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화 아브렐 협곡의 전투 (2)
사우스 왕국군 마도사들이 데미리우스의 마법에 대응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천여 명이나 되는 기사들과 병사들이 독에 중독되어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들이 독 마법에 정신을 빼앗겼을 때 크로마제와 자비토가 사우스 왕국군의 퇴로를 끊는데 성공했다.
“이 정도면 놈들도 퇴로를 뚫기 위해 시간이 오래 걸리겠죠?”
바위들 틈으로 모래가 섞여 커다란 벽을 만들어 놓은 것만 같았다.
르베노가 당황한 표정으로 뒤쪽을 바라보았다.
“퇴로가 끊겼습니다 카브리누스님.”
“상관없다.”
카브리누스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독 마법으로 군에 혼란을 주어 퇴로를 끊는다.
제법 괜찮은 전략이었지만, 생각보다 독 마법에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거기다 퇴로를 끊은 마도사는 단 둘.
두 명이서 저만한 일을 해냈으니 상당량의 마력이 소모되었을 터다.
“무엇보다… 놈들은 퇴로가 끊긴 우리들이 당황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있겠지만 아니, 이것은 오히려 기회다.”
카브리누스가 뒤를 돌아 전군을 향해 외쳤다.
“모두들 보았는가!! 적들의 독 마법에 우리는 빠르게 대처했고! 돌아갈 수 있는 길은 끊겼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나아가는 방법뿐이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워라!!!”
카브리누스는 단번에 전군의 사기를 드높였다.
그의 말을 들은 기사들과 병사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위기를 기회로 만든다.
딱 그런 느낌이었다.
확실히 오랜 전장의 경험이 있는 카브리누스였기 때문에 군사들을 다루는데 능숙했다.
르베노가 존경 어린 눈빛으로 카브리누스를 바라보았다.
이 사람과 함께라면 두려울 것이 없다.
든든하게 앞서가는 카브리누스의 뒷모습을 보며 의기를 다졌다.
이는 르베노만이 아니었다.
다른 군사들도 한마음 한뜻으로 진군 또 진군했다.
지축이 흔들리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기세에 가득 찬 걸음이었다.
마도사들이 미리부터 마력을 끌어올리며 적들의 공격에 대비했고, 기사들은 마도 공학 무기를 들어 잘 벼린 눈빛으로 사주 경계했다.
그런 사우스 왕국군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세 명의 사내였다.
“이야 이렇게 보니까 진짜 개떼처럼 몰려오는 것 같네.”
협곡을 가득 메우는 사우스 왕국 군사들을 보며 카이드가 눈매를 좁혔다.
그는 휘파람까지 불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많아 많아. 이렇게 많은 놈들과 싸워보는 건 처음이야.”
“왜 이제 와서 자신 없어?”
“그럴 리가 있나. 그냥 싸우면 재미없으니까 내기나 할까?”
“무슨 내기?”
“누가누가 더 많이 죽이나.”
“내가 그런 건 하지 말자고 했지?”
“쯧… 이럴 때 보면 참 마음이 안 맞단 말이야.”
카이드가 아시테르를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휘릭─!
창을 들어올린 카이드가 적들을 향해 날을 겨누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게 뭐 있어? 어차피 저 녀석들은 우리들이 죽여야 할 녀석들이잖아. 저기 있는 적들을 막아 내지 못하면 왕국에 있는 수십만의 사람들이 죽는 것 아냐?”
“맞아.”
“그럼 아주 간단하네. 쟤들을 다 죽이면 되는 거야.”
카이드가 몰려오는 사우스 왕국군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저 많은 군세를 눈앞에서 마주하고도 이렇게 태연하게 웃을 수 있다니.
카이드 답다면 카이드 다운 면모였다.
다른 이들이었다면 긴장한 기색을 내비췄을 것이다.
하지만 아시테르와 카이드는 달랐다.
두 사람은 자신의 실력에 그만큼 자신이 있었다.
“더 간단하게 가 볼까? 내가 만 오천 명. 대장이 만 명 맡아.”
“왜 네가 더 맡아?”
“그야 내가 수하니까. 더 수고롭게 싸워야지.”
“나참…….”
“선두는 제가 서겠습니다.”
둘의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던 가이우스가 앞으로 나섰다.
적들을 바라보는 가이우스의 눈빛이 한층 날카로워졌다.
“괜찮겠어?”
“물론.”
“좋아 그럼 믿고 가 보자고.”
가이우스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거대한 풍채의 그가 적들을 살폈다.
스르륵─!
후웅!! 후우우우웅──!!!
사우스 왕국군은 겁도 없이 앞을 막아선 가이우스를 향해 곧바로 공격을 시작했다.
가장 선두에 선 카브리누스가 소리쳤다.
“놈들을 죽여라!!!”
여러 마법이 캐스팅되며 일제히 가이우스를 향해 쏟아졌다.
허공을 가득 메우는 마법을 보며 기가 질릴 법도 하건만 가이우스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그 마법 세례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크하하하하!!! 바보 아닌가!? 겁도 없이 저 안으로 뛰어들다니!!”
이를 본 르베노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이어진 광경에 그의 두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파콰과과과과──!!!
마법 공격들을 막아 낸 가이우스가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의 전신에서 폭발적으로 끌어오른 마력이 두 주먹에 밀집했다.
키잉─!!
형형한 안광이 빛을 발함과 동시에 거대한 마력이 적들을 향해 쏟아져나갔다.
그것을 시작으로 뒤편에 있던 아시테르와 카이드가 동시에 적진을 향해 뛰어들었다.
“으하하하하─!!! 어디 한번 미친 듯이 날뛰어보자고!!”
카이드가 창을 꼬나잡으며 거칠게 휘둘렀다.
창날은 깔끔한 직선을 그리며 단번에 세 명의 병사들을 베어 넘겼다.
뒤이어 쏟아진 마기가 십수 명의 병사들을 덮쳤다.
반대편에서는 아시테르가 화염 마법을 펼치며 전장을 질주하고 있었다.
엄청난 속도로 적을 가로지르는 아시테르의 움직임에 사우스 왕국군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적은 단 세 명이다!!”
“놈들을 막아!!”
“에워싸서 죽여라!!”
적들의 공격이 아시테르와 카이드를 향해 집중포화되었다.
그러나 한 발 먼저 움직인 것은 가이우스였다.
마력으로 온몸을 무장한 그가 쏟아지는 마법 공격들을 받아 내었다.
쿠우우웅─!!!
거친 타격음과 함께 가이우스의 두 발이 대지를 긁으며 밀려났다.
“흐음…….”
가이우스가 우직하게 걸음을 옮겼다.
그를 향해 날아가는 수많은 마법도 가이우스의 걸음을 멈춰 세울 순 없었다.
“죽어라!!”
검을 들고 호기롭게 덤벼 든 병사 하나를 가이우스가 주먹으로 내리쳤다.
시원한 타격음과 함께 병사가 입은 갑옷이 그대로 박살나 버리고 말았다.
가이우스도 적진을 향해 뛰어들었다.
그의 주먹과 발이 움직일 때마다 마력이 발출되며 사우스 왕국군을 공격했다.
“크아아!”
가이우스의 두 손이 적의 머리를 으깼다.
핏물을 뒤집어 쓴 그가 덤벼 오는 또 다른 적들을 내리쳤다.
주먹이 쉴 새 없이 움직이며 마력을 쏟아내었다.
가이우스는 놀랍게도 적들의 공격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마력을 충전하고 있었다.
맨몸으로 아군 병력들을 박살내고 있는 가이우스를 보며 사우스 왕국군 지휘관들도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무모하기 짝이 없는 자로군……!”
“우리 군을 얼마나 만만하게 봤으면!!!”
분노한 그들이 가이우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가이우스는 물러나기보다 오히려 그들을 향해 몸을 날리는 것을 택했다.
마도 공학검을 든 기사 한 명이 기합성을 터트리며 검을 휘둘렀다.
쿠웅!!!
마력이 깃든 검인데도 불구 가이우스의 몸에 닿으니 묵직한 타격음이 들렸다.
“말도 안 돼…….”
분명 기사의 검은 어깨를 내리찍었다.
그런데도 가이우스의 몸에는 상처 하나 없었다.
“그 정도 공격으로 내 몸에 상처를 낼 수 있을 줄 알았나?”
큼지막한 주먹이 기사의 얼굴에 꽂혔다.
투쾅!!!
푸른 마력이 폭발하며 기사의 몸이 힘없이 날아갔다.
뒤이어 붉은 화염이 가이우스의 몸을 때렸다.
하지만 이번에도 가이우스는 멀쩡한 모습으로 등을 돌릴 뿐이었다.
가이우스가 맨몸으로 적들을 박살 내는 동안 카이드는 광소를 흘리며 창을 휘두르고 있었다.
“이거지!! 이거라고!!!”
변화무쌍함을 자랑하는 그의 창술이 진가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실처럼 퍼진 마력이 춤을 추듯 펄럭이며 주변의 적들을 베어 넘겼다.
마도사들이 만들어낸 베리어도 소용없었다.
카이드는 그것들을 가볍게 부수며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그렇게 재미없게 싸울 거냐?!”
날아드는 불꽃을 가르고 떨어지는 얼음송곳을 단번에 베어 버린다.
대지에서 뻗어 나온 손들이 카이드를 붙잡으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가볍게 도약한 카이드가 창을 휘둘러 마도사들의 목을 베었다.
“활로 공격해라!!!”
누군가의 외침에 궁병들이 일제히 활시위를 당겼다.
에스파가 사용하는 마법처럼 마력을 담은 화살들이었다.
“오우… 에스파 부대장이 보면 눈살을 찌푸리겠네.”
슈슈슉─!! 슈슈슈슈슈슉──!!!
수백 개의 화살이 카이드를 향해 떨어졌다.
카이드는 창을 회전시키며 마기의 장막을 만들어 냈다.
파콰곽!!!
쏟아지는 화살들이 장막에 가로막혔다.
한순간에 장막을 거둬낸 카이드가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형편없네 너희들 활 실력은. 에스파 부대장 한 명만도 못해.”
카이드가 호흡을 크게 들이마시며 창을 당겼다.
이어 그가 힘껏 창을 휘두르자 반월모양으로 뻗어나간 마기가 적들을 일시에 베어 넘겼다.
반 토막이 난 적들의 몸이 핏물을 쏟아내며 쓰러졌다.
“……!”
“어떻게 이런…….”
단 한 번의 일격으로 수많은 적들의 목숨을 취한 카이드가 창을 고쳐 잡았다.
창신에서 떨어지는 핏물을 한 차례 털어 낸 그가 웃으며 말했다.
“나는 아직도 목이 마르다 새끼들아.”
마치 마귀가 있다면 이러한 모습일까.
붉은 핏물을 뒤집어 쓴 카이드가 엄청난 살기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그 모습에 사우스 왕국군도 섣불리 그에게 덤벼들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크아아악!!!”
“끄아아아──!!”
“살려… 살려 줘!!!”
“피해라!! 피해!!”
갑자기 여기저기서 비명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적들을 바라보던 카이드가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진짜 저 마법은 언제봐도 사기라니까…….”
태양처럼 떠올라 있는 붉은 오브.
그곳에서 붉은 소나기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화염에 당한 적들이 괴로움을 토해 내며 몸부림쳤다.
아시테르가 만들어낸 불꽃의 비가 전장을 뒤덮었다.
그 순간을 기다렸던 데미리우스가 곧바로 독 마법으로 서포트 했다.
화염이 독무에 닿는 순간 곳곳에서 폭발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당황하지 마라!!! 군세는 우리가 훨씬 유리하다!!”
카브리누스가 아군을 다독였다.
그때 언노운 마법기사단의 총공격이 시작되었다.
양옆에서 뻗어 나온 가시덤불이 협곡을 가로지르며 사우스 왕국군을 에워쌌다.
뒤이어 줄기처럼 엮인 가시덤불이 아시테르와 카이드를 향해 쏟아지는 마법들을 막아 주었다.
이어 신속하게 움직인 에스파가 활시위를 당겼다.
그가 노리는 것은 주로 지휘관들이었다.
사우스 왕국군은 병사들과 기사들, 지휘관들 모두 다른 투구를 착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지휘관들을 구분하기가 훨씬 쉬었다.
에스파가 마음껏 날뛸 수 있도록 에이브릴이 사슬 마법으로 보조해 주었다.
에스파는 날아오는 사슬을 밟으며 공중에서도 방향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거대한 가시덤불도 엄폐물로 이용할 수 있어 그야말로 이곳은 에스파의 전장이었다.
데미리우스의 독 마법이 천천히 사우스 왕국군의 후미를 덮치고 크로마제와 반키라스가 힘을 합쳐 밀려드는 적들을 막아 냈다.
자비토와 라빈도 전장에 합류해 밀려드는 적들을 상대했다.
전장을 살피던 엔류아가 부채를 펼쳤다.
후우우웅─!!
환한 마력이 언노운 마법기사단 전원을 감싸 안았다.
조금씩 데미지가 쌓이고 있던 가이우스의 얼굴이 한층 편안해졌다.
방심하다 적의 공격에 당했던 크로마제도 금방 회복하며 다시 마법을 캐스팅했다.
“뭐 하냐 모래두더지.”
“쳇… 방심했어.”
“긴장 풀지 마라.”
“너나 잘해 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