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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270화 (270/424)

270화 추격전 (1)

모두가 평온하게 잠든 저녁.

아시테르가 인기척에 눈을 떴다.

그가 있는 숙소로 다가오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하인의 발걸음이라기엔 조심스럽고 은밀했다.

거기다 흘러나오는 마력의 양이 결코 평범한 이는 아니었다.

몸을 일으킨 아시테르가 옷을 고쳐 입었다.

이부자리를 살짝 흐트러지게 정리하고 아시테르는 커튼 뒤로 몸을 옮겼다.

이윽고 누군가 아시테르의 숙소 안으로 들어섰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가 아시테르의 침대 앞에 섰다.

“이봐요.”

여인의 목소리.

그것도 아주 익숙한 목소리였다.

“이봐요……!”

재주도 좋게 작게 소리친 아일리시가 침대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를 확인한 아시테르가 커튼 뒤에서 슬쩍 나왔다.

“아잇 깜짝이야! 왜 거기서 나와요?!”

아일리시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그러자 아시테르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침입자가 들어오는 건가 싶어서.”

“와아… 생각보다 조심성 있는 타입이었구나……?”

“그런데 이 밤중에 여기는 무슨 일로?”

“크흠… 그게 말이에요.”

아일리시가 시선을 피하며 말하길 머뭇거렸다.

여기까지 찾아왔는데 뭘 망설이는 건지…….

그녀는 결국 에라 모르겠다 싶어 말문을 열었다.

“당신들, 지금 위험해요.”

“우리가 위험하다고요?”

“네. 당신들 모두.”

“마르체니 공주님도?”

“아뇨. 그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피체 왕자님이 지켜 주실 거니까.”

“그렇군요… 그런데 우리들이 위험하다는 얘기는… 역시 사우스 왕국에서 우리를 곱게 보내 주지 않을 거라는 소리인가요? 아니면 우리들의 목숨을 노리는 분이 따로 있는 건가…….”

“그러게 어쩌자고 당신 같은 거물이 여기까지 직접 찾아온 거예요? 거기다 이번에 급부상한 일섬 마법기사단의 단장까지!”

아일리시의 말에 아시테르가 표정을 굳혔다.

여기까지만 들어도 그녀가 무슨 말을 할지 짐작 가능했다.

“우리 두 사람을 잡아 둘 생각인가보군요…….”

“잡아 둬요? 그런 순한 정도가 아니에요. 아마 무조건 죽이려 들 거예요. 두 사람은 사우스 왕국 내에서 우선 제거 순위에 들어갈 정도니까. 특히 당신은 더더욱!”

아일리시가 경고하듯 말했다.

그때 뒤편에서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얘기. 조금 더 자세하게 해보겠어요?”

알렌시아와 게벨 그리고 다른 선임 기사들이 이곳까지 찾아왔다.

모두 일어나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아일리시가 두 눈을 끔뻑였다.

“우리는 어디에 있건 늘 경계를 늦추지 않습니다. 그게 습관이라서요. 그런데 당신은 누구신데…….”

“사우스 왕국 트럼프 중 한 명인 아일리시라고 합니다.”

게벨의 물음에 아시테르가 대신 그녀를 소개했다.

얼떨결에 아일리시가 제 9기사단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나저나 우리들을 죽일 거라니. 그게 무슨 말이죠?”

“말 그대로에요. 지금 사우스 왕국 수뇌부에서는 당신들을 죽일 계획을 짜고 있어요.”

“우리들을 죽일 계획이라…….”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나… 드러운 놈들…….”

“하여간 믿을 수가 없는 놈들이라니까.”

몇몇 선임 기사들이 이를 갈며 말했다.

그들의 말에 괜히 마음이 찔린 아일리시가 헛기침을 해댔다.

그때 알렌시아가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우리가 당신의 말은 어떻게 믿죠?”

“네……?”

“당신도 결국 사우스 왕국 사람이잖아요. 거기다 우리 왕국에 포로로 붙잡혔던 적도 있는데… 당신의 말 자체가 계략의 시작인지도 모르잖아요?”

알렌시아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그녀 말대로 아일리시는 사우스 왕국의 사람.

그것도 평범한 이가 아닌 트럼프 중에 한 명이었다.

그러니 사우스 왕국에 대한 충성심도 뛰어날 수밖에 없다.

그런 자신이 어쩌다보니 이곳까지 와 기밀을 밝히고 있었다.

다시 생각해 봐도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하는 행동인데, 앞에 있는 다른 이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들을 설득하기를 포기한 아일리시가 낮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믿고 안 믿고는 당신들의 자유에요. 다만 우리 왕국은 정확히 2일 뒤에 움직일 거예요. 그러니 참고해 둬요. 지금이라도 몰래 이곳을 빠져나가지 않으면… 아니 이미 이곳을 포위하고 있으니 지금도 늦었으려나… 어쨌든 행운을 빌게요.”

할 말을 마친 아일리시가 이만 몸을 돌리려 했다.

그녀가 왜 여기까지 찾아와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인지, 알렌시아는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그때 아시테르가 아일리시를 붙잡았다.

“고마워요.”

“당신이 걱정돼서 찾아온 게 아니에요. 당신이 죽으면 천사 같았던 엔류아가 분명 슬퍼할 테니까… 그게 싫어서 찾아온 거예요.”

“그래도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어요.”

잠깐 입을 우물쭈물하던 아일리시가 이내 말을 꺼냈다.

“우리 하트 군대는 이번 작전에 소극적으로 임할 거예요. 이미 많은 병력들을 외곽으로 돌려놔서 여기에 주둔해 있는 부대도 많진 않지만… 이곳에서 빠져나갈 때 북서쪽으로 가요. 콰르맹가라고 불리는 지역이 있는데 그곳으로 빠져나가면 될 거예요. 거기는 포위망이 촘촘하지 않을거 거든요.”

아일리시의 시선이 알렌시아에게로 향했다.

“이번에도 내 말이 함정 같으면 믿지 않아도 돼요. 당신들이 내 말을 믿건 안 믿건 솔직히 난 상관없거든요. 다만… 난 포로로 붙잡혔을 때 내게 잘해 줬던 언노운 마법기사단에게 은혜를 갚는 것뿐이에요.”

자신도 위험을 무릅쓰고 이곳까지 왔다는 말을 꺼내고 싶었다.

하지만 이내 그 말은 꺼내지 않았다.

그런 말까지 해서 설득력을 더하고 싶지 않았다.

이미 자신은 지금까지의 얘기들을 전해 준 것만으로도 도리는 다 했다.

나머지는 이들의 운에 맡길 뿐이었다.

‘저 인간은 운도 실력으로 극복해 내겠지만…….’

아일리시의 시선이 아시테르에게 잠깐 머물렀다.

저 사람이 있는 한 이스트 왕국은 한 번 더 전성기를 맞이할 것이다.

어쩌면 이스트 왕국은 테르세우스의 뒤를 잇는 거대한 원석을 품고 있는 지도 몰랐다.

아니, 아시테르는 이미 테르세우스의 뒤를 잇기에 충분해 보였다.

‘나도 참 웃기는 사람이네… 아시테르가 얼마나 위협적인 존재인지 누구보다 열심히 알려 놓고… 여기까지 찾아와 이제는 저 사람에게 살 길을 알려 주려 하고. 뭐하고 있는 건지 대체…….’

방을 나선 아일리시가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이스트 왕국에서 하늘을 바라봤을 땐 은근한 해방감이 있었다.

많은 것들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고, 근심 걱정 같은 것들이 없었다.

밤하늘의 별들을 세어 보기도 하고 환한 달빛에 기대 잠에 들어 보기도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고향인 사우스 왕국에서 바라보는 밤하늘은 적막하고 삭막하게까지 느껴졌다.

“참… 알 수 없는 일이라니까…….”

아일리시는 사우스 왕국에 돌아온 뒤로 자신을 괴롭히는 이 정체 모를 감정이 싫었다.

그녀가 아시테르 일행에게 사우스 왕국의 계략을 말한 지 하루가 지나고, 제 9기사단은 조용히 이곳을 떠났다.

마르체니에게 인사를 건네려 했으나, 계획 때문인지 마르체니 공주는 피체가 있는 거처로 옮겨졌다.

그래도 그 이전부터 늘 작별을 고해왔기 때문에 아쉬움은 없었다.

“미련없이 떠나야지.”

“공주님께서 제발 무사하시기를…….”

“피체 왕자가 우리 공주님한테 완전 빠졌다고 하던걸?”

“벌써부터? 참나…….”

“우리 공주님이 좀 매력적이시냐? 어떤 사내놈이든 걸리면 아주 그냥… 헤어나오질 못하지!”

“시끄럽다 이것들아.”

제 9기사단이 줄을 지어 이동했다.

그들은 모두가 잠든 틈을 이용했다.

그들이 돌아가는 길에 사우스 왕국민들이나 귀족들이 나서서 배웅해 줄 것도 아니었으니 이 정도가 딱 좋았다.

거기다 아일리시가 해준 말도 있었으니, 본래 귀국하려는 날짜보다 하루 더 일찍 이동했다.

게벨이 앞장서서 주위를 둘러보았고, 아시테르와 알렌시아도 이카루스를 타고 주변을 살폈다.

아무리 밤이라고 해도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묘한 위화감을 느낀 게벨이 입을 열었다.

“그 사람의 말이 정말인지도 모르겠구나..”

“얼마 전부터 이곳에 머물던 사람들이 하나둘 빠져나가기 시작하더군요.”

“흐음, 우리들이 있는 곳을 편하게 습격하기 위함인가…….”

“아마 그렇겠죠. 우리가 자국민들을 붙잡아 협박이라도 하면 곤란하니까요.”

“후후후후, 우리를 너무 과소평가했군. 우리가 죽으면 죽었지 일반 시민들에게 해코지할 위인들은 아닌데 말이야.”

게벨이 웃으며 말했다.

그의 얼굴에서 이상하게 여유가 흘러 넘쳤다.

아시테르가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긴장되진 않으십니까?”

“이미 여기까지 올 때부터 각오했던 일이다. 놈들이 우리를 죽이겠다면 우리들은 살아서 돌아가면 그뿐이야.”

“맞는 말씀이네요.”

그 시각, 제 9기사단이 밤중을 타 빠져나갔다는 소식은 빠르게 퍼져 트럼프들의 귓가에도 들렸다.

탁자를 내려친 제이스쿠스가 이를 갈았다.

“내부에 배신자가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놈들이 이렇게 빠르게 움직일 리 없어!”

“하지만 이 작전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제일 의심되는 것은 아일리시다.”

“예? 하지만 아일리시님은 이스트 왕국에 포로로 붙잡혔던 몸이 아닙니까? 그분께선 이스트 왕국을 싫어하면 싫어했지…….”

“아니. 돌아왔을 때 아일리시의 모습을 보지 못했나? 지나치리만큼 멀쩡한 모습이었다. 오히려 얼굴이 더 좋아져서 돌아왔지. 그 말은 뭐겠나? 이스트 왕국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는 거겠지.”

“이스트 왕국에서 아일리시님을 그렇게 대접할 이유가 없질 않습니까.”

“있다. 아일리시가 우리 왕국을 배신했다면 말이지……!”

제이스쿠스가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하지만 곁에 있던 네이트워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이스쿠스님께서 아일리시님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이번 얘기는 지나치게 소설 같은 얘기로군요.”

“내 말이 틀렸다는 건가?”

“틀리고 맞고를 떠나서 지금까지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질 않습니까? 헌데 제이스쿠스님은 마치 이 모든 일의 중심에 아일리시님이 있을 것처럼 말씀하시고, 심지어는 그녀가 우리 왕국을 배신했을 거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모든 것들이 사실이나 증거를 기반한 것이 아닌 제이스쿠스님의 추측일뿐이지 않습니까?”

네이트워의 말에 제이스쿠스가 눈을 부라렸다.

하지만 그는 말을 덧붙이진 않았다.

“일단은 놈들부터 잡고 나머지 얘기를 나누도록 하지.”

제이스쿠스가 몸을 벌떡 일으켜 밖으로 나섰다.

네이트워도 이만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위치로 향했다.

제 9기사단을 추격하기 위해 스페이드 군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한바탕 요란법석을 떨어댄 통에 아시테르 일행도 사우스 왕국의 추격이 시작되었음을 알아차렸다.

“속도를 높인다.”

게벨이 뒤쪽의 수하들에게 말했다.

그들이 택한 방향은 아일리시가 말해준 북서쪽이었다.

알렌시아가 아시테르를 돌아보며 말했다.

“정말 그 여자를 믿어도 되겠어? 이쪽이 오히려 함정일 수도 있잖아?”

“아마 아일리시의 말이 맞을 거야.”

“어떻게 그렇게 확신해?”

“나도 이곳에 있는 동안 병력이 움직이는 것을 체크하고 있었거든. 하트 군대가 북서쪽으로 가장 많이 움직였어. 아마 아일리시는 일부러 포위망에 허점을 만들어 둘 거야. 우리들이 빠져나갈 수 있도록.”

“흐음… 그래,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믿어 보자. 게다가 지금은 별다른 방법이 떠오르는 것도 아니니까.”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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