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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257화 (257/424)

257화 역전의 지원군 (2)

“우와… 많이도 몰려왔네.”

“적들의 군세가 장난 아니긴 하네…….”

“특이하게 생긴 이들도 있군요.”

사우스 왕국군을 살핀 아일리시가 입을 열었다.

“파르무스 대장의 군대네요.”

“파르무스?”

“과거 전쟁 영웅이었던 사람이에요.”

“그렇군.”

“미리 말해 두는데요. 당신들을 따라오긴 했지만 우리 군대에 대한 정보는 넘겨 주지 않을 거예요.”

아일리시가 시작부터 못을 박듯 얘기했다.

그러나 이미 다른 단원들은 새삼스런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얘기한 건 정보가 아닌 거지……?”

“모르겠어. 나는 저 여자 이해하는 걸 포기했어.”

“후후후, 언제나 유쾌해.”

그들의 얘기에 아일리시가 얼굴을 붉혔다.

그러고 보니 사우스 왕국군을 보자마자 파르무스의 군대라고 말해 버린 것이다.

아시테르가 말없이 전투준비를 시작했다.

그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언제 그랬냐는 듯 기사단의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어딘가 엉성하고 편안하기만 한 분위기였다.

솔직히 지난 번 전투에서 이들의 실력을 직접 눈으로 보지 못했더라면, 영락없는 시골의 구색만 갖춘 기사단쯤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있는 언노운 마법기사단은 달랐다.

그동안 봐 왔던 이들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 되어 있었다.

가장 먼저 날카로운 기세를 드러낸 카이드가 창을 고쳐 잡았다.

창을 바라보며 아일리시는 생각했다.

저 창신이 붉은 피로 물드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이다.

문제는 그 피가 사우스 왕국군의 피가 될 것이라는 것.

“먼저 간다.”

카이드가 여느 때처럼 선봉을 자처했다.

창 하나만을 들고 과감하게 전장으로 뛰어드는 그를 보며 아일리시가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아무런 전술도 세우지 않는 거야?”

“그럴 필요 없어. 따로 전술을 세우지 않아도 돼. 우리는.”

라빈이 팔꿈치에서 새하얀 뼈를 꺼냈다.

기괴한 그녀의 마법에 아일리시가 순간 질겁했다.

그동안 그녀가 새하얀 무기를 휘두르고 있다는 생각만 했을 뿐, 그게 자신의 뼈일 것이란 생각은 하지 못해 봤다.

“아, 라빈이 뼈를 꺼내는 걸 처음 보겠군요. 괜찮아요. 처음엔 좀 징그럽고 흉측해도 보다 보면 적응이 되요.”

“다 들린다 에스파 오빠.”

“그랬어? 미안.”

에스파가 활을 들고 뛰어나갔다.

이제보니 카이드보다 더 먼저 뛰어가는 사람이 있었다.

“기다려 아시테르!!!”

왕실기사단의 갑옷을 본 아시테르가 전력을 다해 달려 나가고 있었다.

파아아앙!!

화르릉!!

2미터는 족히 넘을 불길이 순식간에 몸을 일으켰다.

화려하게 등장한 아시테르가 불길로 적들의 진격을 막았다.

“저놈은 뭐야?!”

“적이다!!!”

“새로운 적이 나타났다!”

겨우 한 명의 등장이었지만, 단 한순간에 적들의 이목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아시테르가 손아귀를 펼치자 그곳에서 시작된 붉은 화염이 커다란 오브를 만들어 내었다.

오브가 하늘로 솟구치니, 하늘에서 불꽃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붉은 빗줄기가 하늘을 가득 메우는 그 광경은 적들은 물론 아군마저도 넋을 놓게 만들었다.

“저건 대체 무슨 마법이냐……?”

“나 들은 적이 있다… 제9 왕실기사단의 부단장으로 있던 사람… 그 사람 별명이 ‘붉은비’ 아니었나……?”

“그 사람이 왔다고?”

“그게 아니면 저게 설명이 되나……?”

화염이 폭우처럼 내리며 적들을 공격했다.

온 전장을 불살라 버리는 아시테르의 마법에 지켜보던 이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 거참, 화끈하게 시작하시네 우리 대장.”

적진 한가운데로 도착한 카이드가 창을 들어올렸다.

“뭐야…?! 어느새……!”

“어느 새긴 뭐 어느 새야? 대놓고 당당하게 걸어왔구만.”

카이드가 횡으로 창을 휘두르자 마기가 함께 휘몰아쳤다.

그의 변화무쌍한 창술이 적진 한 가운데에서 펼쳐지기 시작했다.

마기가 넘실거릴 때마다 적들의 피가 하늘을 수놓았다.

그러나 카이드가 아무리 화려한 창술을 펼쳐 봐도 아시테르를 능가할 수는 없었다.

그의 불길은 온 전장에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새하얀 얼음과 커다란 바위가 동시에 아시테르를 노렸다.

아시테르는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적들의 마법을 피했다.

이어 불기둥이 곳곳에 솟아나며 적들을 불태워 버렸다.

모두 왕실기사단과 아브렐 성의 군사들을 쫓던 적들이었다.

“허… 저놈은 뭐냐…….”

불길을 저만큼이나 자유자재로 부리는 것은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파르무스가 눈앞의 적들을 두고 아시테르를 쫓기 시작했다.

강자를 보니 피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일찍부터 그를 시선에 두고 있던 이가 있었다.

“흣차!”

가볍게 도약한 것만으로 하늘 높이 뛰어오른 카이드가 파르무스를 향해 창을 겨누었다.

휘릭─!

콰아앙!!!

카이드의 창과 파르무스의 검이 부딪혔다.

“뭐냐 애송이.”

“뭐…? 애송이? 아니 보자마자 날 애송이라고 부르는 이 신박한 또라이는 또 처음 보네.”

카이드가 자연스럽게 창을 거두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일련의 과정들이 부드럽고 빈틈이 없었다.

그 말은 즉, 상대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얘기였다.

하지만 파르무스의 눈에는 카이드보다 아시테르가 밟히고 있었다.

“우리 대장한테는 못 간다.”

“대장? 너희들의 대장이라는 말이냐?”

“그래.”

창을 어깨에 걸친 카이드가 파르무스를 노려보았다.

본능적으로 그가 이곳에서 가장 강한 사내인 걸 알 수 있었다.

다른 잔챙이들은 신경쓰지 않았다.

휘리릭─!

카이드의 창이 현란하게 움직였다.

그 모습에 파르무스가 자세를 낮췄다.

“신기한 모습을 하고 있네.”

인간이지만 인간이 아닌 모습.

신체를 변형시키는 마법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저렇게 많은 부분들을 바꾸는 마법은 또 처음이었다.

“너 따위랑 놀아 줄 시간 없다.”

파앙!

대지를 박찬 파르무스가 섬전과도 같이 파고들었다.

양손의 검이 카이드를 베었다.

아니, 베는 것처럼 보였다.

아슬하게 파르무스의 검을 피한 카이드가 창을 올려쳤다.

카아앙!!

검을 교차해 공격을 막아낸 파르무스가 두 눈을 부릅떴다.

칠흑빛 마기가 뒤이어 밀어닥쳤던 것이다.

거친 폭음과 함께 파르무스의 몸이 밀려났다.

“우와… 아예 반으로 갈라 버릴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단단하구나?”

카이드가 창을 회전시키며 거리를 좁혔다.

나선으로 회전하는 창끝이 파르무스의 몸을 꿰뚫으려 했다.

두 개의 검이 빠르게 움직였다.

현란한 빛이 번뜩이고 카이드의 창 이곳저곳에서 불꽃이 튀었다.

칠흑빛 마기와 파르무스의 마력이 한데 뒤엉키기 시작했다.

“검을 제법 잘 다루네.”

두 개의 검으로 공격과 수비를 동시에 하는 파르무스를 보며 카이드가 활짝 웃었다.

변화무쌍한 자신의 창술을 본능만으로 방어해 내고 있었다.

전투 센스가 어지간히 좋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다.

반면 파르무스의 얼굴은 점점 굳어지고 있었다.

아주 만만하게 봤던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금방 쓰러트릴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카이드의 창술은 파르무스가 처음 겪어보는 종류의 것이었다.

검을 하나만 썼더라면 벌써 몇 번이고 공격을 허용할 뻔했다.

거기다 창격 하나하나가 웅혼한 마기를 담아 묵직했다.

‘크윽…! 이런 자가 있었다니!’

이스트 왕국은 검술이나 다른 것보다 마법을 우대하는 곳이었다.

그 시기가 오래된 만큼 이제는 검이나 창 같은 무기를 다루는 기사들은 그 수가 현저히 줄어든 걸로 알고 있었다.

숫자가 줄어들기 시작하면 자연스레 그것들의 수준도 떨어지게 마련.

허나 눈앞에 있는 창술사는 감히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었다.

“이스트 왕국에 어떻게 너 같은 자가……!”

“내가 또 왜?”

카이드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나 이내 그의 창이 방향을 틀며 파르무스의 목을 노렸다.

전혀 예측하지 못한 공격에 헛바람을 집어삼킨 파르무스가 황급히 몸을 뒤로 물렸다.

그 빈틈을 그냥 넘어가 줄 카이드가 아니었다.

카이드는 곧바로 크게 한걸음 내딛으며 창을 내질렀다.

그의 전시에서 휘몰아친 마기가 창신에 실렸다.

후우우우웅─!!

파콰아아앙!!!

마기가 파르무스를 덮쳤다.

급하게 마력으로 실드를 만들어 낸 파르무스가 이를 악물었다.

조금 전까지 격렬한 전투를 치른 탓에 지친 것도 있었지만, 카이드가 괴물 같은 실력의 소유자인 탓에 점차 밀리는 것도 있었다.

“대장님!”

파밧!

파바밧─!!

파르무스의 전투를 지켜보던 그의 수하들이 몸을 날렸다.

그 모습에 카이드가 얼굴을 와락 구겼다.

“어디 신성한 일대일 싸움에 잔챙이들이 끼어들라 그래?”

카이드가 창을 다시 고쳐 잡으려는 찰나 에스파가 끼어들었다.

“쟤네들은 나한테 맡겨.”

에스파의 화살세례가 적들을 향했다.

하나의 화살이 수십 개로 갈라지는 광경은 카이드도 두 눈에 이채를 띠게 만들었다.

갈라진 화살들이 적들을 노렸다.

놀랍게도 화살 하나하나 모두 마력이 실려 있는 것들이었다.

파바바방!!

파바방!!! 파콰라라랑─!!

대지를 고슴도치로 만들어 버린 에스파가 몸을 움직였다.

그는 격하게 움직이면서도 안정적인 자세로 활시위를 당겼다.

피슈우웅─!!

대기를 가른 화살이 다가오는 사내의 목을 관통했다.

에스파는 곧바로 몸을 돌려 화살을 비틀었다.

손끝에서 날아간 화살이 빠르게 회전하며 아시테르의 뒤를 점하려는 적을 공격했다.

“세아츠리스! 아시테르의 후방을 부탁한다! 가이우스! 좀 더 오른쪽으로!!”

에스파의 외침에 세아츠리스와 가이우스가 곧바로 움직였다.

두 사람은 아시테르가 마음껏 날뛸 수 있도록 전투를 보조해 주고 있었다.

카이드가 파르무스를 붙잡고 있는 동안 사우스 왕국군은 점점 지휘 계통을 잃어 가고 있었다.

여기엔 에스파와 자비토가 크게 기여했다.

두 사람은 적들의 지휘관으로 보이는 자들부터 노렸다.

적들 사이를 누비는 화살과 날카로운 송곳들이 적군의 지휘관들을 관통했다.

마법으로 막아 보려 해도 소용없었다.

언노운 마법기사단의 활약을 지켜보며 아일리시는 진심으로 감탄을 토해 내고 있었다.

“진짜 미친 것 같아 이 사람들…….”

하트 군대로 난입해 자신을 포로로 잡아갈 때부터 눈치채긴 했지만…….

강해도 너무나 강력한 기사단이었다.

카이드나 가이우스, 세아츠리스도 눈에 띌 만큼 강한 실력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대단한 사람은 바로 에스파였다.

다른 이들만큼 화려한 전투스타일은 아니었지만 적재적소에 동료들을 도와주고 있었다.

거기다 에스파의 화살은 적의 입장에서 여간 까다로운 수준이 아니었다.

지휘관들만 골라 노리는 것도 모자라 넓은 시야로 다른 단원들을 보조해 주기까지 한다.

전장을 읽는 눈이 어지간히 좋은 게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일리시의 감시역이자 후방 보조를 맡은 데미리우스가 입을 열었다.

“에스파 부단장은 오랫동안 전쟁터에서만 몸을 담고 있었습니다.”

“예……?”

“다른 임무들도 많은데 굳이 전쟁터만을 고집했죠. 그 이유가 뭔지 아십니까?”

“어째서죠?”

“아시테르 단장 곁에는 강한 사람들이 즐비합니다. 그들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면 단순히 마법 실력뿐만 아니라 다른 강점들도 갖고 있어야 했거든요. 에스파 부단장은 그 강점을 전장에서 찾으려 한 거죠.”

“아… 그래서…….”

전장의 흐름을 읽는 남다른 재주는 역시나 하루아침에 타고난 것이 아니었다.

그동안 숱한 전장을 거쳤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 사내입니다. 에스파 부단장은…….”

“왜 그렇게까지 노력하는 거죠? 솔직히 저 정도 실력과 인성이라면 어딜 가든 환영받을 것 같은데… 굳이 아시테르 저 사람 밑이 아니더라도 괜찮잖아요?”

“에스파 부단장은 자신을 처음으로 인정해 준 사내에게 모든 것을 바치는 겁니다.”

“고작 그게 다에요……?”

“고작이라니요. 모두가 편협한 시선으로 바라볼 때 아시테르 단장은 아무런 편견 없이 에스파라는 사람 그 자체를 바라봐 준 사람입니다. 자신의 진가를 알아봐 주는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은 또 다른 낭만 아니겠습니까.”

“저 반푼… 아니 헤실거리는 단장이 그랬다고요……?”

“아시테르 대장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에스파 부단장도, 저도 없었을 겁니다. 저 또한 어둠의 구렁텅이에 홀로 빠져 있을 때, 아시테르 대장이 구해 줬거든요.”

데미리우스의 말에 아일리시가 새삼스런 시선으로 아시테르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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