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에서 왔습니다만-286화 (286/424)

286화 아레나의 분노 (2)

“그렇게 가볍게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인데. 그건.”

“후후후 네 눈엔 내가 가볍게 하는 말 같은가?”

제이스쿠스도 함께 마력을 끌어올렸다.

두 사람의 마력이 공간을 장악하려 들자, 곁에 있는 이들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마소가 짙어지고 공기가 점차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녀를 바라보던 제이스쿠스가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그때보다 더더욱 강해져 있구나 너는!”

제이스쿠스는 진심으로 놀라고 있었다.

아시테르를 상대할 때와는 다르다.

아레나는 아시테르보다 훨씬 더 짙은 마력을 내뿜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레나와 마주서기만 했을 뿐인데 모든 신경이 곤두 서는 느낌이었다.

그만큼 아레나는 제이스쿠스를 긴장시키고 있었다.

“이거야 원… 테르세우스 그 작자를 마주하고 있는 것 같구만…….”

지난 전쟁 때 보았던 테르세우스.

그의 존재는 그야말로 제이스쿠스에겐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를 바라보고 있으면 망망대해에 혼자 남겨진 기분이랄까.

자신이 무엇을 한들 넓디넓은 그 공간 안에서 홀로 허우적대는 꼴일 뿐.

한데 지금 아레나를 보고 있으니, 거세게 타오르는 불길 앞에 홀로 선 기분이었다.

그 불길이 너무도 거세 과연 막아 낼 수 있을까.

그 생각부터 머릿속에 차오른다.

‘내가 이런 생각까지 하게 만들 정도라니…….’

과거 보았던 아레나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그녀를 보며 제이스쿠스가 물었다.

“네가 살아 있다면… 역시 유미르도 살아 있는 것인가?”

“그 사람은 더 이상 이쪽 일에 관여하지 않아요.”

“뭐라?”

“그보다는 더욱 큰일을 하는 사람이에요.”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군. 그럼 지금 우리들이 하는 일이 시시하기라도 하다는 말인가?”

“글쎄요. 그건 사람마다 그 가치를 두는 것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적어도 제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 군요. 아직까지도 그런 미련을 버리지 못하다니.”

“흘려들을 수 없는 말이로군.”

“저 여자의 말에 말려들지 마라 제이스쿠스.”

롤스로체카가 발끈하려는 제이스쿠스를 말렸다.

아레나의 시선이 롤스로체카에게 향했다.

“제 아들은 어디에 있죠?”

“죽었다.”

“거짓말치지 말아요.”

“이쯤 되면 우리들의 말을 안 믿으려는 것 같군.”

“당신들이 제 아들을 죽였다고요?”

“그래. 적이지만 존경할만한 사내였다.”

롤스로체카가 아시테르의 얼굴을 떠올리며 말했다.

아레나의 다리가 살짝 풀렸다.

아직 아시테르의 시체를 확인한 것이 아니었으니 단정지어선 안 된다.

그때 롤스로체카가 다시 입을 열었다.

“두 사람은 던전으로 도망쳤고 나는 끝까지 쫓았다. 그 과정에서 알렌시아가 독에 중독되었고 아시테르는 해독초를 구하기 위해 푸른 꽃밭에 들어갔었다.”

롤스로체카는 자신들이 그랬던 것을 감추고 알렌시아를 대신해서 끌어들였다.

미리 생각해 두었던 거짓말이었지만 사실 이것은 정말로 벌어졌던 일이었다.

다만, 롤스로체카가 그것을 직접 보지 못했을 뿐이다.

아레나가 두 눈을 부릅떴다.

던전에 있는 푸른 꽃밭.

그것은 아시말리온 꽃이 피는 지대 밖에 없다.

“그 말은…….”

“마력을 모두 잃은 그자가 무얼 할 수 있었겠나.”

롤스로체카의 말에 아레나의 억장이 무너지고 있었다.

그녀는 프시케의 독과 아시말리온 꽃에 대해 알고 있다.

조금만 침착하게 생각했더라면 여기서부터 이상함을 느꼈어야 했지만, 아레나는 이미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저 ‘아들의 죽음’이라는 단어가 계속해서 머릿속에 맴돌 뿐이었다.

침착? 이성적 사고?

그런 것 따윈 불가능했다.

사실 아레나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점점 차오르는 불안감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아무리 아시테르가 강한 힘을 지녔다곤 해도 사우스 왕국 전체를 상대하기란 어림도 없는 얘기였다.

다만 도망치고 빠져나가는 것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허나 역시나 그 아빠에 그 아들이었다.

아시테르는 홀로 빠져나오지 않고 모든 사람들을 챙겼다.

만약 아시테르가 저 혼자만 살자고 도망쳐 나왔다면, 그런 모습에 아레나도 실망했을지 모른다.

“우리 아들… 역시 우리 아들…….”

마지막엔 사랑하는 여인을 지키기 위해 아시말리온 꽃밭에 들어가는 선택을 했다.

자연스레 유미르의 모습이 떠올랐다.

“여보. 미안해요…….”

아시테르를 죽인 자들이 바로 눈앞에 있다.

제이스쿠스와 롤스로체카 모두 아시테르를 죽이기 위해 달려들었던 인물들이었다.

거기다 롤스로체카는 지금 자신이 아시테르를 죽였다 말하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여자만큼은 살려 달라고 말하더군.”

“그래서… 알렌시아는 살렸나요.”

“도망친 그 여자를 쫓는 중이다.”

롤스로체카의 말에 아레나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때 롤스로체카가 아레나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말을 남겼다.

“네 아들은 내가 친히 죽이고 마수들의 먹잇감으로 던져 주었다.”

아레나를 도발하기 위한 말이었다.

그리고 그 도발은 너무나도 잘 먹혀들고 말았다.

그녀의 분노서린 두 눈동자가 그들을 바라보았다.

“과거부터 이어진 질긴 악연을… 오늘 끝내보죠.”

아레나의 두 눈에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아시테르가 죽었다고 생각하니 무거운 무언가가 심장을 짓누르고 있는 기분이었다.

화르르르르릉──!!!

그녀의 불꽃이 주변을 일대로 퍼졌다.

그것을 본 아그리나가 놀라 소리쳤다.

“아레나!! 멈춰!! 지금은 물러나야 할…….”

파콰과과광!!!!

빗발친 불꽃들이 하나둘 대지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불꽃이 유성우가 되어 떨어져 내리는 광경이었다.

그 어마무시한 마법에 지켜보던 모두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저게 무슨 마법이냐……?!”

“인간이 아니라 마녀일지도 모르겠어…….”

“마녀? 마녀도 저런 마법은…….”

온 세상이 불길로 뒤덮이고 있었다.

그 속에서 제이스쿠스와 롤스로체카가 본인들의 마법을 펼쳤다.

거대한 철검과 철창이 허공에 떠올랐다.

이어 롤스로체카가 만들어낸 안개가 사방으로 퍼졌다.

들장미 마법기사단이 이를 지켜보다 아그리나에게 물었다.

“단장님!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제기랄…. 아레나가 완전히 이성을 잃었다.”

아레나의 안광이 한 차례 폭사했다.

헤리퍼와 싸울 때 모습을 드러내었던 불꽃새가 다시 허공에 떠올랐다.

불꽃새가 이번에는 아까와 다르게 구슬픈 울음을 터트렸다.

녀석을 보며 제이스쿠스가 미소를 보였다.

“재밌구나 재밌어!!! 어디 한번 최선을 다해 부딪혀 보자고!!”

“제기랄. 어느 것 하나 쉬운 상대가 없다는 게 말이 되나.”

롤스로체카가 뒤편의 들장미 마법기사단을 바라보았다.

뒤편의 수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너희들은 들장미 마법기사단을 상대해라. 나와 제이스쿠스는 아레나를 맡겠다.”

“알겠습니다.”

롤스로체카의 직속 수하들이 몸을 움직였다.

연이어 뒤늦게 도착한 스페이드 군대가 전장에 합류했다.

속속들이 도착하는 적군을 보며 아그리나가 앞으로 나섰다.

“내 친구의 전투를 방해하게 둘 수는 없다.”

이성을 잃고 날뛰는 아레나의 모습이 걱정되긴 했지만, 그녀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아그리나 본인은 자식이 없지만, 자식 잃은 부모들이 어떤 표정을 짓고 살아가는지 늘 곁에서 지켜봐 왔다.

거기다 아그리나 입장으로서도 가장 친한 친구의 자식을 잃었다.

아시테르는 심지어 이스트 왕국에 수많은 기여를 한 인물이었다.

그런 아시테르를 사우스 왕국의 손에 잃었다고 생각하니 아그리나도 스멀스멀 분노가 차오르는 중이었다.

“개같은 놈들…….”

아그리나가 이를 악물고 마법을 펼쳤다.

콰르르르릉──!!!

대지를 뚫고 흑목(黑木)이 솟구쳤다.

아그리나의 손짓에 따라 나무가 움직이며 적들을 공격했다.

“나의 부름에 응하라.”

이어 아그리나가 마법진을 그리니 흙바닥에서 무언가가 몸을 일으켰다.

쿠오오오오──!!

고대 숲의 정령이라 알려진 엔트가 괴성을 질러댔다.

평소에는 조용하게 숲을 조율하는 녀석들이었지만, 숲을 파괴하거나 헤치려는 자들이 있다면 무서울 정도로 공격적으로 변하는 정령이었다.

엔트가 내뻗는 손이 적들을 쓸어 담았다.

나무뿌리가 솟구쳐 오르며 다가오는 병사들의 몸을 꿰뚫었다.

들장미 마법기사단도 본격적으로 전투를 치르기 시작했다.

그동안 아레나는 제이스쿠스와 롤스로체카를 상대로 전혀 뒤처지지 않는 전투를 보여 주고 있었다.

그녀의 불꽃을 상대하며 천하의 제이스쿠스도 욕지거리를 내뱉을 정도였다.

“대체 무슨 짓을 하면 이렇게까지 강해질 수 있는 거냐.”

핏물을 내뱉은 제이스쿠스가 아레나를 노려보았다.

그녀를 지키는 푸른 불꽃이 영혼의 형상처럼 떠올라 있었다.

거기다 불꽃새가 끊임없이 비행하며 롤스로체카의 마법을 무력화 시키고 있었다.

“지금 여기서 저 여자를 죽여야 한다.”

“그건 말 안 해도 알아. 저 미친 여자를 이대로 놔뒀다간 피해가 엄청나질 거다.”

두 사람이 시선을 마주치며 말했다.

제이스쿠스의 철강 마법.

그가 먼저 철로 만들어진 거신을 만들어 내었다.

이어 거신을 보호해 주는 안개 덩어리들을 롤스로체카가 입혔다.

“다시 한번 가 보자고.”

거신이 검과 방패를 들어 다가오는 불꽃새를 공격했다.

롤스로체카가 엄호하기 위해 안개를 흩뿌렸다.

안개는 거신에게 다가오는 불길을 막아 주는 역할을 했다.

뿐만 아니라 아레나의 시야를 차단하기도 했다.

콰아아아아앙──!!

그러나 아레나는 불길을 내보내는 것만으로 롤스로체카의 안개를 걷어 버리고 말았다.

이어 불꽃새가 낮게 비행하며 대지를 불태웠다.

거신이 불꽃새를 해치우기 위해 검을 내리꽂았다.

불꽃새는 유유히 몸을 회전하며 검을 피했다.

콰르르릉!!

화콰아아아아앙──!!

불꽃새에 신경이 팔려 있는 사이 주변으로 수많은 불꽃 기둥이 솟구쳐 올랐다.

이를 보다 못한 다이아 군대의 병사들이 전투에 끼어들었다.

“이런 멍청이들이!!!”

그 광경을 목격한 제이스쿠스가 두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아차 싶은 그 찰나의 순간.

불꽃 기둥에 휘말린 병사들이 한줌의 재로 타들어갔다.

그야말로 어마무시한 불길이었다.

그것에 닿는 모든 것들이 재로 변한다.

제이스쿠스가 이를 악물고 마법을 밀어 넣었다.

그래도 그의 마법은 이 푸른 불길을 견뎌 내고 있었다.

“네가 아무리 대단한 실력을 지녔다고 한들 우리 두 사람을 동시에 상대할 순 없을 거다!”

제이스쿠스의 철검이 한순간에 속력을 더하며 불의 장막을 뚫는데 성공했다.

공간이 열리자 제이스쿠스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허공에 떠오른 수천 개의 철침이 그 공간 안으로 쏟아져나갔다.

다시 닫히려는 불의 장막을 롤스로체카가 마법으로 막았다.

파콰콰콱!!!!

철침이 아레나의 몸에 박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언제 왔는지 불꽃새가 커다란 날개로 철침을 모두 막아 주었다.

“허…─.”

이 정도면 한방 먹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어림없는 일이었다.

공수가 완벽하다 느껴질 정도로 아레나의 마법은 빈틈이 없었다.

“결국 제풀에 지쳐 쓰러질 때까지 버티는 수밖에 없나..”

“그동안 이 산이 다 타버리겠어.”

보이는 모든 것들을 태워 버리는 아레나의 마법을 보며 제이스쿠스가 혀를 찼다.

아레나가 손짓하자 불꽃이 또다시 유성우처럼 떨어져 내렸다.

그녀가 노리는 곳은 다이아 군대가 있는 장소였다.

“이런 빌어먹을!!”

수하들을 보호하기 위해 제이스쿠스가 움직였다.

그러나 이미 한발 늦어버리고 말았다.

폭발에 휘말린 다이아 군대 기사들이 비명을 토해 내며 쓰러졌다.

“가암히이이이!!!”

수하들의 죽음에 진노한 제이스쿠스가 눈을 부라렸다.

하지만 아레나의 모습은 이미 이전과는 달라져 있었다.

전신에 화마를 두른 그녀의 모습은 화신(火神) 그 자체였다.

“롤스로체카…….”

“왜 부르나.”

“아무래도 우리가 단단히 잘못 건드린 모양이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