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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297화 (297/424)

297화 햇살

레오니르는 작금의 상황이 선뜻 이해가 되질 않았다.

부상을 당한 그는 어떻게 해서든 일거리를 찾아다녔다.

그러나 한쪽 팔을 못 쓰게 되면서 할 만할 일을 구하는 것은 어려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로 포기할 순 없는 노릇.

가족들이 먹고 살려면 일은 꼭 필요했다.

율리아 혼자선 턱없이 부족한 상황.

드레베스도 나서서 일을 돕겠다 말했지만, 아직 드레베스와 루에테는 교육이 필요한 나이였다.

자신처럼 배우지 못해 선택권이 없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더 배워서 하고 싶은 일들을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오늘도 그는 일거리를 찾아 나서기 위해 마을을 돌아다녔다.

다행이 만테스의 압박이 사라지면서 마을 사람들은 딱한 사정의 레오니르 가족을 도와주었다.

그렇게 소일거리들을 얻고 와 다행이다 생각했는데 집에 와보니 웬걸, 반가운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것도 이곳과는 어울리지 않는 엄청나게 아름다운 여인이랑…….

드레베스가 아시테르를 경계했다.

“아저씨… 설마 여자분을 납치한 건 아니죠?”

“내가 그럴 이유가 어디에 있냐…….”

“그럼 혹시 약점 같은 것 잡았어요?”

드레베스의 물음에 아시테르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 반응이 재밌었는지 린이 쿡쿡 거리며 웃었다.

게다가 그녀는 한술 더 떠서 반응해주었다.

“제 약점 잡았잖아요?”

“네? 제가 언제요?”

아시테르가 놀라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렇게 당황하는 모습이 더욱 그녀를 재밌게 만들었다.

린은 일부러 슬픈 표정을 연기했다.

이를 확인한 드레베스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소리쳤다.

“이 아저씨 좋게 봤는데… 아니 그렇게 안 봤는데……!”

“까불지 말고 자리에 앉아 드레베스. 너 지금 네가 무슨 말을 하는 지도 모르지?”

“아니 형! 지금 그럴 상황이 아니라니까?”

“딱 봐도 지금 두 분이 장난치고 있는 거잖아.”

레오니르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뒤편에선 루에테의 작은 한숨이 들려온다.

“루에테 너까지……?”

드레베스가 다시 린쪽을 바라보았다.

저렇게나 예쁜 사람이 거짓말을 할 리가 없다.

그런데 이제 보니 그녀의 표정이 너무나 편안해 보였다.

“엥…….”

“그나저나 아저씨. 여기는 무슨 일로 다시 오신 거예요?”

레오니르가 아시테르를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렇게 떠나가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줄로만 알았다.

헌데 이렇게 다시 보니 반갑긴 했다.

린이 그런 레오니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를 보고 있으니 이제야 아시테르가 자신을 왜 이곳으로 데려왔는지 알 것 같았다.

린이 몸을 일으켜 레오니르의 가까이로 다가갔다.

그녀가 갑자기 다가오자 레오니르도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태어나서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은 레오니르도 처음이었다.

말을 걸기가 부담스러울 정도.

그녀는 말없이 레오니르의 팔을 들어 올렸다.

신경이 끊겨 힘없이 달랑거리던 손이다.

“잠깐만 살펴볼게.”

린이 그런 레오니르의 팔을 훑어보았다.

다행이 아직 재생 능력이 남아 있었다.

그녀가 레오니르를 보며 웃었다.

“운이 좋은 친구네.”

“예……?”

린이 손을 가져가 레오니르의 팔에 얹었다.

곧 따스한 빛이 레오니르의 팔에 스며들었다.

“어……?”

레오니르가 놀라기도 전에 그의 팔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분명 푸르스름한 빛을 띠던 팔이 다시금 혈색이 돌았다.

레오니르가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제 팔을 한 번 움직여 볼래?”

린의 말에 레오니르가 팔을 움직여 보았다.

아무생각 없이 움직여 오던 팔을 이번에는 작위적으로, 의식적으로 움직여 보았다.

그런데 움직여진다.

잃어버렸던 감각을 찾았다고 말하기가 무색하리만치 원래 알고 있던 것처럼, 마치 평소 그랬던 것처럼 아무 일 없듯 팔이 움직였다.

이를 본 율리아가 순간 눈시울을 붉혔다.

“오빠……”

“율리아… 나 팔이 움직여…….”

“형!! 혀엉!!!!”

감격한 동생들이 한달음에 달려와 레오니르의 품에 안겼다.

레오니르도 얼떨떨한 표정으로 동생들을 끌어안았다.

이제 두 팔을 벌려 동생들을 안을 수 있게 되었다.

정말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리고 이런 일이 너무도 갑작스럽게 벌어져 어안이 벙벙했다.

레오니르가 두 눈을 꿈뻑거리며 아시테르를 쳐다보았다.

“내가 아는 가장 실력 있는 치유 마도사야.”

아시테르가 린을 가리키며 말했다.

린은 부끄러운 듯 괜히 시선을 피했다.

“와아… 치유 마도사라니…….”

어지간한 돈으로는 모시지도 못한다는 귀한 직업이었다.

이런 가난한 동네에서는 당연히 구경조차 할 수 없다.

그런 치유 마도사가 현재 레오니르의 집에 있었다.

린은 눈에 보이는 드레베스의 상처들도 덩달아 치료해 주었다.

“우와아아──!!”

상처가 사라지는 것을 본 드레베스가 잔뜩 흥분해 소리쳤다.

율리아의 얼굴에도 흉터가 남아 있어 린이 그것을 없애 주었다.

그때 누군가 쪼르르 다가와 린의 옷깃을 붙잡았다.

“언니… 혹시 저도 봐주실 수 있어요……?”

루에테가 그녀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 모습이 너무도 귀여워 린이 웃으며 루에테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얼마든지.”

루에테는 자신의 팔꿈치에 난 작은 상처를 보여 주었다.

아마 상처가 아팠던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언니오빠들을 보며 부러운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것을 잘 알았기에 린이 루에테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

그러다 무언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음……?”

마력을 사용하던 린이 루에테의 몸을 살폈다.

그녀의 몸안에는 신기하게도 마력이 흐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 흐름이 조금 특이했다.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마력의 흐름이 역행하고 있었다.

보통 이렇게 되면 순리를 거스르는 것이라 몸의 상태가 불안정하게 마련인데 놀랍게도 루에테의 몸은 밸런스가 잘 맞아 있었다.

워낙 특이한 케이스의 몸이라 린이 그녀를 다시 보았다.

린의 반응을 살핀 레오니르가 순간 겁을 집어먹었다.

혹시나 막내 동생인 루에테에게 무슨 안 좋은 일이 생긴 건 아닌가 싶어 걱정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린의 입에서 나온 말은 예상과는 전혀 다른 말이었다.

“혹시… 마법을 배워볼 생각은 없니?”

“네? 마법이요……?”

린의 입에서 튀어나온 충격적인 말에 레오니르는 물론 율리아와 드레베스까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반면 루에테는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해 할 뿐이었다.

린이 손을 펼쳤다.

그녀의 손아귀에서 흘러나온 마력이 곧 꽃의 형상을 이루었다.

“마법을 배우면 이런 것도 할 수 있다?”

“와아…….”

환하게 웃은 루에테가 꽃을 바라보았다.

원래 이런 걸로 아이를 꼬드기는 것은 어른이 되어 조금 치사한 일이지만, 그만큼 린은 루에테에게 마법을 가르쳐보고 싶었다.

역행하는 흐름이 만들어 내는 마법.

과연 그 마법은 어떤 힘을 가질 수 있을까.

“그런데 저희는 그럴 돈이……”

“돈은 필요 없어요.”

“예? 하지만 마법을 배우려면 막대한 돈을 내야 한다고 들었는데요…….”

“괜찮아요.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배울 수 있도록 해줄게요. 꼭 마법이 아니더라도.”

린이 남매 모두를 바라보았다.

“네 사람 모두.”

그녀의 말에 사남매가 서로를 쳐다보았다.

대관절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그보다 린의 말이 너무도 파격적이고 충격적이라 이걸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고민되었다.

마냥 거짓으로 치부하기엔 린의 마법을 눈앞에서 목격했다.

거기다 아시테르와 함께 온 사람이니 나쁜 사람은 아닐 거란 생각이었다.

드레베스가 슬쩍 손을 들었다.

“그… 혹시 싸움도 배울 수 있습니까?”

“싸움?”

린이 두 눈을 깜빡거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자고로 싸움을 잘해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저는 싸움을 잘 하고 싶습니다!!”

“싸움을 잘해서 뭘 하려고요?”

린의 물음에 드레베스가 자신 있게 말했다.

“제가 제일 강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요!”

“아하… 그런 이유였구나……?”

린이 슬쩍 아시테르쪽을 쳐다보았다.

아시테르가 강해지겠다고 한 이유는 늘 같았다.

약자들을 보호하고 마수들로부터 인간들을 지키기 위해.

실제로 그는 많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

물론 한때는 서로 뜻이 맞지 않아 대립하기도 했다.

그때도 아시테르는 무언가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신념에 맞게 행동했을 뿐이다.

‘이렇게 생각해보니… 아시테르는 일찍 철든 편이었구나…….’

보통 드레베스와 같은 생각을 하고 덤벼드는 사내들이 많을 것이다.

그녀의 시선이 레오니르에게로 향했다.

“동생분이랑 같은 생각인가요?”

“저어… 그럼 혹시 검술도 배울 수 있나요?”

“물론이에요. 어렵지 않아요.”

린의 답에 레오니르가 그녀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갑자기 그가 무릎을 꿇자 린은 물론 아시테르도 놀랐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저는 검술을 배우고 싶습니다.”

“이유는요?”

“강해지고 싶어요. 강해져서 제 가족들을 지키고 싶습니다.”

고개 숙인 레오니르의 두 눈에서 닭똥 같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것은 린을 감동시키기 위한 감정 연기가 아니었다.

그동안의 세월과 경험에서 비롯된 쓰라림이 담긴 눈물이었다.

이를 알아본 린이 아시테르를 돌아보았다.

“갑자기 나를 왜…….”

“검술이라면 당신이 알려 주는 것이 낫지 않겠어요?”

“무리에요… 나는 더 이상…….”

“검술의 형과 식을 알려주는 데엔 무리가 없잖아요?”

“…….”

“할아버님께도 처음 그렇게 검을 잡는 법을 배웠다면서요.”

린이 환하게 웃었다.

그녀는 과거 아시테르가 했던 말들을 잘 기억하고 있었다.

아시테르도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끝내 고개를 끄덕였다.

린은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기 위해 선뜻 나섰는데, 자신도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거기다 검술의 기초를 알려 주는 것이라면 문제없었다.

문제는 이러한 것들을 어디서 하느냐는 것인데…….

린이 마침 아시테르를 바라보고 있었다.

“괜찮으면 이 아이들과 함께 나랑 같이 갈래요?”

“…그래도 괜찮아요?”

“물론이에요.”

“이거 너무 폐만 끼치는 건 아닌지…….”

“걱정 말아요. 당신과 관련된 거라면 하나도 폐가 아니니까.”

이렇게 말해 주는 린이 너무 고마웠다.

그때 그녀가 아시테르의 곁으로 다가와 물었다.

“저 아이들이죠? 당신이 술만 마시면서 돌아다닐 때 당신을 보살펴 준 사람들이.”

린의 물음에 아시테르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참, 표정이 솔직한 사내였다.

자신의 생각이 들어맞다고 생각한 린이 미소를 보였다.

아시테르가 슬쩍 멋쩍어 하며 말했다.

“그게… 이 아이들에게 신세를 좀 졌어요.”

“그럴 줄 알았어요. 그렇지 않았으면 저를 이리로 데리고 오지도 않았겠죠.”

“크흠…….”

아시테르가 일부러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했다.

그때 율리아가 부엌으로 가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누나 갑자기 뭐해?!”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 그래도 오랜만에 찾아오셨는데 아저씨가 좋아하는 요리라도 좀 해드리려고.”

아시테르가 좋아하는 요리라는 말에 린의 귀가 쫑긋 섰다.

그녀도 잘 모르는 사실이었다.

맛있게 퍼지는 냄새에 아시테르가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좋아하는 요리가 있었어요?”

“아 그게… 율리아가 워낙 음식 솜씨가 좋아서요.”

“음식이면 그냥 다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이 있었구나……?”

“율리아가 해주는 오리 요리가 또 그렇게 맛있어요…….”

“그랬단 말이죠…….”

린이 슬쩍 눈을 흘겼다.

그러자 아시테르가 괜히 눈치를 살폈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며 레오니르가 피식 웃었다.

그동안 아시테르를 꽤 오랫 동안 봐왔지만 저렇게 편안한 표정을 짓는 것은 처음 본다.

이 집으로 초대했을 때도 아시테르는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린의 옆에선 햇살에 얼음이 사르르 녹아버린 것처럼, 편안하고 부드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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