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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전에서 왔습니다만-306화 (306/424)

306화 실력 겨루기

아시테르와 카이드는 곧바로 넓은 평야로 자리를 옮겼다.

시야가 탁 트일 정도로 넓은 평야에서 두 사람이 마주섰다.

긴장감이 돌거나 그런 것은 없다.

“뭐 잴꺼 있어? 바로 시작해 볼까?”

카이드가 창을 겨누며 말했다.

아시테르도 조용히 검을 들어올렸다.

눈앞에 있는 상대는 지금까지 상대해 온 마수들과는 다르다.

당장 흘러나오는 기세만해도 달랐다.

두 사람을 말릴 것 같이 보이던 가이우스도 이번엔 꿈쩍도 않고 자리에 섰다.

이를 보고 이상하게 여긴 린이 물었다.

“어째서 이번에는 말리지 않으시는 건가요?”

“물론입니다.”

“어째서요?”

“주군의 뜻이니까요.”

“아… 두 분 사이에 신뢰가 정말 두터운 모양이네요.”

가이우스는 곧 시작되려는 싸움을 지켜보았다.

마력을 모두 잃은 아시테르에겐 어떠한 힘이 남아 있을까.

사실 가이우스 입장으로서도 그 힘을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아시테르가 얼마만큼의 힘을 지녔느냐에 따라 자신이 어떤 포지션으로 있어야 할지 감이 잡힐 것이다.

먼저 움직인 것은 카이드였다.

그의 창이 아시테르를 향해 날아갔다.

아시테르가 슬쩍 몸을 움직여 창격을 피해 냈다.

“흐음…….”

가이우스가 두 눈을 반짝였다.

단순히 아시테르가 창격을 피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창을 내지른 사람이 단순하지가 않았기 때문.

카이드도 조금은 놀란 눈치였다.

“역시…….”

창이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하나에서 둘, 둘에서 셋으로 갈라진 창이 동시에 아시테르를 노렸다.

모두 피하기엔 무리가 있는 공격이었다.

아시테르도 이번엔 검을 들어 창격을 막아 내었다.

콰아아앙!!!

창과 검이 부딪히며 엄청난 굉음을 터트렸다.

아시테르의 검을 확인한 카이드가 금방 웃음을 보였다.

“으하하하!! 뭐야 이 힘은?!”

검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카이드의 마기를 밀어냈다.

마기가 칠흑빛을 뿌리며 세를 뻗치려 해도 아시테르의 검끝에 있는 빛이 마기를 막아내었다.

검과 창이 순식간에 수십번이나 부딪혔다.

카이드의 쏟아지는 창격에도 아시테르는 침착하게 검을 휘둘러 창을 막아 내었다.

“근데 그렇게 수비만 하고 있어도 괜찮겠어?”

“그렇지 않아도 이제 공격 좀 해보려고.”

아시테르가 손목을 비틀어 검을 회전시켰다.

창을 타고 흘러들어간 검끝이 카이드를 노렸다.

“와우?!”

놀란 카이드가 일부러 과장된 몸짓을 보이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아시테르의 검은 목표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카이드에게 따라붙었다.

콰르르릉!!!

검기가 날아가 카이드를 때렸다.

창을 수직으로 세운 카이드가 검격을 막아 냈다.

마기가 크게 일렁거렸다.

뒤이어 불어닥친 기운에 순간 몸이 휘청거릴 정도였다.

“뭐냐 이 무지막지하게 강한 기운은?”

그러나 아시테르의 검기는 멈추지 않았다.

수십 갈래로 뻗은 검기가 카이드의 전방위를 덮쳤다.

아시테르의 검술을 확인한 카이드가 입꼬리를 말아올렸다.

“오우야. 검술 실력이 이 정도였다고?”

카이드가 창을 어지러이 휘둘렀다.

회전하는 창에서 마기가 물결처럼 퍼져 나와 아시테르의 검기를 쳐냈다.

카이드는 곧바로 자세를 낮춰 창을 수평으로 세웠다.

“어디 한 번 이것도 받아보던지.”

슈우우웅──!!

콰아앙!!!!

직선으로 뻗어 나간 창이 아시테르의 몸을 관통하는 것처럼 보였다.

뒤이어 밀려오는 마기가 해일처럼 몸을 일으켜 아시테르를 덮쳤다.

그 광경을 본 가이우스도 두 눈을 부릅떴다.

카이드가 강한 줄은 알았는데 이렇게까지 강할 줄은 몰랐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아시테르의 대처였다.

아시테르는 카이드의 일격을 정면에서 받았다.

강한 힘 때문에 아시테르의 몸이 조금씩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아시테르는 피하려 들지 않았다.

결국 카이드의 공격을 정면으로 받아 낸 아시테르가 검을 사선으로 내렸다.

“허?”

카이드도 놀라 움직임을 멈췄다.

이만한 공격을 가했는데도 아시테르에게 별다른 타격을 입히지 못한 것이다.

이 정도면 이전보다도 더욱 강해진 느낌이었다.

“어우… 더 괴물이 돼서 왔네 아주 그냥.”

“이번엔 내 차례다?”

아시테르가 자세를 고쳐잡았다.

까짓 거 한 번 막아 주겠다.

카이드도 이런 생각으로 창을 기울이며 자세를 취했다.

아시테르에게서 막대한 기운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이를 마주한 카이드도 전력을 다해 마기를 끌어올렸다.

아시테르의 기운이 대기를 장악했다.

무거워지는 공기에 카이드가 두 눈을 부릅떴다.

단순히 막대한 기운이 그를 압박하기 때문은 아니었다.

정말로 공기가 무겁게 자신을 짓누르는 느낌이었다.

“뭐야 이건……?”

뒤이어 아시테르의 검에서 한줄기 빛이 폭사되어져 나왔다.

그 빛을 본 카이드도 이를 악물었다.

엄청난 일격이 올 거다.

그런 생각과 함께 아시테르의 검이 움직였다.

하늘 높이 솟아오른 빛의 검이 카이드에게로 떨어졌다.

그 위세는 마치 하늘마저 반으로 가를 듯했다.

카이드가 창을 위로 올려쳤다.

창에서 흘러나온 마기가 커다란 아가리를 벌리며 하늘로 승천했다.

콰르르르르르르릉───!!!

마치 벼락이 내려치는 것처럼 커다란 굉음이 대기를 찢었다.

이어 부딪힌 마기와 영기가 한데 뒤엉켰다.

빛의 검은 칠흑빛 마기마저 뚫고 대지로 떨어졌다.

콰아아아앙!!!

거센 강풍이 불고 뿌연 먼지가 순식간에 대기를 휩쓸었다.

순간 아무것도 보이질 않을 정도였다.

팔로 얼굴을 막고 눈을 게슴츠레 뜬 린이 카이드 쪽을 살폈다.

“와씨… 나 진짜 죽을 뻔했네.”

다행이 카이드의 장난스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핏물을 뚝뚝 흘리는 그가 뿌연 먼지 속에서 걸어 나왔다.

아시테르도 반대쪽에서 걸어왔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시테르 또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어땠어? 좀 놀랐나?”

“솔직히 좀 놀랐다. 그 와중에 공격을 가할 줄은 몰랐거든.”

“내가 이런 사람이야.”

“그래. 너는 그런 녀석이었지.”

“그나저나… 미친 듯이 강해졌네 우리 대장.”

“어때? 이제 다시 따를 마음이 생겼어?”

“말해 뭐해? 나는 당신 꺼니까 마음대로 써.”

카이드의 말에 아시테르가 질색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카이드가 입꼬리를 쓸쩍 말아 올렸다.

“왜?”

“표현을 꼭 그렇게 해야겠냐?”

“으히히히, 쑥스러워 하기는.”

카이드가 창을 놓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으아… 그나저나 진짜 아파 죽겠네. 이럴 땐 엔류아가 보고 싶다니까.”

그때 린이 손바닥을 펼쳤다.

그녀의 마력이 카이드에게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를 본 카이드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어?”

“치료해 줄게요.”

“어어어어?”

카이드가 린의 마법을 보며 반색을 표했다.

“치유 마도사였잖아?”

“린은 그냥 치유 마도사가 아니야.”

“그럼?”

“나중에 알 수 있을 거야.”

“이거 또 흥미가 진진해지네.”

카이드가 린과 아시테르를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보아하니 이미 서로의 감정이 시작된 지 오래된 상태.

“그르네. 이게 좀 딱 어울리겠다.”

“뭐가?”

“한 명은 검을 들고 전방에서 싸우고 한 명은 뒤에서 보조해 주고. 이상적인 부부다!”

“시끄러 이 녀석아.”

“그나저나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카이드의 물음에 아시테르가 린을 바라보았다.

“일단은 웨스트 왕국으로 가려고.”

“거기는 왜?”

“그곳에서 다시 시작할 것 같아.”

“흐음… 이스트 왕국으로는 돌아가지 않는 건가?”

“일단은.”

“뭐… 그게 대장의 생각이라면 그렇게 하자고.”

카이드가 몸을 일으켰다.

아까보다 이상하게 몸이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한 번 더 싸워도 되겠는데?”

“시끄러.”

“오케이!”

카이드의 반응을 보며 린이 쿡쿡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이번엔 아시테르가 신기하다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게 그렇게 웃겨요?”

“네. 되게 특이하면서도 재밌는 분이시네요.”

카이드가 손을 슬쩍 들었다.

그리곤 입술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저 이래 보여도 굉장히 무서운 사람인데요.”

“네? 아 네… 그럼 조심할게요.”

“아니 뭘 또 그렇게까지 진지하게…….”

카이드와의 실력 겨루기도 끝났으니 이제는 정말로 웨스트 왕국으로 향할 차례였다.

그녀가 어비스 던전에서 나왔음에도 쉐도우 호위단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곁을 지킬 뿐이었다.

이전에는 몰랐지만 지금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쉐도우 호위단이 린의 먼발치에서 그녀와 함께 하고 있음을 말이다.

어쨌든 아시테르 일행은 이 길로 곧장 웨스트 왕국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왕성으로 돌아온 린에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아직은 세력 다툼 중이라 그녀를 기다리는 자들이 많았다.

그들 모두 공주의 편에 서서 힘을 실어 주는 이들이었다.

“지나치게 오래 자리를 비우셨습니다. 공주님.”

“그동안 별 일 없었나요?”

“공주님이 오래 자리를 비우신 일이 바로 그 ‘별일’입니다.”

“미안해요 펠렉슨 경.”

“그보다… 무슨 일로 이렇게 오래 자리를 비우신 겁니까?”

“훌륭한 인재를 찾느라 늦었어요.”

“훌륭한 인재요?”

펠렉슨이라 불린 사내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가 자신의 수염을 매만지며 린의 뒤편에 서있는 사내들을 바라보았다.

한 사내는 덩치가 굉장해 눈에 띄었다.

다른 한 사내는 기다란 무언가를 등에 메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사내는 일전에도 보았던 사내였다.

린이 갑작스럽게 외출해 이곳으로 데려왔던 사내.

그의 존재를 펠렉슨은 탐탁치 않아 했다.

“또 저 자와 어울리신 겁니까?”

“무례해요. 그런 말투는.”

“언짢으셨다면 죄송합니다 공주님. 하지만… 일국의 공주이신 린님께서 저런 사내들과 어울린다는 소문이 돌기라도 하면..”

“저야 좋은 일이죠.”

“예…? 공주님…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대체 어느 방향으로 좋은 일이라는 말씀이십니까……?”

펠렉슨은 당최 린의 말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러나 린은 피식 웃으며 아시테르를 가리켰다.

“제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줄 거거든요.”

“흐음…? 저 사내가 말입니까?”

“네.”

“대체 어느 부분에서 말입니까? 제 눈에는 그저 평범하고…….”

펠레슨이 눈매를 좁혔다.

덥수룩하게 기른 수염, 지저분하게 자란 머리카락.

옷 또한 아무거나 걸친 느낌이었다.

품위라곤 눈 씻고 찾아볼 수도 없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저 사내를 불편해하는 중이었다.

린의 특별 지시로 그를 상대하러 들어갈 수 있는 사람도 없으니…….

헌데 린이라는 사람은 결코 허투루 말을 내뱉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 말은 즉, 린이 이런 말을 하는 이유가 있을 거라는 얘기였다.

“말씀해 주십시오.”

“기다려 봐요. 다들 제가 왜 이 분을 데려왔는지 궁금했죠? 이제부터 알 수 있을 거예요!”

“부디 그런 날이 빨리 찾아왔으면 좋겠습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공주님의 곁에서 저 사람을 떼어놓고 싶으니까요.”

펠렉슨이 슬쩍 자신의 속내를 내비췄다.

그러자 린이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아, 그리고 현재 카일리어님께서 와계십니다.”

“카일리어가요?”

“네. 공주님께서 돌아오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곧장 찾아온 모양입니다.”

“아아.. 그랬군요..”

펠렉슨이 슬쩍 아시테르 쪽을 의식하며 말했다.

“앞으로 공주님과 잘 될 수도 있는 분입니다. 그러니 대함에 있어 소홀함이 있어선 아니됩니다. 공주님도 아시다시피 카일리어님께서는 폴레리아스 가문의 미래를 이끌어가실 분입니다. 공주님께 이만큼이나 어울리는 분이 없습니다.”

“카일리어가 제게 어울리는 사람인가요?”

“물론이죠! 가문이면 가문! 실력이면 실력! 외모면 외모!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게 없는 분 아닙니까?!”

펠렉슨이 살짝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다 뒤편에 있는 사내들을 보고 괜히 헛기침을 했다.

“아무튼 곧바로 카일리어님을 만나 뵙고 오시죠.”

“돌아가라고 해요.”

“네?”

“돌아가라고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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