 화끈하게 시작해 보겠습니다!”

언제 여기까지 도달한 것인지 낯선 복장의 사내가 이곳에 서 있었다.

채재재쟁!!

처렁!!

병사들이 일제히 사내를 향해 병장기를 겨누었다.

사내는 빙그레 웃으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여러분들은 아무데도 도망 못가십니다.”

콰드드득!!!

쿠루루루르르르릉―!

크로마제가 마법을 사용하자 엄청난 양의 모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모래로 성벽을 만들어 낸 크로마제가 적들의 퇴로를 아예 차단해 버렸다.

그사이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반키라스가 성벽 위에 안착했다.

“수고 많았다. 모래두더지.”

반키라스는 짧은 한마디와 함께 공격을 시작했다.

그의 마법이 상대 병사들을 마구잡이로 뜯어먹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보며 크로마제가 인상을 찌푸렸다.

“별로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네…….”

평소 같았으면 사람들을 저렇게 죽이는 반키라스에게 한 마디 하겠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이곳에 주둔해 있던 하트 군대는 상관없는 일반 사람들까지도 무참히 살해했다.

그것도 한 곳 마을에서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여러 마을들을 들리며 똑같은 짓을 자행했다.

“그것 때문에 우리 대장님께서 얼마나 화를 내셨는 줄은 아냐…….”

크로마제가 다른 쪽을 바라보았다.

카이드와 라빈의 활약에 적들의 숫자가 현저히 줄어 있었다.

거기다 에스파의 화살 세례에 결국 적장까지 목숨을 잃고 말았다.

화살에 목이 뚫린 마일드와 바카드를 보며 크로마제가 나지막이 말했다.

“자업자득이네요.”

예비 병력으로써 이곳에 가만히 대기하기만 했어도 모두 죽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넘지 말아야 될 선을 넘어버리고 말았다.

그들이 습격한 마을들 중엔 하필이면 엔류아와 연관되어 있는 마을도 있었다.

“그나마 당신들은 편하게 죽는 걸지도 모릅니다. 다른 쪽에는 더욱더 무서운 형님이 가셨거든요.”

크로마제의 시선이 맞은편으로 향했다.

예비 병력으로 대기하고 있던 부대는 총 세 개 부대.

한쪽은 에스파와 다른 동료들이 맡았고 다른 한쪽으로는 데미리우스가 혼자 나섰다.

데미리우스의 독마법은 어둠을 틈타 적진 한가운데로 퍼졌다.

저급 수준의 마도사로는 결코 알아차리기 어려운 독마법이었다.

설사 알아차렸다 해도 이미 늦어버린 뒤였다.

데미리우스의 독마법에 중독된 병사들과 마도사들이 숨을 헐떡이며 하나둘 쓰러져갔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이들의 얼굴이 보랏빛으로 물들다 이내 파랗게 변한다.

숨을 거둔 적들을 데미리우스는 무심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이쪽도 쉽게 클리어.”

천 명이나 되는 적들을 죽이는데 겨우 20분이면 충분했다.

이것이 바로 데미리우스가 가진 독마법의 진정한 무서움이었다.

대량 학살에 특화되어 있는 마법.

독마법에 전멸당한 부대가 있음을 윗선에 보고된 것도 그로부터 이틀 후였다.

마지막으로 남은 다른 한 부대는 아시테르와 가이우스, 세아츠리스가 나섰다.

정확히는 가이우스 혼자 나섰다.

그는 혼자서 적진을 뚫고 들어가 적장의 목을 꺾어 버렸다.

엔류아가 그의 곁에 붙어서 치유까지 바로바로 해 줘 버리니, 적들의 입장에서는 가이우스가 불사신이나 마찬가지로 보였을 것이다.

적장의 목을 가져다바친 가이우스가 고개를 숙였다.

“명령을 완수했습니다.”

“고생했어요.”

“별말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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