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1화 아레나와 아그리나
아레나는 프로메테 가문을 떠나 곧장 사우스 왕국 국경 부근으로 향했다.
제 9기사단을 돕기 위해 나선 기사단과 병력들도 그곳에 있었다.
“아레나님……?!”
“아레나님!!”
“저분은…….”
그녀를 알아본 몇몇 마법기사들이 달려 나왔다.
그들을 이끌고 있던 아그리나 단장도 아레나를 발견했다.
“네가 여기는 무슨 일로? 다시 일선에 복귀하기로 마음먹은 거냐?”
“아니. 아주 중요한 일이 있어서 왔을 뿐이야.”
“네게 중요한 일?”
“지금 쫓기고 있는 제 9기사단에 우리 아들이 있어.”
“네 아들이면… 아시테르 단장이 거기에 있었다는 말이냐? 그런데 왜 아시테르 단장이 그들과 함께 있지?”
“9기사단과 아주 절친한 사이였으니까. 거기다 마르체니 공주님과도 각별한 사이였다고 들었어.”
“하여간 아주 바쁜 놈이로군…….”
아그리나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곧바로 다른 수하들을 불러들였다.
그들은 곧바로 사우스 왕국 국경을 넘을 준비를 했다.
“같이 가지.”
“그래도 괜찮겠어?”
“동료들이 위험에 빠졌고 거기에 내 친구의 아들도 있다. 몸을 사릴 이유가 없지.”
“고맙네. 여전하구나 너는.”
“너 또한.”
아레나와 아그리나가 두 눈을 마주쳤다.
라이벌이면서도 동시에 친구 관계를 유지했던 두 사람이었다.
함께 성장하고 함께 나아간 만큼 두 사람의 유대는 각별했다.
“이번에 9기사단을 구하고 나면 다시 돌아가는 거냐?”
“아마 그렇지 않을까? 남편이 기다려서.”
“남편이라면, 유미르겠지?”
“……?”
“뭘 그리 놀라는 표정을 짓는 거냐. 당연한 얘기인데.”
“어째서?”
“아시테르가 너를 닮기도 했지만 유미르의 얼굴도 빼다 박았어.”
“그랬구나…….”
아레나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행복한 미소를 짓는 그녀를 보며 아그리나도 미소를 보였다. “보기 좋네.”
“응? 뭐가?”
“너 말이야. 예전에는 누가 만들어 놓은 인형처럼 매일같이 똑같은 표정만 짓고 있었거든. 그래서 좀 재수가 없었다.”
“그러는 뭐 너는 재수가 있었는 줄 알아? 세상 모든 사람들한테 까칠하게 대하는데 내가 그거 보기가 싫어서…….”
“해보자는 거냐?”
“미리 말해 두지만 네가 먼저 시비 걸었다.”
자연스럽게 대화가 오가는 두 사람을 보며 다른 마법기사단원들이 신기하다는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평소 말 수가 적은 아그리나 단장이 저렇게 말을 많이 하는 것도 좀처럼 보기 드믄 광경이었다.
거기다 상대는 전대 홍련의 마법기사단 단장.
홍련의 마법기사단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인물이었다.
두 사람이 함께 서 있는 것만으로도 이질적인 광경이었는데 저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아무튼 그때와 달리 네가 좀더 사람다운 표정을 지을 수 있게 되어서 좋아 보인다는 말이었다.”
“뭐야, 그런 거였어?”
“너는 날 대체 어떻게 보는 거냐.”
“친구로 보지.”
“웃기는 소리 하는군. 네가 돌아왔다고 해서 나는 널 보러 찾아가지도 않았잖아.”
“부끄러워서 그런 거잖아? 다 알아 네 마음.”
“뭐……?!”
아그리나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아레나를 바라보았다.
아레나는 능글맞게 웃으며 그녀의 시선을 받아내고 있었다.
“쳇… 부부는 닮아 간다더니… 유미르랑 똑같이 웃는구나.”
“어머? 그건 진짜 제대로 된 칭찬인데.”
“그나저나… 네 아들은 어떻게 하고 싶다는 거냐?”
“우리 아들? 아시테르가 왜?”
“돌풍의 주역이 된 지금, 프로메테 가문으로 돌아가려는 움직임은 따로 보이는 것 같질 않아서. 지금 프로메테 가문의 상황이 좋은 것도 아니니.. 아시테르가 돌아간다면 분명 큰 힘이 될 것 같은데. 너도 일선에 나서지 않고 다시 돌아갈 거잖나.”
“우리 아들이 나름대로 알아서 잘 하겠지. 이제 다 큰 성인인걸.”
“체르도네 가문의 아이와 연인 사이인 것도 알고 있나?”
“그럼그럼. 누굴 닮아서 그런지 연애도 잘해.”
아레나가 환하게 웃었다.
아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자연스레 미소가 흘러나온다.
그것을 본 아그리나도 순간 많은 생각이 들었다.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아레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사랑을 택한 그녀였다.
과연 어느 누가 이런 선택을 과감하게 택할 수 있을까.
심지어 자신도 그것 앞에서는 망설여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아무리 사랑이 좋다고 해도 갖고 있는 모든 것을 버리고 몸을 내던질 정도는 아니었다.
그랬기 때문에 유미르를 남몰래 흠모하고 있었음에도 아그리나는 함부로 자신의 마음을 내비추지 않았다.
귀족인 자신과 유미르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이는 차후 유미르가 마법기사단의 단장이 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레나보다 훨씬 더 먼저 유미르라는 사람을 알고 그를 좋아했음에도, 아그리나는 많은 것들을 이유로 그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그러다 아레나가 그와 함께 죽음을 맞이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은근한 부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죽어서라도 함께 할 수 있다면…….
그런 생각이 자신도 모르게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레나와 유미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안 지금은 그저 아레나가 대단하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그녀는 ‘프로메테’라는 거대한 가문을 등지고 신분과 지위마저 버렸다.
세상 속에서 모습을 감추고 유미르와의 사랑만을 택한 것이다.
다시 생각해 봐도 자신은 절대 그런 선택을 할 수 없었다.
결국 아그리나가 생각했을 때 아레나의 지금 저 웃음은 그때의 선택에 대한 보답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감히 질투하거나 부러워할 수 없었다.
그저 아레나의 선택을 존중하고 그녀의 행복을 바랄 뿐이었다.
“무조건 구한다.”
“뭐?”
“9기사단과 아시테르 말이다.”
“당연하지. 그래도 뭐 크게 걱정은 없어. 내 아들이라 하는 말은 아니고, 워낙 총명한데다 뛰어난 아이니까.”
“후후 그건 유미르를 닮은 거겠지.”
“뭐… 라고……?!”
아레나가 일부러 눈을 흘기며 말했다.
겉으로 보기에 두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평소처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주변에 있는 이들은 느낄 수 있었다.
두 사람 모두 평소와 같지 않게 긴장한 기색이 비춰지고 있었다.
“들었나?”
“응. 들었어. 제 9기사단을 잡기 위해 트럼프가 투입되었다며?”
“무려 4개의 군대다. 트럼프 모두가 쫓고 있어. 테르세우스님이 계셨더라도 힘든 상황이다.”
“그래도 난 우리 아들을 믿어.”
“그래. 그럼 슬슬 가볼까.”
아그리나와 아레나를 필두로 기사들이 움직였다.
그들은 아시테르와 제 9기사단이 올 수 있는 경로들을 위주로 움직였다.
중간 중간 다른 마법기사들이 합류하며 그 범위를 넓혀 갔다.
트럼프 군대와 마주치더라도 싸워 이기겠다는 마음들이었다.
그렇게 수색을 이어가는 도중 아레나와 아그리나 앞으로 사우스 왕국군이 나타났다.
“이스트 왕국의 마법기사단이 이곳까지는 무슨 일입니까? 이곳은 이스트 왕국의 영역이 아닙니다만.”
“아직 돌아오지 않은 가족들이 있어서요.”
“돌아오지 않은 가족들을 왜 우리 왕국의 영토에서 찾는단 말입니까?”
사우스 왕국군을 이끌고 있던 기사단장 비르시우스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는 자신과 대화하고 있는 여인의 뒤편을 바라보았다.
로브에 그려져 있는 들장미 문양.
대놓고 자신들의 소속을 밝히고 있었다.
“이스트 왕국의 들장미 마법기사단…….”
지금 들장미 마법기사단을 이끌고 있는 사람이라면 단 한 명 밖에 없다.
“그렇다면 당신이 아그리나 단장님이시겠군요.”
비르시우스가 아레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자 아레나가 피식 웃으며 옆을 가리켰다.
“미안하지만 잘못 짚었어요. 제가 아니라 이쪽입니다.”
“흥. 눈깔이 사시인가보구만.”
“아, 실례했습니다. 어쨌든 더 이상 이곳을 돌아다니지 마시고 돌아가 주셨으면 합니다. 이곳은 염연히 사우스 왕국의 영토입니다.”
“너희들이야 말로 시치미를 뚝 떼는 구나.”
“예……?”
비르시우스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쳐다보았다.
그러자 아그리나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비밀로 해도 트럼프 군대 모두가 움직이고 있었다.
4개의 군단이 움직이는데 저들이 모를 수가 있을까.
하물며 그 정보는 이스트 왕국에까지 건너왔다.
“가증스럽구나. 모른 척을 하고자 하는 거냐? 나는 이래서 사우스 왕국놈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앞에서는 웃으며 친한 척 친절한 척 다 하지. 그런데 뒤돌아서면 그게 또 아니란 말이지.”
아그리나가 손짓했다.
그러자 뒤편의 단원들이 곧바로 마법을 준비했다.
그들의 모습에 당황한 비르시우스가 두 손을 흔들며 말했다.
“이게 무슨 행동입니까?! 사우스 왕국과 이스트 왕국은 서로 화친을 맺었습니다! 지금 이 행동은 그 화친을 깨는 행동이란 말입니다.”
“미친 소리도 작작 하거라. 너희들의 우리 기사단 목숨을 노리는 것은 그럼 화친 속에 있는 내용이란 말이더냐?”
“예…? 아니 이게 대체 무슨…….”
비르시우스의 반응에 아레나가 아그리나를 말렸다.
그녀를 본 아그리나가 인상을 찌푸렸다. “뭐 하자는 거야?”
“이 사람은 정말 모르고 있는 것 같아서.”
“그럼 죽어야지. 무지한 죄로.”
“아그리나.”
“쯧. 너는 예전부터 그랬어. 너무 무르단 말이지.”
아그리나가 결국 손을 거두었다.
그러자 단원들도 마법 개스팅을 멈췄다.
그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비르시우스가 조심스레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까……?”
“그걸 왜 적국인 우리들한테 묻는 거냐? 네가 직접 알아 봐라. 그리고 너희들은 오늘 내 친구 덕분에 목숨을 건진 줄 알아라.”
아그리나가 짜증스럽게 말하고 곧바로 움직였다.
들장미 마법기사단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무슨 일인지 몰라 비르시우스도 함부로 그들을 막아설 수 없었다.
자신이 이끌고 있는 기사단으로 들장미 마법기사단을 상대한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잠깐 시간을 버는 것 정도는 할 수 있겠지만 그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비르시우스님 대체 무슨 일일까요……?”
“아무래도 우리 왕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모양이다.”
“흐음… 진짜 바람 잘 날이 없군요…….”
“일단은 보고부터 해라. 들장미 마법기사단이 우리 왕국 영토 내부로 들어왔다고.”
“알겠습니다.”
비르시우스의 빠른 보고 덕분에 들장미 마법기사단이 사우스 왕국 영토로 들어왔다는 정보가 빠르게 퍼졌다.
뿐만 아니라 다른 마법기사단도 속속들이 사우스 왕국 국경에 도착했다는 소식도 알려지고 있었다.
“대처가 빠르군.”
클로버 군대의 대장 네이트워가 지도를 살피고 있었다.
저들이 제 9기사단을 데려가기 전에 지금 이 상황부터 마무리 지어야 했다.
그때 그가 있는 곳으로 누군가 들어왔다.
“네이트워님. 보고 드릴 것이 있습니다.”
“뭐지? 말해라.”
“제 9기사단이 전멸했다고 합니다.”
“놈들이? 누가 그들을 잡은 거지? 제이스쿠스님인가? 아니면 롤스로체카님?”
“섬광 마법기사단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합니다.”
“섬광 마법기사단에게!? 쯧… 차라리 우리들의 손에 죽었으면 더 나았을 것을… 더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구나..”
네이트워가 혀를 차며 말했다.
제 9기사단의 저력은 솔직히 네이트워마저도 놀라게 만들었다.
한낱 호위 기사단쯤 되는 줄 알았더니, 그들을 잡는데 상당한 애를 먹고 말았다.
그래서 내심 그들을 향한 존중하는 마음이 피어오르고 있는 시점이었다.
“적들의 수급은?”
“섬광 마법기사단이 증명을 위해 가져왔습니다.”
“흐음… 일단은 소란스런 분위기를 잠재울 필요가 있으니 제 9기사단 모두가 전멸했다고 알려라.”
“모두라 하시면…….”
“아직 못 잡은 두 사람까지도 포함해. 어차피 놈들은 우리들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다.”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