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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292화 (292/424)

292화 술주정뱅이 (3)

레오니르의 가족들은 나름대로의 역할들이 있었다.

온갖 집안 살림들은 드레베스와 루에테가 도맡아 했다.

루에테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 집안일들을 척척 해냈다.

그동안 레오니르와 율리아는 밖으로 돈을 벌러 다녔다.

레오니르는 나무를 베는 일을 하고 있었고, 율리아는 다른 집의 잡일들을 도와주고 돈을 벌었다.

그들의 생활을 지켜보며 아시테르는 홀로 가만히 앉아 술만 마실 뿐이었다.

그런 아시테르를 보며 드레베스는 여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저 사람은 대체 뭔데 집에서 술만 마시는 거야?”

“신경쓰지마.”

“돈이라도 벌어오던가. 공짜로 밥이나 얻어먹고 말이야.”

드레베스의 말에 아시테르가 슬쩍 돌아보았다.

그러고보니 몇 끼 얻어먹긴 했다.

그래서 품안에서 돈을 꺼내 식탁 위에 올려 두었다.

이를 본 드레베스의 눈이 커졌다.

올라온 돈의 크기가 예사롭지 않다.

“뭐… 뭐야…….”

“앞으로 내 밥값은 이걸로 하마.”

쿨하게 돈을 내민 아시테르가 다시 술병을 집어들었다.

확실히 바깥에서 하늘을 친구 삼아 마시는 것보단 그 분위기가 덜하다.

그래서 아시테르는 몸을 일으켜 바깥으로 향했다.

그가 나가기까지 드레베스는 그저 어이없다는 얼굴로 그를 쳐다볼 뿐이었다.

“저 아저씨 뭐야…? 그냥 거지 아니었어?”

드레베스의 시선이 율리아에게로 향했다.

그녀가 드레베스를 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 오빠가 돈을 받아 왔던 사람이잖아.”

“돈을 받아 와? 그 술심부름하면 돈을 준다던?”

“그분 맞아.”

“허어…….”

“그나저나 매일 저렇게 술만 마셔서 괜찮으려나 모르겠네…….”

율리아가 식탁으로 다가갔다.

아시테르가 내민 돈은 네 식구가 일주일을 먹기에도 충분한 돈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돈을 한 번에 소비할 생각은 없었다.

아시테르와 함께 먹을 것들을 사왔다.

그래도 어깨 너머 배운 요리 솜씨가 있었기 때문에 제법 차림새 있는 저녁상이 완성되었다.

“드레베스.”

“왜?”

드레베스가 율리아를 돌아보았다.

“나가서 아저씨 모셔 와.”

“모셔 와…? 상전이냐?”

“오늘 저녁은 모두 아저씨가 주신 돈으로 만들어졌어.”

“그럼 상전이지. 암 그렇고 말고.”

고개를 끄덕인 드레베스가 군말 없이 몸을 일으켰다.

대충 시간을 때려맞춰 보니 곧 있으면 레오니르도 올 시간이었다.

“다같이 저녁이나 먹자.”

저녁상으로 완성된 메뉴를 보며 루에테가 두 눈을 빛내고 있었다.

밖으로 나갔던 아시테르가 드레베스의 손에 이끌려 돌아오고, 일을 나갔던 레오니르도 돌아왔다.

다섯 명이 모두 앉아 밥을 먹기 시작하니, 레오니르는 순간 감동에 벅차올랐다.

얼마만에 이렇게 맛있는 밥을 두런두런 앉아 먹어보는지 모르겠다.

“행복하다 행복해. 이런게 바로 행복이구나…….”

울상짓는 레오니르를 보며 율리아가 인상을 찌푸렸다.

“밥상에서 그런 얼굴 하지마.”

“미안하다.”

그러면서도 율리아가 레오니르의 밥 위에 고기를 얹어 주었다.

좋은 품질의 고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런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이었다.

그녀는 슬쩍 아시테르쪽을 쳐다보았다.

아시테르도 별말 없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는 식사를 할 때도 술을 곁들였다.

“그렇게 계속 술만 드시다간, 건강만 상해요.”

“상관없다.”

“왜 상관이 없어요?”

“글쎄… 상관이 없으니까?”

“자기 자신한테 가장 바보 같은 행동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전…….”

율리아의 말에 아시테르가 손을 멈췄다.

이내 씁쓸한 미소를 지은 아시테르가 식사를 그만두고 몸을 일으켰다.

그가 갑자기 바깥으로 향하자 레오니르가 괜히 율리아에게 눈치를 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사연 많은 사람 같은데 밥이라도 그냥 편하게 먹게 둬…….”

“…내가 뭐…….”

아시테르는 그대로 밖으로 나와 술을 한병 샀다.

그를 찾으러 나왔던 드레베스가 주변을 뒤졌다.

“아오… 이 아저씨는 어디로 간 거야.”

멀리 가지는 못했을 거라 생각한 드레베스가 집주변으로만 거닐었다.

그러다 마주친 무리가 있었다.

그들은 드레베스를 보며 웃었다.

“야. 드레베스.”

“뭐야?”

“너희집에서 고기를 사갔다더라? 돈이 어디서 나서 그랬냐?”

“무슨 상관이냐 너희가.”

“그냥 궁금하잖아.”

“형이랑 누나가 열심히 일을 하니까 돈이 생겼겠지.”

드레베스가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그래도 아시테르에 관한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그때 무리의 우두머리를 맡고 있던 로스터가 앞으로 걸어나왔다.

“아니야. 내가 봤을 때 너희는 돈을 훔친 거야. 그렇지?”

“그게 무슨 개같은 소리냐? 우리가 돈을 왜 훔쳐?”

“니네형 그런거 잘하잖아.”

“야. 안 닥치냐?”

얼굴이 굳어진 드레베스가 금방이라도 로스터를 때릴 것처럼 노려보았다.

그러자 로스터가 웃는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 뒤에서 아이들이 드레베스가 이 골목의 최강이라 말하고 다닌다.

쌈박질이라면 어디서지지 않는 로스터였다.

이곳 정도는 쉽게 주름 잡아야 만테스의 밑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드레베스의 존재 때문에 쉽지 않았다.

그러니 결판을 내야 했다.

“왜? 한번 치게?”

로스터가 일부러 도발하듯 말했다.

드레베스가 주먹을 말아쥐었다.

이를 본 로스터도 한껏 조소를 날려 주었다.

그가 알기로 율리아 때문에 레오니르와 드레베스는 싸움 같은 걸 할 수 없다.

그녀뿐만이 아니더라도 만테스 때문에 이 두 사람은 이곳에서 조용히 살아가야 한다.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로스터도 일부러 드레베스를 도발한 것이다.

“치지도 못할 ㄱ…….”

퍼억!

드레베스의 주먹이 그대로 로스터의 얼굴에 꽂혔다.

워낙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로스터뿐만 아니라 뒤의 아이들도 반응하지 못했다.

로스터가 풀썩 쓰러졌다.

그를 보며 드레베스가 웃었다.

“뭐라고?”

“야.. 너…….”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게 왤케 까부냐?”

“야 드레베스…! 감히 네가 날…….”

“시끄러 새끼야.”

빠악─!

드레베스가 발로 로스터의 얼굴을 차버렸다.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로스터를 보며 뒤편의 아이들도 굳어버리고 말았다.

드레베스가 그들을 노려보았다.

“너희들도 덤빌 생각이냐?”

“드레베스… 너… 만테스 형님네가 분명 조용히 살라고…….”

“아, 미안한데 나는 형이랑 달라서 말이야. 조용히 살고 안살고는 내 마음이라는 얘기지.”

드레베스가 로스터의 손을 지그시 밟아주었다.

그러자 로스터가 고통의 신음을 흘렸다.

“너 그리고 내가 경고 하나 하는데. 우리 누나한테서 떨어져라 뒤지기 싫으면.”

“……?”

로스터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내가 모를 줄 알았냐?”

“…….”

“너 따위가 감히 넘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우리 누나는. 알겠냐?”

드레베스의 말에 로스터가 분노로 몸을 떨었다.

그러나 드레베스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뒤편에 있는 동료들도 딱히 도와줄 생각이 없어보였다.

아니, 드레베스에게 겁을 집어먹었다는 표현이 맞았다.

놈들을 한심하게 쳐다본 드레베스가 이만 자리를 떠났다.

뒤늦게 몸을 일으킨 로스터의 곁으로 아이들이 다가왔다.

“쓸모없는 것들…….”

로스터가 두 눈을 부라리며 아이들을 쳐다보았다.

그러다 멀어져 가는 드레베스의 뒷모습을 노려봤다.

“가만 두지 않겠어……!”

이글거리는 눈빛을 한 로스터가 이만 자리를 떠났다.

이 광경을 조용히 지켜보던 사람이 있었다.

그도 천천히 몸을 일으켜 다시 자리로 돌아갔다.

로스터와 드레베스의 일은 곧 눈덩이처럼 커져 버리고 말았다.

로스터의 얘기를 들은 그의 형이 일당들을 데리고 빈민촌까지 찾아온 것이다.

모두 만테스 밑에서 한가락 하는 친구들이었다.

“누가 내 동생 팼냐?”

바스터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험악한 인상에 머리까지 짧으니 그 분위기가 한층 더 살벌해 보였다.

그를 본 드레베스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새끼가… 우리 일은 우리선에서 끝내야지 치사하게.”

드레베스의 시선이 뒤편에 쭈굴거리고 있는 로스터를 쳐다보았다.

그를 확인한 바스터가 하얀이를 보였다.

“너냐?”

“그래 나다.”

“호오… 아주 발칙한 놈이네 이거.”

“동네 시끄럽게 이게 뭐하는 짓이야?”

“이야. 너 아주 겁을 상실했구나.”

바스터가 드레베스의 앞으로 다가갔다.

워낙 거구의 몸이라 가까이에 있는 드레베스가 아이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그의 몸집에도 드레베스는 겁 먹거나 하지 않았다.

드레베스의 눈빛을 확인한 바스터가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그래도 레오니르의 동생이라 이거지?”

짜악!

바스터가 드레베스의 뺨을 날렸다.

묵직한 충격에 드레베스도 순간 놀란 표정을 짓고 말았다.

그러나 이내 그는 주먹을 말아쥐며 반격을 가했다.

파박!

퍼억!! 퍼버벅!!

화끈한 주먹다짐이었다.

다만 드레베스가 이기기에 바스터의 체급은 높았다.

한방 한방이 묵직하게 실리는 바스터의 주먹에 드레베스도 곧 피투성이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드레베스는 질긴 녀석이었다.

얼굴과 몸이 어떻게 망가지던 그는 악바리처럼 바스터에게 덤벼들었다.

“쳇. 그런 모습은 내 동생보다 네가 낫구나.”

핏물을 닦아 내는 드레베스의 앞에서 바스터가 팔짱을 꼈다.

더 해봤자 무의미하다.

이미 드레베스의 다리는 힘이 완전히 풀려 있었다.

“덩치만 커가지고는…….”

핏물을 뱉어 낸 드레베스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술병과 함께 앉아 있는 아시테르가 보였다.

그도 마침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른이라는 인간이 가만히 지켜보기나 하고 말이야…….”

중얼거리는 드레베스를 보며 바스터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가 주먹을 부딪히며 걸어왔다.

“아까부터 뭐라고 중얼거리는 거냐?”

“알 바냐.”

“쯧… 하여간 그 버르장머리부터 고쳐줘야겠다 넌.”

그러다 바스터의 시선이 드레베스의 시선을 쫓았다.

그러고보니 자꾸만 알싸한 알코올 냄새가 코끝을 찔렀는데, 이제보니 뒤편에서 편안하게 술을 마시고 있는 사내가 있었다.

“저건 또 뭐야? 대낮부터…….”

“형님. 저 사람이 바로 그 술주정뱅이입니다.”

“아아, 레오니르의 집에서 같이 산다던?”

바스터가 몸을 돌렸다.

그가 보기에 사내는 술을 들고 완전히 쫄아있었다.

하기사 우르르 몰려온 자신들을 보고 겁을 먹지 않을 수 없을 터다.

“신경쓸 것도 안되네.”

빠악─!

이 틈을 노린 드레베스가 바스터에게 한 방 먹였다.

덕분에 머리끝까지 화난 바스터가 두 눈을 부릅뜨며 몸을 돌렸다.

“너는…….”

파앙!!!

그의 발길질이 드레베스의 복부에 꽂혔다.

이어 바스터의 주먹이 드레베스의 얼굴을 연타했다.

“그만!! 그만해!!!!”

그때 날카로운 목소리와 함께 누군가 드레베스와 바스터 사이에 끼어들었다.

퍽!!

바스터의 뭉툭한 주먹이 율리아의 얼굴에 꽂혔다.

그녀의 몸이 힘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누나?”

놀란 드레베스가 눈을 크게 떴다.

쓰러졌던 율리아가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만해. 우리가 잘못했어.”

“무슨 일인지는 알고 그런 말을 하는 거냐?”

“그냥 미안해.. 우리가 잘못했으니까 이제 그만하고 돌아가 줘.”

“아하하하하!!! 야 율리아. 그래도 고집만 센 네 동생보다는 네가 더 낫다. 근데 어쩌냐? 나는 조용히 돌아갈 생각이 없는데.”

바스터가 뒤통수에 흐르는 핏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드레베스의 손에는 돌이 들려 있었다.

이제보니 길바닥의 돌을 주워 한껏 때린 모양이다.

율리아가 그런 바스터를 막아섰다.

“부탁이야. 이제 내 동생 그만 때려…….”

“나와라. 네가 맞기 싫으면.”

바스터가 쓰러진 드레베스에게 다가가려는데 율리아가 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무릎을 꿇었다.

이를 본 드레베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에게 율리아는 엄마같은 존재였다.

그런 율리아가 저런 시정잡배 같은 놈에게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을 보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누나!! 뭐하는 거야!!”

“시끄러. 넌 조용히 있어 드레베스.”

율리아가 결국 바스터에게 고개를 깊게 숙였다.

이를 내려보는 바스터가 묘한 흥분에 휩싸였다.

평소 도도하기 이를 데 없는 율리아가 동생 때문에 지금 자신 앞에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런 진귀한 광경은 보기 쉽지 않다.

그가 발을 들어 율리아의 머리에 가져갔다.

“야 바스터어어어!!!”

이를 본 드레베스가 분노해 소리쳤다.

그 순간 누군가가 바스터의 발을 슬쩍 밀어냈다.

“이쯤 했으면 된 것 같은데.”

술병을 든 아시테르가 바스터를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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