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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304화 (304/424)

304화 발도르의 힘

비체와 유미르를 만나기 위해 어비스 던전을 찾아온 지 어느덧 3개월이 지났다.

예상했던 기간은 반년이었지만 아시테르에겐 3개월이면 충분했다.

이미 다양한 검술을 익혀둔 데다 신체도 꾸준히 단련해왔기에 아시테르는 이미 준비된 인재나 다름 없었다.

그가 꾸준히 익혀야 했던 것은 영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

헌데 이마저도 아시테르는 곧잘 해내고 있었다.

오히려 마력보다 더더욱 영기를 잘 다루는 수준이었다.

“마치 너를 위해 만들어진 기운 같구나.”

아시테르가 검을 쥔 모습을 보며 비체가 웃었다.

검끝에서 흘러나오는 영기가 영롱한 빛을 발했다.

아시테르가 검을 슬쩍 휘두르자 엄청난 기운이 검끝에서 흘러나왔다.

휘리링──!

콰라라랑!!!!

아시테르가 검을 휘두르자 강한 기운이 바위를 부숴 버렸다.

“이제 얼마나 강해졌는지 알아보러 가 봐야 하는 것 아니에요?”

세아츠리스가 아시테르의 옆에 붙어 말했다.

린도 기대되는 마음이었다.

불길 속에서 홀로 고고히 걷던 아시테르의 모습도 멋있었지만, 저렇게 검을 휘두르는 모습도 멋있을 것만 같았다.

아시테르가 검을 들고 몸을 돌렸다.

“어디 한번 시험해 보거라. 너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네.”

“때마침 마수들도 몰려오고 있구나.”

저멀리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마수들이 보였다.

아시테르가 비체와 함께 수련하는 그동안 세아츠리스와 린이 나서서 마수들을 막아 주었다.

세아츠리스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하는 듯한 표정이었는데, 유독 린은 마수들을 사냥할 때 즐거워 했다.

“제가 있으니까 마음 껏 날뛰어 봐요!”

린이 아시테르의 뒤에 바짝 붙어 말했다.

살짝 상기된 말투였다.

그녀는 처음부터 아시테르에게 자신의 마법을 걸어 주었다.

“고마워요.”

아시테르가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몸이 근질거리던 참이다.

영기를 다루는데 완벽히 익숙해질 때까지 비체는 이 힘을 사용하는 것을 금지 시켰다.

아시테르는 본래 초위급 이상의 마도사였다.

한 분야의 정점을 찍었던 그였기에 기본부터 다시 익히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

거기다 영기까지 다루기 시작하면 기본은 가볍게 여기고 영기의 힘에만 의존할 것 같아 비체가 신경 써준 것이었다.

어쨌든 이제는 기본부터 시작해 다시 차근차근 쌓아 간 상태.

비체 또한 아시테르의 실력을 기대하고 있었다.

두두두두두──!!

마수들이 무리를 이루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다.

마법까지 다룰 줄 아는 오우거종이었다.

아시테르가 검을 들고 마수들의 앞에 섰다.

문득 처음 오르보어와 싸울 때가 떠올랐다.

“그때만큼 긴장이 되네.”

마수를 앞에 두고 이렇게 긴장한 적이 언제였던가.

새롭게 출발하는 자리에서 첫걸음을 떼는 것처럼 설레기도 했다.

후우우웅──!

아시테르의 마음에 반응하듯 영기가 폭사 되어져 나갔다.

그러자 대기가 한 차례 요동쳤다.

“그럼…….”

아시테르가 다리에 힘을 쥐었다.

그가 대지를 박차자 아시테르의 몸이 총알처럼 쏘아져 나갔다.

세아츠리스와 린이 그런 아시테르의 뒷모습을 쫓았다.

파앙!

콰라라라랑──!!

일격을 휘두르자 검기가 대지를 긁었다.

그 앞에 있던 마수들의 몸은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아시테르가 도약해 허공으로 떠올랐다.

쿠웅!!!

검끝에서 흘러나온 검기가 반월을 그리며 수평으로 뻗어갔다.

날카로운 검기에 닿은 마수들의 몸이 형편없이 잘려나갔다.

어지간한 검격으로는 가벼운 상처를 내는게 고작일 정도로 질긴 가죽을 자랑하는 오우거종이었다.

그런데 아시테르의 검 앞에서 그들의 가죽은 그저 얇은 천 쪼가리에 불과했다.

아시테르는 오우거들의 한 가운데에 서서 검술을 펼쳤다.

그의 검이 움직일 때마다 검기가 빗발쳤다.

콰르르르릉──!!

칼날처럼 사방으로 날아간 검기가 마수들의 몸을 난자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린이 두 눈을 반짝였다.

“대단해…….”

“이건 완전 반칙 아닌가요……?”

세아츠리스마저도 놀라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강해졌다곤 해도 아직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엔 무리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헌데 이렇게 지켜보니 아주 불가능할 것 같지도 않았다.

겨우 몇 번의 검격을 봤을 뿐이지만 그 힘이 예사롭지 않았던 것이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린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의 반응을 보며 비체가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이건 아주 당연한 결과였다.

아시테르와 계약한 수호신은 창공의 신.

고대신 중에서도 가장 권위 있는 신이었다.

“녀석의 힘은 저게 다가 아닐게다.”

“네……?”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얘기지.”

“그럴 수가…….”

“그러니 잠자코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비체는 아예 바닥에 앉아 아시테르를 지켜보고 있었다.

세아츠리스도 딱히 자신이 나설 자리는 없을 것 같아 마력을 흐트렷다.

그동안 아시테르는 수백 마리의 오우거들 사이에서 홀로 무쌍을 선보이고 있었다.

그의 검이 번뜩일 때마다 오우거들의 피가 하늘 높이 솟구쳤다.

콰아아앙!!!

빠르게 날아오던 불덩이를 검으로 쳐냈다.

아시테르는 곧바로 검을 수직으로 그어 올렸다.

그러자 뻗어 나간 검기가 오우거들의 몸을 반으로 동강내 버렸다.

아시테르는 넘쳐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연신 검을 휘두르며 검기를 날렸다.

“쿠르르르──!!”

“쿠르엑!!!”

분노한 마수들이 아시테르를 죽이기 위해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이를 본 아시테르의 몸이 제자리에서 회전했다.

동시에 날아간 수많은 검기가 오우거들의 몸을 관통했다.

그 화려한 검술을 보며 린이 절로 박수를 쳤다.

수십 마리의 오우거 시체 위에서 아시테르가 자신의 검을 내려다보았다.

“이 정도였구나…….”

마력을 사용할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검에 영기를 싣는 법은 비체를 통해 배웠다.

아버지인 유미르는 특유의 기운 덕분에 검에 힘을 싣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달빛은 어디에나 머물 수 있다.’

이런 말을 하며 그는 자연스럽게 검에 달빛을 싣는 방법을 깨달았다.

하지만 아시테르는 유미르와 달랐다.

그는 영기를 일깨울 때 다른 것을 자연스레 깨달을 수 있었다.

한꺼번에 몰려드는 오우거들을 보며 아시테르가 손아귀를 펼쳤다.

그의 전신에서 흘러나온 영기가 곧 공간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마력으로 공간을 장악할 때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였다.

그가 무언가를 하려 하자 세아츠리스와 린도 집중하기 시작했다.

비체가 그런 아시테르를 바라보며 웃었다.

“잘 보아라. 저게 진짜 아시테르의 힘일 테니까.”

비체의 말이 끝나자마자 대기가 뒤틀리며 엄청난 굉음을 내었다.

쿠우우우웅!!!!

아시테르를 중심으로 몰려 있던 오우거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마치 강대한 힘이 온몸을 짓누르는 듯 했다.

“취에에에──!!!”

“키엑!! 크에에에에에에에엑!!!!”

오우거들이 다급한 비명을 토해 냈다.

그러나 그들은 점점 더 아래로 짓눌리며 마침내 바닥에 얼굴이 처박히고 말았다.

쿠우웅!!!!!

머리부터 시작해 온 몸이 짓눌린 오우거들이 그대로 절명하고 말았다.

마치 거대한 무언가가 놈들의 몸을 짓밟고 가기라도 한 것처럼, 놈들의 몸이 일그러져 있었다.

순식간에 수십 마리의 오우거들이 죽음을 맞이했다.

아시테르가 다시 손아귀를 펼쳤다.

콰아아앙!!!

대기중에 뻗어나간 힘이 오우거들의 몸을 단숨에 꿰뚫었다.

그 모습을 보며 세아츠리스가 두 눈을 부릅떴다.

분명 무언가가 움직인 것은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십수 마리의 오우거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질 정도로 많은 수임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실로 대단하구나… 이것이 바로 창공의 신의 힘…….”

모든 것들을 아래로 내려다보는 이가 바로 창공의 신이었다.

창공의 신, 아이테르의 힘이 아시테르에게 온전히 깃들어 세상에 현현한 것이다.

아시테르가 움직일 때마다 대기가 요동쳤다.

그 속에서 아시테르가 검을 휘둘렀다.

수십 갈래로 뻗어나간 검기가 나머지 오우거들을 모두 죽여 버렸다.

단칼에 죽임을 당한 오우거들은 비명조차 제대로 내지르지 못했다.

쓰러진 수백 마리의 오우거들을 둘러보며 아시테르조차 믿을 수 없다는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이건 대체…….”

영기를 다루는 법.

그리고 검에 영기를 싣는 방법.

배운 것은 이 두 가지가 전부였다.

그런데 아시테르는 마치 오래전부터 이 힘을 사용해왔던 것처럼 본능적으로 많은 것들을 해낼 수 있었다.

심지어 아직 그가 갖고 있는 힘의 전부를 선보인 게 아닌 느낌이었다.

아시테르가 자신의 손아귀를 쥐락 폈다.

그가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동안 비체가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흘흘… 어떠냐? 너도 모르게 네 안에 깃들어 있던 힘을 정면으로 마주한 기분이.”

“경이롭다 못해… 무서울 정도에요.”

“그래. 네 힘은 그야말로 경이로운 수준이다. 유미르도 강했지만 너는 유미르보다 훨씬 더 강해질 거야.”

“제가요……?”

“물론이다. 발도르의 영웅들을 여럿 봐왔지만… 아무래도 네가 그들 중 제일이 될 것 같구나.”

비체가 환하게 웃으며 아시테르의 어깨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제야 마음 놓고 그가 본래 하려던 것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이 아시테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였다.

나머지는 스스로 깨달으며 강해지고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비체의 시선이 린과 세아츠리스에게로 향했다.

다행이 아시테르의 곁에는 이 두 사람이 있었다.

그러니 외롭지는 않을 것이다.

“아시테르야.”

“네. 할아버지.”

새로운 힘을 느끼며 잔뜩 상기된 아시테르가 비체를 돌아보았다.

헌데 그의 표정이 아까와 다르게 조금 굳어 있었다.

“네게 할 말이 있다.”

“말씀하세요. 할아버지.”

“전에 내가 네게 말한 적이 있을 거다. 아포칼립스 문을 더욱 강하게 봉인하기 위해 나의 근원을 쏟았다고.”

“네. 그래서 이렇게 수척해지신 모습이잖아요.”

“후후 그래.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제 얼마 살아가지 못할 거다.”

“네……?”

비체의 말에 아시테르가 놀란 토끼눈이 되었다.

그의 반응을 살피며 비체도 곧 씁쓸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아레나도 죽고 유미르마저 아포칼립스 문 저편으로 가버린 마당에…….

자신마저 얼마 살 수 없게 된 처지가 너무나도 안타까운 것이다.

본래 언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았는데, 이제와 아쉬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아시테르가 훗날 사랑하는 여인과 혼인하여 아이를 낳고 잘 사는 모습도 보고 싶었다.

그러나 이미 늦어 버리고 말았다.

과한 생명력을 쏟아부은 탓에 비체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얼마 남지 않은 생명력조차 세상을 위해 사용할 생각이었다.

“나는 이제부터 봉인진에 앉아 깊은 잠에 빠져들 생각이다.”

“할아버지…….”

“놈들의 힘은 무척이나 강해지고 있어. 언젠가 다시 아포칼립스의 문이 열릴지 모르겠구나.”

“그때는…….”

“그래. 그때는 네가 놈들을 막아야만 한다. 어쩌면 그날은 인류의 존망을 건 전쟁이 시작될지도 모르겠지.”

“알겠습니다 할아버지…….”

“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이해했지?”

“네…….”

아시테르가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살포시 다가가 비체를 껴안았다.

“에잉? 징그럽게 이게 무슨 짓이냐.”

“잠시만 이러고 있을게요.”

아시테르가 다가와 안겼지만 비체도 싫은 표정은 아니었다.

그는 말없이 웃으며 아시테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너는 잘 해낼 수 있을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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