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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258화 (258/424)

258화 역전의 지원군 (3)

불꽃 마법으로 전장을 한바탕 휘저어놓은 아시테르가 주변을 훑었다.

아브렐 성의 군사들과 왕실기사단 모두 안정적으로 사우스 왕국군에게서 벗어나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의 퇴각을 도운 아시테르가 불꽃을 터트렸다.

신호를 본 이카루스가 갑자기 대지를 박차고 몸을 날렸다.

허공에 몸을 날렸던 아시테르가 이카루스의 등으로 안착했다.

“푸르르르히이이잉!!!”

이카루스가 크게 울음을 토해 냈다.

갈기가 점차 붉게 물들기 시작하더니 이내 불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사우스 왕국군이 질겁한 표정을 지었다.

“저게 대체…….”

“불……?”

그들이 무어라 반응하기도 전에 아시테르가 이카루스를 타고 빠르게 내달렸다.

여기저기 피어나는 불꽃.

그 사이를 이카루스가 마음껏 질주했다.

“일단 저쪽부터.”

아시테르가 이끄는 방향으로 이카루스가 움직였다.

녀석의 입김에서 흘러나오는 불꽃이 다가드는 마법을 상쇄시켰다.

파아아앙!!

불길을 머금은 이카루스가 그대로 적들을 들이 받았다.

무장한 기사들이 맥없이 쓰러져 버릴 정도로 이카루스의 질주하는 힘은 대단했다.

그들을 밟고 선 이카루스가 뜨거운 콧김을 토해 냈다.

붉은 아지랑이와 함께 피어난 불꽃이 이카루스의 기세를 더해 주었다.

팟!

안장을 밟고 뛰어오른 아시테르가 불꽃을 회전시켰다.

여러 겹의 선을 만들어낸 불꽃이 반키라스의 주변을 감쌌다.

“크아아악!!”

“으아아─!!!”

“도, 도망쳐라!!”

불꽃에 휘말린 적들이 혼비백산 흩어지기 시작하자, 그제야 반키라스도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뛰어난 공격성을 지닌 마법을 사용하는 만큼 반키라스는 수비에 약한 면모를 보였다.

적들에게 둘러쌓이니 순간적으로 그 약점을 드러낸 것이다.

다행이 아시테르가 발빠르게 도움을 주지 않았더라면 크게 당할 뻔했다.

“고맙습니다 단장님.”

“크로마제는?”

반키라스가 공격력이 뛰어나다면 크로마제는 수비와 포박 등 다른 분야에 특화되어 있었다.

물론 적들을 공격하는 마법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러 있었지만, 반키라스가 워낙 극단적인 성격의 마법이라 상대적으로 크로마제가 한 수 아래로 취급받고 있었다.

어쨌든 두 사람은 서로 투닥거리며 지내긴 해도 마법 시너지만큼은 최상이었다.

거기다 우습게도 서로를 싫어하다보니 서로를 더 잘 알아 마법의 합도 잘 맞았다.

헌데 크로마제가 반키라스의 곁에 안 보였던 것이다.

“조금 전에 떨어졌습니다. 모래두더지 자식… 따라오질 못하더라고요.”

“알겠어. 일단은 뒤로 물러나서 라빈을 도와.”

“네.”

반키라스가 빠져나갈 수 있도록 아시테르가 후방을 맡아 주었다.

다시 이카루스에 오른 아시테르가 커다란 화염구를 만들어 냈다.

화쾅!! 콰아앙!!

화염구들이 지면을 강타할 때마다 불꽃이 폭발하듯 튀어올랐다.

그 위력이 너무나도 거세 사우스 왕국군은 함부로 접근할 수 없었다.

그들이 주춤하고 있는 때 아시테르는 다른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언노운 마법기사단은 분명 소수 정예로 이루어져 있는 집단이다.

그들 모두 일당백 아니, 일당천 이상의 실력을 지녔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적은 아니었다.

파르무스 군대를 비롯한 사우스 왕국군이 전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지금.

계속해서 싸움을 이어 가다간 이쪽의 피해도 생기기 시작할 것이다.

가장 먼저 전장의 경험이 적은 크로마제와 반키라스가 문제였다.

경험이 적은 이 두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지친 기색이 역력해졌다.

“마력 낭비가 커졌어.”

여기저기 모래를 만들어 내고 있는 크로마제를 보며 아시테르가 더욱 신속하게 움직였다.

그동안 많은 임무들을 수행해 내긴 했지만, 많은 적들을 상대로 이렇게나 오래 싸운 적은 처음이었다.

죽여도 죽여도 끝이 나질 않고 다가오는 적들.

그 사이에 홀로 남아 있으니 크로마제도 체력의 소모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잠깐의 실수가 곧 죽음으로 흘러갈 수 있기에 크로마제는 온몸의 감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렇게 긴장해 있지 마 크로마제.”

“아시테르 스승님?”

“너무 긴장해서 마력 컨트롤이 굳어지고 있잖아. 지금 같은 때에 마력을 쓸데 없이 낭비하면 안 돼. 다시 마음을 가다듬어.”

어느새 눈앞에 나타난 아시테르가 붉은 화염으로 적들을 일시에 쓸어버렸다.

자신은 두세 개의 마법을 연달아 사용해도 불가능했던 일을 아시테르는 겨우 일수에 해결해 버렸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적들이 만들어 낸 골렘을 불꽃 기둥이 공격했다.

모래 마법으로는 붙잡아 두는 게 고작이었던 골렘이다.

헌데 아시테르의 마법에 골렘의 몸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직 멀었구나…….”

그래도 꽤 따라왔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보니 그 생각이 얼마나 가소로왔는지 알겠다.

아직까지도 아시테르와 자신과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가이우스.”

“네. 말씀하십시오 주군.”

아시테르를 뒤따르며 적들을 처리하고 있던 가이우스가 재빠르게 다가왔다.

“크로마제와 함께 에이브릴을 챙겨 후퇴하세요.”

“알겠습니다.”

가이우스가 앞장서서 길을 뚫었다.

에이브릴의 사슬이 빗발치는 곳엔 에스파도 함께 있었다.

크로마제와 반키라스만큼이나 서로 죽이 잘 맞는 이들이 바로 에스파와 에이브릴이었다.

그녀는 적진의 한 가운데에서도 사슬을 거침없이 휘두르며 적들의 접근을 불허했다.

가까스로 사슬지옥을 뚫고 들어간다고 해도 어김없이 에스파의 화살이 날아와 다시 물러나야 했다.

“비켜라.”

보다 못한 기사 한 명이 배틀 엑스를 힘껏 들어 올렸다.

그곳에 마력이 모이기 시작하자 군사들이 자연스레 자리를 비켜 주었다.

사내의 저 마법은 공성전 때도 자주 보았던 마법이었다.

배틀 엑스에 마력을 한껏 모은 사내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어디 이 마법도 견딜 수 있나 보자꾸나.”

휘콰아아아앙!!!

격렬한 진동과 함께 배틀 엑스가 에이브릴의 사슬을 강타했다.

쉴드처럼 형성되어 있던 사슬이 크게 흔들렸다.

몇몇 사슬들은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그대로 깨져 버리고 말았다.

“말도 안 돼……!”

자신의 마법이 깨질 거란 생각은 전혀 못했던 에이브릴이 당황하고 말았다.

다른 이들의 마법과 다르게 그녀의 마법은 마력을 겹겹이 쌓아 사슬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때문에 수족처럼 자유로운 컨트롤이 가능했지만, 한번 깨어지면 복구에 시간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었다.

물론 마력을 겹겹이 쌓은 덕분에 내구력도 상당해 그럴 일은 잘 없었지만, 이번엔 그 사슬이 단 일격에 깨져 버린 것이다.

그것도 한꺼번에 여러 사슬이 깨져 버리고 말았다.

“많이 당황했나보구나 여자. 근데 어쩌냐 이제부터는 우리들 차례인데.”

배틀 엑스를 든 사내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걸었다.

“뭐가 너희들 차례야?”

어느새 그들의 앞에 선 에스파.

그가 활시위를 잡아당겼다.

“크하하하!! 뭐냐 활잡이! 계속해서 도망만 치면서 활 쏘더니. 그렇게 대놓고 모습을 드러내도 괜찮은 거냐?”

“안될 것도 없지.”

에스파가 사내의 앞에서 활시위를 당겼다.

탕!

콰아아앙!!!

에스파의 마력을 가득 담은 화살이 광선처럼 퍼져 나갔다.

지금까지 선보였던 화살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의 위력!

배틀 엑스를 들고 있던 사내는 하반신만 남겨 놓고 사라져 있었다.

털썩.

배틀 엑스와 함께 하반신이 바닥에 쓰러졌다.

“후우우우…….”

그가 죽은 것을 확인하자마자 에스파가 참았던 호흡을 다듬었다.

그러나 호흡은 쉽사리 돌아오질 않았다.

순간 발끈해서 지나치게 마력을 사용한 것이 화근이었다.

‘답지 않게 흥분해서는…….’

잠시 한숨 돌리려는 때, 에이브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스파. 괜찮아?”

“괜찮지 않지 그럼.”

“뭐?”

“안 괜찮다고.”

온 전장을 누비며 다른 단원들을 살폈던 에스파였다.

거기다 그의 화살은 단 한 번도 끊긴 적이 없었다.

절묘하게 상대의 흐름을 끊고 아군 동료들을 돕느라 멈출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에스파는 농담투로 말하고 있었다.

카드드등!!

촤라랑─!

에이브릴의 사슬이 적들의 공격을 막아 냈다.

그것을 확인한 에스파가 씨익 웃었다.

“땡큐, 에이브릴.”

“뭘 이 정도 가지고…….”

쿠우우웅!!!

한 차례 묵직한 타격음이 들리고 가이우스가 두 사람을 향해 다가왔다.

그를 확인한 에스파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완전 든든한 사람이라니까 우리 가이우스 형님은…….”

“나한텐 네가 더 든든한데.”

에이브릴이 에스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아시테르의 명령을 받은 가이우스가 주변의 적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후퇴하라는 명령입니다 부단장.”

“알겠습니다. 감사해요 가이우스 형님.”

“별말씀을.”

가이우스가 단신으로 적진을 뚫으며 퇴로를 확보하는 동안 에이브릴과 에스파가 그 뒤를 따랐다.

그러면서도 그의 시선은 한쪽에 있는 카이드를 쫓았다.

“저 자식은 진짜 괴물 아니냐……?”

“싸움광이라 그냥 신나셨겠죠.”

크로마제가 따라붙어 말했다.

자신은 이제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는데, 카이드는 아직도 신나게 날뛰고 있는 중이었다.

“아시테르가 이제 말리러 가나보다.”

카이드가 있는 쪽으로 아시테르와 세아츠리스가 움직였다.

그 동안 다른 단원들은 하나둘 전장을 이탈하고 있었다.

슈라라라랑─!!

쩌저저정!

대지를 뚫고 올라온 가시덤불이 에스파 일행을 보호했다.

반면 난데없이 나타난 가시덤불 때문에 적들은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일제히 공격해서 부순다!!”

사우스 왕국의 마도사들이 힘을 합쳐 가시덤불을 끊어내고자 했으나 곧바로 다른 가시덤불이 올라와 그들을 방해했다.

이어 세아츠리스가 마력을 끌어올리니 사방팔방에서 튀어나온 가시덤불이 허공으로 솟구쳐 한데 모이기 시작했다.

“숲의 신록.”

그녀의 마법이 본격적으로 펼쳐지기 시작하자 세상이 푸른 초목으로 뒤덮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가시덤불이 덩굴처럼 휘감기기 시작하자 그 아래로는 짙은 어둠이 드리웠다.

어둠속 줄기에 붙잡힌 사우스 왕국군 병사들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카이드가 마침내 파르무스의 목을 취하는 데 성공했다.

촤라라락─!!

핏물이 분수처럼 튀어나오고 파르무스의 몸뚱아리가 바닥에 쓰러졌다.

그 앞에 서있는 카이드가 핏물을 닦아내며 웃었다.

“내 승리다. 어딜 나보고 애송이래? 죽을라고.”

창신을 내린 카이드가 주변을 살폈다.

두 사람의 전투에 휘말린 사우스 왕국의 기사들과 병사들이 싸늘한 주검이 되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카이드가 고개를 들어 이쪽으로 다가오는 아시테르를 확인했다.

“오우 대장!!”

“카이드. 상황은?”

“보다시피 적장의 목을 취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카이드가 파르무스의 목을 가리키며 말했다.

핏물을 잔뜩 뒤집어 쓴 그가 파르무스의 목까지 들고 있자, 사우스 왕국군 입장에서 카이드는 마귀 그 자체로 보일 정도였다.

“파르무스님!!!”

“으아아아─!!”

“용서할 수 없다!!”

“감히 파르무스님을……!!”

파르무스의 죽음에 분노한 병사들과 기사들이 살기를 뿜어대며 달려왔다.

그것을 본 카이드가 신나서 마주 달려가려 했으나 아시테르가 이를 말렸다.

“이제 물러나야 해.”

“엥? 아직 나는 더 싸울 수 있습니다만…….”

“다른 동료들도 생각해야지. 거기다 아무리 너랑 나라도 이 많은 군세를 상대로 싸울 순 없어.”

아시테르의 말에 카이드가 순순히 창을 내렸다.

“그건 또 맞는 말이네요. 그럼 이대로 후퇴할까요?”

“당연.”

샤라라락─!

스스스스스슥─!!

때마침 세아츠리스의 가시덤불이 아시테르와 카이드 주변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본 카이드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여간 무서운 여자라니까… 알고보면 나보다 저 여자가 더 심할 수도 있다고…….”

가시덤불이 세운 장벽 뒤로 붉은 핏물이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날카로운 비명소리도 연신 들려오고 있었다.

그 사이 세아츠리스가 아시테르와 카이드가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모시러 왔어요. 돌아갈까요?”

세아츠리스가 두 손을 모으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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