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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262화 (262/424)

262화 아브렐 협곡의 전투 (4)

드라칸은 군사들을 이끌고 협곡 방어선 안으로 들어오려는 적들을 맞이했다.

사우스 왕국군도 퇴로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어떻게 해서든 이스트 왕국군의 방어선을 뚫어내려 했다.

뒤에서 힘을 아꼈던 정예병들이 힘을 폭발시켰다.

“크윽…! 이쪽으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막아!!”

“놈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거기서 뭣들 하고 있는 거냐!? 적들을 더 밀어내!!! 방어선이 밀리잖아!!!!”

여기저기 날카로운 외침이 비명 소리와 섞여 들렸다.

협곡 안의 전장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이스트 왕국군과 사우스 왕국군이 한데 뒤엉키며 피아를 식별하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그들은 적을 죽이기 위해 무기를 휘두르는 것이 아니었다.

어느새 살아남기 위해 무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주변의 적을 죽이기 않으면 내가 죽는다.

잠시만 넋을 놓고 있어도 눈먼 칼에 맞아 죽을 수 있고, 빠르게 파악하지 못하면 날아오는 마법에 당할 수 있다.

밀려오는 적들을 한 차례 밀어낸 드라칸이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눈앞에서 손쉽게 상대하길래… 잔챙이들인가 싶었는데 그것도 아니질 않나……!”

카브리누스가 키운 정예병들의 실력은 생각보다 뛰어났다.

거기다 이들은 마도 공학 무기를 다루는 것도 익숙했다.

그냥 무기처럼 휘두르는데 마력이 폭발하는 마도 공학 무기.

이것들을 상대하는 게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특별히 마력을 사용하지 않아도 마법 공격까지 막아낼 수 있으니…….

“어지간한 수준의 마도사들에겐 천적이겠어.”

핏물을 닦아 낸 드라칸이 다시 마력을 끌어올렸다.

언노운 마법기사단은 아직까지도 가장 선두에서 화려한 싸움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 수천이나 되는 적병들이 몰려 있었다.

저들이 소수의 인원으로 저렇게까지 힘내 주는데, 그보다 훨씬 많은 수가 포진되어 있는 자신들이 질 수 없었다.

“조금만 더 힘내라!! 적들을 이곳에서 몰살시키는 거다!!”

“우오오오──!!”

“와아아─!!!”

드라칸의 외침에 여기저기 우레와 같은 함성이 쏟아져 나왔다.

협곡을 전장으로 선택한 것은 확실히 잘한 일이었다.

넓은 평야지대였다면 두 배나 많은 군세를 보유한 사우스 왕국군에 둘러싸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곳은 좁은 협곡.

협곡 위로 따로 올라가 아군을 겨냥하지 않는 이상, 적들은 결국 정직하게 정면으로 돌파해야만 했다.

덕분에 이쪽에서도 소수의 인원으로 많은 적들을 맞이하는데 용이했다.

“전방의 3열은 뒤로 물러나라!! 후방의 인원들이 자리를 대체한다!”

드라칸의 발 빠른 명령에 이스트 왕국군이 신속히 움직였다.

그들은 유기적으로 자리를 바꾸며 효율적으로 적들을 상대했다.

반면 마음이 급해진 사우스 왕국군은 어떻게 해서든 드라칸 군대의 방어선을 뚫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드라칸님!! 이쪽이……!”

“여기도 좀 도와주십시오!”

“적들의 수가 너무 많습니다!!”

이대론 안 되겠다 싶었는지 사우스 왕국군 측에서도 한쪽 면만을 집중 포화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스트 왕국군 마도사들이 일부러 베리어를 쌓고 아군을 보호해 주었지만 온전히 막아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저쪽 방어선이 약해졌다!”

“놈들이 틈을 보였다아아!!!”

“파고들어라!!”

그 틈을 카리브누스의 정예부대가 놓칠 리 없었다.

이쪽으로 함께 온 일곱 기사 중 한 명인 판데리즘이 앞으로 뛰쳐나갔다.

“내가 뚫어 주마!!”

무기를 번쩍 들어 올린 판데리즘이 전방을 향해 힘껏 내리쳤다.

그러자 마력이 폭발하며, 이스트 왕국군 병사들이 허공으로 비산해 버리고 말았다.

“아……!”

“막아!! 막아야 한다아아아!!!!”

“죽기를 각오하고 막아라!! 안 되면 우리들의 시체로 산이라도 쌓는 거다!!!”

이스트 왕국군 병사들과 기사들이 앞으로 튀어나갔다.

왕실기사단도 그들을 돕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그때 허공에서 시작된 빛줄기가 사우스 왕국군을 덮쳤다.

쩌저저정─!!!

콰라라라라랑──!!!

강한 충격과 함께 가까스로 방어선을 뚫을 뻔했던 사우스 왕국군이 뒤로 물러나 버리고 말았다.

마법에 휘말린 이들은 꺼멓게 타 버린 상태였다.

“뭐냐……?!”

간신히 전세를 뒤집을 틈을 만들었는데, 그것마저 무산되자 판데리즘이 인상을 와락 찌푸렸다.

분노한 그가 마법을 사용한 마도사를 찾았다.

“어디의 누구냐!!!”

“일섬 마법기사단의 단장, 알렌시아.”

“뭣……?”

이스트 왕국군 틈으로 걸어 들어오는 여인, 알렌시아가 판데리즘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녀의 전신에서 폭발적으로 흘러나오는 마력에 판데리즘이 눈매를 좁혔다.

“마법기사단의 단장이라고……?!”

“그렇다만.”

알렌시아가 손짓하자 여기저기 낙뢰가 내리쳤다.

낙뢰에 휘말린 사우스 왕국군이 비명을 토하며 쓰러졌다.

강한 위력을 자랑하는 전격의 마도사.

그리고 그 전격 마법을 이렇게나 구사하는 사람은 이스트 왕국에 단 한 명뿐이었다.

“알렌시아 단장님이다아아아!!”

“정말로 일섬 마법기사단의 단장님께서 이곳에 오셨다!!!”

“우오오오오오오──!!!”

이스트 왕국군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제는 이스트 왕국에서 일섬 마법기사단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돌풍 마법기사단과 함께 어려운 시기에 혜성처럼 나타나 수많은 임무들을 수행해 낸 불세출의 마법기사단.

그 일섬 마법기사단을 이끄는 단장, 알렌시아가 바로 이 자리에 위치해 있는 것이다.

그들은 알렌시아의 전격 마법을 보며 환희를 금치 못했다.

여기저기 쏟아지는 낙뢰들.

체인처럼 뻗어나가 적들을 휩쓸어 버리는 전격.

전장의 분위기를 알렌시아가 단숨에 바꿔 놓고 있었다.

“허… 허허…….”

“이제 살았습니다 드라칸님! 일섬 마법기사단이 지원을 온 모양입니다!”

“성주님!!! 이를 악물고 버틴 보람이 있습니다!!”

환호하는 수하들 사이로 드라칸이 눈매를 좁혔다.

무언가 이상했다.

아무리 급하다 한들 알렌시아 혼자만 먼저 이렇게 전장에 도착할리 없었다.

실제로 나머지 단원들은 그림자조차도 보이질 않았다.

“모두 호들갑 떨지 마라!!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끝까지 방심하지 말고 싸워라!!”

하지만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이용해야 했다.

“일섬 마법기사단이 우리를 도울 것이다!!”

효과는 아주 좋았다.

일섬 마법기사단이 도우러 올 것이라는 생각에 아군의 사기가 하늘을 찌르기 시작했다.

거기다 때맞춰 보여 주는 알렌시아의 파괴적인 마법들.

그녀까지 등장하고 일섬 마법기사단까지 지원 올 것이라는 말에 사우스 왕국군은 반대로 패색이 짙어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 내 뒤를 따라라!! 길은 내가 열겠다!!”

판데리즘이 용맹하게 앞으로 나섰다.

그의 시선이 알렌시아에게 머물렀다.

“네가 내 상대가 될 것 같아?”

“자신감이 과하구나! 그깟 마법쯤은 정신력으로 돌파해 버리면 그만이다!”

“어디 한번 해보시던지.”

알렌시아의 전격이 판데리즘을 향해 날아들었다.

판데리즘이 무기를 들어 전격을 쳐냈다.

쿠웅!!

거친 폭발과 함께 판데리즘이 뒤로 물러났다.

쓰러지지 않은 판데리즘을 보며 사우스 왕국군이 함성을 터트렸다.

“어떠냐?”

“뭐가?”

알렌시아는 어느새 자신의 주변에 전기 구체 수십 개를 준비해 놓았다.

그것을 본 판데리즘이 이를 악물었다.

마법기사단의 단장들은 모두 강한 힘을 보유하고 있다.

사우스 왕국에는 오래 전부터 명맥을 이어온 트럼프가 있다.

왕국에서 가장 강한 네 명이 트럼프로 뽑히는데, 그들은 사우스 왕국 동서남북으로 나뉘어 그곳을 관리한다.

그리고 트럼프의 밑에는 두 명의 에이스들이 존재한다.

에이스라 불리는 이들은 차기 트럼프 후보나 다름없다.

사우스 왕국에 알려지기로 이스트 왕국 마법기사단의 단장들은 에이스들보다 조금 더 뛰어나거나 트럼프보다 한 수 아래로 취급받고 있다.

물론 군단장이었던 테르세우스나 히스링은 예외적인 인물.

허나 지금 이스트 왕국은 테르세우스라는 큰 별이 진 상태였다.

“에이스랑 비슷한 실력이면 비벼볼만 하다.”

판데리즘 또한 차기 에이스를 노리는 인물.

그만큼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있었다.

그는 과감하게 전기 구체 사이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쩌저저정─!!!

치이이이이익──!!

사이사이로 생겨난 전격이 판데리즘을 공격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공격에 판데리즘은 당황하고 말았다.

알렌시아를 향해 파고 들려고 해도 소용없었다.

전기 구체가 그 앞을 가로막으며 전격을 쏟아냈다.

“사우스 왕국군이 내 상대가 될 줄 알았어?”

털썩.

결국 판데리즘이 무릎을 꿇고 말았다.

정신없이 몰아친 전격 때문에 그는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아으아… 아으…….”

무어라 말하고 싶었지만 입이 뜻대로 움직여 주질 않았다.

판데리즘의 몸이 힘없이 바닥에 떨어진 것은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정예 중에 정예라 불리는 카브리누스의 일곱 기사.

그중 한 명인 판데리즘이 허무하게 당해 버리고 말았다.

이는 사우스 왕국군을 충격에 빠트리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반대로 이스트 왕국군에는 더없이 사기충천할 일이었다.

“이 기세를 몰아 적들을 말살시킨다!!”

때를 놓치지 않은 드라칸이 전군에 명령을 내렸다.

뒤이어 그는 화려한 퍼포먼스를 보이기 위해 일부러 마법을 사용했다.

거대해진 그의 몸이 선두로 나아갔다.

“드라칸님! 무리하시면 안됩니다!!!”

“성주님을 지켜라!!”

“상주님과 함께 싸우는 거다!!”

“나아가자!!!”

지금까지는 방어선을 지키기만 하던 이스트 왕국군이 처음으로 진격을 시작했다.

후방에서 일어난 변화를 언노운 마법기사단도 눈치채고 있었다.

“뭐야, 이긴 거야?”

피투성이가 된 채로 뼈를 휘두르고 있던 라빈이 뒤쪽을 바라보았다.

콰아아앙!!

콰지직!!!

적들의 머리에 큼지막한 구멍을 내준 자비토도 뒤를 돌아보았다.

손가락이 욱씬거리고 숨은 턱 끝까지 차올랐다.

자비토의 입장에서 이렇게까지 한계를 드러낼 정도로 싸워 본 적은 처음이었다.

“괜찮아?”

“괜찮다. 이 정도로는 죽지 않아.”

라빈의 물음에 자비토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괜히 강한 척 말을 꺼냈다.

하지만 속으로는 죽을 지경이었다.

이는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

천하의 세아츠리스조차 이번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가시덤불이 부서지고 끊어질 때마다 그녀는 그것들을 복구하며 아군의 전투에 도움을 주었다.

거기다 적들을 가두거나 밀어내는 등 지형까지 바꾸며 전쟁에 영향을 끼쳤다.

그러다보니 마력의 소모가 지나치게 극심했다.

“세아츠리스… 괜찮아요?”

어느새 그녀의 곁에서 전담마크를 시작한 엔류아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적들의 공격에 받은 상처는 금방금방 치료해 줄 수 있지만, 엔류아가 마력까지 회복시켜 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때문에 힘들어 하는 세아츠리스를 보며 엔류아는 안타깝고 속상한 마음이었다.

세아츠리스는 끝까지 이를 악물고 마법을 사용했다.

“저는 괜찮아요.”

“하지만…….”

“가장 선두에서 싸우고 있는 세 사람을 보세요. 저들이 계속 싸우는 한 저도 주저앉을 수 없어요.”

세아츠리스의 말에 엔류아가 시선을 옮겼다.

아시테르와 카이드는 무아지경에 이르러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덕분에 한쪽은 불지옥으로 변해 있었고 다른 한쪽은 피가 강산을 이루고 있었다.

가이우스는 한 발 뒤로 물러나 세아츠리스나 다른 언노운 마법기사단을 노리는 적들을 홀로 막아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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