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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279화 (279/424)

279화 마음의 거리 (2)

아시테르와 알렌시아는 천천히 던전 안을 탐색했다.

다행이 안에는 먹을 걸로 삼을 만한 것들이 몇 있었다.

던전에서 오래 생활한 아시테르다보니 알렌시아는 처음 보는 식물이나 열매임에도 서슴없이 그것들을 가져와 건넸다.

이렇게 보니 아시테르가 어렸을 때부터 던전에서 살아왔다는 것을 새삼 실감할 수 있었다.

알렌시아에게는 모든 것이 낯선 세상이었는데, 아시테르는 마치 고향에 돌아온 것처럼 아무렇지 않아 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던전이면 마수들이 있을 법도 한데…….”

아시테르가 주변을 돌아보았다.

신기하게도 뭔가 익숙하면서도 낯선 길들이었다.

잠깐이지만 언젠가 이런 던전에 왔었던 적이 있나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아시테르. 여기 물이 있어.”

알렌시아가 곁에 흐르는 물을 손으로 떠 마셨다.

목이 너무 말라 잠깐 축인 것이다.

이를 본 아시테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안 돼 알렌시아. 던전에서는 물도 함부로 마시면 안 돼.”

“하지만…….”

알렌시아가 주변을 바라보았다.

숲속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여러 식물들이 즐비한 장소였다.

거기다 물도 맑고 투명해서 바닥이 보일 정도였다.

그래서 알렌시아도 의심없이 물을 마신 것이다.

하지만 아시테르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만약 마수들이 이 물이 흐르는 곳에서 죽었다면 그 피가 물에 섞여 있을 수도 있어. 그러니까 목이 마르다면 다음 번에는 나한테 얘기해. 조금 더 안전하게 물을 줄 수 있으니까.”

아시테르가 주변에 보이는 식물 줄기 여러 개를 뜯었다.

그리곤 그곳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잎사귀에 모았다.

잎사귀에 금방 한 모금 정도 마실 수 있을 정도의 물이 모였다.

아시테르가 그것을 알렌시아에게 건넸다.

“여기.”

“고마워.”

그것을 받아든 알렌시아가 물을 마셨다.

아시테르도 자신의 것을 따로 만들어 목을 축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다시 걸음을 이었다.

“키야아아오오─!!”

종종 마수들이 튀어나와 그들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아시테르와 알렌시아는 마법으로 가볍게 놈들을 제압했다.

다행이 상위종 마수들은 없는 모양인지 상대하기 수월한 놈들 뿐이었다.

“진짜 다행이다. 이 정도라면 이 던전을 지키고 있는 마수도 생각보다 강하지 않을 지도 몰라.”

“던전을 지키고 있는 마수가 있어?”

“응. 이건 할아버지한테 들은 얘긴데. 던전을 유지하고 있는 마수들도 종종 있다고 했어. 뭐,, 운이 좋다면 그 마수를 만나기도 전에 게이트를 발견하고 밖으로 나갈 수도 있고.”

“다행이다… 던전에 평생 갇혀 있으면 어쩌나 했는데…….”

“걱정하지마. 무슨 일이 있어도 던전 밖으로 널 내보내 줄 테니까.”

아시테르가 자신만 믿으라는 듯 말했다.

알렌시아도 그런 아시테르의 뒤를 따랐다.

그 이후에도 종종 마수들이 튀어나와 두 사람을 공격했다.

그때마다 아시테르는 마법으로 마수들을 쓰러트렸다.

역시나 마수들을 상대할 때만큼은 피도 눈물도 없는 아시테르였다.

아시테르는 마수들이 혹시나 다시 일어서는 일이 없도록 확실하게 죽였다.

그때 알렌시아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알렌시아?!”

갑자기 주저앉는 그녀를 보며 아시테르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알렌시아가 숨을 거칠게 내쉬며 고통스러워하기 시작했다.

아시테르는 혹시나 알렌시아가 마수의 공격에 당한 건 아닐까 싶어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따로 상처를 입은 곳은 없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그때 아시테르의 시선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힘을 잃고 쓰러진 알렌시아의 입술이 점점 파랗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녀의 이마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 있었다.

아시테르가 손을 가져가 땀방울을 닦아 주었다.

몸이 지나치게 차가웠다.

알렌시아가 팔을 부르르 떨며 아시테르의 손을 붙잡았다.

“아시테르…….”

“언제부터 이랬던 거야?”

“아까 전부터.. 조금씩 추워지기 시작하더니…….”

고통에 알렌시아가 인상을 구겼다.

그녀의 팔목을 만져보던 아시테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버리고 말았다.

몸이 얼음장처럼 차가워지고 입술이 파랗게 물들어간다.

아시테르는 혹시나 싶어 알렌시아의 손끝을 확인했다.

손톱이 푸르스름하게 물들어가고 있는 것을 확인한 아시테르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최악이라고 해야 할지…

알렌시아는 마수에게 당한 것이 아니었다.

독에 중독된 것이다.

거기다 이 독은 아시테르도 잘 알고 있는 독이었다.

“프시케의 독에 중독되다니…….”

원인을 찾자면 역시나 얼마 전에 마셨던 물이었을게 틀림없다.

어머니인 아레나도 그렇게 독에 중독되었었으니까.

아시테르가 일단은 알렌시아를 업었다.

“조금만 참아 알렌시아……!”

당장 이 근처에서는 프시케의 독을 해독할 아시밀리온을 구할 수 없었다.

아시밀리온은 특유의 파란빛을 내뿜고 있기 때문에 멀리서도 확인할 수 있다.

더군다나 아시밀리온이 피는 곳엔 다른 것이 자라날 수 없기 때문에 비체는 그곳을 드레인 지대라 불렀다.

푸른 물결이 찰랑 거리는 드레인 지대.

아시테르도 멀리서만 바라봤을 뿐 실제로 그곳에는 들어가 본 적이 없었다.

“그나저나 여기서 어떻게 아시밀리온 꽃을 찾는단 말이야……?!”

손끝이 검게 죽기 전에 서둘러 찾아야 했다.

검게 물들기 시작하는 순간, 알렌시아의 오장육부에도 독이 퍼지고 있다는 뜻이 된다.

그렇게 되면 알렌시아의 몸이 점점 뻣뻣하게 굳어갈 것이다.

그러기 전에 서둘러야 했다.

마음이 초조해지고 급해진 아시테르가 발에 마력을 실었다.

그는 푸른 빛이 나오는 곳이 있을 때까지 던전 안을 질주했다.

마주치는 마수들이 있다면 화염으로 단숨에 태워 버렸다.

우두머리급 마수들이 아니라면 아시테르가 따로 애먹을 상대도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던전 안을 돌아다녔을까.

아시테르가 움직임을 멈췄다.

다행이 알렌시아의 중독 증세는 아직 괜찮은 정도였다.

손끝이 조금 더 푸르스름하게 물들긴 했지만 까맣게 죽어가는 부분은 없었다.

다만 얼음장처럼 차가워진 몸 때문에 그녀는 여전히 괴로운 숨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조금만 참아 알렌시아!”

자신이 드레인 지대로 가면 알렌시아를 지켜줄 수 없었기에 일단은 그녀를 안전한 장소에 두어야 했다.

마침 아시테르의 시선에 들어오는 곳이 있었다.

가파지른 경사 위로 작은 공간이 있다.

그곳으로 단번에 도약한 아시테르가 알렌시아를 뉘였다.

이어 주변의 식물들을 이용해 그녀가 편안하게 있을만한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알렌시아가 그런 아시테르의 손을 붙잡았다.

“아시테르…….”

“걱정하지마 알렌시아. 널 치료할 수 있는 꽃이 있는 곳을 찾아냈어.”

“정말……?”

“응. 그래서 지금 그것을 구하러 갈 거야.”

“나도, 같이 가… 혼자 있고 싶지 않아…….”

알렌시아의 말에 아시테르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럴 순 없어. 미안하지만 너는 이곳에 있어야 해.”

“……?”

알렌시아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아시테르가 미소를 보였다.

“위험한 곳에 아픈 너를 데려갈 순 없잖아.”

“위험하다고……?”

“던전의 마수들이 즐비할지도 몰라. 그러니 나 혼자만 다녀올게.”

“알았어…….”

이미 알렌시아는 트럼프들과의 전투에서 자신이 아시테르의 발목을 붙잡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또다시 아시테르에게 짐이 되긴 싫었다.

“나는… 여기에 있을게…….”

“고마워. 금방 다녀올게!”

아시테르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알렌시아도 그런 아시테르를 보며 미소를 보였다.

“조심히… 다녀와…….”

“응.”

아시테르가 이만 자리에서 일어나 시선을 돌렸다.

푸른 물결이 살랑살랑 비추는 곳.

저곳이 바로 드레인 지대라 불리는 아시밀리온 꽃밭이었다.

그리고 아시밀리온 꽃밭에는 늘 서식하는 마수들이 있다.

아시테르는 곧바로 몸을 날려 드레인 지대로 향했다.

아시밀리온의 독가루에 영향을 받지 않도록 알렌시아는 안전한 곳에 두었으니, 걱정 없을 터다.

그는 빠르게 드레인 지대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묘하게 빨려드는 자극적인 향이 코끝을 찔렀다.

“이게 아버지가 말한 그 독향인가……?”

아버지인 유미르도 과감한 선택을 했다.

자신도 언젠가 그런 상황이 온다면 똑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러나 정답은 역시 그 아비에 그 아들이라는 점이었다.

아시테르는 알렌시아를 살리기 위해 고민없이 드레인 지대를 찾았다.

“후우… 가 보자.”

역시나 드레인 지대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고블린처럼 생긴 마수들이 튀어나왔다.

아시테르가 불길을 일으켰다.

이 녀석들은 말하자면 파수꾼들.

아시테르의 불길이 빠르게 녀석들을 태웠다.

초입에 있는 아시밀리온 꽃들은 그 효능이 약하다.

이미 마수들이 이것들을 건드려놨기 때문.

특이한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인간들이 많듯이 마수들 중에서도 특이한 능력을 가진 녀석들이 많았다.

개중에는 마력을 빨아들인 아시밀리온 꽃을 먹고 강해지는 마수들도 있었다.

후우우우웅─!

몸을 일으킨 나무 형태의 마수들.

그것들을 보며 아시테르가 화염 기둥을 일으켰다.

단번에 불태워 버리기 위함이었다.

불이 옮겨 붙은 나무 형태의 마수들이 괴로운 울음을 토해 내었다.

“미안하다 빠르게 가져갈게.”

놈들이 고통스러워하는 동안 아시테르가 아시밀리온 꽃을 꺾었다.

그 순간 갑자기 아시테르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슈화아아아─!

날카로운 무언가가 그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황급히 몸을 피한 아시테르의 시선이 적을 쫓았다.

“아…….”

푸른 빛깔의 털.

그 사이사이로 보이는 칠흑빛 갈기.

여우를 닮아 있는 마수가 커다란 바위 위편에 앉았다.

녀석은 초승달 모양의 붉은 눈동자로 아시테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네가 이곳의 주인인 모양이구나.”

마수에게서 흘러나오는 마기가 심상치 않았다.

아무래도 오랫동안 이곳에 머물러 온 모양이었다.

“아우우우우우우우우──!!”

녀석이 포효하자 다른 마수들이 이곳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아시테르가 곤란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역시 우두머리급 마수였구나… 아니면 네가 이 던전의 주인인건가……?”

뭐가 어찌되었건 아시테르도 양보할 수 없는 상황.

아시테르가 마력을 끌어올려 커다란 오브를 만들어 내었다.

회전하는 불꽃이 하늘 위로 솟구쳐 올랐다.

“미안하다. 나도 급해서 말이야.”

아시테르가 만들어 내는 불꽃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덮쳐 오던 마수들이 불꽃비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다만 우두머리급 마수인 여우는 당황하지 않고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그 속도가 생각보다 상당히 빨랐다.

휘리리링─!!

녀석이 움직일 때마다 날카로운 바람이 흘러나와 공격했다.

이어 녀석이 입에서 뿜어 낸 마기가 아시테르를 노렸다.

콰아아앙!!!

불꽃으로 벽을 만들어 낸 아시테르가 마기를 막아 냈다.

몸 안에 있던 마력이 빠르게 소모되기 시작했다.

다른 곳보다 마소의 농도도 옅어 평소보다 마력이 더욱더 요구되고 있는 상황.

아시테르는 하는 수 없이 이 공간을 마력으로 지배하기 시작했다.

사방에 염화가 피어나고 불기둥이 솟구쳤다.

이곳을 초열지옥으로 만들어 버린 아시테르가 여우 마수부터 노렸다.

녀석은 요리조리 피하며 아시테르에게 반격을 가했다.

그러나 공간을 지배한 아시테르가 녀석을 놓칠 리 없었다.

“크와아아앙─!!”

녀석이 거칠게 포효했지만 불길은 이미 마수를 휘감고 있었다.

소용돌이치던 불꽃이 단숨에 녀석을 집어삼켜 버렸다.

다른 마수들도 마찬가지.

화마에 휩쓸린 녀석들은 시체도 남지 않고 태워져 버렸다.

한바탕 마법을 펼친 아시테르가 기진맥진한 모습으로 무릎에 손을 짚었다.

아직 회복도 덜 된 상태에서 초위급 마법을 연달아 펼치니 천하의 아시테르라도 지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다행이 그의 손에는 이미 아시밀리온 꽃이 들려 있었다.

“돌아가자…….”

독가루를 잔뜩 들이마신 아시테르도 서서히 느낄 수 있었다.

그의 몸엔, 더 이상 마력이 쌓이질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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