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에서 왔습니다만-254화 (254/424)

254화 그 시각, 알렌시아와 칸

이스트 왕국 남서쪽에 위치한 맥키 성.

명령을 받고 이곳에 주둔하고 있는 마법기사단은 돌풍 마법기사단이었다.

다른 곳과 다르게 칸은 돌풍 마법기사단을 이끌고 사우스 왕국쪽으로 남하하고 있었다.

순조롭게 연전연승을 이끌어 가던 돌풍 기사단을 처음으로 막아선 이가 있었다.

자신을 조커라고 소개한 헤리퍼는 돌풍 마법기사단의 한가운데에서 어둠의 군단을 소환해 냈다.

흑마도사들 중에서도 전쟁에 특화되어 있다는 네크로맨서.

헤리퍼는 바로 그 네크로맨서였다.

거기다 헤리퍼를 따르는 흑마도사들도 여간 까다로운 마법들을 사용하는게 아니었다.

저주를 거는 것부터 독과 언데드들까지.

다양한 것들을 사용하는 헤리퍼의 군대는 독특한 싸움 방식으로 돌풍 마법기사단을 괴롭혔다.

덕분에 돌풍 마법기사단의 남하에도 제동이 걸리고 말았다.

신흥 강자들로 똘똘 뭉친 돌풍 마법기사단에도 허점이 있었다.

바로 전쟁 경험이 많은 마도사가 적다는 것.

이런 상황과 직면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지 경험으로 터득한 이가 없었기에 돌풍 마법기사단은 제자리를 맴돌아야 했다.

거기다 또 다른 문제 거리로 대두된 것은 지나친 칸의 대한 의존도였다.

그동안 뛰어난 리더십으로 돌풍 마법기사단을 이끌어왔지만, 반대로 이것은 그들이 칸에게 많은 것들을 의존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칸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면 섣불리 움직이질 못했다.

이런 문제점들을 겪으며 돌풍 마법기사단이 헤리퍼의 군대를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을 때, 그들을 돕기 위해 본국에서 다른 마법기사단이 파견되었다.

“너희가 올 줄은 몰랐는데…….”

“우리가 가장 가까이에 있었어.”

기사단원들을 이끌고 온 것은 다름 아닌 알렌시아였다.

그녀 또한 칸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마법기사단을 창단해 승승장구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아직 돌풍 마법기사단에 비해서는 한 수 아래로 취급받는 경향이 없진 않으나, 일섬 마법기사단도 뛰어난 활을 거듭 보여 주며 평가를 올렸다.

“거기다 맥키 성은 우리 가문과도 연관되어 있는 곳이고.”

알렌시아가 맥키 성 주위를 살피며 말했다.

어머니 쪽인 라른도왈츠 가문이 있는 곳이 바로 맥키 성이었다.

때마침 그녀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라른도왈츠 가문의 주인이자 알렌시아의 외할아버지인 소비르탄이 찾아왔다.

“할아버지…….”

“오오, 우리 손녀가 왔구나!”

소르비탄이 알렌시아를 반갑게 안아 주었다.

못 보던 사이 소르비탄의 주름이 한층 더 늘어 있었다.

이제는 백발이 성해진 소르비탄을 보며 알렌시아가 환하게 웃었다.

그래도 아직은 정정해 보이는 모습이라 안심했다.

“네가 마법기사단의 단장이 되었다는 얘기는 들었다.”

“네. 제가 해냈어요 할아버지.”

“후후… 나는 물론 네 어머니도 크게 기뻐했다.”

“어머니가요?”

“아아… 너는 모르고 있었겠구나. 이곳에 네 어미도 와 있단다.”

“어머니가 어째서 이곳에…….”

“그것은 나중에 차차 물어보면 될 일 아니겠느냐.”

소르비탄이 손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어렸을 때만 해도 그렇게 거대해 보였던 할아버지였는데, 지금은 왜소한 체구의 노인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소르비탄을 향해 칸이 인사를 전했다.

뒤늦게 그를 확인한 소르비탄이 멋쩍은 미소를 보였다.

“이거 제가 지나치게 우리 손녀딸만 반가워했군요. 칸 단장님을 옆에 두고…….”

“아닙니다. 오랜만에 보는 손녀분일 텐데 그러실 만합니다. 오히려 제가 눈치 없게 방해한 것은 아닌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칸 단장님이 있음으로 해서 이곳의 분위기가 더욱 사는 것 같습니다 허허.”

소르비탄이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털털하게 웃었다.

그의 시선이 칸과 알렌시아를 훑었다.

아름다운 손녀딸과 멋지고 훌륭한 칸이 함께 서 있으니, 참으로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소르비탄은 칸이 맥키 성에 머무르는 동안 쭈욱 그를 지켜봐 왔다.

그 결과 칸은 5대 가문의 자제로서 흠 잡을 곳 없는 사내였다.

이른 아침부터 일어나 수련하고 업무를 시작한다.

그가 업무를 마치는 시간은 다른 이들이 다 잠들었을 때다.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 누구보다 많은 양의 업무를 소화한다.

그러면서도 일의 처리는 빈틈이 없었다.

세세한 부분까지도 섬세하게 신경 쓰는 그의 일처리는 소르비탄으로 하여금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어디 그뿐인가.

마법기사단의 단장답게 뛰어난 실력으로 전투에선 늘 선두에 섰다.

솔선수범하는 모습과 철저한 자기관리, 소르비탄에게 칸은 너무나도 마음에 드는 인물이었다.

거기다 이스트 왕국의 5대 가문인 오스카 가문을 뒤에 업고 있으니, 배경도 남부러울 것 없다.

‘우리 알렌시아가 저런 좋은 짝이 나타나야 할 텐데…….’

내심 씁쓸한 미소를 지은 소르비탄이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그는 알렌시아와 함께 곧바로 가문으로 복귀했다.

잠시간의 여유가 있어 알렌시아도 그녀의 어머니를 보러 온 것이다.

“알렌시아―!”

딸의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에르네시아가 반갑게 소리를 질렀다.

화려한 보석들을 온몸에 두르고 우아하게 걷는 그녀를 보며 알렌시아도 인사를 건넸다.

“어머니는 언제 이곳에 오신 거예요?”

“네 할아버지가 아프다고 해서 와 봤지. 근데 그 사이에 전쟁이 터져서는…―.”

“할아버지가 아프셔요?”

“어머 너 몰랐니? 말씀 안하셨어?”

에네르시아가 소르비탄을 쏘아보았다.

그러자 소르비탄이 시선을 피하며 헛기침을 했다.

“크흠…….”

“하여간…….”

알렌시아가 에네르시아를 꼬옥 껴안았다.

“어디 다친 곳은 없으시죠? 맥키 성도 전란의 한가운데에 있었다는데…….”

“돌풍 마법기사단이 든든하게 우리를 지켜줬어.”

“돌풍 마법기사단이요?”

“그래. 사우스 왕국군이 쳐들어왔을 때만해도 정말 큰일이 나는 건 아닌가 싶었는데… 그때 돌풍 마법기사단이 이곳까지 와서 우리를 도와줬다니까?”

“그랬군요..”

“잘 생기고 키 크고 강하고 마법기사단의 단장이고… 진짜 그 칸이라는 사내는 왜 이렇게 훌륭한 거니? 거기다 가문도 오스카 가문이야?! 진짜 딱인데… 우리 딸의 짝으로…….”

“에이, 어머니 저는 이미 애인이 있어요.”

“엥?!!? 애인이 있었어? 누구야? 이름이 뭔데? 뭐하는 사람이야? 어디 가문 출신이고?”

에네르시아의 뜨거운 관심에 알렌시아가 입가를 씰룩였다.

그 사이 소르비탄이 두 모녀 사이에 끼어들었다.

“여기서 이럴게 아니라 안에 들어가서 마저 얘기를 나누도록 할까.”

“지금 알렌시아의 말 못 들었어요!? 애인이 있다잖아요. 우리 딸이!”

에네르시아가 살짝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알렌시아는 일단 그녀를 조금 진정시킨 후 안에 들어가 아시테르에 대해 털어 놓았다.

아직까지 그녀는 아시테르가 마법기사단을 창단 했다는 소식을 접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은 왕실기사단의 부단장으로 있다는 말을 전했다.

“그럼 가문은? 어디 가문 사람인데?”

“프로메테 가문의 사람이에요.”

“오오오?! 프로메테 가문!? 그래서 왕실기사단에 있었던 건가? 프로메테 가문이라…….”

헌데 에네르시아의 반응이 영 시원치 않았다.

그녀의 표정을 읽은 알렌시아가 슬쩍 떠보았다.

“왜 그런 얼굴을 하고 계시는 거예요?”

“그게… 프로메테 가문은 이번에 힘을 크게 잃었잖아.”

“그래도 이스트 왕국의 5대 가문이라 불리는 곳이에요. 거기다 아레나님까지 오셨으니 다시 힘을 회복할 거예요.”

“근데 그럼 아버지 쪽은?”

“아시테르의 아버지는 유미르님이예요!”

“유미르…?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

에네르시아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렀다.

가만히 생각에 잠겨 있던 소르비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심연 마법기사단의 단장이었던 그 유미르 단장을 말하는 거냐?”

“네! 맞아요.”

알렌시아의 대답에 소르비탄과 에네르시아의 표정이 일시에 굳었다.

두 사람의 표정을 확인한 알렌시아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심연 마법기사단의 단장이라면 천민이었던 사람이잖아……?”

“그래도 많은 왕국민들에게 존경받는 사람이었지.”

“존경이 밥 먹여줘요? 아무 짝에 쓸모없어요, 그런 것은… 그보다 그럼 아시테르란 아이는 천민과 귀족의 피가 섞였다는 얘기네?”

에네르시아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때서야 알렌시아는 어머니인 에네르시아가 무엇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지 알 수 있었다.

“그게 그렇게 중요할까요……?”

“중요하지! 순수한 귀족 혈통인가 아닌가는 아주 중요해!”

“어머니…….”

“거기다 프로메테 가문은 점점 기우는 해잖아. 그보다는 오스카 가문이 낫지 않겠니?”

그제야 에네르시아가 슬쩍 속내를 드러내었다.

사실 그녀는 맥키 성에 있는 칸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가문부터 인성, 실력 모든 것이 완벽한 사내였다.

그런 사내를 두고 무엇하러 뒷말이 많을 것 같은 사내를 데려오겠는가.

거기다 오스카 가문은 루기아 가문 못지않게 재력으로도 빵빵한 가문이었다.

그곳과 혈연을 맺을 수 있다면 앞으로 라른도왈츠 가문이 비상하는 것도 시간문제였다.

“네 아빠네 가문이 망하지만 않았어도… 쯧…….”

“어머니 그런 말씀은…….”

“알아, 알아. 또 잔소리 하려고…….”

에네르시아가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소르비탄이 씁쓸한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어렸을 때부터 금이야 옥이야 키웠던 탓에 지나치게 철이 없는 에네르시아였다.

체르도네 가문과 혼인을 맺겠다는 얘기를 했을 때도 남편이 될 사람을 사랑해서 가는 줄로만 알았다.

소르비탄은 정략결혼이 판을 치는 귀족들의 세계에 에네르시아만큼은 사랑을 기반으로 한,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혼인하길 바랐다.

하지만 에네르시아는 소르비탄의 바람과는 다르게 사람이 아닌 가문을 보고 결혼을 택했다.

그 결과 체르도네 가문이 쇠퇴하기 시작하자, 에네르시아는 싸늘하게 등을 돌려 버렸다.

덕분에 알렌시아만 어렸을 때부터 두 가문의 눈치를 보며 억척같이 살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 손녀딸을 보고 있으면 소르비탄은 그저 안쓰러운 마음이었다.

그러다 이렇게 세월이 흘러 훌륭하게 마법기사단의 단장자리 까지 올라 주었으니, 소르비탄의 입장에선 그저 대견스러울 뿐이었다.

소르비탄이 손녀의 손을 꼬옥 잡아 주었다.

“이 할아비는 그저 우리 손녀딸이 사랑하는 사람과 잘 되길 바랄 뿐이다.”

“사랑이 밥 먹여 주나? 아니 제 말이 맞잖아요, 아빠. 칸이라는 더 없이 훌륭한 남자를 두고 왜 그런 반푼이 같은 녀석이랑…….”

“아시테르도 칸 못지않게 훌륭해요.”

“왕실마법기사단의 부단장이라며? 거기다 아버지 쪽은 천…….”

“그 천민 소리 좀 그만하세요 어머니.”

“아주 그냥 남자 때문에 지 어밀 잡아먹을 기세네.”

에네르시아가 툴툴 거리며 알렌시아를 쏘아보았다.

더 이상 대화의 필요성을 못 느낀 알렌시아가 이만 몸을 돌렸다.

그러자 에네르시아가 아쉬움에 한 마디 더 날렸다.

“잘 생각해 봐! 나중도 생각해야지!!”

“…….”

“저거는 제 어미가 말하는데…….”

차갑게 돌아선 알렌시아의 등뒤로 에네르시아의 목소리가 연신 꽂혔다.

하지만 알렌시아는 돌아보지 않고 곧바로 본대로 복귀했다.

숙소에 돌아오고 나서도 그녀의 귓가에는 소르비탄과 에네르시아의 목소리가 연신 맴돌았다.

대놓고 표현한 에네르시아와 다르게 소르비탄도 내심 알렌시아가 칸과 이루어지길 바라는 눈치였다.

답답한 마음에 알렌시아가 바깥으로 나왔다.

어둠 속의 달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저 달빛을 보고 있으면 유미르의 검술이 떠올랐고, 유미르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아시테르의 얼굴이 떠올랐다.

“하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