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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302화 (302/424)

302화 돌아온 어비스 던전

아시테르가 우뚝 멈춰섰다.

어느덧 어비스 던전 근처에 도달했다.

어렸을 때부터 자라온 곳이라 그런지 주변 풍경만 봐도 익숙함이 느껴졌다.

이는 세아츠리스도 마찬가지.

아시테르가 있던 어비스 던전은 마녀숲 근처였기에 세아츠리스에게도 이곳은 익숙한 장소였다.

린도 함께 주변을 둘러보다 말했다.

“여기인가요?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곳이?”

“네. 아마 이쯤일걸요?”

세아츠리스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러고보니 정말 이쯤이었다.

마녀숲을 떠나와 아름다운 꽃과 나비에 이끌려 어디로 왔는지도 모를 때, 세아츠리스는 처음 아시테르와 만났다.

그날 세아츠리스가 위험에 빠졌을 때도 아시테르는 주저없이 그녀를 도와주었다.

아시테르가 아니었다면 세아츠리스는 지금쯤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 기억 덕분에 세아츠리스도 다른 마녀들과 다르게 인간을 싫어하지 않을 수 있었다.

만약 아시테르와의 추억이 없었더라면, 그녀 역시도 다른 마녀들의 말에 이끌려 인간을 싫어했을지도 모른다.

“두 사람만 아는 추억이라… 부럽네요.”

“린 언니도 있지 않나요? 아시테르 오빠랑 둘이서 화적단이랑 싸웠다면서요?”

“아…….”

린으로선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다.

슬프면서도 아련했던…….

그래서 아시테르가 더더욱 기억에 남았던 기억이었다.

두 사람이 추억 얘기로 젖어들고 있을 때, 아시테르는 홀로 익숙하면서도 그리운 감각을 느끼고 있었다.

“마력이 있어야만 가능했던 것은 아니었구나…….”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자신은 어비스로 통하는 길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지금 눈앞에 있는 것처럼.

“와아… 방금 어떻게 한 거예요……?”

곁에서 지켜보던 린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아무것도 없던 아시테르의 앞에 칠흑빛의 던전게이트가 나타났다.

이미 몇 번 본 적 있었던 세아츠리스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아시테르가 거침없이 게이트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린과 세아츠리스도 그 뒤를 따랐다.

오랜만에 들어온 어비스 던전.

어두컴컴한 분위기에 습한 공기는 여전했다.

내부를 둘러보며 아시테르가 인상을 썼다.

게이트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그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줄곧 살아왔던 곳이기 때문에 어비스 던전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

그런데 이상한 점이 눈에 띄었다.

이곳은 자라나는 꽃과 풀이 있어 비체가 늘 관리하던 곳이었다.

헌데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것은 무성하게 자라난 풀과 꽃이었다.

아무렇게나 듬성듬성 자라있는 것을 보니 최근까지 관리를 안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자연스레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혹시 두 분께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어비스 던전에 관한 일이라면 사실 마음을 놓고 있었다.

아시테르가 알기로 이 세상 가장 강한 사람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였다.

두 사람이 어비스 던전에 있기 때문에 이곳은 걱정 없을 것이라 ‘당연’시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득 이제와 다시 생각해 보니 두 사람이 이곳을 지켜야 할 만큼 어비스 던전도 위험하기 짝이 없는 장소였다.

“왜 그래요?”

아시테르의 반응이 이상하자 린이 다가와 물었다.

덩달아 아시테르의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

“아버지와 할아버지께도 무슨 일이 생겼나봐요…….”

“네? 그럴리가요. 두 분께서는 당신이 인정할만큼 강한 분들이 아닌가요?”

“맞아요… 하지만 그만큼이나 이곳도 위험한 장소에요.”

“일단, 우리도 좋은 상황은 아닌 것 같네요.”

세아츠리스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어느새 그들을 중심으로 마수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녀는 곧바로 마법을 사용했다.

그녀를 중심으로 뻗어간 가시덤불이 덮쳐오는 마수들을 막았다.

이어 아시테르가 허리춤의 검을 출수했다.

그의 눈빛이 달라졌다.

자연스레 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휘리리리링──!

스걱!!

다가오는 마수의 목을 단숨에 베어 버렸다.

마력이 없더라도 단련된 신체가 있었기에 힘은 부족하지 않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아시테르의 목을 노렸다.

카앙!!

아시테르는 검을 수직으로 세워 송곳니를 쳐냈다.

그는 곧바로 검을 수평으로 움직였다.

검끝이 마수의 뱃가죽을 베었다.

사슴처럼 생긴 마수가 뿔을 앞세워 달려들었다.

아시테르가 발을 박찼다.

허공으로 뛰어오른 그가 가까스로 뿔을 피해 내며 마수의 등에 올라탔다.

푸슉!!

수직으로 내리찍은 검이 마수의 두개골을 뚫었다.

“아시테르!! 조심해요!!”

지켜보던 린이 아시테르를 보며 소리쳤다.

아시테르가 뒤를 돌아본 것도 그와 동시였다.

쿵!!

마수의 마법에 맞은 아시테르가 바닥을 뒹굴었다.

저릿한 통증이 상반신 전체를 덮쳤다.

“크아아악──!”

아시테르가 고통에 바닥을 뒹굴었다.

끔찍한 고통이었다.

린이 늦지 않게 마법을 걸어 주지 않았더라면 정말 큰일날 뻔했다.

“끄읍……!”

고통을 딛고 일어선 아시테르가 다시 검을 들어올렸다.

세아츠리스는 마법으로 수십 마리의 마수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은 고작 다섯 마리도 안 되는 마수들을 상대로 이꼴이었다.

“갈길이 멀었네.”

쓴웃음을 지은 아시테르가 이번엔 마수들을 향해 먼저 뛰어들었다.

오른편으로 다가오는 공격을 피하고 검을 올려친다.

몸을 숙여 다른 공격을 회피한 뒤 검끝을 사선으로 내려쳤다.

보폭을 짧게 내딛으며 마수와의 거리를 과감하게 좁혔다.

아시테르가 빠르게 검을 내질렀다.

푸슉!!

검이 마수의 몸을 꿰뚫었다.

곧바로 검을 회수한 아시테르가 뒤편으로 검을 내질렀다.

촤락!!

아시테르의 뒤를 급습하려던 마수가 검에 찔렸다.

“와아……!”

마치 뒤에 눈이라도 달려 있는 것처럼 움직인 아시테르를 보며 린이 감탄을 터트렸다.

사실 알고 그랬다기보다는 본능에 가까운 움직임이었다.

어비스 던전으로 돌아오니 아시테르의 모든 감각들이 다시 살아나는 기분이었다.

거기다 이곳에 온 뒤로 계속해서 몸 안이 들끓어 오르는 느낌이었다.

쿠웅!!

아시테르의 검에 당한 마수가 쓰러졌다.

굵은 땀이 이마로부터 흘러내렸다.

아시테르가 옆을 돌아보았다.

오자마자 정신없이 마수들이 닥치고 있다.

그나마 세아츠리스가 없었더라면 더더욱 힘든 전투를 치를 뻔했다.

그녀는 단숨에 십수 마리의 마수들을 쓸어버렸다.

이어 세아츠리스의 가시덤불이 린을 보호해 주었다.

린의 포지션은 최후방.

뒤편에서 아시테르와 세아츠리스를 서포트 해주는 중요한 역할이었다.

더군다나 린은 그냥 평범한 치유 마도사가 아니었다.

그녀의 진짜 마법은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린이 본격적으로 마법을 펼치니 아시테르의 몸이 회복되는 것은 물론 힘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이건…….”

“저를 믿고 싸워요.”

린이 아시테르를 보며 말했다.

잊고 있었지만 그녀의 마법엔 신체적 능력을 향상 시켜 주는 마법도 있었다.

아시테르가 다시 검을 말아쥐었다.

확실히 이전보다 힘이 넘쳐나는 기분이었다.

그가 대지를 박찼다.

팡!!

살짝 나아갔을 뿐인데 이전보다 훨씬 더 몸이 가벼웠다.

“어……?”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나아가는 바람에 아시테르가 헛바람을 집어삼키고 말았다.

그래도 이런 속도를 처음 경험하는 것은 아니었다.

마력으로 신체를 강화할 때도 충분히 느꼈던 속도였다.

슈콰아악──!!

아시테르가 단칼에 마수를 베어넘겼다.

속도를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충분히 뒤를 받쳐 주었다.

이에 아시테르가 놀란 눈으로 린을 돌아보았다.

그녀의 마법이 이 정도로 대단한 줄은 몰랐다.

날아갈듯한 가벼운 느낌에 아시테르가 더욱 과감하게 검을 휘둘렀다.

훨씬 더 빨라진 검격이 다채로운 선을 그리며 나아갔다.

그의 검로에 닿은 마수들이 핏물을 뿌리며 쓰러졌다.

린이 그런 아시테르를 보며 눈을 반짝였다.

그깟 마력쯤 없으면 어떤가!

자신의 마법으로 충분히 아시테르의 능력을 보완해 줄 수 있었다.

전투 중에 아시테르가 다치면 곧바로 치유해 줄 수도 있었다.

거기다 세아츠리스의 마법이 아시테르가 좀더 마음껏 활개를 칠 수 있도록 서포트 해주었다.

세 사람이 유기적으로 움직여 몰려든 마수들을 모두 처치하는데 성공했다.

“하아… 하아…….”

아시테르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이렇게 격렬하게 움직인 것도 오랜만이었다.

온몸이 근육통으로 괴로움을 토로했다.

손가락은 경련을 일으키듯 떨렸다.

“겨우 그것 조금 움직였다고 벌써 그렇게 죽는 시늉인게냐?”

그때 먼발치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시테르가 화색이되어 목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할아버지?”

“어쩐지 던전이 소란스럽다 했더니… 손님이 와 있었구먼.”

혀를 차던 비체가 아시테르의 옆을 바라보았다.

한 명은 익숙한 얼굴인데 다른 한 명은 아니었다.

여인을 두 명이나 데려온 아시테르를 보며 비체가 웃었다.

“요놈 보게…….”

“할아버지!!!”

아시테르가 한달음에 달려가 비체에게 안겼다.

그런 아시테르를 감싸 안으며 비체가 한 번 더 혀를 찼다.

“야 이 녀석아! 다 큰 녀석이 이렇게 달려들어 안기면 이 할애비 허리 나간다 이놈아.”

“그간 잘 지내셨어요?”

“그렇게 물어볼 거면 진즉에 던전에 좀 오지 그랬느냐.”

말은 그렇게 해도 비체의 목소리엔 반가움과 정이 뚝뚝 묻어 있었다.

세아츠리스와 린이 비체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하이시아 린이라고 합니다.”

“껄껄 나는 이 녀석의 못난 할애비다.”

비체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아시테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할아버지 근데… 못 보던 사이에 얼굴이…….”

아시테르가 비체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이전과 다르게 그의 얼굴이 한층 야위어 있었다.

비체는 아시테르의 말에 대한 대답 대신 다른 말을 꺼냈다.

“그동안 무얼 하고 지냈던 게냐?”

“아… 그게요…….”

“진작에 이곳으로 오지 그랬느냐… 내 늘 말하질 않았나? 힘들면 언제든 이곳으로 돌아오라고.”

“네… 그렇게 말씀하셨죠…….”

“그런데 이제야 찾아온 게야?”

비체가 아시테르의 볼을 꼬집었다.

다 큰 어른처럼 행동하던 아시테르도 비체 앞에선 여전히 어린 손자였다.

“죄송해요. 제가 너무 늦었죠……?”

“늦긴 늦었지 이눔아… 네 어미는 떠나고 네 아비마저 떠나 버렸으니…….”

“네? 아버지가요……?”

아시테르의 두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유미르마저 잘못되었다는 얘기일까……?

긴장된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비체가 굳어진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잘 들어라 아시테르. 네가 모든 마력을 잃었으니, 너는 이제부터 발도르의 힘을 깨워야 한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나는 이곳에서 네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마력을 잃지 않았다면 발도르의 힘을 일깨워 주는 방법을 일러 주려 했건만… 때마침 네 몸에는 단 한 줌의 마력도 남아 있질 않구나.”

역시나 굳이 말하지 않아도 비체는 대번에 아시테르의 몸에 마력이 없음을 눈치채고 있었다.

아시테르도 딱히 숨길 생각은 없었기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할아버지… 저는 지금 모든 마력을 잃은 상태에요… 정확히 말하면 아버지와 같은 상태에요.”

“그렇지 않단다. 너는 네 아버지보다도 훨씬 더 좋은 상황이다. 이게 다 네 아비의 안배 덕분이지.”

“아…….”

“기억나느냐? 네게도 발도르의 힘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네… 아주 어렸을 때 아버지와 함께 발도르의 힘을 받아들였다는 것은 알고 있어요.”

“그래. 이제부터 너는 그 힘을 일깨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 이곳으로 날 찾아온 것도 있겠지?”

비체가 웃으며 말했다.

역시나 비체는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아시테르의 속을 훤히 다 꿰뚫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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