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8화 적응 (2)
카이드에게 잔뜩 겁을 집어먹은 보로스는 작전 내내 이렇다 할 명령을 내리지 못했다.
사실 그가 명령을 내릴 필요도 없었다.
아시테르는 홀로 서서 주변 기사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펴보고 있었고, 카이드는 고블린 따위에게 창을 사용하는 것도 아깝다며 아시테르의 곁에 있었다.
가이우스만이 앞으로 나가 고블린들을 처리했다.
보로스는 가이우스의 무력을 보며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체격만 봐도 상당히 힘이 셀 거라 생각은 했지만 주먹으로 저 많은 고블린들을 후두려 팰 정도일 줄은 몰랐다.
심지어 어지간한 무기로는 가이우스의 몸에 상처조차 내지 못했다.
보로스가 아시테르를 향해 슬쩍 물었다.
“저어... 혹시 뭐하던 사람들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저희는… 기사입니다.”
잠시 말을 멈추었던 아시테르가 말을 마치며 웃었다.
과거라면 이스트 왕국의 마법기사라 자신감 넘치게 말했을 텐데 이제는 그럴 수 없다.
그렇다고 웨스트 왕국의 기사라는 말이 입에 착 달라 붙는 것도 아니었다.
어쨌든 고블린 소탕은 순조로왔다.
애초 아시테르 일행이 고작 고블린을 상대하러 온 것이 말이 안 되었다.
그러나 아시테르 일행은 이후로도 고블린뿐만 아니라 오크나 다른 하급종 마수들을 상대하는 데에 불려갔다.
이에 카이드가 눈살을 찌푸리며 아시테르를 바라보았다.
“설마 계속 이럴 건 아니지?”
“당연한 말을. 이제부터 시작해야지.”
아시테르가 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상급종 마수를 처리하는데 지원자를 뽑는 벽보가 붙어 있었다.
아시테르는 곧장 벽보를 들고가 이곳에 지원했다.
아직 아시테르 일행이 기사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안내원은 조금 미심쩍은 눈초리를 보냈다.
“괜찮으실까요? 상당히 강한 마수라 위험하실 텐데…….”
“네. 괜찮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편입해드릴게요.”
아시테르 일행은 순조롭게 토벌대에 합류가 되었다.
제법 강한 마수들을 상대하러 간다는 말에 린이 눈을 빛냈다.
“그렇게나 좋아요?”
“설레잖아요.”
린의 답에 아시테르가 웃었다.
그들이 향한 곳은 트리톱스라는 마수들이 사는 곳이었다.
최근 웨스트 왕국에도 마수들의 출현이 잦아졌는데, 트리톱스라는 마수들 또한 최근에 출현한 마수들이었다.
놈들은 어마한 양의 곡식을 먹으며, 이마에 돋은 거대한 뿔로 사람들을 무차별로 죽였다.
이에 귀족들이 토벌대를 편성한 것이다.
처음 보는 마수를 보며 이번엔 아시테르가 눈을 반짝였다.
“저렇게 생긴 마수는 처음 봐…….”
“대장이 처음 보는 마수라고?”
“응. 신기하게 생겼네.”
“저 엄청 큰 뿔은 뭐야? 저걸로 공격하는 건가?”
“기사들이 들고 있는 랜스 같군요.”
“와아…….”
린도 트리톱스를 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런 네 사람을 보며 옆에 있던 기사들이 피식 웃었다.
“기사가 된지 얼마 안됐다고 하더니 벌써부터 겁 먹으면 안 된다?!”
“아니면 지금이라도 돌아가. 바지에 오줌이라도 지리면 어떻게 하려고.”
“으흐흐흐, 자네들 신입한테 너무한 말 아닌가. 격려는 못해줄망정.”
“긴장해라. 하급종 마수들과 다르게 저런 마수들을 상대할 때는 잠깐의 방심이 곧 목숨과 직결되니까.”
나름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는 기사들도 있었다.
그러나 필요 이상의 친절일뿐.
전투가 시작되자마자 아시테르가 검을 들고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러자 카이드가 의외라는 시선을 보냈다.
“이번에는 직접 나서게?”
“대충 이곳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했어. 이제 슬슬 움직여야지.”
“그래? 그러면 또 내가 가만히 있을 순 없지.”
“화려하게 가자. 눈에 띄게.”
“그거 좋네.”
아시테르가 검을 들어올렸고 카이드가 창을 고쳐잡았다.
가이우스가 그들의 뒤로 섰다.
린은 그런 세 사람을 보며 미소를 보였다.
그동안 아시테르의 동료들이 바라봐왔을 장면이 바로 이것이었겠구나.
얘기만 들을 땐 몰랐는데 이렇게 직접 보게되니 새삼 질투가 났다.
“그 분은 매번 이런 장면들을 봐 왔겠구나.”
린이 슬쩍 손을 들어올렸다.
그녀의 손 앞에 고대 문자들이 떠올랐다.
화아아아아아───!!
고대 문자들이 빛을 발하자 아시테르와 카이드, 가이우스에게 마력이 스며들었다.
린의 마법임을 대번에 알아차린 아시테르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몸이 가벼워지고 힘이 솟는다.
눈은 더 총명해진 것 같고 머릿속은 덩달아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가볍게 검을 휘두르는 것 같아도 검은 빠르고 날카롭게 나아간다.
이게 다 린의 마법 덕분이었다.
아시테르가 생각하기로 이만큼이나 커다란 버프를 줄 수 있는 마도사는 이 세상에 린 밖에 없었다.
이것도 사실 비체가 린의 능력을 업그레이드 시켜 준 것이었다.
그는 린이 고대의 마법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다행이 린이 사용하는 마법과 마력은 비체도 잘 알고 있는 종류 것이었다.
관련된 책까지 어비스 던전에 자리해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봤던 몇 없는 책중에 설마하니 린과 관련된 책이 있을 줄은 몰랐다.
발도르의 언어로 적혀 있었기 때문에 비체가 읽어 주고 린은 그 내용을 귓속에 담았다.
그렇게 탄생한 더욱 업그레이드 된 마법이었다.
카이드가 짜릿한 흥분을 느끼며 말했다.
“대장. 이게 뭐야?!”
“린의 마법.”
“이런 것도 할 줄 아는 거야?”
“대단하지?”
“당연히 대단하지!!”
카이드가 창을 휘두르니 강한 바람을 일으켰다.
바람에 휩쓸린 마수들이 허공에 떠올랐다.
창이 화려하게 날뛰자 핏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카이드의 창격에 마수들이 버텨내질 못했다.
이어 아시테르가 검을 찍어 내리자 강한 기운이 마수들을 짓눌렀다.
“꾸웨에에에에에에──!!”
“케에에!!!”
여기저기 마수들의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가이우스는 우직하게 밀고나가며 마수들을 주먹으로 고깃덩어리처럼 다져놓았다.
린은 뒤편에서 마법으로 그들을 서포트했다.
고작 네 명이서 수십 마리의 상급종 마수를 상대해낸다.
그 광경을 보며 기사들은 두 눈을 꿈뻑일 수밖에 없었다.
감히 그들에게 조언을 했던 기사들은 멋쩍은 미소를 보이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저런 실력을 지닌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모르고 헛소리를 해댄 것이다.
반면 그들을 조롱했던 자들은 하얗게 질린 얼굴들이었다.
“신입… 이라고 하지 않았어……?”
“요즘 말하는 중고 신인… 뭐 그런 건가?”
“처음 보는 얼굴인데… 웨스트 왕국에서 저렇게나 창을 잘 다루는 사람이 있던가……?”
“괴물들이다… 저런 실력자들을 몰라보고…….”
토벌대의 대장도 너무 놀라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작전?
그런 게 무슨 소용인가!?
저 네 명은 그냥 압도적인 무력으로 마수들을 찍어 내리고 있었다.
작전 따위 애초에 필요도 없었다.
상대가 비슷할 때나 작전이 필요한 것이지.
거대한 인간이 개미 한 마리를 찍어 누르는데 작전은 필요 없을 것이다.
그들이 지금 보고 있는 광경이 딱 그짝이었다.
모든 전투를 끝낸 뒤 아시테르가 검을 허공에 휘둘렀다.
검날에 묻어있던 마수들의 피가 튀었다.
카이드도 창을 휘둘렀다.
창에 묻은 핏물이 공중에 흩뿌려졌다.
그것으로 샤워하듯 몸을 적신 카이드가 웃었다.
“아, 간만에 몸 풀었다.”
가이우스는 입을 굳게 다문 채로 옆에 서 있을 뿐이다.
여전히 묵직함이 있는 사내였다.
그런 세 사람 사이에서 린이 서있었다.
“진짜 대단하네요.”
“뭘 이 정도 가지고. 그치 대장?”
“갈 길이 멀다.”
아시테르가 쓰러져 있는 마수 무리를 보며 말했다.
쿠웅!!!
그때 또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대지가 흔들리는 것만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거대한 소리였다.
“오?”
카이드가 환영한다는 얼굴로 다가오는 마수를 바라보았다.
세 개의 마리가 달려 있는데 모두 하나의 눈을 갖고 있다.
인간의 모습을 한 푸른빛 피부의 마수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건 또 뭐야?”
“사이클롭스.”
“뭐?”
“눈이 하나 있는 인간형 마수를 부르는 말이야.”
“쟤는 좀 강하나?”
“보아하니 우두머리급이다.”
“그러면! 이번에는 내가 쟤를 상대할래. 그래도 되지?”
“얼마든지.”
아시테르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카이드가 몸을 날렸다.
카이드가 창을 세워 놈을 향해 휘둘렀다.
칠흑빛 마기가 낫처럼 휘며 사이클롭스를 강타했다.
질긴 피부탓인지 마기가 완전히 놈의 팔을 자르진 못했다.
“크아아아아아──!!”
사이클롭스가 고통스런 비명을 지르며 팔을 휘둘렀다.
카이드가 허공에서 창을 휘둘러 몸을 회전시켰다.
그것으로 공격을 피한 그가 사이클롭스의 어깨에 착지했다.
“야, 너 진짜 크다.”
자신과 마주보고 있는 얼굴을 향해 카이드가 창을 찔러넣었다.
대놓고 약점을 드러내고 있는 것 같아 카이드의 창이 사이클롭스의 눈을 찔렀다.
놈이 카이드를 붙잡기 위해 팔을 휘둘렀다.
그러나 카이드는 가벼운 움직임으로 녀석의 공격을 모두 피해 내었다.
키잉─!
파콰아아앙!!!
갑자기 날아온 마기의 광선도 카이드는 창으로 튕겨내 버렸다.
그런 카이드를 보며 모두가 감탄을 흘렸다.
저런 초대형 마수를 마치 가지고 놀 듯 하는 카이드의 실력에 열띤 환호를 보냈다.
그러건 말건 카이드는 사이클롭스에게 한 방씩 한 방씩 먹였다.
아무리 질긴 피부라도 공격을 계속 당하면 찢어지게 마련이다.
녀석의 피부에 상처가 생기고 점점 흘리는 피도 많아졌다.
카이드가 마무리 공격으로 창을 내리찍었다.
창날에서 흘러나온 마기가 거세게 폭발하듯 몸을 일으키며 마수의 몸을 두동강 내버렸다.
“별 것도 아니네.”
상위종 마수를 죽이면서도 카이드가 심드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덩치만 컸지 공격은 느려서 하품만 나오는 수준이었다.
그때 아시테르가 카이드를 향해 말했다.
“카이드. 뒤야.”
“뭐?”
쿠웅!!!
거대한 손바닥이 카이드를 짓누르는 듯 보였다.
그러나 반사적으로 공격을 막은 카이드가 창을 들어 손바닥을 밀어내었다.
“뭐야?”
반절로 잘려나갔던 사이클롭스의 몸이 벌써 재생되어 있었다.
이를 본 카이드가 인상을 찌푸렸다.
“하아?”
“사이클롭스는 트롤만큼이나 재생력이 좋아. 그러니 방심하지 마.”
“아, 그런 거였어? 쳇.”
카이드가 창을 휘둘러 녀석의 손바닥을 잘라 버렸다.
그리곤 창을 쥐는 방식을 바꿨다.
손을 중간부분으로 옮긴 카이드가 창을 양쪽으로 휘둘렀다.
회전이 끊기지 않도록 카이드가 녀석의 주위에서 계속해서 창을 휘둘렀다.
창에서 흘러나온 마기가 수십 갈래로 나뉘며 사이클롭스의 몸을 공격했다.
녀석이 고통스런 신음을 흘린다.
카이드를 붙잡아 보려 해도 소용없었다.
카이드는 이번엔 방심하지 않고 녀석을 철저히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수십갈래로 토막 난 녀석의 몸체가 바닥을 뒹굴었다.
그 광경이 썩 보기엔 좋지 않아 시선을 돌리는 자들도 더러 존재했다.
카이드는 사이클롭스의 몸을 분해하듯 수십 갈래로 계속해서 갈라 버렸다.
“이래도 재생할 수 있나?”
마지막 남은 머리 앞에서 카이드가 웃었다.
사이클롭스는 이 순간 눈앞에 있는 것이 인간이 아닌 마수 같았다.
카이드는 단칼에 녀석의 목을 잘라 버렸다.
“끝.”
카이드가 뒤편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게까지 갈기갈기 찢어놓은 이상 다시 재생하긴 어려울 것이다.
아시테르가 그런 카이드를 보며 엄지를 치켜올려 보였다.
린도 마찬가지.
“뭘 이 정도 가지고.”
카이드가 씨익 웃으며 걸어왔다.
트리톱스뿐만 아니라 사이클롭스까지 사냥한 그들의 실력은 빠르게 입소문으로 퍼져 나갔다.
몇몇 이들이 의심하건 말건 아시테르 일행은 상관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연이어 다른 상위종 마수들까지 사냥해내며 금방 자신들의 존재를 증명해 내었다.