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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291화 (291/424)

291화 술주정뱅이 (2)

레오니르가 몸을 일으켰다.

그의 발걸음이 향하는 곳은 그 술주정뱅이 아저씨가 있는 곳이었다.

만테스의 수하들이 마침 술주정뱅이 아저씨를 둘러싸고 있었다.

이를 악문 레오니르가 근처에 있던 나무를 집었다.

땔감으로 쓰려고 준비한 나무라 무기로 삼기엔 부족했다.

그래도 없는 것 보단 낫겠지.

레오니르가 놈들을 향해 달려갔다.

만테스의 수하들은 쓰러진 술주정뱅이 아저씨를 짓밟고 있었다.

술에 잔뜩 만취한 건지 아저씨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멍청하게 그러고 있지 마요!”

레오니르가 쓰러져 있는 사내를 향해 소리쳤다.

그는 당장 눈앞에 있는 녀석부터 거세게 가격했다.

빡!

둔탁한 소리와 함께 한 명의 사내가 머리를 움켜쥐고 쓰러졌다.

레오니르는 멈추지 않고 옆에 있는 다른 녀석들에게도 나무를 휘둘렀다.

그 모습을 술주정뱅이, 아시테르가 우두커니 쳐다보고 있었다.

레오니르가 열심히 싸우고 있는 모습.

제법 싸움을 좀 할 줄 아는 녀석이었다.

상대의 주먹도 피하고 발길질도 피해낸다.

무조건적으로 피하기만 하는 것도 아니었다.

유효타가 되지 않을 만한 공격들은 몸으로 받아내는 선택을 했다.

이건 숱한 경험이 있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판단이다.

레오니르는 그렇게 왈패들을 상대로 지독하게 싸웠다.

그의 독기 때문인지 왈패들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얼굴이 멍투성이가 된 레오니르가 핏물을 닦아냈다.

“더 할 거냐? 그럼 덤벼. 오늘 내가 죽더라도 너희들 몇 놈은 데리고 간다!!”

어느새 상대에게서 칼을 뺏아든 레오니르가 악에 받혀 소리쳤다.

이제는 손을 떼긴 했어도 레오니르 역시 한때는 뒷골목을 주름 잡던 녀석이었다.

그런 레오니르가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 기세니, 왈패들도 더는 위험을 감수할 생각이 없었다.

그들은 아시테르에게서 빼앗은 돈만 챙긴 채 뒤로 물러났다.

“네깟놈이 무서워서 피하겠냐. 드러워서 피하는 거지.”

“오늘은 그냥 간다.”

“그쪽도 운 좋은 줄 알아.”

놈들이 아시테르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에도 아시테르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보다는 평소의 허망한 시선으로 바다쪽을 바라볼 뿐이었다.

왈패들이 완전히 물러나자 그제서야 레오니르도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말이야 죽기를 각오하고 싸운다는 게 쉽지 막상 그러려니 덜컥 겁부터 났다.

그래도 잔뜩 흥분한 상태여서 그런지 싸울 때는 완전히 망각해 있었다.

뒤늦게 아시테르가 생각난 레오니르가 뒤를 돌아보았다.

“아저씨 괜찮으세요?”

“괜찮다.”

“어유… 죄송해요. 저 때문에 괜히 아저씨까지… 저놈들 저한테 악감정 있어서 그런 거거든요… 이걸 어찌해야 할지…….”

“괜찮아. 그보다…….”

아시테르가 품안에서 돈을 꺼냈다.

이를 본 레오니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분명 만테스의 수하들이 품안을 샅샅히 뒤져서 돈을 가져갔을 텐데 어디서 돈이 나오는 걸까……?

놀란 것도 잠시 아시테르가 말을 이었다.

“술 좀 다시 사와주겠나. 조금 전에 술병이 깨져 버려서 말이야.”

아시테르가 깨진 술병을 들며 말했다.

그러자 레오니르가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하하!!! 아저씨. 지금 이 상황에서도 술이 넘어가요?”

“안넘어갈 이유라도 있나?”

“애들이 와서 아저씨를 그토록 패… 아니, 때렸잖아요. 분하지도 않아요?”

“후후후 이 정도로는 하나도 아프지도 않고 분하지도 않아.”

“예?”

“세상에는 이보다 더 분하고 아픈 일도 많다는 얘기다. 술이나 사와 줘.”

“예예~ 하여간 가끔 알 수 없는 말들을 늘어놓는다니까요 아저씨는…….”

먼지를 털어낸 레오니르가 돈을 받아들었다.

이번에도 역시 돈은 차고 넘친다.

심지어 조금 전보다 더 많은 돈이었다.

레오니르는 이번에 술 한 병이 아닌 두 병을 사가지고 왔다.

이를 본 아시테르가 한 병만 받아들었다.

“한 병이면 충분하다만…….”

“이번에는 저도 한 병 마시고 싶어서요.”

“어린놈이…….”

“저 생각보다 그렇게 어리지 않거든요?”

“그러냐.”

아시테르가 레오니르를 바라보았다.

하기사 자신도 레오니르 나이 때에는 많은 것들을 배우기 위해 열정을 불태웠었다.

아카데미에서의 일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그러자 괜히 술이 땡겨 벌컥 들이마셨다.

목을 태우는 알싸함이 속까지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취기는 돌지 않는다.

하늘을 올려다 본 아시테르가 웃었다.

비는 계속해서 추적추적 내려왔다.

“비는 전혀 그칠 생각이 없어보이는군.”

“여기는 비가 한 번 내리기 시작하면 2~3일은 기본이에요.”

“그렇구나. 그거 좋네.”

“아저씨는 비 오는 날을 좋아하나봐요? 그렇게 웃는 모습은 처음 봤어요.”

레오니르가 술을 한 잔 들이켜며 말했다.

아시테르가 손바닥을 내밀었다.

손바닥에 튕겨 아무렇게나 날아가는 빗물들을 보며 말했다.

“비는 반갑거든.”

“비가 반가워요? 다들 싫어하던데…….”

“나에게 비는 만남과 같은 거야.”

“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요…….”

“그런게 있다.”

“하여간 알 수 없는 말만…….”

“내가 우스운 얘기 하나 해줄까?”

“뭔데요?”

“예전에 내가 어릴 때 말이야. 나는 그때 세상에 나와 비를 처음 봤거든. 그때는 비가 뭔지 몰라서 누군가 마법으로 물을 내려 나를 해치려는 줄 알았어.”

“우와… 상당히 어렸을 때인가보네요. 그런 생각을 할 정도면.”

“후후… 그렇지 어렸지. 그리고 그때의 광경이 난 잊혀지질 않아. 그때의 습했던 공기, 물빛을 머금은 나뭇잎들, 초록빛 줄기 그리고…….”

그녀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세상에 나와 처음 사귄 친구.

세아츠리스의 얼굴이.

그녀는 지금 어떻게 지낼까.

세아츠리스뿐만 아니라 다른 동료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문득 그런 생각들이 들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알렌시아에게로 기억이 옮겨졌다.

씁쓸한 미소를 지어보인 아시테르가 그대로 누워 버렸다.

“어어? 아저씨 여기서 그렇게 누우면 감기 걸려요.”

“뭐 어때.”

“아 진짜 큰일날 아저씨네…….”

그러면서도 레오니르도 아시테르의 옆에 누워버렸다.

그도 아시테르와 같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두컴컴한 밤하늘 사이로 회색빛 구름들이 껴있다.

“큰일날 사람이라면서 너는 왜 눕는 거냐?”

“그냥.. 아저씨 좀 따라해 보게요. 조금 쪽팔리긴 한데… 사실 아까 전에도 아저씨 따라서 비오는 날 광광 울어봤거든요? 근데 이게 생각보다 속이 후련해지네요.”

“후후후후, 너도 제정신은 아니구나.”

“제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을만한 세상이 아니잖아요.”

“뭐… 그건 동감한다.”

아시테르가 술병을 가져왔다.

누워서 마시려니 입속에 술을 넣는 건지 때려 붓는 건지 분간이 안된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레오니르가 똑같이 따라했다.

“이렇게 하면 술이 비가 되어 내리는 것 같네요.”

“으하하하하!! 그거 좋은 생각인데? 정말 그랬으면 좋겠구나.”

아시테르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오랜만에 이렇게 웃어보는 것 같아 어색하기만 하다.

우두커니 하늘을 바라보던 레오니르가 슬쩍 눈치를 보다 말했다.

“아저씨 그러지 말고 우리 집으로 가는 건 어때요?”

“나를? 왜?”

“여기서 이러고 있지 말고요. 길바닥에서 이게 뭐에요.”

“길바닥이라니. 하늘이 내 지붕이고 대지가 내 이불인데.”

“어휴… 그냥 집 없는 신세라는 거잖아요 그건. 아무리 가난한 저라도 집은 있다고요. 근데 아저씨는 돈도 많잖아요? 맨날 이 비싼 술을 사마실 수 있을만큼.”

“그러니까 뭐냐. 내가 너희집에 머물면서 돈이라도 내라는 말이냐?”

아시테르가 레오니르를 보며 물었다.

그러자 레오니르가 황급히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뜻이 아니라 그냥 아저씨한테는 감사해서요… 이런데서 비 맞지 말고 우리집에서 편히 쉬세요. 조금 누추하긴 하지만… 아니다 많이…….”

“후후 마음만은 고맙게 받으마. 근데 난 이게 더 좋아.”

아시테르가 하늘을 바라보며 말했다.

요즘들어 저 하늘이 너무나도 좋았다.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자신이 하늘의 일부가 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나중에라도 마음이 바뀌면 얘기해주세요.”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레오니르가 말했다.

아시테르는 손을 들어 그에게 인사만 건넸을 뿐이다.

못 말리겠다는 듯 웃어보인 레오니르가 이만 동생들이 있는 집을 향해 돌아갔다.

아시테르가 말없이 그런 레오니르의 뒤를 지켜보았다.

“집이라…….”

몸을 일으킨 아시테르가 걸음을 옮겼다.

그는 앞서 나가던 레오니르를 금방 따라잡았다.

“어어? 뭐에요?”

“가 보자.”

“어딜요?”

“너희집.”

“우리집에 가시게요?”

“그래. 한번 가 보자.”

“오오오!! 잘 생각하셨어요! 얼마든지 환영입니다!”

“동생들도?”

“역시… 아저씨 저한테 동생들이 있는 것 알고 계셨죠?”

“바보냐? 네가 말했잖아.”

“아? 그랬었나요……?”

눈을 동그랗게 뜨는 레오니르를 보며 아시테르가 피식 웃었다.

처음 봤을 때부터 어딘가 정감이 가는 녀석이다 했더니, 에스파를 닮아 있었다.

지금쯤 에스파도 자신을 찾고 있진 않을까.

다른 동료들도 자신을 찾고 있겠지.

하지만 여러 이유로 그들 앞에 설 자신이 없었다.

아시테르가 마나홀에 손을 가져갔다.

역시나 마력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항상 범람할 것처럼 쌓이던 마력이 느껴지질 않으니 허무하기 이를 데 없다.

그동안 레오니르는 자신의 동생들에 관해 얘기를 해주었다.

둘째 동생 율리아는 어렸을 때부터 철이 든 편이었고, 셋째 동생 드레베스는 살짝 거친 성격, 막내 동생인 루에테는 그저 귀엽기만 하다는 자랑식이었다.

자신도 어린 주제에 자기보다 어린 동생들을 사랑스럽게 소개하는 레오니르를 보며 아시테르도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빈민가를 지나 하천쪽에 다다랐을 때 마침내 레오니르의 집이 보였다.

허름한 것을 떠나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집.

그 앞에 서서 레오니르가 무안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호기롭게 아시테르를 초대 했지만, 막상 집 앞에 서니 초라해보이기 짝이 없었다.

“그… 여기가 저희집이에요.. 들어오세요.”

레오니르의 안내에 아시테르가 말없이 안으로 들어섰다.

외관과는 다르게 집 안은 제법 살림살이가 갖춰져 있었다.

낯선 사내의 등장에 레오니르의 동생들이 경계 어린 눈빛을 했다.

“오빠. 저 사람은 누구야?”

금발에 푸른 눈동자가 인상적인 소녀가 레오니르를 보며 물었다.

아시테르는 그녀가 바로 율리아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여기저기 얼굴에 생채기가 난 드레베스도 아시테르를 바라보는 눈이 딱히 곱진 않았다.

막내인 루에테는 드레베스의 뒤에 숨어 있었다.

레오니르가 아시테르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이분이 바로 내가 전에 말했던 그 술주정뱅이 아저씨.”

“형 미쳤어? 맨날 술이나 퍼마시는 사람을 뭐하러 우리집에 데려와? 말도 없이?”

“야. 형이 이번에 아저씨한테 은혜를 입어서 그래.”

“그건 형 사정이고.”

“근데 오빠 얼굴은 또 왜 그래? 너 설마…….”

“아니야.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율리아가 곧바로 상처에 바를 것들을 챙겨왔다.

아시테르의 시선이 슬쩍 통을 살폈다.

제법 구색을 갖춘 약통이었다.

그녀는 레오니르의 상처를 살피며 인상을 구겼다.

“진짜 다시 한번 그쪽 일 하기만 해. 나 정말 가만 안있어.”

“알아, 알아. 나도 이제 다 컸어.”

“다 큰 거랑 무슨 상관이야.”

“아, 거참…….”

레오니르가 아시테르의 표정을 살피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반면 레오니르의 가족들을 보며 아시테르도 묘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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