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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294화 (294/424)

294화 술주정뱅이 (5)

아시테르가 한쪽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그를 본 만테스가 피식 웃었다.

“이제야 왔구만. 그쪽 기다리다가 우리가 지루해 죽는 줄 알았어.”

“…….”

아시테르의 시선이 레오니르에게로 향해 있었다.

부여잡고 있는 팔이 힘없이 달랑거리고 있다.

칼에 베인 흔적.

핏물이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아…….”

이래서 나서지 않으려 했다.

괜히 얽히게 되니까.

그저 조용히 혼자 지내고 싶었는데, 결국 이렇게 되어 버리고 말았다.

아시테르가 싸늘한 눈빛으로 만테스를 바라보았다.

“네가 이렇게 만들었어?”

“아하하하!!! 그럼 내가 그랬지 누가 그랬겠어. 그리고 이제 그쪽도 똑같이 만들어 줄 차례다.”

“왜 그랬어?”

“뭐?”

“왜 애를 이렇게까지 만들었느냐고.”

아시테르가 술병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의 시선이 율리아와 드레베스를 훑었다.

얼굴이 잔뜩 부어올랐고 멍까지 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폭행의 흔적들이었다.

입술이 터진 율리아가 울상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저씨…….”

“미안하다. 괜히 나 때문에.”

아시테르가 그녀에게 사과했다.

그러자 레오니르가 아시테르를 말렸다.

“아저씨. 이건 저희들의 일이니까 상관말고 가세요. 그동안 아저씨한테 알게모르게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이런 일로 피해를 끼치고 싶진 않아요…….”

“너도 참 너다. 이게 어떻게 너 때문에 내가 피해를 입는 거냐? 나 때문에 너희들이 피해를 입는 거지.”

아시테르가 차가워진 시선으로 만테스를 바라보았다.

칼을 들이민 이상 이제 얘기는 달라졌다.

아시테르의 시선에 뒤편에 있는 바스터가 들어왔다.

그와 시선을 마주친 바스터가 순간 움찔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달랐다.

기고만장해진 바스터가 씨익 웃었다.

“그렇게 날 쳐다보면 어떻게 할 건데? 그럼 내가 순순히 물러날 줄 알았나?”

“내가 분명 너에게도 말했지. 무기를 꺼내는 건 다른 얘기가 된다고.”

“똥폼 잡기는… 당신이 전에 뭘 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여기엔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있어. 당신 혼자 뭘 할 수 있겠어?”

바스터의 얘끼를 들은 만테스가 피식 웃었다.

바로 그거다.

술주정뱅이 예상 외로 싸움을 잘한다고 해도 이곳엔 20명이나 되는 수하들이 있었다.

거기다 모두 실력 좀 있는 녀석들이었다.

비릿한 조소를 흘린 만테스가 입을 열었다.

“왜 그랬냐고 물었지. 글쎄… 가장 큰 이유가 있다면 재밌어서? 난 저녀석이 절망하는 모습을 보는게 그렇게도 좋더라고. 이제 아저씨까지 죽이고 나면 나는 율리아를 사창가에 내다 팔아버릴 거다. 저 시건방진 동생놈은 노역을 보낼 거고. 그리고 남은 여자아이는… 흐음… 내 노예로 써버릴까. 으흐흐흐흐…”

“죽여버린다아아!!!!”

만테스의 말에 발끈한 레오니르가 대지를 박찼다.

놈들에게 다가가기도 전에 아시테르가 그를 붙잡았다.

붙잡힌 레오니르가 아시테르를 보며 소리쳤다.

“아저씨 놔요!”

“넌 가만히 있어라.”

아시테르가 레오니르를 가볍게 제압하며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다섯 명의 사내가 앞으로 튀어나왔다.

모두 무기를 들고 있는 자들이었다.

“으하하하!! 저 아저씨 겁먹은 것 봐! 그러게 왜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까불…….”

퍼억!!

곧이어 들리는 소리에 바스터가 할 말을 끝맺지 못했다.

과감하게 안으로 파고든 아시테르가 너무나도 간단하게 한 명의 사내를 제압해버렸다.

이어 발길질로 상대의 팔을 걷어차 버리더니 금방 무기를 빼앗아들었다.

“어……?”

놀란 것은 레오니르도 마찬가지였다.

그러건 말건 아시테르는 빼앗아 든 검으로 눈앞에 있는 사내의 팔을 잘라 버렸다.

스걱──!

푸슈우우욱!!!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핏물이 분수처럼 튀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행동이었다.

상대의 팔을 잘라 낸 아시테르가 몸을 돌렸다.

뒤를 급습하려던 두 명의 사내가 놀라 그를 쳐다보았다.

아시테르의 손이 한 발 더 빨랐다.

푸슉!!

푸슈슈슉!!!

검날이 상대의 살갗을 파고들었다.

베기보다는 찔렀다는 표현이 더 맞았다.

검에 찔린 두 명의 사내가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남은 하나는 볼 것도 없었다.

아시테르의 검이 그의 허벅지를 베어 버렸다.

순식간에 다섯 명을 제압한 아시테르가 무심하게 뒤를 돌아보았다.

“이런게 너는 재밌나?”

무섭도록 차가운 시선.

조금의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는 눈동자였다.

그것을 본 만테스는 순간 저도 모르게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느꼈다.

“이제 열다섯 명 정도 남았네.”

한 차례 사람들을 둘러본 아시테르가 검을 바꿨다.

얼마나 안좋은 검인지 벌써 날이 무뎌져 버렸다.

이번에는 만테스의 수하들이 아닌 아시테르가 먼저 그들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진짜… 미쳤다. 저 아저씨 대체 정체가 뭘까…….”

드레베스가 두 눈을 반짝이며 아시테르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태어나서 만테스 일행이 저렇게 겁을 집어먹은 걸 보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테사이드’라는 조직이 와도 저렇게 까진 겁을 집어먹진 않는다.

헌데 지금은 맹수를 본 초식동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바들바들 떨고 있다.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감을 느낀 만테스가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

“너희 바보냐?! 우리가 아직도 숫자가 훨씬 많아! 그러니까 한번에 덤벼들어!!”

만테스의 명령에 사내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그러나 움직임은 이전만 못하다.

잔뜩 굳어 있는 그들의 공격에 아시테르가 당해줄 리 없었다.

그는 가볍게 공격을 피하고 반격을 날렸다.

굳이 큰 움직임따윈 필요 없다.

간결하게, 최소한으로 움직인다.

무뎌져 있던 예리한 본능이 다시 살아나는 기분이었다.

더군다나 한동안 보고 살지 않았던 핏물이 눈앞에 보이니 아시테르의 저 깊숙한 곳에 묘한 흥분이 올라오고 있었다.

아시테르의 감각이 더욱 예민해졌다.

극도로 집중하기 시작하니 적들의 숨소리마저 들리는 느낌이다.

느릿하게 다가오는 검격을 비스듬히 쳐낸다.

이어 아시테르의 팔이 움직여 상대의 급소를 때렸다.

뒤를 노리는 검은 슬쩍 검로를 바꾸어 다른 상대를 공격하게 만들었다.

반 보 앞으로 내디딘 아시테르가 검끝을 올렸다.

촤륵!!

핏물이 넘실거린다.

아시테르는 멈추지 않고 부드럽게 움직임을 이었다.

그 모습이 마치 유수가 흐르는 것만 같았다.

“아… 아아…….”

호기롭게 달려들던 사내가 검을 떨어트리고 말았다.

본능이 도망치라고 경고하고 있었다.

스무 명이나 되었던 동료들도 이제는 다섯 명 남짓 남았다.

만테스도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파르르 손을 떠는 그가 분노했다.

단 한 명이다.

겨우 단 한 명인데 아무도 저 사내를 제압하지 못한다.

심지어 스친 녀석도 없다.

“옷깃도 못 베어……?”

일방적인 싸움이었다.

아니 이걸 애초에 전투나 싸움이라고 부를 수나 있는 것일까.

이를 악문 만테스가 옆에 있는 바스터에게 소리쳤다.

“넌 뭐하고 있어!? 빨리 움직여!”

“하, 하지만…….”

“나한테 먼저 죽을래?”

만테스가 검을 출수하며 살벌하게 위협했다.

하는 수 없이 바스터도 앞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막상 아시테르를 마주하니 온 몸이 떨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두 번은 없어.”

서릿발같이 차가운 목소리.

아시테르가 검을 내리찍었다.

방어?

그런 것 따윈 불가능하다.

반응조차 할 수 없었다.

스걱─!

소름끼치는 소리와 함께 바스터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뒤이어 뜨거운 고통이 밀려들어왔다.

핏물이 대지를 적신다.

“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뒤늦게 인지했다.

떨어져 있는 자신의 팔을 보며 바스터가 울부짖었다.

그제서야 그는 잘려나간 부위를 부여잡고 고통에 몸을 뒹굴었다.

단번에 그의 팔을 잘라낸 아시테르가 이번에는 만테스쪽으로 향했다.

놀란 만테스가 순간적으로 말을 내뱉었다.

“사… 살려 줘……!”

“내가 예전에 한 번 크게 쓴 경험을 한 적이 있어.”

“뭐… 무슨…….”

만테스가 뒷걸음질 쳤다.

아시테르는 천천히 그를 따라갔다.

핏물이 뚝뚝 흘러내리는 검끝이 만테스에게로 향해 있다.

“너 같은 사람들은 살려 두면 안 된다는 걸… 소중한 사람들을 잃고 뒤늦게서야 깨달았거든.”

“아… 아니야.. 그게 무슨 소리야? 나… 날 살려 주면 돈… 그래! 당신이 원하는 만큼 돈을 줄게. 저 녀석들도 건드리지 않을게!! 그리고 또… 아 그래, 술도 원하는 만큼 줄게! 고급지고 비싼 술들을!! 어때? 술 마실 때 여자가 필요하면 여자도 내가…….”

“그 드러운 입 안 다물어?!”

아시테르의 말에 만테스가 순간 딸꾹질을 했다.

사람이 저런 눈빛을 지을 수 있다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았다.

“내가 너한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자비는.”

만테스의 앞에 선 아시테르가 검을 휘둘렀다.

깔끔한 일직선이었다.

수평으로 휘둘러진 검이 만테스의 목을 잘랐다.

“꺄악─!”

놀란 율리아가 비명을 질렀다.

율리아만이 아니었다.

다른 이들도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에 너무 놀라 입을 떡하니 벌리고 있었다.

목이 잘린 만테스의 몸이 부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한 만테스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이를 내려보던 아시테르가 검을 놓았다.

“고통없이 단칼에 보내 주는 거다.”

감정하나 섞여 있지 않은 말투.

대체 어떤 삶을 살아오면 저럴 수 있는 것일까.

그저 술이나 퍼마시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레오니르도 너무 놀라 말을 잃고 말았다.

자신을 돌아보는 아시테르를 보며 그도 순간 움찔하고 말았다.

“그동안 고마웠다. 네가 내게 해주는 얘기들, 굉장히 재밌었어. 그 팔은…….”

힘 없이 덜렁거리는 팔을 보며 아시테트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어지간한 실력의 치유 마도사가 아니라면 회생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그의 시선을 읽은 레오니르가 애써 담담하게 말했다.

“저는 괜찮아요. 만테스가 죽는 대신 제가 팔 하나 잃은 셈 치죠. 거기다…….”

레오니르가 쓰러져 있는 만테스의 수하들을 둘러보며 말끝을 흐렸다.

‘다른 녀석들의 팔도 아저씨가 가져갔잖아요..’라는 말이 튀어나오려다 삼켰다.

아시테르는 레오니르를 지나 놀라 바닥에 주저 앉아있는 율리아의 앞으로 다가갔다.

“네가 해주는 음식. 굉장히 맛있었다. 덕분에 고마웠어.”

“네? 아니 제가 한 건… 근데 아저씨. 왜 떠날 것처럼 얘기해요……?”

“더이상 여기에 머무를 이유가 없으니 떠나야지.”

아시테르가 웃으며 말했다.

시종일관 차가운 표정으로 만테스와 그의 수하들을 베던 모습은 어디가고 굉장히 따스한 얼굴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동안 어색해 보이던 표정들과는 다르다.

율리아는 그때서야 깨달았다.

‘아저씨도 이런 표정을 지을 줄 아는구나’가 아니라 원래 이런 표정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어디로…….”

율리아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아시테르가 몸을 돌렸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은 바스터가 있는 곳이었다.

아시테르가 또다시 자신에게로 다가오자 바스터가 바닥을 기며 공포에 떨었다.

단칼에 사람을 죽이는 아시테르의 모습에 그도 놀란 것이다.

“사… 살려 주세요. 죽기 싫어요… 진짜 잘못했습니다. 한번만 살려 주시면…….”

우뚝 멈춰선 아시테르가 무릎을 굽혀 바스터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의 눈동자를 본 바스터가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지금은 팔 하나만 가져가지만 또다시 이런 일을 벌인다면 그때는 알지? 두 번은 없어.”

아시테르의 말이 끝나자마자 바스터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쯤되니 바스터가 불쌍해 보일 정도였다.

“빨리 떠나. 다신 여기로 찾아오지 말고.”

“네… 네네!!”

“옙…!!”

쓰러져 있던 사내들이 하나둘 몸을 일으켜 동료들을 챙겼다.

그러는 동안 아시테르는 바닥에 두었던 술병을 들어 자리를 떠났다.

“아저씨!! 갈 곳 없거나 아니면 돈 없어서 술도 못마실 때 꼭 다시 여기로 와요!”

레오니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시테르는 가볍게 손을 들어 그의 인사를 받아 주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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