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에서 왔습니다만-273화 (273/424)

273화 포위망 (1)

“하아… 하아… 이거 정말 괜찮은 겁니까?”

“그러니까요. 점점 한계에 부닥치고 있습니다…….”

“제기랄… 이거 완전히 놀림 당하고 있는 기분인데……!”

기사들이 전투를 치르며 한 마디씩 해댔다.

푸왈르아이가 있는 힘껏 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끝이 적의 목을 베어 넘겼다.

이어 몸을 숙인 푸왈르아이가 검을 찔러 넣었다.

푸슉!

익숙하면서도 익숙해지지 않는 느낌이 손끝으로 전달되었다.

반 정도 들어간 검에서 붉은 핏물이 흘러내린다.

“후욱… 후욱… 후우우욱…….”

숨을 고른 푸왈르아이가 허리를 펴는 순간.

스각─!

옆에서 튀어나온 검이 그의 팔을 베었다.

“끄아악!”

“푸왈르아이!!”

곁에 있던 동료들이 달려왔다.

푸왈르아이를 공격했던 기사를 누군가 베었다.

이어 그를 부축한 다른 이가 함께 움직였다.

“부상은!?”

“괜찮습니다…….!”

반이나 베어 왼손이 덜렁거리고 있었다.

가까스로 이어져 있다는 느낌일 뿐 이미 왼손은 제 기능을 다하기 힘들었다.

“크아아아아아──!”

무언가 결심한 푸왈르아이가 검으로 남은 부위를 잘라 버렸다.

의식이 끊어질 것만 같은 끔찍한 고통이었다.

잔뜩 흥분한 지금 상태가 아니었다면 분명 기절이라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끝내 자신의 팔을 잘라내고 이를 악물었다.

“이 미친놈……!”

“지혈이라도 해줘!!”

“바로 묶어라!”

곁에 다가온 동료들이 잘린 부위를 지혈하기 시작했다.

간단한 상비약들도 있기에 그들이 서둘러 부상을 치료해줄 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나 푸왈르아이는 그들을 뿌리쳤다.

“됐습니다 선배님들!”

“이런 멍청한 놈이! 뭐가 됐다는 거냐!?”

“저는 괜찮으니까 약을 아끼십시오.”

“너도 이미 심각한 부상을 입은 사람이다. 그러니 잔말 말고……!”

“저보다는 다른 선배들이 부상 입었을 때 그 약을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야 임…….”

발끈한 선인 기사가 그를 붙잡으려 했으나 다른 이가 이를 말렸다.

더 이상 고집부린다고 해서 들을 푸왈르아이도 아니었다.

결국 다른 이들도 치료를 해주길 포기하고 검을 집어들 수밖에 없었다.

전투는 해가 질 때까지 끊임없이 이어졌다.

하나의 전투를 오래 하는 것이 아니었다.

소규모의 적들을 돌파하면 또다시 다른 적들이 튀어나왔다.

그렇게 전투를 이어 가다가 밤이 찾아오니 전투의 횟수가 줄어든 것이다.

그 사이에 제 9기사단에도 사상자가 속속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푸왈르아이는……?”

“녀석은…….”

조금 전 당차게 전장으로 복귀했던 푸왈르아이는 싸늘한 주검이 되어 누워 있었다.

한쪽 팔이 잘린 그를 보며 기사들이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아마 푸왈르아이는 자신이 이렇게 될 줄 알았을 것이다.

치열하게 싸워야 하는 전장에서 갑자기 한쪽 팔을 잃는다는 것은 치명적인 일이었다.

단순 부상 때문이 아니라 갑자기 팔을 잃었으니, 검을 휘두르는데도 결함이 생긴다.

균형을 잃고 쉽게 몸을 쓰러트리게 마련.

그렇기 때문에 팔을 잃은 검사들은 다시 그 균형을 잡는데도 꽤나 긴 시간이 걸린다.

그것도 지독하게 노력한 이들의 얘기일 뿐이지, 대부분의 검사들은 검을 포기하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다음 생엔 전쟁이 없는 곳에서 태어나라…….”

푸왈르아이의 얼굴을 덮어준 베드롱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이들도 표정이 어둡기는 마찬가지였다.

날이 거듭될수록 죽음을 맞이하는 동료들이 늘고 있었다.

게벨을 비롯한 다른 선임 기사들의 부상도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많은 병력을 빼돌린 아시테르 덕분에 그나마 이 정도에 머물 수 있었다.

아니면 저들의 온전한 병력을 감당해야 했을 터다.

“곧 있으면 일주일이다. 아시테르가 다시 돌아올 거야.”

“후우… 부단장님이 합류하면 뭔가 더 방법이 생길까요…….”

“그래도 지금보다는 상황이 더 나아지겠지.”

“알렌시아 단장님도 많이 지치신 것 같은데…….”

사실상 제 9기사단이 지금까지 이렇게 무사할 수 있었던 것도 알렌시아 덕분이 컸다.

그녀 혼자 무력화시킨 적들의 부대만 열 부대가 넘을 것이다.

알렌시아는 자신이 왜 일섬 마법기사단의 단장에 올라 있는지 제대로 그 존재 가치를 증명해주었다.

그녀는 지금 홀로 앉아 마력을 회복하고 있었다.

다른 기사들이 그녀에게 다가가 식량을 건넸다.

“아뇨. 저는 괜찮아요. 여러분들 드세요.”

“하지만 뭐라도 드셔야 회복이 되지 않겠습니까.”

“저는 괜찮아요. 저보다는 다른 기사들을 챙겨 주세요.”

정중하게 거절한 그녀가 다시 회복하는데 집중했다.

연속되는 전투로 마력의 소모가 상당했다.

가뜩이나 상당한 양의 마력을 잡아먹는 마법이 바로 전격 마법이었다.

아시테르를 통해 마력의 소모 방식을 바꿔 봐도 이 정도였다.

게벨이 그런 알렌시아의 곁으로 다가왔다.

“저희 때문에 너무 무리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아시테르는 무조건 여러분들과 함께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바라고 있어요. 그건 저 또한 마찬가지고요. 무슨 일이 있어도 다함께 살아 돌아갈 거예요.”

지난날의 일들을 반복할 수는 없었다.

물론 상황은 그때보다 더 나빴지만, 알렌시아도 그때에 머물러 있진 않았다.

그동안 그녀 또한 강해지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일섬 마법기사단을 키우면서도 스스로의 실력을 키우는데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너무나 힘들 때는 아시테르와 처음 만났던 연무장에도 찾아가 수련을 해봤다.

그곳에 있으면 왠지 아시테르가 곁에 있는 것만 같아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게 수련을 거듭해 왔고 이제는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의 마도사가 되어 있었다.

“그때와 다르게 지금의 저는 힘이 있어요. 여러분들을 지키면서 나아갈 힘이.”

그러니 이제는 보여 줄 때다.

여기서 또 무력해질 수 없었다.

알렌시아가 호흡을 가다듬으며 마나홀을 체크했다.

다행이 아직까지는 마력의 양이 상당량 남아 있었다.

아시테르가 이곳으로 도착했을 때 두 사람이 앞장서서 이 난관을 헤쳐 나가야 한다.

그럴려면 컨디션 관리가 가장 중요했다.

그때 먼발치서 누군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림자를 본 기사들과 마도사들이 잔뜩 긴장한 눈빛이었다.

야밤에 전투를 시작하는 것만큼 피로가 쌓이는 일은 없다.

피아의 구분이 어려운 데다 적들의 움직임을 캐치하기 위해 더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런 상황 속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상당히 익숙한 목소리였다.

“접니다.”

적들을 한바탕 따돌리고 온 아시테르가 마침내 다시 제 9기사단에 합류했다.

그의 목소리를 들은 사람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알렌시아가 몸을 일으켜 아시테르를 맞이했다.

“어서와.”

“상황은 어때? 어디 다친 곳은 없고?”

“상황은 여전히 나쁘고… 나는 다친 곳 없이 괜찮아.”

“다행이네.”

“그래도 많은 기사단원들이 죽었어…….”

알렌시아가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시테르가 없는 동안 그녀가 더 열심히 나서서 그들을 지켜 주려 했지만, 아무래도 한계가 있었다.

한쪽에 늘어서 있는 시체들을 보며 아시테르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을 위해 묵념해준 아시테르가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적들이 더욱 바짝 쫓아오고 있어요. 아마 놈들은 우리들을 한쪽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를 몰아가고 있다고?”

“정신없이 쫓기다보면 방향을 잃게 마련이니까요. 놈들은 우리들을 자신들이 의도한대로 유인하고 있는 겁니다. 적당히 쫓고 적당히 놓쳐 주면서.”

“그래서… 한번씩 추적을 멈췄구나……!”

“흐음… 이거 완전 우리들이 마수가 된 기분이라 별로인데…….”

“개자식들… 우리들을 갖고 놀고 있는 거였다니…….”

기사들이 분을 삭이며 말했다.

그들을 바라보던 아시테르가 자신이 왔던 쪽을 가리켰다.

“지금 당장 저쪽으로 가야 합니다.”

“이유는?”

“저쪽이 현재 가장 병력이 적을 겁니다. 놈들은 아마 이번에도 우리들이 자신들의 의도대로 움직여 주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 틈은 저쪽에 있습니다.”

아시테르의 말이 끝나자마자 기사들이 서둘러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따로 의심할 여지가 없다.

아시테르의 전황 파악 능력과 상황 판단은 게벨보다도 뛰어났다.

전장의 흐름을 모두 읽고 있는 아시테르가 강하게 주장하는 말이었으니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다.

게벨 역시도 아시테르의 말에 따라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발상의 전환이로군. 조금 전 적들에게서 도망쳐 온 곳으로 다시 돌아가다니…….”

“놈들은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들의 발에 맞춰 빠르게 움직이고 있죠. 롤스로체카라는 인물은 그런 식으로 우리들을 쫓고 있는 겁니다.”

아시테르가 선두에 섰다.

제 9기사단이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지는 상황은 정말 아시테르 말대로였다.

놀랍게도 많은 병력들이 주둔해 있을 줄 알았던 후방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군대가 머물렀다는 흔적밖에는…….

“세상에. 정말이었잖아!”

“역시 부단장님!!”

“크으… 어떻게 이런 생각을……!”

왔던 길로 다시 돌아왔던 아시테르가 이번에는 방향을 틀었다.

다시 갈피를 잡고 북서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저들이 원하는 방향은 북동쪽.

계속해서 정신없이 쫓기다보니 제 9기사단은 저도 모르게 북동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아시테르가 다시 방향을 잡아줌으로써 그들은 정방향으로 향할 수 있었다.

그 사이 마주치는 적들은 아시테르와 알렌시아가 빠르게 나서서 정리했다.

이렇게 계속 가기만 하면 이대로 사우스 왕국을 빠져나갈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희망은 잠시 뿐이었다.

뒤따라온 롤스로체카가 실력 발휘를 시작했다.

“건방진 놈들……!”

잠깐의 틈을 정확하게 파고 든 아시테르와 제 9기사단을 보며 그가 분노했다.

롤스로체카가 마음먹고 마법을 펼치기 시작하자 산악 일대가 안개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이 안개 안에서는 상대의 마력을 느끼는 것도 쉽지 않다.

멀리서부터 적들의 마력을 읽고 빠르게 대처하던 아시테르에게도 이 안개는 상당한 장애물로 작용했다.

“이런 마법이라니…….”

과거에 부모님께 들은 적이 있었다.

사우스 왕국에는 안개를 주로 사용하는 마도사가 있다고.

그와 함께 다니는 철의 마도사를 조심하라는 말도 했었다.

“안개의 마도사가 여기에 있었구나…….”

험준한 산에 안개까지 펼쳐지니 더더욱 난관이었다.

이에 더해 안개에 특화된 부대가 추적을 시작했다.

그들의 존재는 아시테르조차 쉽게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푸슉!

“크아아악!!”

파바바바방─!!!

“헙!”

“적이다!! 방어태세로!!”

능선을 넘어가던 제 9기사단에게로 기습 공격이 시작되었다.

안개 속에서 시작된 기습 공격에도 제 9기사단은 제법 능숙하게 대처했다.

비슷한 마법을 사용하는 데미리우스를 데려다가 연습한 적이 있던 덕분이었다.

“모두 방진을 만들어라!!”

게벨의 빠른 명령에 기사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이어 아시테르가 불꽃으로 적들이 있는 곳을 공격했다.

알렌시아의 뇌전이 연달아 떨어지며 적들을 공격했다.

“아시테르… 뭔가 이상해…….”

“응… 나도 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 같아.”

아시테르가 빠르게 움직여 적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곳에 막상 도착해 보니 적들은 없다.

아시테르의 불길이 나무를 태우고 알렌시아의 뇌전이 나무를 갈랐을 뿐이다.

“이런 식의 공격이라니… 앞으로 더욱 힘들어지겠는 걸…….”

아시테르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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