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에서 왔습니다만-284화 (284/424)

284화 헤리퍼 vs 아레나

아레나와 헤리퍼가 본격적으로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푸른 불길이 언데드들을 끊임없이 태웠다.

그 사이 다른 언데드들이 들장미 마법기사단도 노렸다.

“방어해라.”

아그리나의 명령에 들장미 마법기사단이 수비 진형을 갖췄다.

언데드 군단의 가장 무서운 점은 많은 숫자가 아니었다.

술자가 살아있는 한 놈들은 계속해서 덮쳐온다.

거기다 이쪽에 시체들이 많다면 그것은 더더욱 네크로맨서에게만 좋은 일이었다.

그러니 이들이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될 일은 아레나에게 짐을 만들어주지 않는 것이었다.

“단 한 명도 당해선 안된다. 우리들이 당해 버린다면 곧바로 엘더리치로 소환 될지 모른다.”

“네!!”

“알겠습니다!!”

들장미 마법기사단이 한데 뭉쳐 다가드는 언데드들을 막았다.

개중에는 상위종 언데드인 데스나이트도 있었다.

살아생전 검술의 경지에 다다른 이들이 죽었을 때, 네크로맨서와 계약을 맺게 되면 데스나이트가 태어난다.

그런데 헤리퍼는 상당히 많은 수의 데스나이트를 보유하고 있었다.

아마 국가적 차원에서 헤리퍼를 도와준 모양이었다.

다른 녀석들과 다르게 데스나이트는 기사의 몸을 매개로 하기 때문에 마력으로도 복구가 불가능한 몸이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다른 언데드들보다는 훨씬 더 강력한 힘을 지닌다.

몇몇은 인간이었을 때의 검술을 몸이 기억하고 있어, 데스나이트가 되어서도 그 검술을 비슷하게 펼치기도 한다.

어쨌든 데스나이트가 마도사들에게 상대하기 껄끄러운 존재임엔 틀림없었다.

“그러니 숫자를 줄여 줘야겠지.”

아레나는 무려 본 드래곤을 상대로 호각을 보이고 있었다.

헤리퍼가 대체 어떻게 어떤 경로로 본 드래곤을 가질 수 있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존재가 굉장히 위협이 되고 있는 것은 틀림없었다.

“전쟁에서 본 드래곤이 나타났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어. 사우스 왕국… 힘을 숨기고 있었나……?”

그것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네크로맨서의 존재만으로도 이미 각 왕국에게서 규탄을 받을지 모르는데 마물로 취급받는 본 드래곤까지 보유하고 있다니…….

그런 자가 대놓고 자신을 트럼프의 일원이라 말하고 있었다.

“히든 카드는 무슨… 사우스 왕국이 그 존재를 감추려 한 것이겠지.”

어쩌면 사우스 왕국 내부에서 드러운 일들을 도맡아 처리하는 인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

“어쨋든 여기서 저 자를 죽이면 사우스 왕국도 큰 전력을 잃는 셈이다.”

아그리나가 눈빛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 아레나는 무려 본 드래곤을 상대로 접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녀의 불길이 본 드래곤이 내뿜어대는 방대한 마기를 막아섰다.

이를 본 헤리퍼가 광소했다.

“어림없다! 본 드래곤은 내가 보유하고 있는 최강의 언데드다! 인간이 막아설 수 있는 존재가 아니야!!”

헤리퍼가 마력을 끌어올려 본 드래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녀석이 크게 울음을 터트리며 아레나에게 돌진했다.

뼈밖에 없는 몸이었지만, 그 존재감은 결코 가볍지 않은 놈이었다.

녀석이 발산하는 마기는 주변 언데드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키야아아아아아──!!!

날카로운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본 드래곤에게서 뿜어져 나온 브레스가 아레나를 덮쳤다.

아레나가 당했다고 생각한 순간 푸른 불기둥이 이곳저곳에서 몸을 일으켰다.

뿐만 아니라 푸른 원반이 빠르게 회전하며 본 드래곤을 무차별로 공격했다.

콰과강!!!

콰아아아아앙──!!

본 드래곤의 몸이 원반에 맞을 때마다 흔들렸다.

아레나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푸른 화염구를 만들어 내었다.

허공에 떠오른 수십 개의 화염구가 한꺼번에 쏟아지며 본 드래곤을 공격했다.

“호오…….”

그녀의 마법을 보며 헤리퍼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단언컨대 지금까지 자신이 상대해 본 마도사들 중 이렇게나 언데드 군단을 압도한 마도사는 없었다.

아레나는 홀로 서서 자신의 주변을 푸른 물결로 만들어 버리고 있었다.

보기에는 아름다워 보일지 모르나, 역설적으로 그 푸른 물결의 한 가운데에 있는 언데드들은 몸이 불살라지는 중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런 전투를 이어갈 수 있을지 두고 보자꾸나.”

헤리퍼가 지팡이를 크게 흔들었다.

그러자 쓰러졌던 언데드들이 다시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네크로맨서와의 전투에서 늘상 있는 일이었다.

아레나가 본 드래곤을 올려다보았다.

부서지고 상처가 나있던 뼈가 회복이 되었다.

“본 드래곤도 회복이 가능한 건가…….”

근데 뭔가 이상하다.

데스나이트는 네크로맨서의 마력으로 회복이 불가능하다.

이는 기사의 몸을 매개채로 하기 때문.

그건 본 드래곤도 마찬가지였다.

드래곤의 시체가 있지 않으면 본 드래곤을 소환할 수 없다.

그리고 그렇게 시체를 매개채로 삼았다면 마력으로 저렇게 말끔히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반쪽짜리라는 얘기로군…….”

하기사 정말로 본 드래곤이었다면 겨우 이 정도 위력에 그치진 않았을 것이다.

놈의 정체를 파악한 순간 아레나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녀가 본격적으로 마력을 쏟아 붓기 시작하자 주변 일대로 불꽃이 피어올랐다.

푸른 불길을 온 몸에 휘감은 새가 하늘 높이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이를 지켜보던 본 드래곤이 위협적인 울음을 토해 냈다.

불꽃을 휘감은 새가 본 드래곤을 응시했다.

“이제부터는 각오하는 게 좋을 거예요.”

푸른 불꽃의 새가 힘찬 날갯짓과 함께 움직였다.

녀석이 노리는 것은 당연히 본 드래곤이었다.

자신보다 족히 네 배는 더 커다란 본 드래곤이었지만, 불꽃의 새는 용맹하게 녀석을 향해 돌진했다.

녀석이 날개짓을 할 때마다 불씨가 펄럭였다.

키야아아아아아아아───!!!

분노한 본 드래곤이 불꽃의 새를 향해 브레스를 뿜어대었다.

불꽃의 새는 가벼운 날갯짓으로 바람을 타며 브레스를 가볍게 피해 냈다.

뒤이어 녀석의 날개에서 뻗어 나온 불길이 본 드래곤을 공격했다.

이어 날카로운 발톱으로 본 드래곤의 등뼈를 찍어 눌렀다.

불꽃새의 공격은 굉장히 빠르고 날카로웠다.

반면 본 드래곤은 하나하나 반응하기에 그 속도가 너무도 느렸다.

“뭣하고 있는 거냐!? 겨우 저깟 것 하나 처리하지 못하고!!”

헤리퍼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외쳤다.

본 드래곤이 저 불꽃새에게 발목이 잡히는 동안 다른 언데드들은 들장미 마법기사단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었다.

들장미 마법기사단이 이스트 왕국에서 예전부터 유명했던 만큼, 그 실력이 예사롭지 않을 거란 생각은 했지만 언데드 군단이 이렇게나 쉽게 당해 버릴 줄은 몰랐다.

“특히나 저 여자가 문제로군…….”

눈앞에 있는 아레나만큼은 아니었지만 아그리나 역시도 상당히 거슬리는 실력자였다.

그녀가 펼치는 초위급 마법들 때문에 데스나이트들도 심각한 부상을 입고 있었다.

본래 전투를 오래 끌면 오래 끌수록 네크로맨서가 유리한 법인데 지금은 이상하게도 전세가 불리하게 흘러가는 느낌이었다.

‘이게 다 저 여자 때문인지도 모른다……!’

비장의 무기라 말할 수 있는 본 드래곤을 상대로 저런 싸움을 펼칠 줄은 몰랐다.

거기다 푸른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번져나가 다른 언데드들까지 공격하니, 어찌 보면 네크로맨서인 자신과는 상성이 최악인 것만 같아 보였다.

“계속해서 옮겨 붙는 불이라니… 믿을 수가 없구나…….”

이스트 왕국에 이 정도 실력의 마도사가 있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

거기다 여인이 쓰는 마법은 푸른 불꽃.

단 한 번이라도 전장에 모습을 드러냈었더라면 소문이 안날 수가 없다.

헌데 어떻게 저 여인에 대한 정보가 없단 말인가……!

“너는 누구냐.”

불꽃의 새와 본 드래곤이 하늘에서 경합을 벌이고 있는 동안 눈앞에 서 있는 아레나에게 물었다.

그러자 아레나가 답했다.

“아시테르의 엄마.”

“뭐……?”

“자식을 되찾으러 온 엄마일 뿐입니다. 저는.”

아레나의 눈빛을 본 헤리퍼가 혀를 찼다.

저런 눈을 갖고 있는 자들은 위험하다.

이는 본능적으로 깨달은 사실이었다.

헤리퍼와는 아예 다른 종자.

그가 차분히 전장을 살폈다.

가히 일인군단이라 불릴 수 있는 자신이 지금 이 순간 밀려나고 있었다.

“하지만 나 또한 허투루 이 자리까지 올라온 것이 아니다.”

헤리퍼가 흑마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언데드들을 강화하고 적들에게는 저주를 걸 수 있는 사악한 마법이었다.

하지만 이를 가만히 두고 볼 아레나가 아니었다.

그녀가 일으킨 불길이 창처럼 뻗어나가 헤리퍼를 노렸다.

쿠웅─!!!

두 마리의 데스나이트가 방패를 들고 아레나의 마법을 막았다.

그때 헤리퍼의 위로 날아오른 불꽃새가 푸른 불길을 내뿜었다.

“허어…….”

불길에 구울들이 힘없이 녹아내렸다.

하급종 언데드라도 한꺼번에 이렇게나 많은 수가 사라져 버리면 복구하는데 상당한 양의 마력을 소모하게 된다.

헤리퍼가 고개를 들어올렸다.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불꽃새.

단순한 마법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마치 이지를 갖고 움직이는 것처럼 보일 정도.

“대체 뭐냐 저 마법은…….”

그가 중얼거리는 동안 불꽃새가 한 번 더 날개를 활짝 폈다.

그러자 녀석을 중심으로 불꽃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저놈을 막아라!!!”

헤리퍼의 명령에 본 드래곤이 움직였다.

거대한 몸이 날아올라 불꽃새에게 돌격했다.

마기를 잔뜩 두른 본 드래곤을 보고도 불꽃새는 전혀 위축됨이 없었다.

오히려 더더욱 기세를 끌어올린 불꽃새가 날개를 좁히며 돌진했다.

화르르르릉──!!

불꽃새가 회전하자 푸른 불꽃이 함께 나선 모양으로 회전했다.

“허어…….”

아름답게 펼쳐지는 불꽃을 보며 헤리퍼가 순간 헛바람을 집어삼키고 말았다.

그때 불어닥치는 불꽃의 폭풍은 단숨에 언데드 군단을 휩쓸어 버렸다.

“네크로맨서와 싸울 때는…….”

아레나의 시선이 헤리퍼에게 닿아있었다.

수천, 수만의 군세가 있더라도 상관없다.

언데드 군단은 네크로맨서가 없으면 유지될 수 없다.

그러니 네크로맨서만 먼저 노리면 된다.

불꽃 기둥이 헤리퍼의 주변에서 솟구쳐 올랐다.

덕분에 그를 보호하던 언데드들도 덩달아 모습을 감췄다.

“이런……!”

다급해진 헤리퍼가 뼈로 된 방패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이미 본 드래곤을 관통하고 나온 불꽃새가 헤리퍼의 눈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녀석은 마치 막아 볼 테면 막아보라는 듯 무서운 속도로 돌진했다.

“가암히이이이!!!”

두 눈이 붉게 충혈된 헤리퍼가 최대한의 마법으로 공격에 대비했다.

여기서 저 공격을 막는다면 다시 자신에게도 반격의 기회가 찾아온다.

그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정면으로 받아쳐 보려 한 것이다.

그러나 뛰어난 방어력을 자랑하는 본 드래곤도 불꽃새와 아레나의 공격은 막아 내지 못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헤리퍼가 급조해서 만들어 낸 방어 마법 따위가 아레나와 불꽃새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 리 없었다.

“끄아아아아아아──!!”

불꽃에 휩싸인 헤리퍼가 고통스런 비명을 토해 냈다.

다른 언데드들이 그를 구해 주려 해도 소용없었다.

불꽃새가 허공에 떠오르며 불타오르는 헤리퍼를 내려다보았다.

“이럴 순… 이럴 순 없다아아아!!!”

사우스 왕국의 트럼프 중 조커라 불렸던 헤리퍼.

왕국에서 꽤나 많은 투자를 해줬던 인물의 죽음 치고는 굉장히 허무한 죽음이었다.

헤리퍼가 숨을 거두자 언데드 군단도 자연스레 흙으로 돌아갔다.

본 드래곤 역시도 날갯짓을 멈추고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안에 있던 시체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와이번……?”

한때는 드래곤의 아종이라 불렸던 마수였다.

이를 본 아그리나도 굳은 얼굴로 말했다.

“와이번으로 어떻게 본 드래곤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