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1화 추격전 (2)
관문을 통과하고 있는 제 9기사단 앞으로 무장을 한 기사들이 다가왔다.
가장 선두에 있는 기사가 그들을 보며 물었다.
“어디에 소속되어 있는 부대입니까?”
“이스트 왕국의 기사들입니다.”
“이스트 왕국 기사들이 어째서 이곳에… 아, 혹시 얼마 전 수도로 도착했다는 마르체니 공주님의 수행 기사들입니까?”
“맞습니다.”
“그렇군요. 이제 돌아가시는 길인가 봅니다.”
“예.”
“그런데… 저희들은 아직 연락받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이곳에서 대기해 주시겠습니까?”
“죄송하지만 저희들이 급해서 발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기다려 주셔야 합니다. 아, 아니면 허가증이 있으시다면 그거라도 보여 주시겠습니까?”
기사의 말에 게벨이 품에서 허가증을 꺼내 보여 주었다.
미리 받아놓은 덕분에 지금까지 많은 관문들을 의심 없이 지나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허가증을 확인한 기사가 길을 터줬다.
“조심히 돌아가시길 바랍니다.”
뒤편에 시립해 있던 병사들도 길을 비켜 주자 제 9기사단도 멈춰 섰던 걸음을 이었다.
그들이 지나 가는 것을 지켜본 바훔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길을 안내해 주는 수행인도 없이 이렇게 보내다니… 뭔가 이상하군.”
“그야 이스트 왕국놈들이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닐까요? 솔직히 뭐가 예쁘다고 길을 안내하는 수행인까지 붙여줍니까?”
“그래도 대외적으로 보여지는 것이 있는데… 아무래도 뭔가 이상하다. 네가 좀 알아봐야겠다.”
“어떤 점이 마음에 걸리시는 겁니까?”
“마음에 걸린다기보다… 이상한 점이 보이는 거야. 이스트 왕국으로 돌아가는데 이곳을 지나치는 것도 그렇고. 허가증에 왕실의 인장이 아닌 귀족가의 인장이 찍혀 있었으니까.”
“귀족가의 인장이요? 그건 좀 이상하네요… 보통 이런 일에는 무조건 왕실의 인장이 쓰이는데…….”
“그러니 알아봐 봐.”
“아니 근데 어째서 귀족가의 인장인데 통과시킨 겁니까? 한번 더 확인해 보시지…….”
“알프라이다 가문에서 내어준 허가증이니까.”
“아… 알프라이다 가문에서요……?”
알프라이다 가문은 사우스 왕국의 기둥이라 불리는 귀족가였다.
그들이 사우스 왕국 내에서 미치는 영향력은 왕실만큼이나 거대했다.
무엇보다 알프라이다 가문에는 하트 군대의 대장인 아일리시가 속해 있었다.
그러니 사정이 있을 거라 생각해 바훔도 일단은 그냥 통과시켜 준 것이다.
하지만 지나가는 저들의 뒷모습이 뭔가 찜찜했다.
마치 몰래 빠져나가는 모양새로 비춰지기도 했다.
수행인이나 다른 사람들도 대동하지 않고 이스트 왕국 기사단만 있는 것도 의아함을 불러일으켰다.
보통 왕국에서 재물을 함께 보내게 마련인데 심지어 저들은 빈손…….
오히려 기동하기 좋게끔 차림새도 최소한의 장비만 갖춘 모습이었다.
“최소한의 장비만…? 설마…….”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바훔이 수하들을 시켜 빠르게 수소문을 시작했다.
뒤늦게 제 9기사단이 이곳을 지나쳤다는 것을 알게 된 영주가 명령을 내렸다.
“당장 그자들을 붙잡아!!”
“알겠습니다. 만약 그들이 명령에 불이행한다면…….”
“모두 죽여도 좋다! 아니지… 생포해야 하나? 아무튼 붙잡아 와!! 지금 트럼프 분들께서 그들을 쫓고 계신다! 안될 것 같으면 시간이라도 끌어라!!”
“그랬었군요…….”
바훔이 병력을 이끌고 제 9기사단을 쫓았다.
말을 탄 기사들이 바훔의 뒤를 바짝 따랐다.
마도사들이 그 뒤를 이었다.
제법 병력을 갖춘 카르말리오 영지의 군사들이 제 9기사단을 추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편 그들이 쫓아오고 있다는 것을 제 9기사단도 눈치채고 있었다.
“지금 우리가 얼마나 왔지?”
“카르말리오 영지까지 왔으니… 이제 4분의 3 정도 온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정말 빠르게 이동했구만.”
“근데 이제는 한계인가 봅니다. 적들이 알아차렸어요.”
“이제부터는 정상적인 루트가 아닌 다른 길을 찾아봐야겠지.”
게벨의 시선이 산맥 쪽으로 향했다.
가파른 데다 험준하기까지한 러셀 산맥.
러셀 산맥을 이용한다면 분명 적들의 추격을 피해 이스트 왕국까지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제 9기사단은 망설임 없이 러셀 산맥쪽으로 향했다.
“멈추십시오.”
어느새 그들을 앞지른 바훔이 제 9기사단을 가로막았다.
그러자 게벨이 침착하게 말문을 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잠시만 기다리라는 영주님의 명령입니다.”
“하지만 저희들은 갈 길이 바쁩니다.”
“그래도 영주님의 명령이니 기다려 주셔야겠습니다.”
“흐음… 꼭 필요한 일입니까?”
게벨의 물음에 바훔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는 잘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니 영주님께서 이곳으로 오신다면 직접 묻도록 하십시오.”
그러면서도 슬금슬금 기사들과 병사들이 제 9기사단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이것을 눈치챈 제 9기사단도 서서히 전투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무력 시위를 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니 순순히 따라 주십시오.”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면?”
“흐음… 그럼 어쩔 수 없지요. 강제로라도 여러분들을 영주님 앞으로 데려갈 수밖에.”
바훔이 검을 들었다.
그러자 다른 기사들도 일제히 병장기를 들어 올렸다.
뒤늦게 도착한 마도사들이 마력을 끌어올렸다.
“미안하지만 그건 쉽지 않을 겁니다.”
게벨이 주먹을 말아쥐었다.
그 순간 그가 나서기도 전에 아시테르가 한발 더 빨리 움직였다.
그가 만들어낸 불길이 제 9기사단과 사우스 왕국군 사이에 경계선을 만들어 내었다.
“헙?!”
“물러나라!!”
“뒤로 물러나!”
놀란 기사들과 병사들이 뒤로 물러났다.
갑자기 성인의 키를 훌쩍 뛰어넘을 정도로 거센 불길이 일었으니, 그들이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이 틈에 가시죠.”
불길로 적들의 정신을 쏙 빼놓은 아시테르가 러셀 산맥쪽을 가리켰다.
이런데서 지체할 시간 따윈 없었다.
본대가 오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멀리 벗어나야 한다.
그들의 모습이 보이는 순간, 상황은 급격히 안 좋아질 것이 분명했다.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제 9기사단도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어딜 가려고!”
뒤늦게 본대를 이끌고 도착한 영주가 제 9기사단을 가리켰다.
그러자 그를 따라온 군사들이 일제히 달려들기 시작했다.
쩌저정─!!
알렌시아가 만들어낸 전격이 적들을 향해 쏟아졌다.
갑자기 내리친 낙뢰에 사우스 왕국군도 당황한 눈치였다.
“빠르게 뚫는 게 낫겠어.”
알렌시아가 바로 마법을 연달아 캐스팅했다.
전격이 번쩍거릴 때마다 강한 폭발이 일었다.
그 사이로 알렌시아가 거침없이 움직였다.
“과연… 우리 부단장님의 여자친구인가!! 아주 그냥 화끈하시구만!!”
“일섬 마법기사단의 단장님이시다. 말 가려서 해라 임마.”
“에이, 그래도 그 전부터 우리는 함께 해 온 사이 아닙니까. 굳이 그렇게 딱딱하게 얘기하지 않아도…….”
“지금 그런 한가한 얘기나 할 때냐? 빨리 움직여라.”
제 9기사단은 그들을 가로막는 적들을 베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의 선두에는 게벨이 있었다.
게벨은 투사답게 맨주먹으로 적들을 쓰러트렸다.
그들의 실력을 본 카르말리오의 영주는 두 눈을 큼지막하게 뜨고 말았다.
“뭐냐… 우리들이 밀린다고……?”
그가 이끌고 온 병력은 천 명이 넘었다.
그런데 겨우 백명 수준의 기사단에게 크게 밀리고 있었다.
아니, 이건 밀리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일방적인 전투에 가까웠다.
제법 실력이 있다고 자부한 정예병들도 제 9기사단의 상대는 아니었다.
사우스 왕국군의 포위망이 뚫리는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영주님! 이제 어떻게 할까요? 저들을 쫓을까요?”
“쫓는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은가……?”
그의 물음에 바훔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당장 불길을 일으킨 마도사만 하더라도 이미 자신들의 상대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뒤이어 실력 행사를 시작한 전격 마도사는 더 했다.
단숨에 이쪽 진형을 붕괴시켜 놓는 위력에 이미 병사들은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다.
“사실. 저희들이 어찌할 수 있는 수준의 기사단은 아닌 것 같습니다…….”
“크윽… 우리들의 힘으로는 시간조차 끌 수 없다는 것이냐…….”
영주의 얼굴이 굳어졌다.
저들의 실력이 이렇게까지 뛰어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래도 욕심은 쉽게 버려지지 않았다.
지금 여기서 무슨 방법을 사용하던 저들을 붙잡아 두는 데만 성공해도 엄청난 공을 세운 것으로 인정될 것이다.
“저놈들이 처음 우리 영지를 지날 때만 해도 이게 웬 횡재인가 싶었는데… 이제 보니 딱히 그런 것도 아니었구만…….”
부담이었다.
저들을 계속 붙잡고 늘어지면 수하들이 크게 희생될 것이 분명했다.
결국 카르말리오의 영주는 추격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대신에 그들이 어디로 도망치는지 알 수 있도록 수하들을 붙였다.
“이게 최선이다…….”
“…죄송합니다. 저희가…….”
“아니. 너희들의 잘못이 아니야. 그저 놈들이 너무나 강할 뿐이다.”
사실 이들은 위로부터 이스트 왕국군을 붙잡거나 생포하라는 명령만 전달받았지, 눈앞에 있는 이들이 정확히 어떤 자들인지는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마르체니 공주를 지키던 호위기사단쯤으로 짐작하고 있을 뿐이었다.
어쨌든 카르말리오 영지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추격이 시작되었다.
곳곳에서 마주치는 적들 때문에 제 9기사단의 이동에도 점차 제동이 걸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러셀 산맥에서 마수들도 종종 마주쳤다.
놈들까지 상대하려니 자연스럽게 체력의 소모도 커지고 있었다.
그렇게 며칠을 이동했건만 결국 그들이 있는 곳으로 트럼프 군대가 도착하고 말았다.
“놈들을 쫓아라. 아직 러셀 산맥을 벗어나지 못했을 것이다.”
“알아서 러셀 산맥으로 기어들어갔군.”
“그나저나 의외로군요. 당연히 북동쪽이나 북쪽으로 움직일 줄 알았는데 북서쪽으로 향할 줄이야…….”
“어디서 정보를 주워 듣기라도 한 건가.”
“상관없다. 놈들이 어디로 도망치던 결국엔 붙잡혀 올 것이다. 절대로 우리 사우스 왕국의 국경을 벗어날 수 없어.”
다이아 군대와 스페이드 군대, 거기다 클로버 군대까지.
무려 세 개의 군대가 투입되어 제 9기사단을 쫓고 있었다.
그러니 걱정은 없었다.
거기다 모두가 의기를 드러내는 모습이었다.
다른 평범한 이들도 아닌 두 명의 마법기사단 단장이 제 9기사단에 있었다.
절대로 그들을 놓칠 수 없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전력을 줄여 놓아야 한다.”
제이스쿠스의 눈빛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과거의 기억이 떠오른 롤스로체카가 입맛을 다셨다.
“이번엔 실수 없이 마무리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당연한 말을.”
“후후 간만에 재밌겠어.”
“놈들을 마주한다면 정면으로 싸우는 것은 피해라. 일섬 마법기사단의 단장과 언노운 마법기사단의 단장은 파괴력이 엄청난 존재들이다. 괜히 정면으로 맞섰다간 크게 피해를 입을 우려가 있어. 그러니 조금씩 놈들을 몰아가는 거다. 그리고 이곳에 다다랐을 때.”
제이스쿠스가 지도의 한쪽을 가리켰다.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향했다.
“놈들을 붙잡는다. 붙잡는 게 어렵다면 죽여도 좋다.”
“예!!”
“예!!”
“예!!”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본격적인 포위가 시작되었다.
러셀 산맥을 중심으로 무려 세 개의 군대가 포위망을 좁히고 있건만, 아시테르와 제 9기사단은 아직까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러셀 산맥 한 가운데에서 방향을 놓치지 않고 나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그 가운데에서 오직 아일리시의 군대만 중립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녀는 형식적인 구색만 갖춰놓고 아무런 움직임을 취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